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07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8.21 19:06
조회
24
추천
0
글자
12쪽

지옥으로부터의 귀환 / 경련

DUMMY

<지옥으로부터의 귀환>


얼마 안가 비포장 도로가 나오며

그다지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신들의 지프 뒤쪽 부분이 보였다.

감으로라도 일단 원래 있던 곳 쪽으로 오기는 왔던 것이다.


한 손에 권총을 뽑아 들고 뒷좌석에서 힘들게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바로 김대위였다.

김대위는 살아 있었던 것이다.


김대위는 총탄 세례를 받고 의식불명 상태에서

방금 전 강상병이 쏜 엠식스틴 총소리에 겨우 정신이 든 것 같았다.



“중대장님!”

강상병은 마치 지옥에서 김대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강상병을 확인한 중대장은 고통스러운 듯 권총을 잡은 채로 한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김대위는 어깨에 큰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치명상은 아닌 것 같았다.


“강상병 자넨 괜찮아..”

“예. 중대장님.”

강상병은 급한 데로 자신의 군복 윗도리를 찢어서 김대위의 상처를 감쌌다.


“아까 그건 뭔가..”

강상병은 사색이 되어 아무런 대답도 않았다.


“혼자서 뭘 어떻게 하겠다고 그래. 여길 지켜야지.

근데 대대장님은 왜 또 저러고 계셔.. 대대장님,,,”


아직도 완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

김대위가 불길한 예감에 대대장의 어깨를 잡으려 하자

총알도 피해갈 사람인 것만 같았던 대대장이 앞쪽으로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 아닌가.


“이런... 대대장님!”

김대위 역시 순식간에 닥친 일이 믿어지지 않는 듯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렸다.

선혈이 낭자한 채 꼼짝도 않고 거꾸러져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기관총 사수였다.

“아직 살아 있어!”



강상병은 자신이 어떻게 전속력으로 지프를 몰고

다시 대대본부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대대본부를 나선 후 얼마되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으며

강상병의 머릿속은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황폐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강상병, 자네.. 등에 그게...”

자신의 상처를 감싸고 남은 강상병의 군복 윗도리를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한쪽 손에 쥐고 기관총 사수의 상처를 지혈하느라 여념이 없던

김대위가 어느 순간 그렇게 지적하고 나서야

강상병은 자신의 등에서 허리까지 뭔가 적셔진 느낌을 받았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자신의 등을 쓰다듬어 보았다.



자신의 손에 묻혀진 것은 붉은 피였다.

강상병 자신도 총상을 입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이 상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헤집고 돌아다닐 수 있었단 말인가.


참으로 이상하게도 멀쩡하던 강상병은 그때서야 극심한 통증을 느끼지 시작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갑자기 밀려든 고통에 강상병은 이를 악물고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대대장은 이미 전사하고 전원 총상을 입은 채 지프가 들어서자

대대본부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상태를 본 대대 군의관은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 보이는 김대위와 강상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반병들에게 기본 응급조치만 맡기더니

자신은 의무병과 함께 오로지 사경을 헤매는 기관총 사수를 살려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겨우 고비를 모면하긴 했지만,

여전히 기관총 사수는 긴급하게 후송하지 않으면 안 될 위중한 상황이었다.



<경련>


이후에야 의무병의 치료를 받으며 조금이나마 이성을 차린

김대위는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부상에도 불구하고

대대 선임하사에게 대대본부 바로 가까이서 도로복구 작업을 하고 있던 주민들을 조사해 보라고 명령했다.


한국군은 혹시 있을지 모를 게릴라들의 출몰을 피하기 위해

진지 간에 주로 헬기로 이동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나고 적의 주력이 물러났는데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용 트럭으로 경미한 부상자들과 보충 병력들이 이동했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일어날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목숨을 건진 것 또한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총알은 정확하게 대대장이 앉아 있던 자리를 향하고 있었고,

자신들은 단지 부차적인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전투 이후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는데도 얼씬도 않던 베트콩들이

어떻게 정확하게 자신들이 올 줄을 미리 알고

그 짧은 시간에 장애물에다 사수까지 정확하게 배치하고 있었단 말인가.



김대위의 예감은 적중했다.

대대본부 소속 하사관들이 사병들과 함께 조를 이루어

도로 작업을 하고 있던 주민들의 소지품을 일일이 검색하던 중

이전부터 현지에 근무한 관계로 사정에 밝았던 한 선임하사가

꽤나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던 손바닥만한 소형 무전기를 발견했고

용의자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런데 무전기가 들어 있던 그 소지품의 주인은

의외로 부대원들과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공 대학 출신의 휴학생이었다.


통역관도 변변히 없었던 대대에서 주민 중에 그나마 영어가 되는 그 친구가

공병대들의 대민 지원 사업이나 대대원들과 자주 소통해 주었기에

김대위 역시 안면이 있는 터였다.


대대본부로 구인된 사이공대 휴학생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고,

다들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휴학 중에 시골에 내려와 일당을 받으며 어려운 집안 형편을 돕는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한 친구로,

더군다나 그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그 나라 최고 학부라 할 수 있는

촉망 받는 사이공대학 출신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위험한 간첩 짓을 했겠느냐는 생각에 다들 의아해했다.


그러나 함께 작업하던 공병대 병사들에게서 작업 도중 잠깐 사라지긴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대대본부에서는 그대로 있을 수만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들의 최고 지휘관인 대대장이 사망했다.

그러나 정규군도 아닌 간첩 혐의자를 심문해 본 경험도,

그러기 위해 필요한 정교한 통역도 없었기에

대대본부는 무전으로 미군측에 심문을 요청했다.



원래는 부상자들만 실어 나르기 위한 환자 후송 전용 헬기인

더스트오프가 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긴급히 교체되어 M60 기관총에다 중무장 병력까지 탑승하는

거대한 휴이헬기가 남베트남군 정보관까지 대동한 채 위풍도 당당하게 도착했다.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 부상병들을 후송 병원에 내려놓은 후

곧 바로 헬기는 정보부로 향할 예정이었다.



미군들과 함께 남베트남 정보부 요원이

한국군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자신 쪽으로 차츰 다가오자

그때까지 영어가 조금 통하던 주위 한국 병사들에게

온순하게 자신을 변론하던 사이공대 휴학생의 태도가 돌변하더니,

갑자기 바로 앞에 있던 한 병사의 군복 가슴팍에 부착되어 있던

수류탄을 손으로 잡아 떼어버리고는 그대로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침략자들!”

수류탄을 손에 든 채 분노에 찬 얼굴로

그렇게 한국말로 사이공대 휴학생이 고성을 질렀다.

언젠가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그 말을 해 주고 싶었던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한국군 병사들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긴 했으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다들 어리둥절해 하며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저 자식, 저거 왜 저래..”

“야 임마 그거 내려놔! 다운, 다운.”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한국 병사들이 계속 뒤로 물러서며

내려놓으라는 손짓을 했건만

아랑곳 않고 사이공대 휴학생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제거해 버렸다.


“팍 유! 유 배스터즈(엿 먹어! 이 쌔끼들아).”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이 그때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어깨에 울러 멘 소총을 겨누긴 했지만

아무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안면 있던 한국 병사들에게는 차마 그럴 수 없었는지

안전핀을 제거한 채로 머뭇거리던 사이공대 휴학생은

다가오던 미군 측을 향해 절규하듯 고함을 지르며

수류탄을 집어 던지려 했다.


“유 캔 네버 윈 어쓰!(너희들은 우릴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러나 여지없이 미군 측의 중화기들에서 불이 뿜어졌고,

여러 발의 총탄을 몸에 맞은 그는 수류탄을 떨어뜨리며

힘없이 그대로 쓰러졌다.



심한 총상을 당한 채 쓰러진 후에도

사이공대 휴학생은 땅에 떨어진 수류탄을 다시 집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치명상으로 인해 힘에 부친 그의 손이 닿을 수 없었던

수류탄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따..따 뜨하오 드억 쨋... 테나이,,,(난..난 영광스럽게... 죽는거야...)”

더 이상 움직일 수조차 없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알아듣지 못할 구호 같은 것을 처절하게 외치며 있었다.


“박호.. 무언.. 남...(호아저씨.. 만세...)”

결국 숨을 거둔 그와 함께 상황은 모두 종료되었다.



부축을 받으며 헬기로 이동하다 그 장면을 목격한 김대위는 눈을 감았다.


무장 헬기에다 미군과 정보부 사람들까지 나타나자,

사이공대 휴학생은 자신이 어디로 끌려갈지 감지한 것 같았다.

정보부에 끌려가면 무자비한 고문을 당할 것이고

결국 자신의 동지들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었기에

이곳에서 모든 것을 끝내려 했던 것이다.



사이공대 휴학생이 잡혀가면서부터

하던 일을 멈추고 다들 부대 밖에 모여

벌어지고 있던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베트남 사람들의 시선들을 느끼며

김대위는 자신이 지금 이곳에서 어떠한 지점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놀라지도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미국과의 그 전쟁으로만 4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이공대 휴학생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전의 전투에서 전사한 베트콩들 중 많은 수가

놀랍게도 바로 그 지역 마을에 살고 있던 젊은이들이었고,

그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자신들의 부모, 형제와 자식들이

수 없이 죽어 나가는 것을 바로 곁에서 보아 왔던 것이다.


격한 질시보다는 오히려 분노와 슬픔이 어우러진 그 조용한 시선들을

김대위는 견딜 수 없었고,

그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남베트남군 정보관은 겨우 몸을 날려 수류탄 파편을 피한

주위 한국군들에게 포로를 적절히 제압하지 않고

그렇게 소홀히 다룬 것에 대해 심하게 항의하는 것 같았고,

미군 측까지 가세해서 대대참모들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같은 베트남 사람들을 대하는 그 거만한 태도나

미군과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보아

그는 자신들을 도우러 온 동맹국의 지휘관이 전사했는데도,

어쨌든 자국의 그 아까운 젊은이가 비명에 갔는데도,

오로지 한 건수 올려 진급할 수 있는 기회가 무산된 것만을 아쉬워하는 것이 역력해 보였고,

김대위는 뭔가 역겨운 느낌과 함께

저런 인간과 자신이 한편이라는 사실에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부상당한 병사가 위급하니 빨리 출발해야 한다는 군의관의 설득에

미군과 정보부 요원이 자리를 뜰 때까지,

눈을 부릅뜬 사이공대 휴학생의 주검과 베트남 주민들의 그 시선들 사이에 놓여 있던

그 짧은 시간이 김대위에게는 지옥같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헬기가 떴다.

헬기가 높이 올라갈수록 멀어져가는 대대본부가 이제 아득히 다른 곳처럼 느껴지며,

강상병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야! 강상병 너 왜 그래, 임마 정신 차려! ”

강상병의 동공이 중심을 잃는 것을 보며

김대위가 뺨을 때리지 않았다면, 정신을 잃어 버렸을 지도 몰랐다.



그날 강상병은 하루 중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에 겪은,

그 모든 것이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오며

헬기로 후송되는 내내 몸이 뒤틀리며 경련이 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색깔 공방 23.08.28 24 0 9쪽
35 허무한 몰락 / 물리학적 귀결 23.08.25 21 0 10쪽
34 시대의 기수 / 부조화 23.08.24 19 0 14쪽
33 인연 23.08.23 18 0 12쪽
32 마지막 명령 / 뜻밖의 해후 23.08.22 21 0 10쪽
» 지옥으로부터의 귀환 / 경련 23.08.21 25 0 12쪽
30 고군분투 / 현기증 23.08.18 20 0 11쪽
29 개운치 못한 승리 / 끝나지 않은 전투 23.08.17 19 0 10쪽
28 격전 / 생과 사 23.08.16 23 0 11쪽
27 사지를 향해 23.08.15 24 0 13쪽
26 밥과 옷 / 전쟁 23.08.14 22 0 11쪽
25 길 위의 대화 23.08.10 22 0 11쪽
24 신고식 23.08.09 23 0 9쪽
23 노인과 환영 / 에프엠과 꼴통 23.08.08 24 0 13쪽
22 제2편 레드(‘극’자 돌림): 꼰대들의 월례 행사 / 여러 노선의 문제 23.08.07 25 0 10쪽
21 진로 문제 / 중참 23.08.04 24 0 8쪽
20 빛과 소금 23.08.03 25 0 8쪽
19 그때 그 사람 / 소시민 23.08.02 27 0 10쪽
18 현상과 본질 23.08.01 26 0 10쪽
17 훈장 23.07.31 25 0 8쪽
16 퇴보 / 파국 이후 23.07.28 25 0 9쪽
15 팔일무 23.07.27 28 0 7쪽
14 새로운 희망 / 디데이(D-Day) 전야 23.07.26 30 0 11쪽
13 협의회 사람 / 창조적 상속 23.07.25 27 0 13쪽
12 돌아온 기득권자 / 또다시 갈라진 세상 23.07.24 29 0 10쪽
11 그리고 그 그늘 23.07.22 31 0 10쪽
10 투쟁과 연대의 나날들 / 영광 23.07.21 38 0 10쪽
9 인간의 권리 23.07.20 34 0 9쪽
8 분노의 지게차 / 더 센 패거리들 23.07.19 45 1 9쪽
7 홍콩 느와르와 현실 한국 / 양들의 반란 23.07.18 45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