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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18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8.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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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밥과 옷 / 전쟁

DUMMY

<밥과 옷>


그러나 인간에게 원초적인 굶주림이나

도저히 감당 못할 지경의 재난 같은 극악한 조건이 아니라면

자신이 어떻게 생각의 주안점을 주느냐에 따라

그 상황은 정해지기 마련이다.


이른바 자기만족이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비추어

어느 정도 보편적인 타당성만 갖춘다면,

남들과의 비교라는 부분은 그다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두렵고 정신없었던 훈련병 시절과 이등병 시절을 겪고 난 후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즈음이 되자,

남들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고달픈 기간이라 할 수 있는 군생활이

강상병의 입장에서는 지지리도 운이 없었던

자신의 인생이 풀리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또한 강상병의 입장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군대는 제때 밥을 먹여준다는 사실에 있다.


굶어 보지 않은 사람이나 매일 매일의 끼니를 걱정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명예니 자존심이니 하는 등등 인간의 모든 의식적인 행위를 초월하는

이것의 중요성을 망각하기 쉽다.

전후의 폐허 속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버텨온

그동안의 불행으로 말미암아 강상병은 무의식적으로 이를 체득하고 있었고,

일단 제때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던 고생은 고생 같지도 않게 여겨졌다.


그리고 그곳은 모두 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평등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돈이니 집안이니 학벌이니 하는 조건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오히려 더 냉혹하게 사람을 규정짓는

바깥 세계와는 달리 그 모든 거추장스러운 판단 배경들은

동일한 제복 속에서 사라졌고,

때가 되면 달게 되는 표식 하나만으로

자신의 위치와 해야 할 일들이 모두 결정되어 있었다.



생각에 따라 사람의 일이 풀리게 되는 것일까.

강상병은 좋은 상관들까지 만나게 되었는데,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처음 신고한 이전 중대장이나

바뀐 중대장도 다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지금 중대장인 김대위는 진급에 큰 미련이 없어서인지

부하들을 별나게 닦달하는 일도 없었다.


무엇인가 손에 잡히는 희망을 가지고

그것에 하나씩 나아갈 수 있는 인간만큼

좋은 세상을 살고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바깥 사회에 나가봤자 물려받은 것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자신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뻔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실히만 하면

자신도 근무한 햇수와 계급에 상응하는

인정과 대우를 국가에서 보장해 주고 있지 않은가.


강상병은 자신에게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의미를 부여한 이곳에서

언젠가 머리도 제대로 멋있게 기르고 보다 복잡한 문양의 계급장을 달고

병들이 우러러보는 어엿한 간부가 되고자 하는 꿈에 부풀어 올라 있었다.




사병들이 생활하는 내무반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대대장 전용 지프까지 운전하며 나름 탄탄대로의 군 생활을 하고 있던 강상병에게

얼마 후 자신의 부대가 베트남에 투입될 것이라는 사실이 전해졌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다가오지 않았다.


출발 날짜가 다가올수록 표정이 굳어지며 긴장하던 중대장이나

이전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부대를 통솔하던 대대장과는 달리

강상병은 막연히 외국에 나가 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들떠 있기까지 했다.

작금에 자신에게 일어나던 희망에 취해 있었던 강상병에게

어디를 가든 어쨌든 같은 군생활인만큼

자신이야 그곳에서도 지금처럼 대대장님을 잘 모시기만 하면

뭐가 문제될 것이 있겠느냐는 막연한 낙관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한 번씩 다가오는 역사의 큰 질곡이란

자신과는 무관한 일처럼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의 가혹한 채찍질은 그런 사람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매를 버는 사람과 매를 맞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하고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할 자들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후려치기 마련이다.



<전쟁>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나게 큰 미국 군함을 타고

며칠 동안 뱃멀미를 심하게 앓으며 도착한 베트남은 무엇보다 더웠다.


겨울이란 도무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더운 날씨 때문인지

전쟁을 거치며 온통 민둥산투성이였던 한국과는 달리

그곳은 곳곳이 숲으로 덮여 있었다.

아니 한국의 숲이란 개념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밀림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현재 세계 최강 미국과 일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는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와 별로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보다 몸집이 작은 편으로

꼭 동네에 마음씨 좋고 온순한 아저씨 아주머니나 처녀 총각들 같은 모습들이었고,

겉모습만으로는 자신들보다 덩치가 두 배나 커 보이는

미군들을 상대로 지금 무시무시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을 정도로 순박해 보였다.


쉬쉬하지만 자신들까지 이곳에 온 것을 보면

강상병이 타고 온 저렇게 큰 군함과 온갖 신무기들을 보유한

미국이 고전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이야 여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별로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생활 수준에다

일상화된 정보 통신과 교류 덕택으로 그 실상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형편없는 의료보험 체계에다,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에다, 여전한 인종 갈등까지

저렇게 좋은 땅에서 저 정도밖에 못 사는지 하는

비아냥까지 할 수 있게 되었건만,

당시 가난에 허덕이던 우리에게 미국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엇이든 멋있고 최고로 여겨지는 꿈의 나라였다.


그 시절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특이한 한국적 현상으로서

친미성향을 가진 일부가 아니라 전 국민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깔려 있었던,

당사자인 미국인들보다 오히려 더 미국의 위신과 체면을 걱정해 주는,

뭔가 석연치 않은 심리 상태가 있었다.


아무리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여겨지는 우방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남의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에 혹시 무슨 결함이라도 드러나면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 괜히 짜증이 나기까지 하며

자신의 일인 양, 아니 그 보다 더 애써 덮으려 하고,

그래서 역시나 완벽한 존재로 결론이 나야 비로소 안도하며 만족해 하는,

그러니까 미국은 무조건 잘나야, 아니 잘난 것으로 치부되어야만

미국인도 아닌 내가 직성이 풀리는,

단순히 선호하는 나라에 대한 호감 정도라고 보기에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 집단적 심리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발을 들여놓기 전 한국을 무단 통치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교활하게 심어 놓은 식민지적 열등감과 더불어

우리의 부족한 현실에서 비롯된 모든 초라한 모습들을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막연한 우상에 대한 찬양을 통해

풀어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한 ‘극숭미(極崇美)’현상은 지난 세기 말까지

은연 중 한국인의 뇌리 속에 지속된 것 같고,

본격적으로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미국을 천조국으로 여기며

대한민국 국내 문제로 인한 시위 현장에

난데없이 미국 성조기를 갖고 나와 열렬이 흔들어대는 사람들에게서

아직 그 여파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시절 우리의 절대 우상이던 미국이

아시아의 변방이라고 치부하던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강상병이 소속된 부대는 잦은 베트콩의 출몰로 불안하던 지역을

미군에게 인계받은 후 수색 작전에 나섰으나

베트콩 부대의 주력 일부가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은신처로 보이는 몇몇 매복지를 발견한 것 외에는

별다른 저항 없이 주변 지역까지 평정했다.


이후 점령한 지역에 진지를 구축하고

이제 어느 정도 불안감이 가신 그 지역에서 단순히 주변을 경계하며

사령부에서 지시한 대민 지원 사업에 주력할 때만 해도,

강상병은 자신이 전쟁터에 있다는 사실을 크게 실감할 수 없었다.



베트남 독립운동사의 독보적인 존재로서

인민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던 ‘호아저씨’,

북베트남의 호지명 주석조차 되도록 한국군과의 교전을 피하라고 했을 정도로

한국군은 전투 능력이 좋았다.


그리고 사실 이 전쟁은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이었지

한국군이야 주력은 아니었고,

또한 같은 동양인으로서 비슷한 문화권이라 그러한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미군들에 비해

현지 주민들과도 마찰도 덜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도의 차이일 뿐,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서야 한국군 역시

오래 전에 자신들을 지배하려 들었던 중국군, 프랑스군에 이어서

이제 또다시 미군과 함께, 자신들의 부모 형제들과 총칼을 겨누기 위해

발을 들여 놓은 존재라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었고,

그와 같은 엄연한 현실은 곧 강상병이 속한 부대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다른 대대에서 소규모의 베트콩과 교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간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무탈하기만 하던 강상병의 부대에

어느 날 밤중.

갑자기 비상이 걸리며 전원 기상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동안 주변을 매일같이 순찰했는데도 낌새조차 찾을 수 없었던,

그 긴 시간 동안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많은 병력들이 무더기로 밀려오며

강상병의 부대 전체를 덮치고 있었던 것이다.


대대장이 대대 전체의 상황 보고를 받고 있을 무렵,

요충지에 있었던 5중대는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날따라 5중대는 중대장의 교체가 있었다.

5중대장은 베트남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후임 중대장과

인수인계 차 그간 현지 사정이나 부대 전반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고,

마침 후임 중대장이 이전에 근무한 적이 있던

같은 사단 출신이라 이야기가 길어지던 참이었다.


한창 이전에 함께 했었던 사단의 동료들이나 상관들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돌던 중

갑자기 막사 위를 뚫고 뭔가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떨어진 물체는 팔뚝만한 크기의 국방색 타원형으로

뭔가 가스가 격하게 분출되는 것 같은 소리까지 내고 있었고,

순간 5중대장은 감각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피해요!”

아직 현지 적응이 되지 않은데다

한 달이 넘도록 주변에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던

후임 중대장은 5중대장이 그렇게 소리치고 난 뒤에야

겨우 상황을 감지하고 몸을 피하려 했으나

이미 바닥에 있던 그것은 굉음을 내며 폭발하고 말았다.



막사 밖으로 나온 5중대장의 눈에 펼쳐진

중대 기지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태였다.


곳곳에 베트콩들이 쏘아대는 박격포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고,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주변에 겹겹이 쳐놓은 철조망들 일부는

이미 절단되어 뚫린 채 그사이 사이로

베트콩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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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격전 / 생과 사 23.08.16 23 0 11쪽
27 사지를 향해 23.08.15 24 0 13쪽
» 밥과 옷 / 전쟁 23.08.14 23 0 11쪽
25 길 위의 대화 23.08.10 23 0 11쪽
24 신고식 23.08.09 24 0 9쪽
23 노인과 환영 / 에프엠과 꼴통 23.08.08 2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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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팔일무 23.07.27 28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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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협의회 사람 / 창조적 상속 23.07.25 28 0 13쪽
12 돌아온 기득권자 / 또다시 갈라진 세상 23.07.24 29 0 10쪽
11 그리고 그 그늘 23.07.22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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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인간의 권리 23.07.20 34 0 9쪽
8 분노의 지게차 / 더 센 패거리들 23.07.19 45 1 9쪽
7 홍콩 느와르와 현실 한국 / 양들의 반란 23.07.18 4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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