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약혼녀(1)
2123년 3월 11일 목요일.
아버지 덕에 강제로 이 학교에 입학한 지 어언 1주일하고도 조금. 유이준과의 대결도 2일, 그리고 나의 자그마한 '일탈'도 1일이 지난 날.
오늘은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역사적인 날이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나의 첫 A반 등굣날이다. 그 반으로 가기 싫어서 학교 탈출까지 감행했으나 결국에 나는 힘없는 사회의 일원일 뿐이었다. 나의 발버둥은 그저 발버둥으로 끝나게 되고, 결국에는 이렇게 되어버렸다. 난 무기력하게 A반으로 등교를 해야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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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의 반은 인원수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A반만은 총 인원이 9명으로 정해져있다. 그 때문에 내가 A반으로 가는 것이 결정되서 원래 A반이었던 우리학교 1학년의 전 9위는 B반으로 강등되면서 랭킹도 학년 10위로 수정되었다. 이뉴는 내가 학년 6위로서 A반에 들어가기 때문인데, 결국 나는 원치 않게 이 학교의 1학년 B반 학생들에게 민폐를 끼친 셈이다.
특히 전 9위. 현재 B반의 1등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 의도치 않았다고는 하나 나때문에 강등당했으니 말이다.
A반 등교 첫 날.
어제 모든 짐을 옮긴 나의 새로운 방- A반 학생들만 사용할 수 있는 최신식(?) 기숙사-을 나오자 기숙사의 정문 앞에서 구민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보자, 그 녀석은 밝은 모습으로 내게 인사해왔다.
"여~ 같이 가자"
사실 생각해보면 일이 이 따위로 꼬이게 된 것도 녀석이 유이준과 싸우고 있던 나를 향해서 내 멘탈을 다 부셔버리는 구라를 쳤기 때문이다. 그 거짓말을 들었던 나의 여리디 여린 멘탈은 산산조각이 났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얼음'을 사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성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뭔가 잘못됬다고 느껴서 학교탈출을 감행했고, 그 결과가 지금 이 모양 이꼴이라는 건데…
……모든 일의 원흉은 구민우라는 얘긴가?
저 자식, 팰까?
나의 이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민우는 태평하게 A반 전용 기숙사를 훑어보고는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야~건물 좋은걸? 나도 여기 오고싶어지네.”
"흐흐흐."
"……미안."
"뭐가 말이지?"
"아니, 너 지금 보나마나 일이 이렇게 꼬인 건 나때문이니까, 날 팰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지."
이래서 모든 것을 터놓은 친구가 무섭다고 하는 걸까?
"……너 독심술 익혔나?"
"농담삼아 찔러봤는데, 진짜 그 따위 생각하고 있었냐…"
농담삼아 찔러본거라고 해도 촉이 너무 예리한 거 아니냐. 이거 위험한데. 이 놈도 이제 나의 행동패턴과 생각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거 아니냐?
"제현아, 왜 그러냐?"
갑자기 말이 없어진 나를 보고 물었다.
"아니, 갑자기 조금 살기 싫어져서."
"뭔 개소리야."
나는 고개를 돌려서 이제부터 내가 살게 될 A급 기숙사를 바라보고는 슬픈 표정을 짓고 구민우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민우야, 나 C반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직도 그 소리냐? '일탈' 이후에 조금은 생각이 정리 된 줄 알았더니…그 말 진심이냐?"
"……"
틀린 말은 아니다. 확실히 '일탈'로 인해서 어떤 것에 관해서 결심이 선 것은 맞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불가능할까?"
"…100% 불가능 할 걸. 넌 '얼음'의 소유자니까."
"그렇겠지?"
"그렇지. 아마도…"
[이능계] 최상급 능력인 '얼음'
언제나 나의 자랑이었다고 할 수 있었던 이 녀석이 이렇게 나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이것이 바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걸까?
"하아아아아아~~"
나는 엄청나게 깊은 한 숨을 쉬었다.
"왜 그러냐?"
"A반 갈 생각하니까 암울해져서 그런다, 왜?"
"……"
구민우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한다. 그리고 입을 씰룩거린다. 뭔가 좋은 소식인 모양이다.
"제현아 그거 아냐?"
"뭘?"
"현재 1학년 A반말이야 9명중 널 제외하고 8명 중에 6명이 여자라는 것 같더라."
네?
뭐라구요?
“뭐?”
나는 친구에게 다시금 확인한다. 제발…내 귀가 이상했던 거라고 말해줘! 부탁이야!!
하지만, 친구는 내 기대를 산산히 부숴버린다. 해맑게 웃으면서.
“A반은 보통 남자에게 있어서 낙원이라고”
이 자식. 내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 이 따위 소식을 웃으면서 전해? 장난해 지금? 너같이 건강한 17세의 남자에게는 낙원이지만, 나는 아니란 말이다. 상황이 틀리단 말이다!!!
그것도 많이.
왜냐하면…약혼녀가 있으니까.
그런데, 약혼녀와 같은 반인 것도 모자라서, 그 반에는 여성 비율이 더 높다고?
이건……
"지옥이다."
"크크크크크크킄. 아, 상황이 눈에 보인다."
"재밌냐?"
"끄크으으큭. 재…밌다.
아주 웃겨서 숨넘어가려고하네. 아…열받어.
"크크큭, 너 제법 미남형인데, 크큭. 아깝구만."
"……"
내 표정은 썩어들어가고, 구민우는 이제는 아주 자지러지기 직전이다. 여기서 몇개의 더 콤보가 있으면 이 놈 웃다가 죽는다. 내 장담하고 말이다.
겨우겨우 진정이 됬는지 구민우가 아까전의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래, 우리 학년 1위는 누군지 알겠지?"
"모…르…는데?"
"모르긴 개뿔이. 크큭. 네 약혼녀야. 크큭"
"……네?"
"네 약혼녀라고"
"……뭐라고요?"
"…약혼녀"
"what?"
"네 약혼녀라고. 정제현, 너의 약혼녀!!!"
"약혼녀라니? 그런 단어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데? 그거 뭔 뜻이야? '약'하고 관련 되있는 거야?"
"너 이 자식. 한번만 더 그딴 개그 치면, 친구고 뭐고 없이 이 학교에 전부 다 퍼트려버린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냥 현실회피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이건 좀 이해를 해달라고. 누구나 현실을 떠나고 싶을 때가 한번씩은 있잖아? 내가 지금 그 경우거든요.
"그나저나 나도 한번 소개시켜주면 안되냐?"
"뭐? 누구를?"
"당연히 네 약혼녀지. 그 녀석 예쁘다고 학교에 소문이 났다고!"
"뭐? 우리학교 교칙이 'A반이 한 일을 B반이 모르게 하라'아니었냐? 그런데 어떻게?"
"그렇긴하지만 A반 멤버들의 경우에는 한해서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거든. 그리고 뒷골목(?)도 존재하기도 하고"
"…그러냐"
뒷골목? 그 돈받고 합법적이지 않은 그 어떤 물건들을 거래하는 장소의 대명사인 그곳? 무섭구만. 무서워. 학교에도 그딴 게 있다니.
그렇게 떠드는 사이 학교에 도착했고, 민우는 C반으로, 그리고 난 A반쪽으로 갔다. 그것을 보자 문득 슬퍼졌다. 슬펐지만 나는 슬픔을 뒤로 하고 내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A반의 교실 앞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천천히 교실 문을 열자, 많은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음…저기, 그런 시선들은 많이 부담스러운데요.
나는 시선을 참으면서 반에 들어가 학년 6위의 자리-내 자리-인 여섯 번째 의자에 앉아서 여전히 여러 명의 시선들을 받으며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많은 시선들을 참고 있던 사이에 내가 닫았던 교실 문이 열리고 기다리지 않았던 내 약혼녀님께서 들어오셨다
- 작가의말
문이 열리네요~그대가 들어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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