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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님의 서재입니다.

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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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6
최근연재일 :
2024.07.01 08:08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5,352
추천수 :
158
글자수 :
236,311

작성
24.06.29 07:34
조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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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오늘의 동행 상대

DUMMY

"으악! 벽이 무너졌어!"


벽에 램프 설치를 위해 망치질하던 헌터가 비명을 지른다.


"어우! 시끄러!"


그 소리를 듣고 근처에서 작업 중이던 동료가 짜증 낸다.


"너 때문에 하마터면 손가락을 내려칠 뻔했잖아!"


"미,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작은 트러블이 종종 벌어지곤 하지만, 전체적으로 광원 확보 작업은 순조롭다.


"전하, 오늘도 정찰하실 겁니까?"


작업 상황을 지켜보던 황자에게 닐이 다가와서 묻는다.


"그래야지."


"그럼 동행하겠습니다."


"같이 간다고? 왜?"


"이, 이유를 물으셔도···."


왜냐는 질문에 닐이 몹시 당황한다.

마치 본인이 동행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가 조금은 불쾌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어찌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상한 기류를 감지한 페로스가 다가온다.


"음, 마침 잘 왔군."


빈말이 아닌 진심으로 그를 반긴다.


"정찰을 가려고 하는데 닐이 동행하길 청하더군."


"전하께선 그걸 원치 않으십니까?"


"원치 않는다기···보다는 이왕이면 다른 헌터들과도 합을 맞춰보고 싶어서."


"아하, 그렇셨군요."


페로스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는 내심 안도한다.

생각보다 말의 앞뒤가 잘 맞았네.

되는 대로 말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쳇!"


대화를 듣던 닐이 작게 혀를 찬다.

불만이 많아 보이지만 막상 뭐라 하지 않는 걸 보니 그 역시 맞는 말이라 판단한 듯싶다.


"그럼 오늘은 누굴 데리고 가시겠습니까?"


"괜찮다면 그대가 동행해줬으면 하는데."


"···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황자의 지명이 다름 아닌 본인이라는 사실에 페로스가 황당해한다.


“차기 길드장 후보의 실력이 어떤지 직접 보고 싶으니까.”


"아직은 후보라고 말하기도 뭐합니다만."


"어쨌든 룬 랭크라면서. 여기까지 온 거, 영주인 나한테 실력 좀 보여줘야 하지 않나."


"아하하. 그리 말씀하시니 거절할 수가 없군요."


페로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동행을 받아들인다.

하아, 겨우 설득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려는 걸 참느라 엄청 힘들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다른 헌터들에게 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음, 천천히 하도록. 딱히 급한 건 아니니까."


"닐, 자네도 따라오게."


"예···."


당당한 페로스 뒤를 어깨를 축 늘어뜨린 닐이 따른다.

황자와의 정찰에 동행하지 못한 게 무척 아쉬운 모양이다.

···왜 저렇게까지 일행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다들 모였나? 그럼 각자 경비 구역을 정해주겠네."


광원 확보 작업에 참여하지 않는 헌터들은 경비를 맡게 된다.

혹시라도 삭스트라나 녹테안기스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난 전하와 함께 정찰을 다녀와야 하니 잠시 자리를 비우도록 하지."


그러니 어지간한 일은 알아서 판단하란 페로스의 말에 헌터들이 살짝 긴장한다.


"잘 부탁하네."


부하들이 당혹해하는 것도 무시하고 페로스는 황자의 곁으로 돌아온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건 괜찮은데···."


크리스토퍼가 페로스 옆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남겨진 헌터들을 바라본다.

대장격인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다들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다.


"좀 방임한다는 느낌이 드는걸. 적어도 지휘를 맡을 사람이라도 지정해주는 게 낫지 않았나?"


"방임이라.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부하들을 돌아본 페로스가 한숨을 푹 내쉰다.


"군인이라면 몰라도 헌터가 자주성이 없어선 곤란하니까요."


"저들은 그대의 부하가 아닌가."


"헌터 세계에선 주종 관계는 없습니다. 있다면 선후배 사이일 뿐이죠."


선후배라.

그 말을 듣자마자 크리스토퍼의 시선이 어디론가 향한다.


"이든, 저쪽 헌터에게 새로운 못 좀 가져다 줘. 보아하니 못 쓰게 된 거 같아."


"그럴게요."


선배인 줄리안의 지시를 이든이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

정말 손발이 척척 잘 맞는단 말이지.

저 둘을 볼 때마다 이상적인 선후배 사이가 저런 게 아닐까 싶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의뢰를 개별로 받나?"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팀으로 활동하는 헌터들도 꽤 있습니다."


헌터 중에서도 팀을 이루는 건 최하위 등급인 새트나 루프 랭크의 헌터들이 대부분.

보통은 파이르 랭크 이상의 선배 한 명의 지도를 받으면서 같이 경험을 쌓는다.


"그러다가 랭크가 오르면 개별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어째서?"


"헌터 길드의 의뢰를 달성할 때마다 보수와 공헌도가 주어집니다만, 해결 인원이 늘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지요."


예를 들어 의뢰를 해결한 보수로 10골드를 받아다고 치자.

그 의뢰를 혼자 해결했다면 10골드를 받을 수 있겠지만, 인원이 둘이라고 하면 5골드 밖에 못 받는다.

게다가 랭크를 올리는 게 중요한 공헌도 역시 마찬가지.

팀으로 활동할 때보다 개인적으로 의뢰를 해결하는 편이 랭크 올리는데 훨씬 빠르다.


"저기 있는 헌터들도 그렇게 해서 랭크를 올렸습니다만."


설명하다 말고 페로스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이상하게 소집할 때마다 제게 의지하려고 하더군요."


"그야 그대가 믿음직스러워서 그럴 테지."


"믿어주는 건 기쁘긴 합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페로스의 표정이 무척 복잡하다.

후배들이 의지해주기보다는 서툴게나마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 걸까.


"이런, 어쩌다 보니 제 불평만 늘어놓았군요."


"상관 없네."


본인 얘기만 했다고 머쓱해하는 페로스에게 괜찮다고 크리스토퍼는 말한다.


"나도 누군가를 이끄는 입장이다 보니 무척 공감이 되던데."


"전하와 제가 동지인 셈입니까? 하하하!"


페로스의 호탕한 웃음이 동굴 내부로 울려 퍼진다.

그 소리에 작업 중이던 헌터들이 뭔가 싶어 이쪽을 바라본다.


"그만 가지. 시간이 꽤 지체된 거 같군."


"그러지요."


대충 대화를 마무리 지은 두 사람은 동굴 안쪽으로 향한다.


"그대의 대검은 정말 크군."


크리스토퍼의 시선이 페로스의 등, 정확하게는 등에 비스듬히 매달린 대검에 향한다.

어림 잡아도 2미터는 넘어 보이는데.

게다가 칼날의 면적도 꽤 있어서 위압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특별히 맞춘 건가?"


"그렇습니다."


페로스가 검 손잡이에 손을 댈 뿐, 검을 뽑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대검이 제게는 너무 가볍더군요. 좀 더 무게감 있는 게 좋다 싶어서 돈을 모아서 특별 주문했습니다."


"그게 언제적 일이지?"


"25년 전쯤 됐을까요? 헌터 일을 처음 시작했을 시기였으니."


"그 검, 잠깐만 보여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페로스가 건네준 대검을 손에 들자마자 묵직함이 느껴진다.

일반 대검에 비해 2~3배는 무거울 듯하다.


"어허?"


무게감을 느끼던 황자를 페로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본다.


"전하, 그거 전혀 무겁지 않습니까?"


"무겁긴 하지만 아예 못 들 정도는 아니지. 그런데 왜?"


"저도 한 손으로 잡기 어려운 건데···."


페로스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다.

꽤 놀랐겠지.

키만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황자가 자신의 무거운 대검을 한 손으로,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으니.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요."


"소문? 무슨 소문?"


"전하께서 열 살이셨을 때 황궁 기사단장과 팔씨름해서 그분 팔을 골절시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거 참, 소문도 참 이상하게 났네."


"아닙니까?"


"아니지."


"그랬···습니까?"


단박에 소문을 부정하자 페로스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진다.

뭘 기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잘못된 부분부터 수정해주기로 한다.


"내가 기사단장과 팔씨름한 건 아홉 살 때, 그리고 골절이 아니라 아예 오른팔이 부러졌다고."


"헉!"


사실을 전해 들은 페로스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의 반응을 살필 겨를이 지금의 크리스토퍼에게는 없다.

한 번 과거 일을 떠올리니 그 뒷일까지 연속으로 기억나기 시작했으니까.


그 사건을 계기로 당시의 기사단장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부상이 문제가 아니라, 아홉 살밖에 안 된 어린 황자에게 진 게 무척 분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어디에서 극도로 훈련한다고 들은 거 같긴 한데.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나중에 헨릭에게 알아봐 달라고 해야겠다.


"그 얘기를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가는군요."


겨우 원래의 안색으로 돌아온 페로스가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황자이신 전하께서 왜 이곳 슈레인의 영주가 되셨나란 의문이 있었습니다만."


"그런가."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대검을 돌려준다.

슈레인의 영주가 된 이유는 단 하나.

황제가 된 큰형에게 속았으니까.

···그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그런데 전하, 제가 정찰에 따라와도 괜찮았습니까?"


황자가 불쾌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페로스가 다른 문제점을 지적한다.


"전 힘으로 맞붙는 타입이라 어제 나타났다는 몬스터를 상대할 자신이···."


"괜찮아. 대책이라면 준비해뒀으니까."


그게 녹테안기스에게 먹힐지는 의문이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오늘 목표는 토벌이 아니니까.


"뭐 하나만 물어도 되나?"


"뭐든 편히 말씀하시지요."


"현 헌터 길드의 길드장이 파벨론 카스 맞나?"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인가? 내 보좌관이 말하기로는 외부 활동을 거의 안 한다고 하던데."


"그러실 겁니다. 예순을 훌쩍 넘기셨으니까요."


···생각보다 고령이네.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이 간다.

니그로의 증조부와 함께 활동했다고 한다면 나이를 꽤 먹었겠지.


"듣자 하니 두 명 밖에 없다는 솔 랭크 소유자 중 한 명이라던데."


"지금은 사무 업무가 대부분이지만 과거에는 엄청난 활약을 하셨습니다."


설명하는 페로스의 말투에 열기가 띄기 시작한다.


"전에 듣기로는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셨다고 하더군요."


"솔 랭크를 받은 것도 그 때문인가?"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그게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랬군."


이곳 슈레인에서 몬스터 연구를 한 니그로의 증조부.

그 연구를 위해 많은 몬스터를 잡아 제공한 게 파벨론 카스다.

확실히 그 정도라면 업적을 쌓았다고 할 수 있을 터.

헌터 랭크 최고인 솔 랭크를 받을 만하다.


"그대는 그의 오른팔이라지?"


"제가 헌터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신세를 많이 졌지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 하다 보니 어느새 파벨론의 오른팔, 헌터 길드의 2인자라 불리게 되었다고 페로스가 멋쩍게 말한다.


"실력은 그렇다 치고 개인적인 성품은 어떻지?"


"무척 배포가 크신 분이십니다. 그 성품에 반해 따르는 헌터들도 많고요."


그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거린다.

솔직히 페로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본인의 선배이자 상사를 나쁘게 말할 거 같진 않으니까.

그래도 페로스가 무척 존경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니 나쁘게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이번 헌터들 파견에는 그의 의견도 포함된 건가?"


"물론입니다. 무척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시더군요."


원래 화끈한 일처리로 유명하긴 했지만, 그때의 열기는 한층 더 했다고 한다.


"뭐랄까. 반드시 슈레인 지방과 협업 관계를 만들겠다는 열의가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열의라.

상사의 의도를 페로스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싶지만, 크리스토퍼에게는 감이 왔다.

아마 후배들도 강해지길 원했던 거겠지.

과거의 본인이 대형급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강해진 것처럼.


"나중에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군."


"언제든 헌터 길드에 와주시죠, 전하라면 대환영입니다."


내가 가야 하는 건가?

열흘이나 걸리는 곳까지?

그렇게 생각하니 굳이 파벨론 카스와 만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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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를 지망하는 황자의 영지 운영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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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협업 관계를 맺기 어려운 이유 24.07.01 16 2 11쪽
» 오늘의 동행 상대 24.06.29 25 2 12쪽
42 어둠 속 몬스터와의 재회 24.06.27 26 2 11쪽
41 계획에도 없던 예정 24.06.24 30 2 12쪽
40 헌터 길드의 2인자, 페로스 텔루어드 24.06.23 32 2 12쪽
39 파견의 의도 24.06.22 30 2 13쪽
38 또 다른 헌터의 등장 24.06.20 36 2 12쪽
37 시험 운영 24.06.19 42 2 12쪽
36 작은 불협화음 24.06.18 41 2 11쪽
35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협조하는 자 24.06.16 43 2 11쪽
34 그동안 카밀이 안 보였던 이유 24.06.15 54 2 13쪽
33 예상 외의 방문자 24.06.13 53 3 11쪽
32 부상 +1 24.06.12 55 2 12쪽
31 비룡의 둥지 24.06.08 53 3 11쪽
30 대안책 24.06.07 61 4 11쪽
29 지하 동굴에서의 노역 작업 24.06.05 57 3 11쪽
28 긴급 상황 뒤에 해야 할 일 24.06.04 58 2 12쪽
27 거인 나무의 숲, 더 깊은 곳으로 +1 24.06.03 68 2 13쪽
26 루이스의 결심 24.06.02 77 2 12쪽
25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대가 24.06.01 88 2 12쪽
24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24.05.31 84 2 12쪽
23 어둠 속에 숨은 사냥꾼 24.05.30 83 2 12쪽
22 파비안의 동행 24.05.29 89 1 12쪽
21 소년 파비안과 약사 루이스 24.05.28 97 3 14쪽
20 원했던 결과, 하지만··· 24.05.27 116 2 11쪽
19 합작품의 성능 평가 24.05.26 119 2 12쪽
18 극단의 조치 24.05.25 127 2 12쪽
17 토벌 성공, 그리고··· 24.05.24 135 4 12쪽
16 추가분 요청 24.05.23 130 3 13쪽
15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바위의 용 24.05.22 13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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