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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19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7.31 18:00
조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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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훈장

DUMMY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연락도 두절되고 누가 찾아와도 만날 수 없었던

위원장을 겨우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은

노조의 시작부터 함께 해오며 이번 일까지 거든 지역연합의 후배 녀석이었다.


주위에 소주병만 그득한 가운데

여전히 이불을 싸 메고 드러누운 채로 위원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넌 어떻게 여기 들어왔냐?”

“형, 이전에 저 여기 같이 있었잖아요.”


하여튼 후배 녀석 수단 좋은 것은 여전했다.

지역연합에 파견 형태로 근무하면서 따로 방을 구한지도 오래 되었기에

이전에 갖고 있었던 전셋집 열쇠를 아직도 갖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안면 있는 주인집 아주머니를 적당히 잘 구워삶았을 것이다.



그나마 누군가를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박사무장과 하청 노조 사람들이었다.


예상대로 그쪽도 가관이었다.

아니 가관이 아니라 실로 참담했다.


그 날 용역업체 직원들과 본사 경비대에다

일부 본사 노조원들에게 이중삼중으로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쫓겨난

하청 노조 사람들은 곧바로 밖에서 대기 중이었던 경찰들에게 연행되어 업무방해죄로 고소당했고,

업체 명부에서 노조 주동자들 전원이 말소당해

더 이상 회사에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업체들에게도 이들이 취업할 수 없도록

신상을 모두 컴퓨터로 전산화해서 블랙리스트를 작성,

그 지역 전 업체들에게 전송했던 것이다.

아예 그 도시에 발을 못 붙일 정도로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빌게이츠의 위대한 작품인 윈도우까지

여기서는 인간을 탄압하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었다.



후배 녀석이 핸드폰으로 박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어 바꿔 주었다.

“위원장님.”


위원장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같은 편인 줄로만 알았던 원청 노조원들에게까지

몰매를 맞고 쫓겨나 온갖 고초를 겪었건만

박사무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먼저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


“박사무장님, 정말 미안합니다. 다 저희 잘못입니다.”

더 이상 어떠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박사무장이 바로 앞에 있었다면 위원장은 고개도 못 들 지경이었다.


꼭 박사무장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직원들 누구에게라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게 도대체 같은 노동자, 아니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괜찮습니다. 위원장님. 괜히 저희 때문에

위원장님께서 잘못되신 것 같아 미안합니다.”

“미안하긴요, 저희 때문에 다 망쳐버리지 않았습니까.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저희야 또 어떻게 해 봐야죠.

갈 때까지 다 간 사람들이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러니 위원장님께서도 어서 일어나세요.

앞으로 하실 일이 많습니다.”

위로받을 사람은 정작 자신들이었건만

박사무장은 오히려 위원장을 위로까지 했다.


“위원장님 덕에 그래도 좋은 시간 가졌습니다.

우리 언제 좋은 일로 다시 한 번 꼭 만납시다.”


위원장은 차마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위원장님!”

박사무장이 한 번 더 독촉하고 나서야 위원장은 겨우 입을 열었다.

“예 그래요. 꼭 그러도록 합시다.”


그러나 이제 무엇으로 박사무장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아무런 확신도 서지 않는다.



항상 사태를 파악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던

후배 녀석은 지역연합에서 이전처럼 함께 일하자고 했다.


지역연합을 맡고 있으신 분은

70년대부터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신 분으로

양심적이고 소신이 강한 분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로 해서 마찬가지로 크게 충격을 받으시고

하청업체의 불편부당한 처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고 하셨다.



며칠 후에는 변호사 선배가 위원장을 찾았다.

자신의 제안에도 아무런 답변도 없이 요지부동이던

위원장을 어떻게 해서든 돌려 보려는 노력으로

후배 녀석이 연락을 취한 것 같았지만,

위원장은 선배가 왔는데도 여전히 이불을 싸매고 돌아누워 있었다.


선배는 그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닦아 놓은 기반으로

이제 시민단체를 설립하려 한다고 했고,

이전에 못다 했던 일들을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국회까지 진출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들을 한 번 실현해 보고 싶은 포부까지 밝히며

함께 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훈장>


“아저씨.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어도

김씨 아저씨는 자신이 처음 현장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모습처럼 보였다.


그동안 노조위원장직을 수행하느라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그곳을 떠나며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찾은 사람은 김씨 아저씨뿐이었다.


“고맙긴 이 사람아. 우리가 고맙지.

그래도 다 위원장 덕에 이렇게 예전보다 낫게 사는 것이 아닌가.”


결론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 여기까지 온 것도

다행히 김씨 아저씨 같은 마음씨 좋은 동료를 만난 덕분이었다.


낮선 현장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당시

신참들에게 괜히 텃세부리며 스트레스나 주는 인간이라도 만났더라면

그때까지 겪어 보지 못한 고된 노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찌감치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위원장, 정말 이렇게 떠나는 것인가.”

김씨 아저씨는 지금까지 자신들을 이끌어온

위원장을 이렇게 떠나보내는 것을 못내 가슴 아파 했다.


“미안하네, 이 사람아.”

“아저씨가 미안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도 되는 양

김씨 아저씨는 안쓰러워했다.

“아니야, 정말 미안해.

사람들이란게 원래 그렇잖은가, 자네가 좀 이해하게.”



김씨 아저씨는 위원장이 떠나면서 자신을 찾을 줄 알았는지

한쪽 편에 놓아둔 뭔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거 받아.”

그것은 언뜻 무슨 기념품 같은 것을 넣는 상자처럼 보였다.


“우리 아버지가 전쟁 때 받은 거야.

내 위원장한테 꼭 주고 싶어서...”

아주 오래 전의 것이었는지 상당히 낡아 있었던 그 상자 안에는

무슨 훈장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아니, 아저씨 제가 어떻게 이걸 받아요. 말도 안돼요.”

“왜 말이 안 돼. 이 사람아, 그냥 받아.”


위원장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아닙니다. 전 이거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김씨 아저씨는 단호했다.

“내 위원장이 안 받으면 그대로 버릴거야.”


진심인 것만 같아 일단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예 알았습니다. 그럼 제가 일단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드릴게요.”

“그래, 그래. 그렇게 해.”

김씨 아저씨는 위원장이 그것을 받기로 하자

마음이 놓이는 것처럼 보였다.



공장 입구까지 위원장을 배웅하는

김씨 아저씨가 다리를 약간 절룩거리자

위원장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노조를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파업을 했을 당시

사측이 동원한 구사대에게 맞서다 두목에게 몰매를 맞은 이후

그때의 후유증으로 한 번씩 비가 오거나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김씨 아저씨는 그렇게 다리를 절곤 했다.


“아저씨 몸 건강하세요.”

“그래 이 사람아, 그동안 수고 참 많았네.”


김씨 아저씨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너무 서운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한 번씩 찾아오게.”



낯설고 고된 그곳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처럼

오랜 시간이라면 오랜 시간 동안 몸담았던 그곳을 떠날 때도

유일하게 동료가 되어 주었던 김씨 아저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위원장은 깊은 회한을 뒤로 한 채 그렇게 홀연히 현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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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색깔 공방 23.08.28 24 0 9쪽
35 허무한 몰락 / 물리학적 귀결 23.08.25 22 0 10쪽
34 시대의 기수 / 부조화 23.08.24 1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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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마지막 명령 / 뜻밖의 해후 23.08.22 21 0 10쪽
31 지옥으로부터의 귀환 / 경련 23.08.21 25 0 12쪽
30 고군분투 / 현기증 23.08.18 20 0 11쪽
29 개운치 못한 승리 / 끝나지 않은 전투 23.08.17 19 0 10쪽
28 격전 / 생과 사 23.08.16 23 0 11쪽
27 사지를 향해 23.08.15 24 0 13쪽
26 밥과 옷 / 전쟁 23.08.14 23 0 11쪽
25 길 위의 대화 23.08.10 23 0 11쪽
24 신고식 23.08.09 24 0 9쪽
23 노인과 환영 / 에프엠과 꼴통 23.08.08 24 0 13쪽
22 제2편 레드(‘극’자 돌림): 꼰대들의 월례 행사 / 여러 노선의 문제 23.08.07 25 0 10쪽
21 진로 문제 / 중참 23.08.04 24 0 8쪽
20 빛과 소금 23.08.03 26 0 8쪽
19 그때 그 사람 / 소시민 23.08.02 28 0 10쪽
18 현상과 본질 23.08.01 26 0 10쪽
» 훈장 23.07.31 26 0 8쪽
16 퇴보 / 파국 이후 23.07.28 25 0 9쪽
15 팔일무 23.07.27 28 0 7쪽
14 새로운 희망 / 디데이(D-Day) 전야 23.07.26 31 0 11쪽
13 협의회 사람 / 창조적 상속 23.07.25 28 0 13쪽
12 돌아온 기득권자 / 또다시 갈라진 세상 23.07.24 29 0 10쪽
11 그리고 그 그늘 23.07.22 32 0 10쪽
10 투쟁과 연대의 나날들 / 영광 23.07.21 38 0 10쪽
9 인간의 권리 23.07.20 34 0 9쪽
8 분노의 지게차 / 더 센 패거리들 23.07.19 45 1 9쪽
7 홍콩 느와르와 현실 한국 / 양들의 반란 23.07.18 4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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