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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14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8.0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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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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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그때 그 사람 / 소시민

DUMMY

<그때 그 사람>


그렇다고 강부장에게 전향이니 변절이니 하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에 혁명이 지나간 이런 시대에,

입장을 180도 바꾸어 지금까지 열렬히 추종한 것을 또다시 열렬히 비난하는

그런 낯짝이 철판이 아니라 아예 낯짝이 없는 짓을 하지 않는 한,

무엇을 하며 산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남아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외면한 채 도피하는 스스로의 양심이었지만

그 또한 핑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지식인으로서 한 시대의 부조리에 대해 통감하고 그 의무를 졌다.

그러나 이미 매너리즘에 빠져버려 다시 시작하기에 한계에 다다랐다.


새로운 시대에는 또 그에 맞는 새로운 투사가 필요한 법이다.


우리 사회를 위해 할 만큼은 했으나

이제 한물 간 자신을 대신해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그 상황은 아주 오래전 자신처럼

또 다른 누군가가 나서줄 것이 분명하다.



뭐가 그렇게 잘났는지 그 시구가 사뭇 거만해 보이는

어느 한 시인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이제 잔치는 끝났지만 누군가가 다시 잔칫상을 차릴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냐는,

그 시인의 초지일관하게 거만한 태도만큼은 동의 않으면 되는 것이다.



비록 발을 뺀 후로도 자신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이제는 일개 시민으로서 또 그에 걸맞는 자세를 잃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 속에서도

사회적 의무를 지는 사람들을 존중하며 거들어 주는 적당한 참여의식을,

욕할 놈은 함께 욕해 주는 적당한 정의감을,

힘든 사람한테는 뭐라도 좀 나누어 주는 적당한 박애정신의 발휘를

결코 빼먹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발을 뺐다고 해서

강부장은 마냥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소시민으로서 나름대로의 역할은 충실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심적인 투사들의 헌신 뒤에

또 그러한 일개 시민들의 소박한 건전한 생각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큰 역사를 이루기 때문이다.


투사일 때는 투사로서 소시민일 때는 소시민으로서

주어진 본분에 충실하며

강부장은 여전히 훌륭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의 연설은 결연했고, 그래서인지 감동적이었다.


여전히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배를 불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을 쥐어짜고 있는

이 현실이 해결되지 않은 한 세상은 무엇이 달라졌냐는

열변이 절로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날도 노사간의 임금 협상에 참여해

상호 화합하는 분위기 조성에 기여한 것에 대해

유능한 회사의 일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건전한 시민으로서

나름대로 뿌듯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던

강부장의 눈앞에 우연찮게 나타난 이들의 모습은

불현듯 오래 전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아득하게 잊혀졌던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현실에 타협하며 지금이야 어떤 모습이 되었든,

인간에 대한 인간의 폭압적 착취를 떨치고자 일어섰던 시대,

그 엄중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지식인의 양심을 실천해 보고자 했던

그때 그의 모습은 진실하고 순수했다.




<소시민>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구호가 적힌 플랜카드와 깃발을 든 맨 앞쪽에 선 사람들 뒤로 열을 지으며,

강부장이 걸어왔던 길을 다시 향하고 있었다.


다들 머리띠를 질근 동여매고 구호를 외치던

그들은 오래전 자신이 이끌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절박해 보였다.



이윽고 그들의 행렬이 멀리 사라진 후

평소 사회의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책무를 다하고 있음을 자족하고 있던

강부장의 마음 한구석에도 뭔가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강부장은 후배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오늘 일 어떻게 됐어요.”

“그래, 다 잘 됐으니까 걱정 마. 임마”


“역시 형밖에 없수. 요새 다른 일도 있는데

또 거기 터질까봐 조마조마 했다우.”

요즘은 웬만하면 원만하게 합의 보는 차원으로

일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것이 녀석도 변하긴 많이 변했다.



“야 근데 말이다.

너 요즘 박사무장은 뭐하고 있는지 아냐?”

“박사무장이라니요?”


“아 왜, 예전에 협의회 사람 말이야.”

후배 녀석도 아련한지

처음에는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아... 그 박사무장요. 한마음 협의회라는...”

“그래 그 박사무장.”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후배 녀석이 기억을 해내자


강부장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분 아마... 가만 있어보자..”

그 분야에서 마당발인 녀석이

뭔가 집히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그때부터 강부장은 전화기를 귀에 바짝 댄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는 그 시간 동안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었던 강부장은

이윽고 내려진 후배 녀석의 답변에 멎었던 숨을 겨우 쉴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전국비정규직연합이라고 생겼는데..

아마 거기서 일하고 있을 거예요.”



박사무장이 별 탈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강부장은 가슴 한구석에서 꺼림직하게 자신을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안도감으로 온몸이 나른하게 풀리는 것만 같았다.


각계각층에 우군이 있었던 자신들과는 달리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한 채 필시 더 힘들었을 것이 분명했던

그간의 고충도, 그리고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을 그 어려운 상황도

세세하게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그곳에서 박사무장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강부장은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근데 그 사람은 갑자기 왜요?”

“아니 그냥 여기 그때 안면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너 오늘 동문회 늦지 마라.”


후배 녀석이 이상하게 여길까봐 강부장은 서둘러 말을 돌렸다.

“아, 알았다니까요. 마치고 소주나 따로 한 잔해요.”

“그래 알았어. 오늘 좋은 일도 있고 하니까

내가 거나하게 한 잔 살게.

야, 그리고 기분 전환도 할 겸 우리 이번 주말에 말이야.

오랜만에 골프나 한번 치러가자.”

“그거 좋지요. 내기로 한 판 어때요?”



꺼림직한 일이 풀리며 다시 기분이 가뿐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제 일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해야겠다.


근처 마트에서 마실 것을 하나 사들고

창문에 무슨 구호들이 적힌 플랜카드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필시 하청업체 노조의 사무실이 있는 곳 같은 건물에 들어섰다.


2층 한쪽에 위치하고 있던 한 사무실 앞에

바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원청의 갑질에 대한

공동대책위라는 간판으로 미루어 제대로 찾은 것 같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다들 시위에 동참하더라도 사무실에는 대기 요원을 한 명 두기 마련인 바,

다행히 예상대로 간사인 듯한 사람이 한 명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혹시 누구... 찾으시는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자신들과는 좀 다른 분위기의 웬 양복 차림의 사무원인 듯한 사람이 들어서자

상대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던 시민인데요.

방금 전 밖에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어이가 없어 그냥 힘내시라고 들렀습니다.”

마트에서 구입한 마실 것을 내밀자

다소 의아해 하던 상대가 그 의도를 알고는 곧바로 감격해 한다.


“아이구 뭘 이런 걸. 정말 감사합니다.”

“듣고 보니 이렇게 부당한 일이 아직도 판을 치니 참 저도 화가 납니다.”

“선생께서 생각하시기에도 그렇지요. 말도 마십시오. 이게 말입니다.”

상대는 답답함이라도 푸려는 듯

지금 이렇게 자신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늘어놓았다.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이 겪은 바 있던 그대로의 이야기였다.

지금쯤은 누군가가 나타나 해결해 줄 줄로 알았건만

자신이 발을 뺀 후 세월이 꽤나 흘렀는데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더 어긋나 있는 것만 같다.


초인들은 언제쯤이나 다시 오려는지...



“그렇게 되었군요. 잘 알겠습니다.

큰 힘은 못되지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적극 지지하고 있으니

기운 내시고 하시는 일 잘 풀리시기 바랍니다.”

거듭 감사의 말을 하며 입구까지 마중을 나오며

시간을 많이 뺏어서 미안하다는 상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근사한 격려의 말을 또한 잊지 않았다.


“겉으로 표시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내세요.

저도 앞으로 관심 더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말씀만 들어도 참 힘이 납니다.

우리 사회에 선생님 같은 분들만 계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곳을 나서며 다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건전한 시민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진정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것만으로는 완전치 않은 느낌이다.

역시나 유관단체에 월정액 기부나 좀 해야지 더 개운해질 것 같다.


시간을 너무 끌었다.

동문회에 늦으면 안 되는데,

다행히 휑하니 지나는 개인택시가 한 대 있어 겨우 잡았다.


“요즘 경기는 좀 어떠세요.”

“뭐, 신통찮습니다. 만날 그 모양이죠.”


외딴 공단에는 좀처럼 손님이 없는데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서 오늘 하루 매출을 올려 주니

기사 양반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들 그렇지요. 하여튼 이게 다

정치하는 놈들 때문이라니까요.”

“말하면 뭐합니까.

오늘도 운전하면서 라디오 들어보니까

기도 안찬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이번에는 목적지까지 별로 무료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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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허무한 몰락 / 물리학적 귀결 23.08.25 22 0 10쪽
34 시대의 기수 / 부조화 23.08.24 19 0 14쪽
33 인연 23.08.23 18 0 12쪽
32 마지막 명령 / 뜻밖의 해후 23.08.22 21 0 10쪽
31 지옥으로부터의 귀환 / 경련 23.08.21 25 0 12쪽
30 고군분투 / 현기증 23.08.18 20 0 11쪽
29 개운치 못한 승리 / 끝나지 않은 전투 23.08.17 19 0 10쪽
28 격전 / 생과 사 23.08.16 23 0 11쪽
27 사지를 향해 23.08.15 24 0 13쪽
26 밥과 옷 / 전쟁 23.08.14 22 0 11쪽
25 길 위의 대화 23.08.10 22 0 11쪽
24 신고식 23.08.09 24 0 9쪽
23 노인과 환영 / 에프엠과 꼴통 23.08.08 24 0 13쪽
22 제2편 레드(‘극’자 돌림): 꼰대들의 월례 행사 / 여러 노선의 문제 23.08.07 25 0 10쪽
21 진로 문제 / 중참 23.08.04 24 0 8쪽
20 빛과 소금 23.08.03 26 0 8쪽
» 그때 그 사람 / 소시민 23.08.02 28 0 10쪽
18 현상과 본질 23.08.01 26 0 10쪽
17 훈장 23.07.31 25 0 8쪽
16 퇴보 / 파국 이후 23.07.28 25 0 9쪽
15 팔일무 23.07.27 28 0 7쪽
14 새로운 희망 / 디데이(D-Day) 전야 23.07.26 30 0 11쪽
13 협의회 사람 / 창조적 상속 23.07.25 28 0 13쪽
12 돌아온 기득권자 / 또다시 갈라진 세상 23.07.24 29 0 10쪽
11 그리고 그 그늘 23.07.22 31 0 10쪽
10 투쟁과 연대의 나날들 / 영광 23.07.21 38 0 10쪽
9 인간의 권리 23.07.20 34 0 9쪽
8 분노의 지게차 / 더 센 패거리들 23.07.19 45 1 9쪽
7 홍콩 느와르와 현실 한국 / 양들의 반란 23.07.18 4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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