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른 도전기 1부 숨은영웅 제36화 스케빈저, 무허가 물약을 만들다.
- 제36화 스케빈저, 무허가 물약을 만들다. -
아리아의 빵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는 스케빈저의 눈에 삽을 들고 걸어가는 제롬의 모습이 보였다.
“어이 제롬.”
“어 누구? 아 스케빈저로군. 잘 지내고 있나?”
“나야 항상 잘 지내지. 그런데 자네는 왜이렇게 힘이 없어 보이나? 집에 무슨 일 있어?”
스케빈저가 어깨가 축 처져있는 제롬에게 물었다. 제롬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후, 말도 말게. 내가 얼마전에 밭에 고구마를 심었지 않은가?”
“그랬지, 그때 나도 고구마 심는 일을 도와주고서 나중에 수확할 때 고구마 한상자를 받기로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게 무슨 일이 생긴건가?”
제롬이 다시한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도 말게, 아니 어제 아침에 밭엘 나가보니 고구마를 심어 놓은 자리가 온통 파헤쳐져 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얼른 뛰어가 보니 땅속에 있던 고구마를 들쥐녀석들이 싹다 갉아먹다가 도망치는 걸세. 어제는 내가 하루종일 밭을 지키면서 들쥐놈들을 쫒아 냈지만, 어디 사람이 잠을 안잘수가 있나. 이제 밭에 나가보면 또 얼마나 고구마밭이 작살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라네.”
“아니, 지금까지 이런일이 없었는데. 들쥐들이 밭을 습격한다면 이것보다 큰일이 없는 것 같군. 어떻게는 수를 쓰지 않으면 우리마을 한해 농사가 모조리 망칠수도 있겠네.”
“안그래도 내가 어제 레돔 할아버지께 말씀 드렸네. 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자네 잡화점에 쥐덪은 없나?”
“물론 쥐덪도 있지. 하지만 수량이 얼마 안되서, 들쥐들이 수가 많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아무래도 내가 직접 봐야겠네. 함께 자네 밭으로 가보세.”
“그러게나. 그나저나 올해는 밭을 경작하고 처음이라 밀의 수확량도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작물들로 어떻게든 한해를 나보려고 했는데 깜깜하네.”
스케빈저는 제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후 집에 돌아가 창고에서 삽을 꺼내왔다. 그리고 제롬과 함께 마을 남쪽에 있는 제롬의 밭으로 향했다. 길을 따라 얼마간 걸어 도착한 제롬의 밭은 매우 넓었다. 한쪽에선 밀이 녹색줄기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여러 가지 작물들이 깔끔하게 분리되어 자라고 있었다.
“이놈들 쉬! 쉬! 여기가 어디라고, 쉬! 쉬!”
밭에 도착한 제롬이 녹색 줄기가 엉켜있는 곳으로 달려가 삽을 휘두르며 들쥐를 잡으려 했다. 땅을 파고 땅속에 자라고 있는 고구마를 파먹고 있던 들쥐들이 깜짝 놀라 우루루 도망갔다. 덩달아 옆에서 무를 파먹고 있던 들쥐들도 쏜살같이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저, 저런 괘씸한 녀석들. 아직 크지도 않은 무까지 죄다 뽑아 놨네.”
제롬은 그나마 멀쩡한 무를 들어 다시 땅에 묻었다. 그런 제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휴, 이렇게 한다고 다시 자랄수는 있으려나. 뿌리가 온통 작삭이 났어 쯧쯧.”
탕! 탕!
삽을 들고 도망치는 들쥐들에게 삽을 휘두르던 스케빈저도 들쥐들이 모두 풀숲으로 도망가자 몇 번 풀숲을 헤치며 둘러보다가 제롬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거 피해가 생각보다 심각하군. 들쥐의 크기가 커서 내가 가진 쥐덪을 사용해봤자 오히려 들쥐놈들이 덪을 끌고 도망가게 생겼네.”
“크기가 크다보니 땅도 금방 파고 먹기도 엄청 먹는다네. 하룻밤 사이에 고구마 밭의 1/5가 절단이 났어. 이대로 가다간 들쥐놈들이 밀밭까지 망쳐놀까 두렵네.”
밭을 둘러보던 스케빈저가 한쪽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작물을 발견하고 제롬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기 위로 길게 솟은 작물은 뭔데 들쥐들이 하나도 건들지 않았지?”
제롬도 스케빈저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런 마늘이네, 들쥐녀석들이 단맛 나는 것만 파먹고 마늘처럼 매운건 건들지도 않아. 아주 근처에 가지도 않지.”
제롬의 말을 들은 스케빈저의 눈이 마늘밭을 보며 빛났다.
‘어쩌면 저걸로 어떻게 해볼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마늘을 보며 잠시 생각하던 스케빈저가 제롬에게 말했다.
“제롬, 저 마늘들을 내가 좀 뽑아가봐도 될까? 저거라면 뭔가 수가 생길지도 모르겠어.”
“마늘 말인가? 소용없네, 어제도 내가 곳곳에 마늘을 던져놨는데 거기만 피해다니며 고구마를 파먹었어.”
“후후, 그건 마늘이 군데군데 있어서 그랬던 거겠지. 하지만 밭을 온통 마늘냄새로 덮는다면 어떨까?”
“그게 가능한가? 그러려면 마늘이 엄청나게 필요할텐데...”
“어떻게 하겠나. 날 한번 믿어보게.”
“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자네 뜻대로 해보게. 어짜피 들쥐를 막지 못하면 농사를 모두 망치는건 뻔한 일이니 필요한 만큼 뽑아 가게나.”
“그럼 나는 먼저 돌아가 보겠네. 너무 걱정 말라고.”
스케빈저는 제롬을 위로하며 싱긋 웃어주고는 마늘을 다섯 대정도 뽑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 하자마자 마늘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왔다. 지하실 벽면에는 병들이 깔끔하게 정리되 있었는데 그 안에는 무언가 정체를 알수 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여전히 풀플레이트아머가 들어있는 상자가 쌓여 있었다.
“저건 도대체 어떻게 설치를 해야 서있도록 만들 수 있는 거야? 도통 알수가 없네.”
그러며 들고온 마늘을 내려 놓은 곳은 여러 가지 유리병들과 기묘하게 연결된 관들, 그리고 막자와 막자사발 등등 여러 가지 연금술에 필요한 도구들이 정리되어 있는 선반이었다. 그 옆에는 좀더 두껍고 튼튼해 보이는 선반이 하나더 있었는데 테두리에는 깊은 홈이 파여 있어 한쪽의 양동이로 연결되 있었다. 그리고 그 선반은 뭔가를 흘렸었는지 암록색과 암적색의 얼룩덜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분열(分裂)! 증식(增殖)!]”
스케빈저가 마늘에 대고 주문을 외우자 자잘하고 그 수도 많지 않았던 마늘이 스케빈저가 가져다 놓은 상자에 가득 쌓였다.
“좋군, 그런데 실수했어. 껍질을 깐다음 주문을 걸었어야 했는데.”
후회막심한 스케빈저는 쪼그려 앉아 상자에 가득찬 마늘의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배운 마법에 마늘껍질까는 마법이 없다는 것에 대해 한탄했다.
투덜거리며 한시간쯤 마늘을 깐 스케빈저는 이번엔 사발에 마늘을 몇 개 넣고 막자로 짖이겨 즙을 냈다.
“아 매워, 눈물이 나지만 닦을수 없어!”
마늘즙을 짜느라 손이 온통 마늘즙 투성이인 스케빈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눈물을 흘려댔다. 무려 한 박스나 되는 마늘을 혼자서 해결한 스케빈저는 위층으로 올라가 손과 눈을 닦고 내려왔다. 지하실은 온통 마늘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훗, 이런 냄새 따위 트롤 엉덩이에서 나는 냄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케빈저가 잠시 마물을 사냥하던 중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온몸을 부르르 떨던 스케빈저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벽쪽으로 다가가 몇 개의 병을 가지고 왔다.
“마늘즙에다가 삭신꽃의 꽃가루를 2g 넣어 마늘 특유의 냄새를 강화시키고, 다음엔 트롭스 나무의 뿌리진액을 한방울 넣으면 완성! 이젠 이걸 밭에 뿌리면 밭이 온통 마늘냄새로 진동 할꺼야. 이제 제롬에게 가져다 줘 볼까.”
스케빈저는 완성된 약을 진흙을 구워 만든 병에 담에 제롬의 밭으로 향했다. 제롬은 밭에서 잡초를 뽑으며 기회를 옅보고 있는 들쥐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제롬, 나 왔어.”
“스케빈저 금방 다시왔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금방이라니, 조금 있으면 점심때라고.”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저놈들을 감시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네. 그런데 손에 든 그건 뭔가?”
“하하, 이게 바로 자넬 구원해줄 신비한 물약이지. 이걸 자네 밭에 뿌리면 그곳에서 마늘냄새가 나기 때문에 들쥐들이 얼씬도 하지 않을 거라네.”
“어디, 욱! 이게 마늘 냄샌가? 나라도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아 지는데.”
스케빈저가 물병의 뚜껑을 덮으며 웃었다.
“흐흐, 그래야 들쥐들도 싫어할게 아닌가. 이걸 물에 타서 밭에 뿌리기만 하면 끝이네. 냄새가 워낙 고약하니 물 20리터에 이걸 한컵 섞어 뿌리면 충분할거야.”
“하지만 물이 마르면 효과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내가 그런것도 생각하지 못할까. 걱정 말게, 이건 비가와도, 태양이 아무리 뜨거워 땅이 갈라져도 냄새는 없어지지 않을테니. 그러니까 자네도 직접 맨살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게. 대신 땅을 뒤엎어 약이 묻은 흙이 땅속으로 들어가면 소용 없으니 그건 알고 있게.”
“정말 자네 말이 맞다면 더 이상 들주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고맙네 스케빈저.”
“하하하, 뭘 고마월 것 까지야. 우린 친구사이니 서로 돕고 살아야지. 2실버네.”
“어..어 그래 자네가 잡화점을 하니 약값은 줘야지. 그런데 좀 비싸군.”
“어허, 비싸다니. 이 약의 효능을 생각해보게. 자네가 고구마를 수확하기 위해 땅을 뒤엎을 때까지 들쥐가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니 절대 비싼게 아니네.”
“그것참, 알겠네. 있다 저녁먹고 자네 가게에 들러 셈을 하지, 대신 자네가 말한데로 효과가 없다면 약값은 없는거네?”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게나. 그럼 난 먼저 돌아갈테니 있다가 저녁때 봅세.”
스케빈저는 온몸에 마늘냄새가 베어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돈이 들어올 생각에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지나가는 스케빈저에게서 나는 지독한 마늘냄새에 코를 막고 손부채를 부쳤다. 하지만 스케빈저를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중 누가 알았을까. 이것은 시작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스케빈저에게 받은 약의 효과를 톡톡히 본 제롬은 스케빈저에게 매우 고마워 하였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마을 농부들 또한 너도나도 ‘왠만한건 다있다 잡화점’으로 달려와 스케빈저에게 약을 팔것을 요구하였으니, 스케빈저는 한동안 울상을 지으며 마늘을 쥐어짜야 했다. 그리고 마을 주변의 농지에 온통 약이 뿌려져 그해 수확 시기가 올때까지 들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마을엔 온통 마늘 냄새가 가득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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