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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리치 사냥꾼 박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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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s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8
최근연재일 :
2023.02.11 21:5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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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1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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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962

작성
23.01.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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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화.

DUMMY

7화.


리치를 토벌하겠다던 10명의 기사가 싸움 한번 없이 전멸당했다.

게다가 저 지휘관이라는 녀석은 노예처럼 리치의 발에 얼굴이나 부비고 있고.


이건 잘못됐다.

잘못돼도 한참이나 잘못됐다.


기사와 마법사의 전투에서 마법사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구조.

마법을 쓸 틈도 없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마법사는 단순하고 빠른 마법밖에 구현하지 못한다.


근데 오히려 싸움 한 번 없이 전멸을 당했다?

이건 정보가 잘못된 거다.


잘못된 정보를 신뢰하다가 작전에 실패하는 경험.

나도 그 위기를 겪어본 적이 있기에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이라 확신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 광경이니까.


“어머...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한 명 더 있네? 잘생기고... 듬직한 게... 맛있어 보여.”


어디 아픈 것처럼 콧소리를 잔뜩 섞어가며 내뱉는 소리.

하급중에 하급, 싸구려 유혹.


그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천천히 리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야! 박중사! 야!”

“박중사? 이름도 멋있네? 가까이 와.”


스컬이 부르는 소리에도 점점 리치와 가까워진다.

리치는 발에 얼굴을 부비는 기사를 다른 발로 가볍게 밀어 쓰러트려 놓고 다리를 꼰 채 손가락을 까딱였다.


겹쳐 보이던 여성의 형상이 점점 더 진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실루엣이 보이는 얇은 슬립은 아찔한 몸매를 부각해주고 두개골이 있던 자리에 나타난 연예인 뺨치는 외모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특이한 건 인도에서나 볼법한 이마 중앙의 붉은색 보석.


“재밌는 인간이구나. 리치를 끌고 다니는 사냥꾼. 넌 나중에 상대해주지.”


리치의 코앞까지 다가가자 녀석이 다시 한번 손가락을 까딱였다.


“꿇어라. 복종해라.”


그 말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리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가지고 있는 무기를 내게 바쳐라.”


허리춤에 있는 군용 단검과 권총 한 자루.

먼저 단검을 뽑아 리치의 손에 올려주고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신기하게 생긴 물건이구나.”


단검을 받아든 리치는 권총을 보자마자 단검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뒤 다시 손을 내밀었다.


“마도구인가?”

“틀렸어.”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탄두가 정확히 리치의 머리.

붉은색 보석이 위치한 곳으로 날아들었다.


급작스러운 공격에 리치는 별다른 비명도 없이 축 늘어졌다.

동시에 마나핵에서 방출된 기운이 몰아쳐 뒤로 넘어갈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흡!”


스컬의 실드가 있어 문제 될 건 없었지만 팔을 들어 코와 입을 막았다.

사람 일이라는 게 혹시 모르는 거니까.


주위로 폭발하듯 퍼져나간 기운.

그 기운들이 다시 리치의 마나핵이 있던 이마로 모여들었다.


“박중사! 깜짝 놀랐잖아!”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스컬이 다가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오 시끄러.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다 들리거든? 너도 대충 알고 있었잖아.”

“처음엔 진짠 줄 알았다고!”

“어때 내 연기?”

“... 에휴 됐다.”


리치에게 한쪽 무릎을 꿇을 때만 해도 진짜인 줄 알았겠지.

기사가 주군에게 예의를 갖춘 것처럼 꿇어앉았을 때.

등 뒤에 손으로 엄지를 들어 올려 신호를 줬다.

지금 연기하는 거라고.


그걸 알았기에 스컬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본 것이다.

제일 위험한 방식이지만, 제일 쉽고 효과적인 방식이니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방심이다.

스컬도, 그 이후 처음 잡았던 리치도 단 한발로 제압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방심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상대보다 위라는 것, 내 계획에 완벽하게 걸려들었다는 생각.

그것들이 방심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어떻게 보면 운이 참 좋다고 할 수도 있겠다.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 생각이 흐름대로 이루어 줄 수 있게 움직여 주기만 하면 되는 상황들.


저기 쓰러진 기사 녀석들도 눈앞에 리치도 방심으로 목숨을 잃었다.


“원인은 역시 그 달콤한 냄새 때문인가?”

“달콤해? 그게? 역겨운 게 아니고?”

“역겨웠으면 저놈들이 저렇게 되지도 않았겠지.”


역겨운 냄새가 났으면 기사들이 방심하는 일도 없었겠지.

아니. 달콤한 냄새라도 방심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대체 뭘 믿고 이렇게 들어온 거지?

토벌대의 전멸은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달콤해서 좋았냐?”

“아니. 난 단걸 안 좋아하는 타입이거든 그리고...”


리치에게서 겹쳐 보였던 여성의 모습.

짜증 나게도 바람났던 싸가지 없는 전여친 중 한 명이랑 너무 닮았었다.

그때는 미치는 줄 알았는데 뭔가 대리만족한 기분이라 속이 후련하다.

10년 묵은 체증이 날아간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그리고?”

“아니야. 아무것도.”


사사로운 과거사 이야기 해봤자 영양가 없는 잡설이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뭐야 싱겁게. 그보다 박중사. 저건 어떻게 할 거야?”


스컬이 고개짓한 방향을 바라보자 아까 리치의 발에 채여 날아간 토벌대의 지휘관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도 있었지.


“무... 물...”


가까이서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얼굴의 살가죽은 두개골 모양이 보일 정도로 달라붙었고.

쩍쩍 갈라진 피부가 온몸에 수분을 다 뺐긴 듯 한 모습.


“스컬. 이거 회복할 수 있겠어?”

“회복? 진심이야?”


스컬의 말에 기사가 보이지 않게 한쪽 눈을 찡그려주었다.

예상치 못한 윙크공격에 스컬이 잠시 움찔했다가 가볍게 두개골을 끄덕였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살려...”

“살리고 죽이는 문제는 나한테 달렸으니 대답 잘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도 기사라 이거지?

초점을 잃은 채 살려달라고 빌던 녀석이 지긋이 눈을 감았다 떴다.

협박성 말투에 차라리 명예롭게 죽기를 택한건지.


“죽여...”

“죽고 싶다고? 그래?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다만... 궁금하지 않아?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기사는 대답 없이 가만히 내 눈을 응시했다.


“혹시 죽고 난 뒤에를 생각해봤나? 전장에서 명예롭게 전사한 기사와 그걸 애도하는 사람들. 안타깝지만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그런 건 없을 거야.”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고 있던 스컬을 차분하게 손으로 감싼 다음.

그의 눈앞에서 복화술을 하듯 스컬의 턱뼈를 여닫으며 말을 이었다.


“정신만 멀쩡하게 만들어서 그 몸으로 가족은 물론, 지인, 니가 모시는 주군들까지. 전부 네 손으로 죽이게 만들어버릴 거니까.”


흔들리는 눈동자.

그저 말에 불과했지만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것뿐인가? 리치 토벌대의 전멸도 소문이 돌겠지. 무능한 지휘관이었다... 아직도 죽는 것이 명예롭다고 생각하나?”

“그건... 정보가...”

“지시를 내린 윗선에서 ‘우리의 정보가 틀려서 전멸했다’ 같은 책임이라도 져주길 바라는 건가? 당신도 알잖아? 이 모든 게 전부 당신 책임이 될거란거.”


그가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이번엔 한참이나 눈을 뜨지 않은 채,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대답만 솔직하게 잘한다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마나의 맹세를 해주지.”


마나의 맹세가 결정적이었을까.

그가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 하겠습니다.”

“스컬. 대화는 될 수 있게 조금만 회복시켜.”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기사를 회복시킨다.

미친 짓일 수도 있었다.

회복이야 스컬이 알아서 조절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꺾인 마음은 쉽게 붙여지지 않는다.

이미 방심해서 토벌대가 당해버린 리치를 단 한 방에 처리했고.

스컬을 통해 흑마법을 다룰 줄 아는 척하는 거짓말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했다.

날 죽이고 도망쳐봤자 흑마법과 엮였다며 평생을 도망 다녀야 할지도 모르지.


스컬이 마나를 조금 불어넣어 주자 기사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아직도 처참하긴 마찬가지었지만.


“리엔 왕가에서 널 보낸 이유가 뭐지?”


사태를 알고 있는 9명과 달리 녀석은 현장에 들렀다.

적어도 이 근처 사람은 아니라는 것.

어디서 왔는지 쯤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토벌 및 자료 수집, 정보 공작입니다.”

“공작이라면 밀튼 백작을 말하는 거겠군.”

“그렇습니다.”


예상대로.

확실한 쐬기를 박기 위해 스컬을 한 번 쳐다본 후에 입을 열었다.


“모든 책임을 밀튼 백작에게 전가하겠다... 그렇기엔 백작도 만만한 사람이 아닐 텐데?”

“백작은 제가 전부 뒤집어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가 잘릴 꼬리라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네.

이렇게 되면 현장에서 움직이는 게 유리하다.

아무리 날고 긴들 현장에서 조작된 자료를 받는 입장에선 손쓸 방법이 없다.


이걸로 내기는 승리인가.

스컬을 향해 씨익 웃어주자 잠깐동안 붉은 안광이 나타났다.

그래. 이겼어도 할 건 해야지.


“내 연구들은 왜 탐내는 거지?”


그 말에 놀란 듯 얼굴 근육이 움찔거린다.

‘내 연구’라는 말은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제작자가 나라는 뜻이기도 하고, 원래의 토벌 대상보다 윗사람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게 진실은 아니지만 거짓말은 믿는 놈이 잘못이다.


“흑마법도 마법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제한적인 조건 하에 연구하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공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엔 스컬쪽에서 붉은 안광을 드러냈다.

설마 진짜로 대놓고 연구하겠다는 말을 할 줄이야.

그것도 은근슬쩍이 아닌 국가 공표? 이건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일 텐데?


“황실에서 인정한 건가?”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뒤에 황제가 있었군.

지도로 본 리엔 왕가의 국토는 비유하자면 스위스와 비슷했다.

국토 자체는 비교적 넓은 편에 속했지만 사방이 다른 국가들로 둘러쌓여있는 형태.

이런 국가가 미쳤다고 ‘나 흑마법 연구할 겁니다’ 할리는 없었다.

나도 그걸 예상하고 건 내기였는데.


“저도 껴주시겠습니까?”

“뭐를?”

“마법사께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대로 복귀한다고 한들...”


미래는 없겠지.

그렇다고 해도 이쪽에 붙어먹으려고 하다니.

예상외로 훅 들어온 제안에도 나는 차갑게 답변했다.


“토벌에 실패한. 그것도 충분한 병력으로 전멸이란 결과를 낸 지휘관을 내가 왜?”

“그건... 사고입니다! 저도 다른 리치가 있을 줄은 몰랐...”

“쉿! 그건 변명일 뿐이야.”

“하... 하지만! 살려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내가? 내가 언제?”


-탕.


난 단 한 번도 살려주겠다는 말 한 적이 없었는데.

비슷한 말을 하긴 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겠다.’

그게 살려준다는 말은 아니잖아?


아까운 실탄이 하나 더 소모되긴 했지만 이런 후환은 남겨두는 게 아니다.

특히 고위직들과 연결되있는 놈이면 더더욱.

가진 정보도 조금 있는 걸 봐선 나름 힘 좀 쓰는 녀석일 것이다.


“오우... 냉혈한...”

“너한테서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울려 퍼진 총성 이후 찾아든 고요함에는 진한 죽음의 기운이 깔려 있었다.


“어쨌든 내기는 물 건너갔네.”

“왜? 내가 이겼지.”

“무슨 소리야. 내 말도 맞았잖아.”


꼬리를 자르려는 것도, 대놓고 연구하겠다는 것도 정답이 되어버린 내기.


“그럼 소원권 하나씩 쓰는걸로 하자. 둘 다 없는 것 보단 낫잖아?”

“... 쳇. 알았다.”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긴 하지.


“그나저나... 이 상황을 만든 저건 대체...”


이 모든 일의 변수.

잠시 싸가지없던 전여친을 떠올리게 한 리치.

가지고 있는 정보도 없는 상태라 임기응변으로 처리하긴 했는데...


일이 골치 아프게 돌아가는 것 같아 머리를 긁적거릴 때, 스컬이 죽은 리치의 두개골에 박치기를 하며 말했다.


“이 재수 없는 년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다행이도 알고 있는 사람, 아니 리치가 근처에 있었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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