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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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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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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06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2.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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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1)

DUMMY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시간은 흘러 벌써 3월 9일 수요일이 되었고, 황대근을 비롯한 대부분의 H고 학생들은 낯설고도 새로운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황대근과 이시연, 백경민은 3학년 1반이 되었다. 좋은 것인지 아니면 아닌 것인지, 안익준 역시 같은 반이었다.


"자, 그럼 너희끼리 알아서 반장 부반장 잘 정해봐라. 3학년씩이나 됐으면 뭐 알아서 잘 하겄지. 나는 교직원 인권교육 들으러 가야 되니까. 알겠지? 임시반장!이시연!"


3학년 1반의 담임은 신용호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가 되자, 그는 임시반장인 이시연에게 모든 것을 맡긴 후 교육을 들으러 교실을 빠져나갔다.


동계훈련을 야외에서 많이 한 탓일까? 칠판 앞으로 걸어가는 이시연의 가는 다리는 약간 그을려있었다. 희한하게도, 얼굴은 밀가루 반죽마냥 희었다. 아마 필사적으로 자외선을 차단했으리라.


"야, 아무나 추천 해봐. 누가 반장 하고 싶은 사람 있냐? 아니면 추천할 사람은? 안 하면....."


무슨 야쿠자마냥 다짜고짜 추천해보라 협박 하다니. 반 아이들은 우물쭈물 대며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신 있게 손을 번쩍 든 학생은 바로 백경민이었다.


"황대근이 추천합니다!"


서울의대에 가기 위해서는 사실 공부 외의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 정시라는 제도가 있다지만, 어찌 보면 정시 역시 옛날의 구식 방식일 뿐일지도 모른다.

수시라는 제도는 참 까다로와서, 단순히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되는 제도가 아니다.


"그래 알았어. 황대근.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이시연 너 해라!"


짖궂게 생긴 한 까까머리 남학생이 이시연을 향해 소리치자, 그녀는 말했다.


"난 생각 없어. 반장 부반장 한 거 적으면 리더십뭐시기 해서 수시 쓸 때 도움 된대. 이거 가져갈 애들 더 없어? 야, 3학년은 어차피 담임들이 뭐 크게 안 시켜. 그냥 바지사장 같은 거라고."


이시연이 칠판을 팡팡 두드리자, 한 남학생이 손을 들어 올렸다. 명찰을 보니 '정교빈'이라 적혀있었다.


"안익준 추천."


그제서야 황대근은 새학기가 시작 된 지 무려 약 일주일 만에 안익준이 자신과 같은 반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반이라니.


작년 겨울 말, 김철환은 이미 죽은 지 오래인 곽두팔과 시험지를 유출한 혐의로 인해 검찰에게 기소되었고, 지금은 3심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김철환은 계속해서 혐의를 부정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으나, 증거가 뚜렷하고 공범으로 의심되는 학원 관계자들의 증언이 일치하여 불리한 상황이다.

아마, 김철환은 최소 2,3년은 징역을 살게 될 것이다.


'분명 안익준도 공범일텐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니...'


안익준은 뻔뻔했다. 놀라울 정도로 뻔뻔했다.

만약 H고등학교가 분당이나 강남, 혹은 동탄이나 대치동처럼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 있는 학교였다면 안익준은 이렇게 얌전히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H고학부모들도 안익준에 대해 H고 민원실에 몇십통, 아니 어쩌면 몇 백통의 전화를 걸었으나, 그 뿐이었다.


그들은 그 사건을 곧 잊었다. H고는 그런 학교였다.

이것이 분명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꿀 의지는 없었던 것이다.

대다수의 학생들도, 대다수의 학부모들도 갑자기 끓은 주전자뚜껑처럼 팍 하고 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대다수의 H고 학생들은 공부와는 담을 쌓은 학생들이었고, 그들의 학부모들 역시 자녀들의 학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결국 피해를 본 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성실한 학생들이었다.


그 학생들에는 김현과 백경민, 그리고 박정우 등등이 포함되어있었다.


'저 새끼는 작년부터 안익준하고 같이 다니던 놈이었지. 뻔뻔하기 짝이 없구만.'


정교빈은 안익준의 친구, 아니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일종의 따까리다.

시험지유출 사건이 터진 후, 정교빈은 안익준을 배척하기는 커녕 더욱 따랐다.

안익준에게 그 어떠한 피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뒤의 행동이었다.


저 놈 뒤에 줄을 서면 나에게도 떡이 떨어지겠지. 쟤랑 같이 다니면 뭘 해도 합법일 거야. 불법을 저질러도 죄가 아닐 걸.

굳이 공부할 필요는 없지. 쟤량 다니면 되니까. 쟤는 금수저니까.

물론, 안익준의 바닥에 떨어진 빛나는 황금 깃털을 핥아 대는 학생들은 정교빈뿐만이 아니기는 했다.


"알았어. 반장 후보는 그럼 안익준하고 황대근밖에 없는 거지?"


탁- 탁-


이시연이 두 남학생의 이름을 칠판에 크게 적었고, 반장투표는 시작되었다.







(대근건설 - 근골격부서 - 대련실)



한편, 또 다른 황대근은 혜윰과 함께 대련실에 있었다.

그의 오른쪽 발은 제법 특별했는데, 얼마 전 타이니가 만들어준 의족(義足)이었다.


단순한 의족은 아니었다. 타이니는 작년 황대근이 마이크로바이옴과 자신의 작업실을 강도윤으로부터 구해준 것에 대해 늘 고마움을 품고 있었다.

그런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타이니는 황대근에게 선물을 하나 만들어주었다. 바로 의족이다.


타이니는 황대근이 아무리 받으라해도 돈도 받지 않았다. 황대근이 그에게 의족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타이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의족을 만들기 시작했다.


뻐엉— 펑-!


근골격부서의 대련실은 컸다. 조금 과장한다면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 와서 축구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넓었다.


물론 이곳은 축구장은 아니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근골격부서 직원들은 대련실 양 끝에 간이 골대를 설치한 후 축구를 즐기고는 했다.

황대근은 의족을 단 기념으로 프로틴과 광배, 그리고 왕근 등등과 함께 축구를 하고 있었다.


혜윰도 함께 축구에 참가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제법 좋았다.


"와, 대근씨 오른쪽 킥이.... 굉장한데요?"


방금 전, 황대근이 찬 공이 펑하고 터진 것을 목격한 혜윰이 입을 떡 벌린 채 황대근을 쳐다보았다.

혜윰은 대단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으나, 황대근은 민망했다.


축구공이니 그렇게 대단하다고는 볼 수 없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남의 물건이니까. 일종의 기물파손아닌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프로틴팀장님. 이게 아직 조절이 잘 안 되네요."


황대근은 터져 흐물흐물해진 축구공을 주워 프로틴에게 건넸다. 축구공 가죽의 겉면에는 '3대800이상만 사용가능'이라고 적혀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근골격부서 입사 조건 중 하나가 남녀 모두 3대 500이라고 하던데,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저번에 이거 처음 착용한 다음 바로 구내식당 갔었거든요. 그런데 그만... 구내식당을 폭파시킬 뻔 했다니까요."


타이니가 준 의족을 처음 착용한 후, 황대근은 메모리아 부서 내 구내식당으로 갔다.

그날 따라 황대근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알고 보니, 의족의 성능이 지나치게 좋은 나머지 5분이면 갈 구내식당을 5초만에 도착한 것이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황대근은 그만 컨트롤을 밟고 지나가 버렸다.

그 덕에 컨트롤의 얼굴에는 한동안 바퀴가 그의 얼굴을 짓밟고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괴상한 자국이 남았다.


"괜찮아, 황대근. 별 것 아니니까. 그보다 난 정말 신기한데? 이 축구공은 10kg짜리거든. 3대 800이 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


근골격부서 직원들은 대체로 근육에 미친 놈들이다.

그들은 자면서도 근손실을 걱정했고, 밥을 먹으면서도, 심지어는 화장실을 가면서도 근손실을 걱정했다.


광배가 마님에게 차일 법도 하다. 그는 여전히 근손실이 무서워 유산소는 쳐다도보지 않으니까. 근골격부서 직원의 3분의 2가 모태솔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황대근, 나중에 우리 근골격부서에 들어올래? 넌 등이 좋으니까 광배랑 같이 등 파트를 맡으면 될 것 같은데."


프로틴의 적극적인 헤드헌팅(head hunting)에 황대근이 난감해하고 있는데 혜윰이 그에게 말했다.


"대근씨!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혜윰은 많이 먹지만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씬하다.

근골격부서 직원들에 비교하면 혜윰의 몸집은 고래 옆의 작은 새우에 불과하다.


조금 전까지 축구를 해서 그런가, 혜윰이 입은 짧은 하얀 운동복 상의는 땀에 젖어있었다.


"네, 그거 맞아요."


혜윰은 조금 전 왕근이 새로 가져온 7kg짜리 축구공으로 왕근과 함께 킥을 연습하고 있었다.

10kg을 다루는 것도 놀라웠는데, 7kg을 저리 쉽게 다루다니. 황대근은 솔직히 놀라웠다.


몸은 저리 날씬하고 체격도 그리 큰 편이 아닌데. 대체 저 파워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조혈모세포들의 특징일까?


쨍그랑!


"헉!"


조절을 못한 탓일까. 혜윰이 찬 축구공은 그만 대련실과 대련실 옆에 있는 카페를 가로막는 유리를 깨부수고 말았다.

만약 이곳이 뇌부서였다면 혜윰은 징계감이었겠으나, 이곳은 뇌부서가 아니다.

여긴 근골격부서다. 근골격부서는, 힘이 센 이들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바벨과 덤벨 아래 모두 평등하리니]


근골격부서의 격언 중 하나다. 왕근은, 유리를 깨먹은 혜윰을 노려보기는 커녕 오히려 하트가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주 좋아, 아주 좋아! 나와 함께 하체데이트를 하는 게 어떻겠는가, 혜윰? 하체 끝나면 같이 프로틴 주스 한 잔 하지! 어떤가?"


혜윰이 왕근의 사랑(?)고백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동안, 대련실 옆 카페에서는 한 여자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 여자는 마님이었다. 마님은 카페에 고상하게 앉아 웃통을 벗고 축구를 하는 광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유리가 깨진 것이다.

마님은 광배에게 들킬까 걱정되었는지 그만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에이 정말.... 광배한테 들키기 전에 얼른 가야지."


가끔씩 양심을 화성에 버려두고 온 것 같은 마님이기는 하지만, 그녀에게도 나름대로의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다.

마님 때문에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광배의 월급이 20퍼센트나 깎여버린 것이다.

마님은 미안했고, 늘 광배에게 사과할 타이밍을 재곤 했다.


물론, 광배에 대한 음흉한 속셈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진짜.... 언제 사과하지? 언제 저걸...."

"어? 마님?"


마님의 수상쩍은 눈빛이 깨진 유리들을 치우는 광배를 훑고 있는데, 누군가 마님을 불렀다.

황대근이었다. 마님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뭐, 뭐야?!"

"여기서 뭐하세요, 마님?"


마님은 흥 하는 소리를 내보이더니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던 말던? 네가 뭔 상관이니?"

"광배 훔쳐봤죠?"

"뭐, 뭐...?"

"딱 봐도 보여요. 뭐랄까, 띠동갑은 더 나는 나이 많은 여자가 한참 어린 놈 훑어보는 그 눈빛. 딱 보면 알죠."

"허, 참! 네가 뭔 상관이니?"


당황한 마님은 서둘러 가방을 챙겨 근골격부서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다 그녀는 카페의 문을 박차고 나가려다 자신의 한복치마에 발이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제법 쪽팔리긴 했는지, 마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고리의 옷고름으로 얼굴을 감싸 버선발로 서둘러 도망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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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콩가루집안 (2) 22.01.01 18 1 10쪽
227 콩가루집안 (1) 21.12.31 2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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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발 없는 시체 (2) 21.12.30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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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스터디 모임 (3) 21.12.29 1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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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달밤의 추격전 (2) 21.12.26 17 1 13쪽
216 달밤의 추격전 (1) 21.12.26 1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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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2) 21.12.24 19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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