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 글을 올리게 된 이유가 다름아니라, 소설 관련 동호회(취미보다는 좀 더 진지한 축에 속하는)내에서 친구와 개연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 차이를 보여, 내심 문피아의 필우분들께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여 이렇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흔히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또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개연성을 항상 염두하고, 고심합니다.
그런데 소설에서 개연성이란 것의 기준은 뭘까요?
친구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개연성이란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구상하는 소설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의 묘사도 중요하고, 문체도 중요하고, 전개할 때의 리듬감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이야기, 스토리를 엮어내는 것이 소설인만큼 개연성은 소설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글을 읽을 때는 개연성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느끼면 보질 않고 덮게 된다.'
그런데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개연성에 대한 생각은 굉장히 너그러운 편이었습니다. 작가는 물론이야 글을 쓸 때에 항상 개연성을 염두해 두어야 하지만, 독자는 개연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작가가 이미 하나의 글을 써낸 이상,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상,
그 세계가 이미 하나의 완성된 세계이기 때문에 독자가 가진 개연성의 기준이 어떻든지 간에 최대한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의 개연성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이해, 존중을 해야한다고 봤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미 작가가 완성해낸 하나의 글을 읽을 때엔, 독자 자신의 개연성에 대한 기준은 접어두고 오로지 글에서 펼쳐지는 개연성을 인지하고 그에 맞춰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연성. 의레 일어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성질.
그런데 저는 우리가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개연성은 결국 주관적인 시각과 기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아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땅에서 '우연히' 주운 로또 복권 한장을 주었다. 그 복권이 1등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첨금을 받기 위해 찾아간 은행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는 잃어버린 형을 '우연히' 만났다. 꿈에 그리던 해후를 하고 형과 함께 집으로 가보니 '우연하게도' 그 형의 여자친구가 예전에 고아원에서 나를 엄마처럼 지극히 보살펴주던 같은 고아원 출신 누나였다. 너무나 기쁜 마음에 쏟아져 내리는 빗길을 달리다 '우연히' 번개에 맞아 쓰러지고, 그 누인 장소가 '우연하게도' 고아가 처음 가족을 잃어버렸을 때 서있던 자리였다.
이런 진행의 글이 있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개연성에 의문을 표할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우연의 중첩이 밑도 끝도 없어보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개연성이라는 것은 결국 개개인이 가진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그 시간 속에서의 경험에 의거한 기준.
현실에서도 사람마다 제 각각의 삶을 살고, 어떤 사람에게 있어선 꿈과 같고 말도 안되는 일을 어떤 사람은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번개에 맞고 쓰러졌다가 정신차리고 다시 일어날 즈음에 다시 또 한번의 번개를 맞은 사람의 실례처럼 말이죠.
그래서 저는 글을 읽을 때는 그 작가의 세계관을 존중하여, 제가 갖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저에게 있어선 개연성의 기준일테죠)을 최대한 버리고 글에서 어떠한 진행이 있어도 그것이 그 작품에 있어선 일어날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이라고 여기고 글을 읽습니다.
물론 글이 다수의 개연성의 기준에 부합한다면, 그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 유리함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개연성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는 최대한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개연성을 염두하되, 글을 읽는 독자 측에서는 글의 개연성을 일일이 따져가며 독자 자신의 개연성에 부합하지 않는다하여 글을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생각이고, 그래서 글을 읽을 때에도 어떤 상황이나 인물의 심리묘사, 그에 따른 우연이나 급반전이 일어나도 저는 그것을 '으레 일어날 수 있는 성질'로 보고 읽어나가곤 합니다.
이렇듯 친구와 제가 가진 개연성이라는 부분에 대한 의견 차이는 많은 이야기를 낳았고, 저는 보다 더 많은 분들에게서, 보다 더 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계실 분들에게서 의견을 듣고 싶은 마음에 글을 올려봅니다.
문피아 분들은 독자가 가져야 할 개연성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보시나요?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