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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16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7.2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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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그리고 그 그늘

DUMMY

<그리고 그 그늘>


창밖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 동안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던 위원장의 눈에

뭔가 그런 감회를 깨는 듯한 장면이 어렴풋이 들어왔다.



노조회관과는 다소 떨어져 있어 보이는 한쪽 공장 건물 입구에

꽤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이 훤히 켜져 있는 것이 위원장의 심사를 거슬리게 했다.


요즘은 다들 정시에 퇴근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저렇게 야간에 작업하는 모습이 가끔씩 눈에 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지금이야 사측에서 마음대로 부려 먹던 일방적인 이전의 노사관계와는 달랐고,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 직원들도 자발적으로 나서주는 것이라 치부하면서도

자꾸만 저런 현상이 많아지면 그것도 노조차원에서 짚어보기는 해야겠다고 여기던 차에,

이렇게 늦은 시간도 그렇거니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것이 현장에서 있어 본 직감 상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무슨 사고라도 난 것 같아 즉시 그 쪽으로 연락을 취해 볼까 했지만,

바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조치라도 분명 취했을 것이고 괜한 혼선을 줄 수 있을지도 몰랐기에

위원장은 일단 손길을 멈춘 채 멀리서나마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작업장 안전 조치나 교육이 나름대로 철저하게 지켜지는 관계로 요즘은 좀처럼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편이었는데,

정작 이상한 것은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난데없이 웬 트럭이 한 대 현장으로 나타나더니

역시나 사고를 당했는지 몸이 성치 않아 절뚝거리며 겨우 부축을 받고 있는 사람을 아무런 조치도 없이

마치 짐짝처럼 트럭 뒤 칸에 싣더니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안전 조치 미흡이든 개인의 부주의든 사고가 나면 응당 119 구급대가 신속하게 도착해

응급조치와 함께 환자를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해 가는 줄로만 알았던

위원장은 현장의 상황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위원장이 보기에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 또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아무렇지도 다들 공장 안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사고가 난 것도 그렇거니와 이후의 상황들이 도무지 현재 자신이 속한 회사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라고는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늦은 밤이라 일단 내일 일과시간에 그 문제를 따지기로 했다.


귀가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 일이 머릿속에서 잘 떠나지 않았던

위원장에게 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상당히 큰 인명 사고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날 출근한 후 오후가 되어서도 명색이 노조 위원장인 자신에게 어떠한 보고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다른 임원들은 아예 어제 사고가 났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위원장은 해당 공장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제 사고가 난 그곳은 막상 아래에서 찾으려니 노조회관과는 상당히 먼 곳에 있었는지 한참을 헤매야 했었고,

겨우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서긴 했지만 뭔지 모를 낯선 느낌부터 드는 것이었다.


잘 정돈된 작업장과 깔끔한 복장의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을 줄로만 알았건만,

너절하게 여러 다른 작업 설비들이 널려 있는 것이

공정별로 한 단계씩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

온갖 먼지와 그을린 얼룩이 묻은 추리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눈가림용 정도로 허술하기 그지없는 것이 이런 빈약한 안전 속에서 여러 작업이 한꺼번에 뒤섞여 있으면,

필시 사고가 나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요즘 활력 넘치던 직원들 분위기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다들 상당히 피곤해 보였는데,

단순히 피곤한 차원이 아니라 축 처진 모습이 다들 뭔가 어두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십니까?”

소속 노조원들이 한둘이 아니라 자신이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히 노조 위원장인 자신을 알아볼 만도 한데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다.


“원청에서 오셨수?”

그중 연장자이고 이것저것 지시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무슨 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번 힐끗 보더니 대뜸 그렇게 물었다.


“예?”

원청이란 말이 다소 생소했다.

“왜 그러시우?”

여전히 지나가는 말투로 퉁명스러웠다.

“어제 여기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그럽니다.”



어제 사고 얘기가 나오고 나서야 다들 뭔가 긴장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알아서 뭣 하시려우?”

갈수록 난감한 답변에다 퉁명스런 언사에 위원장 역시 짜증이 나서 언성을 높였다.


“저는 이 회사 노조위원장입니다.

작업장에서 일어난 사고는 알아야 하는 것이 제 일 아닙니까.”


노조위원장이라는 말에 다들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게 비쳤다.

“아, 여긴 당신 회사가 아니니까. 상관하지 마시오.”

상대도 덩달아 언사를 높였고,

그러고 보니 작업복이나 장비가 좀 달라 보이며 협력업체 직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왜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조금은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이곳은 우리 회사 작업장입니다.

어제 보니까 엠블런스도 부르지 않고...”


“아이고, 그 사람 참, 당신하고 관계없는 일이라니까 그러네!”

답답하다는 듯 중간에 말을 끊어 버렸지만, 위원장도 지지 않았다.


“다치신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다 알아서 하니까 그만 가 보슈, 여긴 바빠요.”

아무리 그래본들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 다들 외면한 채로 작업을 재개했고,

할 수 없이 다시 노조 사무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오후 내내 위원장은 그곳의 모습들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작업장의 분위기 자체가 자신의 회사와 같은 현장인데도

완전 딴 세상을 갖다 온 것만 같았다.


작업 환경부터 시작해서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그 사람들의 태도였다.

원청 노조든 누구든 사람이 다친 사정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나쁠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오히려 쉬쉬하며 감추려 드는 것이었다.


위원장은 경비실에 가서 출입 기록을 뒤져서야

본사 소속 트럭이 협력업체의 지정 병원으로 갔다는 사실을 겨우 알아낼 수 있다.


다친 사람은 다행히 심한 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제 야간작업 도중 발을 잘못 디뎌 추락 사고를 당했다는

그 환자 역시 자신이 원청 노조위원장이란 사실을 알고는 손사래를 치다

절대 문제 삼지 말아 달라는 전제를 달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무슨 죄 지은 것도 아닌데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이렇게 다들 함구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원청에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협력업체를 관리하는 원청 간부들이 사고가 나면 진급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때문에도 그렇거니와

사고가 많이 나는 업체는 원청에서 다음 계약 때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위원장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어차피 산재 보험 신청을 하면 다 드러나게 되어 있는게 아닙니까?”

더욱 가관인 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산재 보험으로 이러구 있는 줄 아시우?”

왜 다친 사람을 구급차가 아니라 트럭이 와서 그렇게 짐짝처럼 싣고 갔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원청의 편익 때문에 산재 신청을 하지 말아야 했던 이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는 구급차를 이용할 수 없었고,

더군다나 그렇게 하라고 트럭까지 내어 준 사람들이 바로 원청이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사측 입장에서는 사고가 많이 나는 경우

노동부에서 특별 감독이 들어오거나 자신들의 기업 이미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를 갖고 글로벌화된 기업이 자신의 회사 작업장 내에서 벌어지는 인명 손실을 어떻게 이렇게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본사 차원에서는 사고가 줄어들었다며

산재보험에서 다시 환급받는 돈만 매년 어마어마했다.

그러니까 본사는 그동안 자신들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사고의 책임을 협력업체에 다 떠넘기는 것도 모자라

그로 인해 산업재해가 형식적으로 줄어들었음을 기화로 돈까지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협력업체 직원 입장에서 따지고 보면

자신들의 월급에서 산재보험 드는 돈이라고 꼬박꼬박 떼이는데도 불구하고,

당연한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그러한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그 역시 자신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뻔한 소속 회사 비용이나

심지어는 일반보험으로 자기 돈을 직접 들여가며 이중으로 부담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치료를 제대로나 받을 수 있겠는가.

대충 이만하다 싶으면 알아서 퇴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관행이었다.


가장 중요한 인명 피해조차 이런 식으로 처리되는데,

여타 다른 업무 조건들은 과연 어떤 지경인지 들어보나 마나였다.


일이 이 지경이면 노조가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

노조 같은 것은 아예 없다고 한다.


아무리 다른 업체라고는 하나 자신이 노조 위원장으로 있는 작업장에서,

아니 21세기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원장은 듣다못해 다친 사람이 소속된 협력업체 사무실을 찾아가

이 모든 자초지종을 정식으로 따져보기로 했지만,

따질 것도 없이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문제의 근본 원인은 그대로 다 풀렸다.


그 고유한 성격상 기득권은 완전히 물러서는 법이 결코 없다.

표면상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단지 그 발톱을 숨긴 채

부단히 갈고 닦으며 비집을 수 있는 틈을 노리고 있는 것일 뿐,

시련은 있어도 절대 포기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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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길 위의 대화 23.08.10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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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현상과 본질 23.08.01 26 0 10쪽
17 훈장 23.07.31 25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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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협의회 사람 / 창조적 상속 23.07.25 28 0 13쪽
12 돌아온 기득권자 / 또다시 갈라진 세상 23.07.24 2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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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분노의 지게차 / 더 센 패거리들 23.07.19 4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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