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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09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7.11 21:15
조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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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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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1편 블루(훈장) : 신께서는 뺀질이를 좋아하시는가

DUMMY

* 혹시 본인의 작품을 감상하신 분들 중에 이야기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좋은 소재가 있을 경우 및 본인 작품에 좋은 의견 있으실 경우, 메일([email protected])로 보내 주시오면 감사하겠습니다.

재주가 일천하오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제 1편 블루(훈장)


<신께서는 뺀질이를 좋아하시는가>



하여튼 알아줘야 했다. 만고 편한 한직이라고 떠벌리더니

일을 하는 척은 좀 해 줘야 할 것을,


어디 공무원이 옛날 공무원인가.

눈에 띄게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있는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고,

근무 시간에 아예 남들 보란 듯이 만날 딴 짓이나 해대고,

직장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도 거만하기 짝이 없으니

저 꼴이 난 것이 뻔하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오늘 동창회에 참석도 못할 지경인데

동문은 동문이니 병문안이라도 가야한다.



한국 사회에서 동문은 일종의 연성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단 동문이란 범주에 함께 있는 차원이 된 이상 좋든 싫든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하는 법이다.

오늘 동창회 모임도 있는 관계로 그 전에 얼굴이라도 내비쳐야 다른 동문들을 만나도 좀 거북하지가 않다.


사실 학교 다닐 때부터 영 탐탁치가 않은 녀석이라

어떤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지 은근히 한번 보고 싶은 속내도 있었다.



그런데 병실 복도에 들어서니

아픈 사람이 있는 입원실에서 무슨 괴성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어 병실 문을 조금 열어 보았더니

십자가를 창문에 걸어 두고 그 앞에 꿇어 앉아 손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독실한 신자인 놈이 기도를 하고 있는 장면으로 보인다.


마음속으로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기도에 웬 고래고래 괴성인가 의아했지만

저런 방식이 이른바 ‘통성 기도’라는 것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마구 쉴 새 없이 떠들어 대서 잘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대충 정리해 보니 그 내용 또한 가관이다.


“오옷.. 주이여! 저 간악한 사탄의 무리들이 당신의 어린 양을 이리도 핍박하나이다.

아버지여, 사탄에게 둘러싸인 이 어린 양을 구하소서. 주여, 아버지여...”


그야말로 애타게 아버지를 부르며

본인이 악의 무리들에게 고난을 받고 있으니 구원해 달라는 내용이라는 것을 대충은 이해하겠는데,

도대체 핍박은 무엇이고 사탄은 또 누구란 말인가.



요즘 공무원들 진급 심사는 예전과는 달리

그동안의 인사고과를 가지고 객관성으로 점수를 매겨

이를 바탕으로 제척 사유 없는 심사 위원들에 의해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사탄이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을 성 싶어 보인다.


그리고 정작 핍박은 그동안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것 같다.


놈의 기도는 점점 그 강도가 더해지더니

두 손을 하늘로 치켜세우며 이제는 무슨 헛소리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토해내며 머리를 마구 흔드는 모양새가

영 실성을 한 것 같기도 하고 도저히 저 꼴을 눈 뜨고 볼 수 없어 그냥 가려다

또다시 시간을 내서 두 번 걸음을 하는 것이 너무 귀찮을 것 같아

일단 병원 휴게실에서 저 발광이 끝날 때까지 물러나 있기로 했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 휴게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마시며 시간이 남는 관계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런 기도도 신께서 다 들어주시는지 그것이 참으로 궁금했다.


하긴 좀 신통한 면도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놈을 보면 기존의 사고에서 한 발도 못나가는, 아니 기존의 사고라는 개념조차도 없는 머리로

어떻게 우리 학교에 들어왔을까부터가 참 신통한 일로 여겨졌다.


기부 입학인가.

그래도 한국에서 최고 학부로 알아주는 우리 학교가 체통이 있지

아무리 학교 운영비가 딸리더라도 기부 입학까지 하며 합격증을 남발할 정도로 자존심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그런 데로 잘 나가는 집안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필시 고액과외가 분명하다.

꼭 그런 인간들이 남들보다 더 들어간 본전 뽑으려 사회에 나가서도 안달인 셈이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현 입시제도의 명백한 문제점으로 보아야지

신에 대한 신실한 기도와 은총이 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학교 졸업장만 무슨 계급장이나 되는 양 여기며

졸업 후에도 별로 신통치 않게 지내던 그런 놈이

비록 고등고시처럼 완전 경쟁체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어찌하다 추천을 받아 특채로 모집하는 상당한 급수의 별정직 공무원에 뽑힌 것을 보면

진짜 신에 대한 신실한 기도가 통했는지 모른다.


그것도 일단의 프리미엄이나 모종의 뒷배경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에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던 놈에 대해 모처럼 이런저런 생각이 들며,

한때 읽었던 성경 속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독교가 발생한 나라인 이스라엘은 원래 야곱이라는 사람의 개명된 이름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야곱이 이스라엘의 시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오니즘이라고 해서 세계 그 어느 민족도 범접할 수 없는 자만심이 가득한 민족의 시조치고는 인간성이 많이 가벼운 느낌이다.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 형의 발목을 잡고 태어나더니

아니나 다를까 집구석에 틀어박혀 자신을 편애하는 어머니와 짜고 밖에 나가 땡볕에서 열심히 일하는 형님 뒤통수나 치려다가 들통이 나,

멀리 친척집으로 도망쳐서 생고생하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것도 형님이 무서워 뒤쪽에 숨어서 눈치나 보다가, 이제 되었다 싶으니까 겨우 발을 들여 놓는

비굴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생을 산 인간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데,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도록 하기는커녕 자신이 낳은 쌍둥이 중에 좀 더 고와 보인다고,

늙어서 눈이 멀어 잘 못 보는 남편까지 속여 가지고

밖에 나가 열심히 일하는 옳은 아들 대신에 집구석에서 응석이나 부리는 아들에게 축복을 받게 했다는,

그 어머니란 여자도 정말 웃기는 여자로 뭔가 비정상적인 느낌이다.


어쨌든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시조라 해서 축복을 많이 받은 것으로 여기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영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냥 자기 형 밑에 있었으면 멀리 외지로 도망쳐서 그 고생도 않고

집에서 편하게 경리나 보다가 재산도 같이 물려받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을,

오히려 그 형이란 사람이 대인이고 축복받은 사람인 것 같다.


괜한 잔머리 안 굴리고 집안 가업 받들어 성실히 일하고,

어머니란 사람이 그렇게 아우만 좋아해서 자신의 뒤통수를 쳤는데도

기록에는 없지만 별 탈 없는 것으로 보아 끝까지 잘 모신 효자인 것 같고,

그 간사한 동생이 나이 들어 돌아오자 흔쾌하게 용서하지 않는가.

이미 부모님 재산을 자신이 다 상속받아서 별 상관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 시조라는 인간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또 주책스럽게 늙어서 낳은 어린 아들을 보란 듯이 편애하다

다 큰 형들이 짜증나서 그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렸고,

결국에는 가뭄을 피해 떠난 그 나라의 재상이 되어 있던 그 아들에게

다른 자식들과 함께 절까지 올리는 참담한 일을 겪고야 만다.


어쨌거나 재상 아들 덕에 말년은 다소 편하게 지냈다고는 하나

한 나라의 이름까지 딴 시조치고는 인생 전체가 심히 경망스러워 보인다.



가만히 놓고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진대,

기독교인들은 따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문제가 복잡해지면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하게 하는 명쾌하고도 단순한 한 가지 해법이 있다.


‘그건 말이야. 네가 믿음이 없어서 그래.’

뭐 그 정도는 이해해 줄 만하다.

예전에는 짜증나면 잡아다가 불에 태워버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 외에도 예쁜 마누라 때문에 혹시나 잘못될까 봐

다른 나라에 들어가서는 자신의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이고 오빠 행세를 하며

그 나라 왕에게 재물까지 받아 챙기며 아내를 헌납한다든지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참으로 자신에게 충직하고 근엄한 부하였건만

그 아내가 탐이 나서 야비하게 전쟁터에 제일 앞장세워 죽여 놓고는

시신이 채 식기도 전에 부하의 아내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버리는,

아무튼 성스러운 경전이라는 성경 속의 주인공 격인 듯한 인간들의 여러 사례나

지금 병문안 가는 저런 류의 인간들을 보면

신은 뺀질이를 좋아하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놓고 보니 나 자신은 아무래도 신께서 좋아하실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이즈음 되었으면, 발광이 끝났겠다 싶어 병실로 다시 갔더니

이제는 무슨 아프리카 원주민이 쓰는 것만 같은 언어를 한층 더 소리 높여 쉴 새 없이 외쳐대는 것이 아닌가.


다음에 오기도 그렇고 중요한 약속 시간이 잡혀 지체도 할 수 없이 그대로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난감하기 그지없었으나,

다행히 곧 조금 진정된 한국말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것이 클라이맥스였던 것 같다.


“이 고난은 앞으로 제게 주실 영광을 위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의 영광은 또 무슨 영광인가.

놈의 생각은 뻔하다.

그냥 웬만한 급수의 별 간섭받지 않는 한직 공무원 생활을 지금처럼 시간만 떼우며 어영부영 보내며

남들에게 과시하듯 폼이나 잡다가 연금까지 받아서 노후까지 평생 그렇게 보내자는 것인데,

그게 무슨 또 그리 큰 영광인가.


그렇게 펄펄 뛰던 놈이 잠시 후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침상 위에서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역시 기도의 힘은 대단했다.



마실 것을 어딘가에 놓아두고 이왕 왔으니 괜찮은지 안부를 물었더니,

뭐라고 그러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로 동문들에게 면목이 없어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한다.

면목 없을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우리 동문이라고 해서 진급은 무조건 따 놓은 당상이란 법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놈이 지금 이렇게 병실에 누워 있게 된 것은

진급 심사에서 자신보다 급이 낮다고 생각하는 대학 출신에게 밀린 것이

너무 분하고 원통해서 화병이 난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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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고군분투 / 현기증 23.08.18 20 0 11쪽
29 개운치 못한 승리 / 끝나지 않은 전투 23.08.17 19 0 10쪽
28 격전 / 생과 사 23.08.16 23 0 11쪽
27 사지를 향해 23.08.15 24 0 13쪽
26 밥과 옷 / 전쟁 23.08.14 22 0 11쪽
25 길 위의 대화 23.08.10 22 0 11쪽
24 신고식 23.08.09 2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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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빛과 소금 23.08.03 26 0 8쪽
19 그때 그 사람 / 소시민 23.08.02 27 0 10쪽
18 현상과 본질 23.08.01 26 0 10쪽
17 훈장 23.07.31 25 0 8쪽
16 퇴보 / 파국 이후 23.07.28 25 0 9쪽
15 팔일무 23.07.27 28 0 7쪽
14 새로운 희망 / 디데이(D-Day) 전야 23.07.26 30 0 11쪽
13 협의회 사람 / 창조적 상속 23.07.25 27 0 13쪽
12 돌아온 기득권자 / 또다시 갈라진 세상 23.07.24 29 0 10쪽
11 그리고 그 그늘 23.07.22 31 0 10쪽
10 투쟁과 연대의 나날들 / 영광 23.07.21 38 0 10쪽
9 인간의 권리 23.07.20 34 0 9쪽
8 분노의 지게차 / 더 센 패거리들 23.07.19 45 1 9쪽
7 홍콩 느와르와 현실 한국 / 양들의 반란 23.07.18 4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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