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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08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8.03 17:56
조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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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빛과 소금

DUMMY

<빛과 소금>


다행히 동문회에 조금 밖에 늦지 않았다.

“아, 형 나보고 늦지 말라고 해놓고선 이렇게 늦으면 어떡해 해요.”

유유상종이라고 자신보다 먼저 와 있었던 지역연합의 후배 녀석은

어김없이 자신의 동기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역 소속 대형노조들이 변함없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어서인지

후배 녀석은 여전히 활력이 넘치고 있었지만,

진보단체에 몸담고 있던 그 동기란 녀석은 요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정권이 바뀐 후로 보조금이 끊긴데다가

일반 시민들의 후원까지도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정적인 문제도 문제이려거니와

무엇보다 어느 일방의 입장만을 고수하기만 하면

그것이 정의였던 예전과는 달라진 상황 속에서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부터가 고민이었다.



학창시절 무던히도 함께 했던 그 녀석을 보면

혁명이란 태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잔해 속에

혼자 남겨 놓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당시 그다지 뚜렷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으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항상 중요한 곳에 묵묵히 있었던 같았고,

다들 하나둘씩 제 살길을 찾아 떠난 후까지도

그 녀석은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전에 변호사가 된 선배가 현장에 있던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지금은 자신이 그 녀석에게 부채 의식을 진 것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꼬박꼬박 후원을 하고 있었다.



그 성격상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는 동문들끼리의 모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은 그동안 다소간의 부침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어떤 자리에서든

개인적인 차원에서 항상 좋고 나쁜 관계가 있기 마련이나,

특히 이들의 학창 시절에는 단지 그런 것을 떠나

거국적으로 뭔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대였고

또한 그런 문제들로 서로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각자 도생의 길로 들어간데다가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울 정도의

급박한 시대는 지나갔기에

그런 갈등들은 어느 정도 희석되고

해당 모임 본연의 분위기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역시 강부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분위기가 어색하기가 그지없었는데,

결정적으로 그것은 현재 그 모임에서 제일 신수가 활짝 핀

열혈 애국자로 말미암은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단연 뚜렷이 돋보이는 과격한 언사와 더불어

확연히 차별화되는 돌출 행동들을 벌임으로써

오히려 반감을 사거나 역효과가 나기 일쑤였다.


비록 극악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더라도

좀 더 대중의 정서나 현실에 입각한 차원에서

방향성을 잡아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에는

개량주의니 기회주의니 거침없이 몰아세우며

감정적인 내부 분열까지 일으켰지만,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 덕에 위대한 민족해방의 전사로서 단연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전향을 했다고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존에 자신의 주적이었고 타도의 대상이었던

자들을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하면서,

이제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몸담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손수 끌어들였던 사람들조차 주적이자 타도의 대상인 양

마구 손가락질을 해대는 것이 아닌가.


보는 이들이 실로 어이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만도 하건만,

남들이 어떻게 여기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자신은 현재 보다 위대한 역사적 소명을 수행하는 중이었고,

그러한 열혈 애국자로서 또다시 위세가 이만저만이 아닌 관계로,

이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거북하기 짝이 없다.


예전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착취의 원흉이 쥐어짠 민중의 피와 살’을 그들에게서 한껏 하사받아

자금이 차고 남아서인지 요즘은 때깔까지 번지르르한 것이,

변절이란 말은 온전히 저런 인간을 위해 쓰이는 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 인간이 추구해 온 진정한 내막을 알고 나면

작금의 행보를 과연 변절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전에도 마치 전위세력이나 되는 양 맹동하는 것에 가려져 있었지만,

가만히 놓고 보면 매 시기 매 사안마다

언제나 가장 주목받는 대세만을 추종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구국의 언행만 과격했을 뿐,

실상은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에 제일 유리해 보이는

디딤돌 위에 항상 올라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완전 극에서 극으로 이동한, 실로 어이가 없는 현재의 행보 역시

그런 차원의 연장선상이라고 이해하고 나면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저 인간에게는 극좌 민족해방 전사 노릇을 할 때는 그곳이,

또 극우 열혈 애국자 노릇을 할 때는 그곳이

전도유망한 대세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겉모습이야 180도 달랐든

떠오르는 대세 위에 올라타 눈에 띄는 과격한 언행으로

자신의 입지만을 추구한다는 아주 일관된 노선을

예나 지금이나 충실하게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무슨 고매한 이념이나 어떤 뚜렷한 소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이나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지 여부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노선이었던 것인 바,

그런데 이번만큼은 헛다리를 짚은 것 같다.


아무리 보아도 그것은 대세가 아닌 것 같은 것이

얼마 안 가 처참하게 무너질 것만 같다.

그때는 또 어떻게 나올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을 복잡하게 얽히게 했던 이념이 다소 퇴색하며

이제는 아련해진 학창 시절의 추억들을 흐뭇하게 갈무리해야 할 동문회 모임이

이전에는 열렬한 민족해방의 전사로

또 지금은 열렬한 애국자로 과대망상에 빠진

저런 류의 인간 때문에 분위기가 정말로 엉망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동안 많은 희생과 험난한 과정 속에서

이제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도 현실적인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제도적 토대는 마련된 것 같으나,

항상 저런 식으로 극단을 추구하고 증오를 유발시키며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들 때문에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고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예전에는 노동현장의 양심적인 위원장으로서

지금은 글로벌 기업의 견실한 간부로서

항상 반듯하게 처신하는 관계로,

아직 그 길에 남아 있는 사람들부터 열렬한 애국자로 변종한 인간까지

다 아우를 수 있는 극중에 위치한 강부장이 들어서서야

그런 서먹함이 조금 해소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양 극단끼리는 대화가 없었지만

몇 잔 들어서고 난 이후부터는

강부장을 필두로 한 중간지대에 있던 사람들로 인해

그나마 동문회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금은 감도는 것 같다.



상당히 격한 굴곡이 있었고

지금도 도저히 화합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에,

다소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밖에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들은 이렇게 모인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아이러니는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빚어오고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있게 될

갈등과는 별개로 이렇게 모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무언가가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에게는 투쟁도, 분파도, 변절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고, 비롯된 것이어야 했다.


이들이야말로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진정한 이 땅의 빛과 소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가지는

일종의 분위기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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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색깔 공방 23.08.28 24 0 9쪽
35 허무한 몰락 / 물리학적 귀결 23.08.25 21 0 10쪽
34 시대의 기수 / 부조화 23.08.24 19 0 14쪽
33 인연 23.08.23 18 0 12쪽
32 마지막 명령 / 뜻밖의 해후 23.08.22 21 0 10쪽
31 지옥으로부터의 귀환 / 경련 23.08.21 25 0 12쪽
30 고군분투 / 현기증 23.08.18 20 0 11쪽
29 개운치 못한 승리 / 끝나지 않은 전투 23.08.17 19 0 10쪽
28 격전 / 생과 사 23.08.16 23 0 11쪽
27 사지를 향해 23.08.15 24 0 13쪽
26 밥과 옷 / 전쟁 23.08.14 22 0 11쪽
25 길 위의 대화 23.08.10 22 0 11쪽
24 신고식 23.08.09 23 0 9쪽
23 노인과 환영 / 에프엠과 꼴통 23.08.08 24 0 13쪽
22 제2편 레드(‘극’자 돌림): 꼰대들의 월례 행사 / 여러 노선의 문제 23.08.07 25 0 10쪽
21 진로 문제 / 중참 23.08.04 24 0 8쪽
» 빛과 소금 23.08.03 26 0 8쪽
19 그때 그 사람 / 소시민 23.08.02 27 0 10쪽
18 현상과 본질 23.08.01 26 0 10쪽
17 훈장 23.07.31 25 0 8쪽
16 퇴보 / 파국 이후 23.07.28 25 0 9쪽
15 팔일무 23.07.27 28 0 7쪽
14 새로운 희망 / 디데이(D-Day) 전야 23.07.26 30 0 11쪽
13 협의회 사람 / 창조적 상속 23.07.25 27 0 13쪽
12 돌아온 기득권자 / 또다시 갈라진 세상 23.07.24 29 0 10쪽
11 그리고 그 그늘 23.07.22 31 0 10쪽
10 투쟁과 연대의 나날들 / 영광 23.07.21 38 0 10쪽
9 인간의 권리 23.07.20 34 0 9쪽
8 분노의 지게차 / 더 센 패거리들 23.07.19 45 1 9쪽
7 홍콩 느와르와 현실 한국 / 양들의 반란 23.07.18 4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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