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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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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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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80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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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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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콩가루집안 (3)

DUMMY

이시연이 씩씩거리며 이른 잠자리에 든 동안, 안광윤은 술집에 있었다.


"서장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안광윤의 곁에는 그의 후배들이 잔뜩 있었는데, 모두 안광윤의 아들인 안익준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서장님! 저희 아들도 서장님 아들처럼 똑똑한 녀석으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안광윤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며 말했다.


"서장님이 똑똑하시니까, 아드님도 똑똑하신 거죠! 역시, 유전자는 무시 못 합니다! 우월한 유전자를 지니셨습니다!"

"하하, 그만 해. 비행기 그만 태우라고. 하하하!"


그를 축하해주는 후배들을 보며, 안광윤은 괜히 튕기고 있었다.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기분이 좋으면서 말이다.


"하하, 뭐 나를 닮아서 그렇지! 우리 아버지가 서울의대 출신이시거든!"


물론 안광윤의 학벌은 좋지 않다. 그의 아버지가 서울의대 출신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가 경찰서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요?'


안광윤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있던 갈색머리의 젊은 남자가 옆에 있는 나이 든 남자에게 물었다.


'저 빨랑 집 가서 애 좀 봐줘야 하는데요.'


그러자 나이 든 남자가 그를 나무랐다.


'이놈아! 지금 분위기 안 보여? 네가 지금 애 보는 게 중요해? 네가 여기서 줄을 잘 서야, 나중에 네 애한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야. 이런 자리를 잘 잡아야...'

"거기, 술 한 잔 받지!"


그때, 안광윤이 갈색머리 남자에게 술을 권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갈색머리 남자는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감히 선배의 말을 무시한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툭툭-


갈색머리 남자가 계속 가만히 있자, 분위기는 가라앉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염려한 나이 든 남자가 갈색 머리 남자를 남몰래 툭툭 쳤다.


'이봐! 얼른 대답해!'


그제서야 갈색머리 남자는 정신을 차렸고, 자신의 빈 술잔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안광윤의 흥은 이미 다 식어버린 상태였다.


"아~ 제가 한 곡조 뽑아보겠슴다!"


이미 죽은 분위기이건만, 나이든 남자가 식어버린 흥을 다시 되살리려 애쓰며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요즘 핫한 가수 송가인 노래를 불러보겠슴다! 자! 다 같이 일어나서~ 우리 서장님 아드님을 위해~! 노래 한 곡~ 하겠습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이것이 사회생활인가. 갈색머리 남자는 속으로만 고개를 저었다.

반면 나이 든 남자는 겨우 웃음을 되찾은 안광윤을 위해 노래를 부르며 속으로 쓰디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다음 날 5월 26일 목요일. H고 3학년 교무실에는 한 명의 여자밖에 없었다.

바로 나예민이었다. 그녀는 자기 자리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멍한 표정으로 교무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 퇴근하고 싶다. 아 퇴사하고 싶다. 아 다 때려치고 싶다.


드르륵-


나예민의 머릿속이 모두 텅 비어버렸을 즈음, 전주한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제법 즐거워 보였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해 보인다.


'뭐지. 왜 헤실헤실 웃고 있어.'


나예민이 전주한에게 딱히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막 출근한 직장인의 정신상태는 이런 법이다.


'운동화?'


나예민은 무심코 전주한의 발 부분을 보았고,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쌤 운동화 새로 사셨나봐요?"


그녀의 질문에 전주한은 살짝 흠칫하더니 대답했다.


"네? 아, 이거요? 새로 샀는데 괜찮죠?"

"그거 완전 비싼 운동화 아니에요? 이번에 봐버리에서 신상으로 내놓은 거 아닌가?"


전주한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새로 샀어요. 예쁘죠?"


정말로 악의는 없었지만, 나예민은 괜히 시비를 걸고 싶었다.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그걸 샀어요? 교사월급 다 털어넣었겠네."


허나 전주한은 기죽지 않았다. 사실, 별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평소에 저축을 열심히 해서 여윳돈이 있었습니다."


딱히 즐거울 것 없는 의무적인 대화가 끝이 나고, 전주한은 자기 반인 3학년 3반으로 돌아갔다.


호록-


그런 전주한의 마지막 뒷모습을 떠올리며, 나예민은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평소에는 돈 아깝다고 3000원짜리 커피 한 잔 사는 것도 아까워하는 인간이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하고.


"아! 맞다!"


그러다 갑자기 나예민은 잊고 있던 한 가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지난 중간고사 지난 중간고사 당시 안익준이 있던 반, 그러니까 3학년 1반 시험감독 들어갔을 때, 어떤 학생이 아무래도 신고를 한 것에 관한 것이다.


나예민이 특정 학생이 커닝하는 것을 묵인했다는 신고였는데, 나예민은 억울했다.

그녀는 그저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때 교실에 있던 학생들 중 누가 커닝했는지 그녀는 조금도 모른다.


드르륵-


나예민이 책상에 얼굴을 박고 밀려오는 스트레스를 상대하고 있는데 신용호가 들어왔다.


"나쌤, 무슨 일 있어요?"


교무실 한복판에서 기체조를 하면서, 신용호가 뚱한 표정의 나예민에게 물었다.


"얼굴이 영 말이 아니네. 칼슘 좀 챙겨먹어요."

"요즘 하도 욕을 먹어서 화가 많네요."


나예민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신용호는 눈치챌 수 있었다.

나예민보다 최소 십 년 이상 교직생활을 했으니, 모를 리가 없다.


"하하, 선생이란 직업이 참 그렇지. 뭐 하면 욕먹고 안 해도 욕먹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어서 욕을 먹고 움직이면 움직인다고 욕먹지. 어쩔 수 없는 거죠 이건."

"저는 익준이가 커닝했는지 몰라요. 못 봤으니까."

"그렇습니까?"

"네. 익준이가 정말 커닝을 했다면 제가 알 텐데.... 애들은 티가 나잖아요. 아무리 애써서 숨긴다 해도."

"그럼 선생님을 신고한 학생이 잘못 본 거라는 건가요?"

"제 생각에는 그래요. 그런데..."

"그런데?"

"익준이 성적이 그렇게 갑자기 오를 수가 있나요?"


신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신기하기는 합니다. 저희 반 학생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게다가 대근이 성적은 훅 떨어졌어요. 물론 잘하는 상위권 학생들도 종종 성적에 기복을 보이기는 합니다만, 이렇게까지 큰 편차가 나지는 않지요. 뭔가 수상하긴 합니다."


신용호 역시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아침조례를 할 시간이었고, 또 최근들어 3학년 1반 학생들 중에서 지각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 나도 슬슬 우리 반으로 가야지. 정말, 난 고삼 담임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는데..."


툭-


"어?"


교무실 밖으로 나가려던 나예민은 무언가를 목격했다.

교무실 문 쪽에는 전주한의 자리가 있다. 교무실을 나가려면 전주한의 자리를 지나야만 한다.


"이, 이게... 이게 뭐야?"


그녀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녀가 처한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뒤짚어엎을 수 있는 무언가를.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이번에는 저희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네요."


메모리아 직원들끼리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혜윰이 말했다.


"우리 대근이 서울의대 보내야 하는데 말이에요."


메모리아 4인방은 아침을 먹으며 인간 황대근의 성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등을 놓쳐본 적 없는 녀석이 갑자기 168등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안익준 그 싸가지 없는 자식 몸 속으로 케어대장님이 출장 좀 가시면 안 되나요?"


메모리의 조금 위험한 발언에 황대근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케어대장님 보고 죽으러 가라는 소리나 다름 없습니다. 저번에 케어대장님 조난사고 당했던 거 기억 안 나십니까?"


생각해보면 케어야 말로 대근건설에서 가장 불쌍한 직원임에 틀림없다.


툭하면 불려가고, 하는 일은 드럽게 많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 천만한 일을 도맡아 함에도 불구하고 윗선에서는 그를 싫어한다.

대근건설 밖으로 빠져나가 조난 당하기도 하고, 거대한 모기에게 물려 죽을 위기도 넘겼다.


그런 케어에게 안익준의 몸 속으로 출장을 가라는 것은, 황대근 말대로 그냥 나가 뒤지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아, 이렇게 무력할 수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레이지가 기다란 혈관 모양 쫀드기를 씹으며 투덜대고 있는데, 전서혈 하나가 도착했다. 릴리가 보낸 전서혈이었다.


"이게 뭐야?"


전서혈을 받은 황대근이 내용을 확인했다.


"아니.... 안익준 이 새끼....?"


황대근이 가만히 서서 전서혈을 바라만 보고 있자 혜윰이 물었다.


"대근씨! 뭔데 그래요?"


그제서야 황대근은 메모리아 직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번 일,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대근건설 - 뇌부서 맷돌팀)



릴리로부터 전서혈을 받게 된 메모리아 4인방은 즉시 맷돌팀으로 이동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들 곁에는 광배도 있었다.


"뭘 해달라고?"


난데없이 맷돌팀으로 들이닥친 5명은 맷돌팀장 돌쇠에게 부탁을 하나 건넸다.

바로 릴리에게 받은 전서혈을 인간 황대근이 떠올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안 돼."


허나 돌쇠는 즉시 거절했다.


"맷돌 돌리는 게 얼마나 어려울 줄 알기나 해?"


맷돌은 돌쇠가 아니라 미생물들이 돌리는 것인데. 미생물들은 돌쇠를 노려보았다.


"게다가, 그건 인간 황대근의 자료가 아니잖아. 봐봐. 인간 황대근 자료는 흰색이야. 하지만 그건 검은색이라고. 다른 놈 자료 아녀?"

"돌쇠~?"


돌쇠가 방망이를 들고 황대근과 일행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한 여자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님이었다.


"돌쇠, 이 분들 부탁 들어줘."


돌쇠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네? 하지만 마님! 이놈들은...."


허나 마님은 단호했다.


"들어줘."

"하지만... 하지만..."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거야. 게다가 인간 황대근을 위한 일이라며? 돌쇠 너, 인간 대근이가 성적이 떨어진 후로는 보너스도 잘 안 나오잖아? 아니야? 이번 일이 잘되면 돌쇠 너한테도 좋은 거야."


마님 덕분일까, 황대근과 일행들은 원하는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근데 저 여자... 왜 자꾸...."


황대근은 마님이 왜 자신들을 도와주었는지에 대해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마님의 시선이 미생물들을 도와 맷돌을 굴리는 광배에게 고정되어있었던 것이다.







(경기도 평택시 - SSS클래스 노블리치골드프리미엄캐슬 아파트)



"호호호!"


몇 시간 뒤, 익준엄마는 스터디모임 엄마들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잠깐 동안은 평범한 주부들의 대화가 주를 이뤘지만, 곧 본색이 드러났다.


"익준엄마, 전교 1등한 비법이 뭐야?"

"대근엄마한테 비법 전수받은 거야?"


물론, 이곳에 대근엄마는 없었다.

끈질긴 엄마들의 질문에, 익준엄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비법이랄 게 있나~? 그냥 애 하고싶은대로 내버려두는 거지~"


그녀의 재수 없는 발언에 다른 엄마들이 장난스레 항의했다.


"아유~ 대근엄마가 알려줬구만, 알려줬어~! 대근엄마 너무하네~ 우리만 쏙 빼놓고 익준이 엄마한테만 알려주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들은 익준엄마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진심을 대근엄마가 익준엄마에게만 비법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대근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해주어야 그 여자가 비법을 알려줄까 고민했다.


'훗, 단순한 년들.'


익준엄마는 속으로 자기 눈 앞에 있는 엄마들을 비웃었다.


'그렇게 굽신대면서 빌빌 거려봐라. 니들 자식들이 전교 1등 할 수 있나. 원래 고급 정보는 안 알려주는 거라구. 불쌍한 서민들한테 뭐하러 알려주겠어? 그건 공정하지 못하지. 너흰 그냥 평생 공정이니 공평이니 따지면서 끼리끼리 놀아라.'


♪- ♩-


그때,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익준엄마의 핸드폰이 울렸다.

벨소리는 엘리제를 위하여였는데,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엄마들은 익준엄마는 벨소리도 고상하다며 아양을 떨었다.


♪- ♩-


다른 엄마들은 이 벨소리를 교양있는 소리라 생각했겠지만, 익준엄마는 아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분명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전화벨소리인데. 왜 오늘따라 불길하게 들리는 것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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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악인의 선행은 선행인가 (2) 22.01.05 17 1 10쪽
236 악인의 선행은 선행인가 (1) 22.01.05 17 1 12쪽
235 구해줘 (save me) (3) 22.01.04 19 1 12쪽
234 구해줘 (save me) (2) 22.01.04 20 1 12쪽
233 구해줘 (save me) (1) 22.01.03 19 1 12쪽
232 소리 없는 아우성 22.01.03 19 1 11쪽
231 나에게로의 초대 22.01.02 17 1 12쪽
230 콩가루집안 (4) 22.01.02 17 1 12쪽
» 콩가루집안 (3) 22.01.01 18 1 13쪽
228 콩가루집안 (2) 22.01.01 18 1 10쪽
227 콩가루집안 (1) 21.12.31 21 1 11쪽
226 발 없는 시체 (3) 21.12.31 18 1 12쪽
225 발 없는 시체 (2) 21.12.30 18 1 11쪽
224 발 없는 시체 (1) 21.12.30 18 1 12쪽
223 스터디 모임 (4) 21.12.29 18 1 12쪽
222 스터디 모임 (3) 21.12.29 17 1 13쪽
221 스터디모임 (2) 21.12.28 17 1 11쪽
220 스터디모임 (1) 21.12.28 18 1 13쪽
219 원래 사건 터지면 몸통이 아니라 꼬리가 잡혀가는겨 21.12.27 18 1 12쪽
218 달밤의 추격전 (3) 21.12.27 17 1 13쪽
217 달밤의 추격전 (2) 21.12.26 17 1 13쪽
216 달밤의 추격전 (1) 21.12.26 16 1 12쪽
215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2) 21.12.25 15 1 15쪽
214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1) 21.12.25 16 1 12쪽
213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3) 21.12.24 16 1 12쪽
212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2) 21.12.24 19 1 13쪽
211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1) 21.12.23 2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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