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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길을 걷는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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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대비
작품등록일 :
2024.08.22 10:36
최근연재일 :
2024.09.19 19:0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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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16
추천수 :
2,193
글자수 :
184,865

작성
24.09.16 19:00
조회
536
추천
54
글자
12쪽

비옌

DUMMY

도읍으로 복귀하는 길, 시밀이 존 본드에게 물었다.


“우리 말고 다른 용사들은 누가 있지?”

“물방울 봤지? 용사는 전부 저런 것들이야. 상대하면 귀찮고, 성가시지.”

“너도?”

“그래, 나도.”


나름의 농담이었는데, 존 본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특히 주의해야 할 사람이 몇 있어. 11번째 황금빛, 13번째 비탄, 9번째 죽음, 5번째 이상. 이놈들 상대는 주의하는 게 좋아. 성격 나쁘고, 그 더러운 성격을 고집할 실력까지 있거든. 뭐, 너라면 10번째까지는 어떻게든 되겠다.”

“내가?”

“원리나 그와 동급의 힘을 다루려면 그 수준은 되어야 해. 물방울이 초고속 출세한 이유도 그 물방울 때문이고.”

“원리와 다른 힘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지.”


실전에서 어떤 위력을 보일지 몰라 한 번에 죽여버렸다.


“가문의 역작이라는 모양이야. 자세한 건 나도 알 바 아니지만.”


***


도읍에 돌아온 존 본드는 조합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따로 보고 같은 건 안 해도 되나?”

“빛의 영역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필요 없어. 외곽이나 다른 세력의 영역으로 가면 보고서 쓰기도 귀찮아지지만. 필요한 일 있으면 용병 조합으로 오라고.”

“공짜?”

“아니. 돈은 받아야지. 그래도 받은 게 있으니, 어지간한 의뢰 한두 번은 무료로 해줄게.”


존 본드는 시밀이 준 그림을 꺼내 흔들었다.


시밀은 딱히 대단한 그림을 그렸다는 자각이 없었다. 대충 그린 건 아니지만, 작품을 만들 마음으로 집중한 것도 아니었다.


저 그림으로 존 본드가 말한 위력은 나오지 않는다.


시밀은 그림에 자기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나 싶었다.


‘리질란에게 물어보면 알겠지.’


도읍은 더럽게 컸다.


그냥 크기만 한 게 아니라 비슷한 형태의 건물도 많았다.


조합 화가들은 별빛도 사용하지 않았다. 요한에게 배운 측량법으로 위치를 기억해두지 못했다면 길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길 잃고 성지를 찾은 최초의 용사가 되었겠지.


참고로 성지는 도읍 하늘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줄기가 뻗어나간 쪽을 보면 되었다.


시밀이 자리를 비운 시간은 약 일주일. 무너진 대지는 복구되었고,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조합 거리는 빠르게 예전의 모습을 찾아갔다.


‘화가 조합도 원래 자리로 옮겨야 하나?’


이미 땅을 샀는데 그럴 필요가 있냐는 의견과 지금 자리는 터가 별로 안 좋다는 의견이 시밀의 안에서 충돌했다.


부조합장이나 리질란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면 되겠지.


“....”


물방울 용사를 닮은 거지 하나가 이쪽을 주시하는 듯했지만, 착각이 분명했다.


조합에 돌아가면 지하 연습생들도 봐줘야지.


시밀은 자신의 그림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시밀의 그림을 냉정하게 평가해 줄 사람이 없었다. 도읍에서 중간 이상은 간다는 화가 조합의 조합장이 찬양 일색일 정도면 뛰어난 건 맞겠지.


그러나 위에는 위가 있었다.


시밀의 그림은 우레길의 발끝... 에도 못 미치는 건 아니고 잘 쳐줘야 우레길의 허리 어림이었다.


그게 어떤 위치인지 알아야 앞으로의 계획을 정할 건데 그게 힘들었다.


“....”


물방울 용사를 닮은 거지와 평상복 차림의 사제가 이쪽을 보고 있는 듯했지만, 착각이겠지.


경매가 있다고 했던가? 무너진 대지가 복구되었으니, 경매도 다시 열릴 것이다.


그림을 경매에 내보면 조금은 객관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


저건 물방울 용사가 아니다.


도읍이 얼마나 넓은데 닮은 사람 하나쯤 있겠지.


존 본드가 그러지 않았던가. 물방울은 귀족이라고.


귀족이 뭐가 아쉬워 이런 조합 거리에서 거지꼴을 하고 있을까.


“무시하지 마!”


쪼그려 앉아있던 물방울 용사가 일어났다.


“나는 냥줍 취미 따위 없다. 표독한 길고양이는 상종하고 싶지도 않고.”

“냐, 냥줍? 표독?”

“그럼 이만.”


용사를 닮은 거지가 아니라 용사 본인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시밀의 관할은 아니었다.


물방울이 뭐가 예쁘다고 어울려줘?


“자, 잠깐만!”

“한 번만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물방울 용사가 시밀의 앞을 가로막았다. 보조 사제가 그녀 뒤에서 고개를 숙였다.


물방울은 마음에 안 들지만, 보조 사제에게는 죄가 없었다.


“하아, 이야기만 듣지.”

“잠깐만 그녀를 보살펴주셨으면 합니다.”

“...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현재 물방울 용사는 수중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용사에 귀족인 인간이, 가진 게 없다? 들어줄 가치도 없는 장난이군.”


귀족의 권력과 재력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용사의 재력은 시밀도 얼추 알았다.


시밀이 하늘이 보이는 집을 사겠다고 욕심을 부려서 그렇지, 1년 치 활동 지원금이면 화가 조합을 세 개는 만들어 운영할 수 있었다.


“비옌은 모든 자산을 가문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가문에서 쫓겨나며 덩달아 그녀의 자산도 모두 잃었죠.”


시밀은 귀를 의심했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누가 누굴 쫓아내?”

“20등 물방울 용사 비옌은 가문에서 쫓겨나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적어도 그녀에겐 말이죠.”

“나를 찾은 이유는?”

“... 도와줄 사람이 없어.”


비옌이 축 처진, 아주 바닥을 뚫고 태초의 빛까지 파고들 목소리로 말했다.


“비옌은 27살에 용사가 되었습니다.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죠. 가문 차원에서 막대한, 중형 자원별을 몇 개는 만들 수준의 자원이 그녀에게 투자되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나기 전부터 별빛을 주입받았고, 태어난 이후에는 호흡조차 통제당하며 무예를 익혔습니다.”

“나는 남의 불행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그렇게 키운 용사를 가문이 내친 이유를 물었다.”

“연속 임무 실패, 그리고 최근 몇 달 동안 이어진 부진. 그걸 반성하고 오라는 의미입니다.”


유리의 지식을 꺼낼 것도 없이,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내쫓아 반성하고 오라는 집안은 새빛별에도 있었다.


아이들이 사춘기만 지나도 통하지 않을 방법이었다.


비옌의 가문은 그 유치한 방법으로 그녀에게 벌을 내렸고, 빛에게 인정받은 용사는 그걸 또 그대로 당해주고 있었다.


“남에게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는 제약 같은 거라도 있나?”

“그건 아닙니다. 정말 순수하게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비옌의 모든 관계는 가문에서 시작해 가문에서 끝납니다.”

“두 번째 신분은?”

“유리안 가문의 딸. 그게 비옌의 두 번째 신분입니다.”


시밀은 머리가 아파졌다.


시밀이 비옌을 도울 필요는 없다. 딱히 도움을 주고받을 관계도 아니다.


도움이 아니라 검과 욕설, 살의를 주고받아야 계산이 맞다.


거지꼴의 용사를 지나치지 못하는 건, 보조 사제가 한 말 때문이다.


가문이라는 세계에서 살아온 인간이 가문에서 버려졌다.


시밀이 용사 후보가 된 이후, 유리가 시밀을 밀어냈다면, 시밀은 그걸 버틸 수 있었을까?


그 가정 하나가 시밀의 발목을 잡았다.


“다른 용사들에게 가보지?”

“비옌은 친한 용사가 없습니다.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하는 용사는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요. 또 도움을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나는 도와줄 것 같았고?”

“비교적 최근 그녀와 임무를 함께 했으니까요.”

“물방울이 나한테 한 짓들은 못 들었나 보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조 사제가 처음으로 당황했다.


길바닥에 쪼그려 앉은 비옌이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당신께서 호승심에 먼저 비옌에게 승단전을 신청했다고 들었습니다.”

“저쪽이 먼저 내 실력을 알고 싶다며 시비를 걸었지.”

“연기와 당신께서 운 좋게 별 먹는 것을 발견해 활약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별 먹는 것을 죽이려는 걸 방해해서 수천만이 사는 별 하나를 괴물로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도 말했나?”


공장별에 살던 사람의 숫자는 수천만이었다.


별이 뒤틀리며 수천만이 죽었다.


공장별에는 연합의 모든 인구를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고, 소녀의 형상을 한 별 먹는 것의 한마디에 모두 죽었다.


시밀이 수천만이라는 숫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건 현실감이 없어서였다.


수천만 명이 괴물의 먹이가 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였을 때 어떤 감정의 파도가 덮칠까 두렵기도 했다.


존 본드는 빛의 영역 안에서 일어난 일은 따로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보조 사제들이 그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건 아닌 듯했다.


“비옌. 소멸의 용사님의 말이 모두 사실입니까?”

“....”


그녀는 몸을 더욱 둥글게 말았다.


“한 번 배정된 보조 사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용사의 아군입니다. 설령 용사가 빛을 배신해도 말이죠. 제가 도움이 되길 원한다면, 진실을 말해줘야 합니다.”

“... 전부 맞아.”

“맙소사.”


둘은 용사와 보조 사제보다는 다 큰 아이와 아이를 돌보는 보모 같았다.


‘호흡까지 통제당했다고 했지.’


원리는 간단히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시밀이 할 말은 아니지만, 저 나이에 원리의 일부를 포함한 다양한 힘을 다루는 물방울의 무력은 모두 그 통제와 투자의 결과일 것이다.


시밀이 3년 동안 쉬지 않고 그림만 그렸듯이, 비옌 또한 평생을 물방울에 투자했겠지.


“하아... 따라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비옌, 가죠.”


콩벌레가 사람이 되었다.


시밀은 거지 하나와 보조 사제 하나를 데리고 화가 조합 건물로 향했다.


화가 조합을 찾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거리 사람에게 물어보니 대지를 복구하고 그쪽으로 조합을 옮겼다고 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화가 조합은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먼저 외형이 바뀌었다. 화가 조합은 4층 높이의 일반 건물이었다.


그게 높이는 6층이 되었고, 좌우로는 거의 3배가량 커졌다.


지하에 있던 화가 지망생들이 넓어진 조합 건물 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지하실에 있는 사람의 숫자는 거의 안 변했지?’


백 명이 넘는 인원을 새로 들였다고?


용병 조합과의 마찰이 전부 정리된 후에?


마침 걸어 다니는 답지가 다가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조합을 지키라는 명령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행했습니다. 그보다, 불청객이 있군요.”

“내 손님이다.”

“그건 압니다. 하지만 선후는 분명히 해야죠. 도읍에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분명 혼자셨습니다. 그러면 조합 거리에서 저들을 만났다는 건데, 정체를 숨긴 용사의 신분을 알아내는 건 그리 간단히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리질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기가 돌 정도로 차가웠다.


이름 모를 보조 사제와 비옌마저 숨을 죽였다.


“물방울 용사군요. 그녀가 꾸민 일은 아닐 테니, 저는 잠깐 그녀의 보조 사제에게 자초지종을 듣겠습니다. 물방울 용사에게는 접대원을 붙이도록 하죠.”

“아니. 의자랑 삼각대면 충분해.”

“알겠습니다.”


시밀이 하려는 행동을 알았는지 리질란이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비옌의 보조 사제를 끌고 사라졌다.


시밀은 조합 화가를 불러 그림을 그릴 도구와 해부학 서적을 가져오게 했다.


비옌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시밀은 그녀 앞에 삼각대를 놓았다.


“이제부터 넌 화가 조합 소속 화가가 된다.”


물방울, 너 납치된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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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비탄의 사랑 NEW +8 9시간 전 287 51 13쪽
30 비탄의 사랑 +10 24.09.18 459 47 15쪽
29 비탄의 사랑 +8 24.09.17 514 55 13쪽
» 비옌 +17 24.09.16 537 54 12쪽
27 승단전 +11 24.09.15 565 60 12쪽
26 하늘의 규칙 +11 24.09.14 609 56 13쪽
25 하늘의 규칙 +7 24.09.13 600 52 12쪽
24 새로운 생활 +16 24.09.12 626 69 13쪽
23 도읍 +6 24.09.11 650 66 13쪽
22 도읍 +13 24.09.10 668 78 15쪽
21 새빛별, 그리고 나. +18 24.09.09 680 89 12쪽
20 작품명, 새빛별. +14 24.09.08 677 73 13쪽
19 대화 +7 24.09.07 658 73 14쪽
18 대화 +5 24.09.06 684 59 15쪽
17 최고의 사냥꾼 +9 24.09.05 733 74 14쪽
16 최고의 사냥꾼 +5 24.09.04 772 76 12쪽
15 최고의 사냥꾼 +6 24.09.03 798 70 12쪽
14 작은 별들의 용사 +15 24.09.02 878 95 16쪽
13 친구 +9 24.09.01 860 84 12쪽
12 살인 +6 24.08.31 842 75 13쪽
11 용사 +7 24.08.30 856 78 14쪽
10 하늘을 보는 눈 +11 24.08.29 853 82 12쪽
9 어른들 +9 24.08.28 869 75 13쪽
8 용사들 +4 24.08.27 890 61 14쪽
7 검, 별, 원, 색. +8 24.08.26 918 72 13쪽
6 검, 별, 원. +4 24.08.25 954 71 14쪽
5 촛불 +8 24.08.24 986 84 12쪽
4 촛불 +15 24.08.23 1,083 86 14쪽
3 작은 별의 용사 +6 24.08.22 1,187 68 13쪽
2 작은 별의 용사 +6 24.08.22 1,310 7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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