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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n 님의 서재입니다.

별길을 걷는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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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대비
작품등록일 :
2024.08.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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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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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37

작성
24.08.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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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어른들

DUMMY

시밀은 별 먹는 것의 공격을 몇 번이나 봐왔다.


사제 노인의 말처럼 죽음은 값진 경험이자, 용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죽음과 고통은 끔찍했지만 말이다.


평소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쏘아진 공격이었다.


시밀은 세 개의 점을 찍고 하나의 선을 그어 별 먹는 것의 공격을 막아냈고, 다른 용사들은 그러지 못했다.


전부 검은 막대에 휩쓸렸다.


막대의 크기는 다양했다. 성인 몸통보다 큰 것부터 바늘처럼 작은 것까지 있었다.


환결과 레이를 제외한 다른 용사들은 작은 막대 하나 막지 못했다.


환결은 자신에게 오는 공격 대부분을 막아냈지만, 가슴을 향하는 막대 하나를 허락했다. 그의 가슴에는 구멍이 뚫렸다.


환결은 별빛을 감은 손을 가슴에 가져가 필사적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레이는 옷이 찢어진 걸 빼면 멀쩡했다.


레이가 휘두르는 검은 제대로 된 검술이었다. 담백하고 효율적으로 자신에게 오는 공격을 전부 쳐냈다.


다른 용사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살아남은 사람은 환결, 그리고 시밀인가. 시밀, 우리는 죽은 다음 연합에서 정한 장소에서 합류하기로 되어 있다. 너라면... 우리를 찾아올 수 있겠지?”

“확신은 못해.”


여기까지의 경로는 기억하고 있다. 레이가 만든 별길을 더듬어 따라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는 방향을 알 수 있는 기준이 없었다.


행상들은 큰 별의 별빛을 보고 방향을 잡지만, 별 먹는 것만 찾아가면 되는 시밀은 별빛으로 방위를 잡는 방법 같은 건 배우지 않았다.


‘다음에 살아나면 기초는 배워야겠어.’


시밀이 검을 검집에 넣었다.


“... 포기했나?”


레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이제 공격은 없어.”


시밀의 말대로 두 번째 공격은 없었다.


레이의 간절한 시선이 시밀의 얼굴을 찔렀다.


“원하던 별빛이 사라졌으니까. 우리의 빛으로 저것은 반응하지 않아.”

“... 너는 몇 번이나 저것과 싸워왔지?”

“딱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강 40번.”


레이가 침을 삼켰다. 환결은 고통도 잊고 입을 벌렸다.


“너는... 너는 어떻게 멀쩡하지?”

“용사니까. 레이, 너는 몇 번 죽었어?”

“한 번도.”

“...?”

“너에게는 이해가 안 되겠지. 보통 용사가 버틸 수 있는 죽음은 10번 남짓이다. 그 이상은 정신이 버티지 못한다.”


시밀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왜 고작 그것밖에 버티지 못하나.


그럴 거면 용사의 의미가 있나.


그런 안일함으로 저것과 싸우려 했다고?


마지막에 이르러선 작은 분노가 끓었다.


시밀은 가슴에 든 말을 고르고 골라 하나의 질문으로 가공했다.


“왜 10번이야? 고작 10번!”

“... 나도 너를 보고 깨달았다. 10번이라는 숫자는 아마 주변의 시선에서 나온 거겠지.”

“시선?”

“우리 별에선, 적어도 연합 내부의 별에선 용사의 한계가 10번이라는 정보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용사인 나도 그 근거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 별이 오래되며 이어진 낭설이겠지.”

“쿨럭. 그래서, 레이. 너는 고통을 견디며 몇 번씩 도전할 거야?”

“환결, 너는 포기할 건가?”


환결은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았다. 가슴의 상처는 치료가 끝났다.


“아니, 나도 일단 용사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나는 이제 죽으러 갈 거다.”

“나도.”

“나는?”


혼자 따돌려지는 소외감에 시밀이 입을 열었다.


레이는 시밀을 보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얼굴 보고 왜?”

“아니, 정말로 예상 못했다. 나는 시밀 네가 나보다 완벽한 용사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딜 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때 너는 대각선 후방에서 우리를 따라잡았지. 내가 감지하지도 못할 속도로, 우리를 뒤에서부터 쫓아왔다는 거다.”

“용사는 빛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환결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하하하하!!! 우린 전부 멍텅구리였어! 용사는 용사! 별을 구할 존재! 그런데 용사라곤 본 적도 없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우리 한계를 단정해 버렸으니, 구제할 도리가 없는 멍청이가 따로 없지! 시밀, 재미있는 걸 알려줄까?”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데.”

“들어줘.”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환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말해.”

“연합은 여러 정보를 공유해. 용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나와 레이가 아는 용사란 전부 연합이 공유하는 상식에서 나왔어. 그런데 사실 연합에 있는 사람 중 용사를 실제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어. 연합에 포함된 모든 별의 역사를 통틀어도 열 명이 안 될 거야. 내 안의 용사는 고작 열 명이 만든 환상이었던 거지. 나는 열 명이 만든 환상으로 수백만이 사는 별 하나를 구하려 했던 거고. 이게 얼마나 멍청한 일이야? 안 그래?”

“그래, 너는 멍청해.”

“뼈 때리네.”

“앞으로도 멍청하게 살 거야?”

“... 아니. 눈을 떠야지.”


환결이 봉을 들었다.


“내가 먼저 갈게. 기회가 가장 많은 사람이 아마 나일 테니까.”

“다음은 나다. 시밀, 너는 느긋하게 와라.”


환결과 레이가 빛처럼 빠르게 튀어 나갔다. 빛이 된 그들에게 별길은 필요하지 않았다.


두 개의 별빛이 별 먹는 것을 향해 돌진했고, 사라졌다.


“... 저 둘이 사는 이유는 뭘까.”


문득 궁금해졌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보자.


생각하는 순간 시밀은 이미 별 먹는 것의 앞이었다.


검을 뽑고, 점을 찍는다.


이번에는 두 개의 점을 찍었다.


***


시밀은 하늘에서 반나절을 헤맨 끝에 환결과 레이를 찾았다.


“뭐해?”

“위치를 외우는 중.”


요한에게 하늘에서 길을 찾는 법을 간단하게 배워왔다.


이제 하늘 어디서도 이 자리는 빠르게 찾아올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딨지?”

“... 휴식이다.”


레이가 고개를 떨궜다. 항상 당당하던 그답지 않은 태도였다.


“대장 비슷한 자리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걸 거야. 자괴감도 있고.”

“휴식은 뭐야?”

“말 그대로, 한 번 죽었으니 심신을 치료하며 쉬겠다는 거지. 그 잘난 상식에 따르면 열흘은 쉬어야 한다고 하니, 열흘쯤 후에 다시 기어 나오지 않겠어? 나도 바로 하늘로 가겠다니까 다른 사람들이 말리더라니까?”

“사제는?”

“... 그쪽은 뭔가 알고 있는 눈치긴 했지.”

“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게 별을 가꾸는 사제의 의무다. 과거 많은 사제가 별의 독재자가 된 후에 생긴 규칙이지.”

“사제가 그런 걸 말해줬을 것 같지는 않은데? 레이 너 사제의 자식이라도 돼?”

“그래.”

“진짜?”


환결이 눈을 깜빡였다.


“기도 중 사제가 흘린 피에서 태어난 게 나다.”

“그래서 그렇게 잘나셨던 거였어. 언제까지 수다나 떨고 있을 수도 없지. 슬슬 갈까?”


셋은 빛이 되어 하늘을 가로질렀다.


빛과 같은 속도에선 모든 게 길게 늘어졌다.


점이 선이 되었다.


무수한 별빛이 선으로 변해 사방이 빛으로 가득했다.


시밀이 다른 둘에게 물었다.


“너희는 왜 살아?”

“갑자기 무거운 질문이군.”

“나는 용사 후보가 되려고 살았지. 가문 어른들이 나를 그렇게 키웠거든. 설마 내가 진짜 용사가 될 줄은 몰랐겠지만.”

“딱히 사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제부턴 만들어야겠군. 안 그러면 정신이 버티지 못할 테니.”

“그건 그래.”


레이와 환결의 표정이 흐려졌다.


죽음과 맞닿은 자의 표정이었다.


“시밀, 너는 살아가는 이유가 있나?”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

“아이 같은 꿈이군.... 절대 비웃는 건 아니다!”


레이가 당황해 소리쳤다. 그리고 창피함에 고갤 돌렸다.


“큰 별에도 나랑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나 봐?”

“제법 된다. 거창한 척 연합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연합에 든 별에 사는 모든 사람의 숫자를 합쳐도 1억이 안 될 거다. 중앙 근처로 가면 1억이 사는 별은 흔하다더군. 우리 모두 남을 보고 비웃을 입장은 안 된다. 그리고.”


레이가 발을 멈췄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을 보았다.


“나쁘지 않은 꿈이야. 나는 빛이 태어난 땅의 성지에 가보고 싶다. 내 피에 흐르는 빛의 근원이 거기 있다고, 가끔 사제님에게 들었다. 그걸 보고 싶어졌어.”

“황금빛 용사의 창고에는 재보가 무한히 쌓여 있다지? 나는 그 사람을 목표로 해볼까.”


레이와 환결, 그리고 시밀도 알았다.


그들이 별 먹는 것을 죽이고 의무를 완수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고작 몇 번의 죽음으로 물리칠 수 있는 재앙이라면 별의 위기라 부르지도 않는다.


시밀은 그간 만났던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질리도록 그 사실을 알았고, 레이와 환결은 별 먹는 것을 만나보고 깨달았다.


“난 도저히 그걸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기에 용사인 거겠지. 가자.”


셋은 다시 빛이 되었고, 열흘 동안 33번을 죽었다.


기세만으로는 더 도전해 볼 수도 있었지만, 무작정 들이박는다고 별 먹는 것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었고,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해도 고통과 죽음은 누적되었다.


다시 용사들이 모였다.


시밀은 ‘잘 쉬고 온’ 용사들의 행색을 살폈다.


그들의 얼굴에는 정해진 죽음으로 향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시 만나면 묻고 싶은 게 꽤 있었다. 저들의 고향에는 어떤 문화가 있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등 말이다.


열흘 사이 호기심이 싹 가셨다.


호기심이 곧 삶의 이유인 시밀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 이게 경멸인가.’


시밀은 매번 죽어가며 배우고 있다. 레이와 환결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죽음은 무섭고 아프다.


다른 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계속 희망을 찾아 별 먹는 것을 향해 달려든다.


저들은 그냥 이 상황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강제로 용사 후보가, 용사가 된 건 아닐 것이다.


환결의 말에 따르면 용사 후보라는 건 성장한 별에서도 상당한 힘과 권력이 된다는 모양이니까.


권력만을 탐하고 용사의 본분을 거리끼며, 불편해하기까지 하는 자들을 용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며, 저들을 용사라 불러도 될까.


“간다.”


레이가 앞장서 별길을 만들었다.


레이는 얼마 걷지도 않고 걸음을 멈춰야 했다.


“자, 잠깐!”


대검을 쓰는 중년 용사였다. 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지만, 그만큼 다른 근육도 엄청나 어떤 싸움을 할지 기대했던 기억이 있다.


별 먹는 것의 공격 한 번을 막지 못해 죽었지만 말이다.


중년 용사는 숨을 헐떡였다.


“조,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어떤가? 너무 빠르지 않나?”


시밀은 다른 용사들의 안색을 살폈다. 그들 역시 힘들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레이는 살짝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중년 용사에게 되물었다.


“이게 빠르다고?”

“족히 두 배는 빠르지 않나!”


시밀은 찰나 레이와 눈이 마주쳤다.


레이의 속도는 어제까지 셋이 함께 움직이던 속도의 십분의 일이 안 되었다.


그걸 가지고 너무 빠르다는 칭얼거림을 듣자 레이도 잠시 머리가 굳었다.


“... 알았다. 속도를 늦추지.”


레이가 다시 출발했다.


환결이 언제나처럼 시밀에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걸쳤다.


“버리고 가자고 할 줄 알았지?”

“솔직히.”

“네가 오기 전에 레이랑 한 번 이야기했거든. 이런 일이 일어날 건 뻔하니, 한 번은 기회를 줘보자. 어찌 됐든, 저들도 별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으니까. 불편하면 혼자 갔다 와도 돼. 너는 어차피 다른 녀석들은 신경도 안 쓰잖아?”

“아니. 한 번은 봐야지. 그리고 조금 쉴 때도 됐고.”


죽음으로 인한 피로, 시밀이 죽음피로라 이름 붙인 피로감이 두개골 안쪽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저들처럼 열흘씩 뻗어 있을 생각은 없지만, 며칠 쉬어주긴 해야 했다. 그간 소홀했던 그림 연습도 다시 하고.


시밀이 검을 들었다.


“뭐해.”

“수련.”

“수련? 네가?”


환결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너는 수련 같은 거 안 할 줄 알았는데.”


헛소리하는 환결을 무시하고, 시밀은 훈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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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새로운 생활 +16 24.09.12 587 65 13쪽
23 도읍 +6 24.09.11 608 63 13쪽
22 도읍 +13 24.09.10 623 75 15쪽
21 새빛별, 그리고 나. +18 24.09.09 639 86 12쪽
20 작품명, 새빛별. +14 24.09.08 640 70 13쪽
19 대화 +7 24.09.07 622 71 14쪽
18 대화 +5 24.09.06 649 57 15쪽
17 최고의 사냥꾼 +9 24.09.05 697 72 14쪽
16 최고의 사냥꾼 +5 24.09.04 734 75 12쪽
15 최고의 사냥꾼 +6 24.09.03 765 69 12쪽
14 작은 별들의 용사 +15 24.09.02 842 94 16쪽
13 친구 +9 24.09.01 828 83 12쪽
12 살인 +6 24.08.31 810 74 13쪽
11 용사 +6 24.08.30 821 77 14쪽
10 하늘을 보는 눈 +10 24.08.29 815 81 12쪽
» 어른들 +8 24.08.28 834 74 13쪽
8 용사들 +3 24.08.27 851 60 14쪽
7 검, 별, 원, 색. +7 24.08.26 875 71 13쪽
6 검, 별, 원. +3 24.08.25 906 70 14쪽
5 촛불 +7 24.08.24 938 83 12쪽
4 촛불 +14 24.08.23 1,030 86 14쪽
3 작은 별의 용사 +5 24.08.22 1,130 68 13쪽
2 작은 별의 용사 +5 24.08.22 1,245 75 13쪽
1 작은 별의 용사 +7 24.08.22 2,354 8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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