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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11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8.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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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신고식

DUMMY

별다른 취미생활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달리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없었다.


일요일에 한 번씩 혼자서 낚시를 가곤 했으나

그것도 딱히 취미라기보다는 휴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부대에 나타나면

부대원들이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할까 봐

마지못해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그러는 것뿐이었다.



대대장은 차라리 휴일이 적용되지 않는 정기 훈련이나

적 게릴라라도 출몰해서 전군 경계 태세가 내려지는 비상 상황이

365일 계속되기를 은근히 고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오로지 관심 있는 일이라고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부대에 관한 것밖에 없는 이 대대장이란 분께서

전투 훈련은 물론 사소한 작업이나 사병들 부식까지

부대 일이라면 뭐 하나 대충 넘어가는 점이 없었기에

제일 죽어 나가는 사람이 그러한 업무 전반을 뒷감당해야 하는 본부 중대장이었다.



참모부서에서 근무했던 중위 시절

대대장은 다른 상관을 거쳐야 도달하는,

그러니까 자신과는 한 단계 건너뛴 위치에 계신 분이셨지만

지금은 대대장을 직접, 그것도 부대 전반의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고 대해야 하는 입장이다.


처음 몇 달간 김대위는 대대장의 호통과 질책에

거의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자신도 덩달아 본부 중대원들을 닦달하느라

본의 아니게 병들에게까지 원성을 사게 되었고,

바깥에 나가봤자 별 뾰족한 전망도 없었던 이유도 있긴 했으나

그냥 의무 복무기간만 채우고 제대 신청을 할 것을

괜히 대위까지는 달아보겠다고 별나게 오기를 부렸던 사실이 후회 막심했다.



그나마 본부 중대 일이 겨우 손에 잡히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는

주말에 한 번씩 대대장과 낚시를 함께 가야 했는데,

그 또한 불편하기가 그지없었다.


비록 부하라고는 하더라도 처자가 딸린 대대 고참 간부들을 대동하기에는 부담이 되었고

아직 새파란 중위나 소위를 데리고 가기도 그랬던 대대장 입장에서야

아직 미혼인데다 이제 대위 계급장이라도 단 자신이 제일 적당했겠으나,

김대위의 입장에서야 사실 낚시라는 취미생활을 함께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어렵기 그지없는 상관을 부대 바깥에서까지 모셔야 하는

업무의 연장으로, 그야말로 피곤 자체였다.



<신고식>


“아니, 대대장님. 아직 이것밖에 못 잡으셨어요.”

다른 사람들의 어망에는 펄펄 뛰는 붕어가 수북한데,

여긴 그야말로 물고기들이 다들 알고 피해 가지 않고서야

도저히 이럴 수가 없는 정도였다.


“험. 자네 왔는가. 어험.”

대대장도 체면이 말이 아닌지 연신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말을 돌렸다.



“근데 오늘 당직도 아닌데 어째 군복 차림인가?”

“얘, 어제 애들하구 작업해 놓은 게 있어서 잠깐 확인해 보고 오는 길입니다.”

김대위는 요즘 자신도 왠지 이전보다 부쩍 부대 일에 애착이 가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처음 몇 번은 마지못해 따라 나섰지만

언제부터인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오늘처럼 낚시터를 찾아

대대장의 수발을 자진해서 들곤 했다.


“부대는 별일 없고?”

“예. 아무 이상 없습니다.”

이상 있는 곳은 부대가 아니라 바로 이곳 같아 보였다.


더 기다려봤자 오늘도 영 시원찮을 것 같아

김대위는 체면 불구하고 주위의 낯익은 낚시 선수들에게

군용 담배로 앵벌이를 해서 겨우 찌개거리를 마련했다.

그곳을 자주 찾는 다른 낚시꾼들도 대대장의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지라

김대위의 흥정에 선선히 응해 주었다.



바깥에서 본 대대장은 전혀 딴 사람 같았다.

한 치도 빈틈없던 부대 내에서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낚시뿐만 아니라 도무지 잘 하는 것이라고는

그야말로 눈 씻고 찾아보아도 하나도 없었고,

엄하기 그지없던 성격도 미련 곰탱이처럼 웬만해서 화내는 일도 없었다.


낚시터를 찾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오랫동안 안면 있던 사람들도 달리 전해 듣지 않았다면

주위 사람들과 대화도 어눌하게 잘 못하고 뭔가 어설퍼 보이는 저 사람이

현재 수 백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당장에라도 유사시 적과 피를 튀기는 전투를 벌일

최일선 전투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중대장의 지시로 그날따라 한 번도 몰아 보지 않았던

대대장 전용지프인 1호차를 운전했던 강상병은

그냥 차에 대기하고 있으라던 말에도 불구하고

각종 취사도구를 펼쳐 놓고 조리를 하던 중대장을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미제 버너 위에 밥은 어느 정도 되어 뜸만 들이면 될 것 같고,

이제 찌개만 끓이면 야외에서 먹을 만한 식단이 차려질 것 같았다.


“어험. 좀 있다 같이 하지 뭘 그렇게 서두르나.”

그런데 왠 모자를 눌러쓴 낚시꾼 한 명이

이쪽으로 향하며 합석을 하러 오는 모양새였다.


처음에는 단지 김대위와 안면 있는 그곳의 낚시꾼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디선가 낯이 익은 아저씨였고

강상병은 바로 앞에서야 그 아저씨가 바로 대대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강상병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멸-!”

주위 사람들 분위기 깰 수 있으니 큰 소리를 내지 말라는 듯

김대위가 급하게 손을 저으며 눈치를 주는 바람에

강상병은 뒤에 자의 소리를 겨우 죽였다.

“공.”



강상병이 부대에서 가끔씩 보았던 대대장은

군복을 입으면 각이 서는 늠름한 모습으로 주위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곤 했었는데,

그렇게 모자를 눌러 쓰고 허술하게 사복을 입은 모습은

영락없이 중년에 접어들어 배가 나오기 시작하는 동네 아저씨 같아 보였다.


부하들의 경례를 항상 각도 있게 받던 대대장도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낚시 도구들을 옆에 정리해 놓았다.

강상병은 대대장이 착석할 때까지 부동자세로 계속 서 있었다.


“멸공.”

강상병은 나지막하게 경례 구호를 다시 붙이며 지프로 돌아가려 했다.



“야 강상병. 너 어디 가, 너도 여기 좀 앉아라.”

“예?”

“응. 그래 강상병인가, 너도 밥은 먹어야지. 여기 앉거라.”

강상병이 거들든 말든 상관없이 마치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아주 스스럼없이 김대위가 반찬들을 하나씩 펴 놓으며 상을 차리자

대대장은 공기에 밥을 퍼 주었고,

찌개가 웬만큼 끊으며 함께 밥을 먹긴 했지만,

강상병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김대위야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직속상관이라 그렇다손 치더라도,

다른 사람도 아닌 대대장님과 이렇게 겸상을 하며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이

이제 겨우 상병을 단 사병 입장에선

아무리 부대를 벗어난 야외라고 하지만 거북하기 그지없었다.



“아, 휴일에 좀 쉬게 놔두지 뭐 하러 이렇게 애를 데리고 나와.”

강상병의 그런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했는지

대대장이 김대위를 은근히 나무랐다.


“예. 그게 다른 일도 좀 있고 해서요.”

“그래?”

“예. 대대장님 이병장 제대할 때가 다 되었지 않습니까.”

이병장은 대대장의 전용 지프를 담당하던 운전병으로 내무반에서도 최고참이었다.


“아... 벌써 그렇게 되었나?”

“예. 두어 달 있으면 제대합니다.”


“맞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 그럴 때도 됐지.”

대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 동안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는데 좋은 거라도 좀 먹여서 보내야겠구만.

자네도 말년에 외박 같은 거 좀 잘 챙겨주게.”


“예. 그래서 앞으로 1호차는 이 친구가 운전할 겁니다.”

“오, 그래.”

대대장은 강상병을 한 번 유심히 보았고

강상병은 갑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에 다소 어안이 벙벙했다.


“강상병. 앞으로 네가 대대장님 모셔야 하니까

이병장한테 인수인계 확실히 받도록 해. 알았지?”

“예!”

강상병에게 닥친 당황스런 상황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럼 말이야. 오늘 신고식이라도 좀 해야겠구만.

김대위 거기 소주 좀 있지?”

“예 대대장님.”



그날 강상병은 자신이 얼마만큼 소주를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대장이 술은 어른한테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계속 술잔을 강요했고,

김대위도 술 배우는 자세가 영 시원치 않다고 괜히 엄포를 놓으며 가세했기에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마시다가,

노래를 한 곡하라고 해서 군가를 부르려다,

밖에서까지 군가를 부르면 안 된다는 하명에

구부러진 혀로 유행가를 한 곡 부른 다음,

제대로 못 불렀다고 벌주를 한잔 더 받은 후부터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작 본인들은 별로 마시지도 않으면서

두 사람은 강상병의 술 취한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 술잔을 강상병에게만 들이댔기 때문이다.



뭔가 밑에서 덜컹거리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날은 벌써 어둑해져 있었고,

자신은 지프차 뒷좌석에서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대대장이 직접 1호차를 운전하고 있는 모습이 곧 눈에 들어오자

강상병은 그대로 눈을 감고 계속 잠이 든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이렇게 뻗은 것도 모자라 대대장이 직접 운전까지 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자신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완전 총살감이라는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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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색깔 공방 23.08.28 24 0 9쪽
35 허무한 몰락 / 물리학적 귀결 23.08.25 21 0 10쪽
34 시대의 기수 / 부조화 23.08.24 1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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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마지막 명령 / 뜻밖의 해후 23.08.22 21 0 10쪽
31 지옥으로부터의 귀환 / 경련 23.08.21 25 0 12쪽
30 고군분투 / 현기증 23.08.18 20 0 11쪽
29 개운치 못한 승리 / 끝나지 않은 전투 23.08.17 19 0 10쪽
28 격전 / 생과 사 23.08.16 23 0 11쪽
27 사지를 향해 23.08.15 24 0 13쪽
26 밥과 옷 / 전쟁 23.08.14 22 0 11쪽
25 길 위의 대화 23.08.10 22 0 11쪽
» 신고식 23.08.09 24 0 9쪽
23 노인과 환영 / 에프엠과 꼴통 23.08.08 24 0 13쪽
22 제2편 레드(‘극’자 돌림): 꼰대들의 월례 행사 / 여러 노선의 문제 23.08.07 25 0 10쪽
21 진로 문제 / 중참 23.08.04 24 0 8쪽
20 빛과 소금 23.08.03 26 0 8쪽
19 그때 그 사람 / 소시민 23.08.02 27 0 10쪽
18 현상과 본질 23.08.01 26 0 10쪽
17 훈장 23.07.31 25 0 8쪽
16 퇴보 / 파국 이후 23.07.28 25 0 9쪽
15 팔일무 23.07.27 28 0 7쪽
14 새로운 희망 / 디데이(D-Day) 전야 23.07.26 30 0 11쪽
13 협의회 사람 / 창조적 상속 23.07.25 27 0 13쪽
12 돌아온 기득권자 / 또다시 갈라진 세상 23.07.24 29 0 10쪽
11 그리고 그 그늘 23.07.22 31 0 10쪽
10 투쟁과 연대의 나날들 / 영광 23.07.21 38 0 10쪽
9 인간의 권리 23.07.20 34 0 9쪽
8 분노의 지게차 / 더 센 패거리들 23.07.19 45 1 9쪽
7 홍콩 느와르와 현실 한국 / 양들의 반란 23.07.18 4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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