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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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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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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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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6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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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20

DUMMY

그 때 뒤에서 보고 있던 라뮤가 내 옆으로 다가와 옷소매를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혀, 형은 나쁜 사람이 아니얏...!”


소심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그렇다! 낭군님은 나쁘지 않은 거다!”


라뮤의 말에 이어 벨리아도 앞으로 나와 아진에게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평소라면 사람에게 삿대질 하는 태도를 꾸짖었겠지만 지금은 용서해 주도록 하자.

갑작스레 나타난 내 아군들의 기세에 아진은 당황한 듯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떠냐 이 녀석아.

한 방 먹은 듯한 아진의 표정을 보니 절로 어깨가 추켜세워졌다. 내 인생, 헛되지 않았구나.

그렇지만 그대로 얌전해 질 줄 알았던 아진이 기세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 우윽··· 하, 하지만 저 녀석은 먹을 걸로 애들을 꼬시는 나쁜 녀석이라고···!”


아진은 또다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확실히 어제는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먹을 것을 나눠 주기는 했지만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 순수한 선의를 곡해하다니 너무하구만.

아진은 어떻게든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진실한 나의 모습을 아는 두 아이들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처럼 진실 되고 정의로운 사람이 어디있다고 암.


“낭군님은 그런 유괴범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고.”


“맞아.”


두 사람의 듬직한 모습에 절로 흐뭇해져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이럴 땐 인수가 많은 게 최고다.

역시나 아진도 더 이상의 반격은 할 수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어떠냐 이 여물지 않은 풋사과 같은 녀석아.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단다.

시무룩해 진 아진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나는 의기양양해져서 여지껏 짊어지고 있던 자루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지만 안에 든 유리병이 바닥에 부딪혔는지 작은 소음이 났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 주위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내려놓은 자루에 쏠렸다.


“···이건 뭔가요?”


잠시 동안 주위들 뒤덮었던 침묵을 깨며 라뮤가 조용히 내게 물었다. 나는 라뮤에게 망설임 없이 대답해 주었다.


“먹을 거.”


내 대답에 어째선지 라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뭔가 많은 것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올려봤다.


“나, 낭군님. 어느새···”


뭔가에 충격 받은 듯한 표정으로 벨리아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처다 봐도 니 껀 없어.”

내 편을 들어준 건 고맙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가릴 것 없이 사 먹은 녀석에게 더 이상 줄 식량은 없다. 저 녀석이 식도락을 즐기는 동안 나 혼자 조용히 하나 둘 사 모은 거니까.


“그거 봐. 역시 저 녀석은 나쁜, 으앗?”


심드렁한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던 아진의 뒤로 먹을 것에 낚인 작은 그림자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낯선 사람들 때문에 섣불리 다가오지는 못했지만 그 눈빛 만은 이미 먹을 것이 든 자루에 못 박혀 있는 상태였다.

나는 자루 안에 들어있던 과일을 하나 꺼내서 아이들의 눈 앞에서 천천히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시선이 내 손을 따라 움직였다. 이거 뭔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는걸.

역시나 효과는 굉장했다. 뭔가 라뮤와 벨리아의 눈빛이 차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내 착각이겠지.

조금 더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즐기고 싶었지만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면 안된다는 옛 현인들의 말씀에 따라 적당히 그만두기로 했다.

들고 있던 과일을 다시 자루에 담아 뒤에서 보고 있던 아벨에게 건냈다. 내게서 자루를 받아든 아벨은 어째선지 조금 곤란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루에는 과일 외에도 고기나 빵 같은 식재료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거리들이 채워져 있었다. 쓰잘데기 없는 장식품 같은 것들 보다 훨신 마음에 들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한 걸까?

아, 혹시 돈을 받는다고 생각한 건가.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으니 오해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아벨에게 말했다.


“빈 손으로 오기 좀 그래서 헤헤···”


내 말에도 아벨의 표정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내 필사의 어필도 통하지 않은 것인가. 굉장히 프렌들리하고 네츄럴하게 접근했을 터인데 어째서지?

아벨의 저런 반응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분석하고 해독하여 다각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봤지만 어떤 해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나에겐 이런 인간 관계에 대한 데이터가 절망적으로 부족했기에 시뮬레이션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상황에 괜한 짓을 한 건가 하는 후회마저 들기 시작한 순간 드디어 아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제 처음 만난 저희에게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내 생각을 꿰뚫어 보려고 하는 것처럼 웃음기를 지운 채로 아벨은 그 깊은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처다보며 물어왔다.

과연 그런 거였나. 아벨의 말을 듣고서야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에 나였다면 저런 식으로 이유 없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간단히 믿었을 리가 없다. 얼마 전에 싸웠던 디 그리스 때도 그랬기에 녀석에게 속지 않고 무사히 물리칠 수 있었던 거니까.

단지 입장이 바뀐 것만으로도 이렇게 생각이 달라질 줄이야. 불찰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디 그리스 같은 속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걸 상대방에게 손 쉽게 이해시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듯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벨에게 해줄 대답을 머릿속에서 거듭 찾아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처럼 실없는 말을 아벨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동족···이니까요?”


마지막은 의문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뭐 갑작스레 튀어나온 말이라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애초에 아벨과 동족인 건 내가 아니라 테스카고.

뜻밖의 대답에 놀란 건지 아벨은 말 없이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훗, 하하하.”


그러길 잠시, 아벨은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의 대화 내용을 듣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이 의아하게 처다봤지만 아벨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잠시동안 웃기만 하던 아벨이 웃음을 그치고는 받아들었던 자루를 아진에게 내밀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아진, 이걸 먼저 부엌으로 옮겨주지 않을래요?”


“으, 응. 알았어.”


평소와는 다른 아벨의 모습에 아진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 저도 도울게요.”


아무래도 어린 아진 혼자서 들기에는 무거워 보였기에 라뮤가 아벨에게서 자루를 받아들었다. 저렇게 여려보여도 일단은 용사이기에 힘은 나보다 훨씬 센 라뮤였다.

아벨은 라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자루를 넘기고는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멈춰 선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덩달아 나도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아벨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모두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아벨은 여전히 시선을 집 쪽으로 둔채 내게 말했다.


“오래 살다 보니 당신 같은 악마도 보게 되는군요.”


“악마답지 않은가요?”


“뭐,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죠.”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아벨의 옆모습을 처다봤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악마답지 않은 악마가 내게 저렇게 말한다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니, 나는 악마가 아니니 당연히 들어야 할 소리인가.


“왜 그러시죠?”


대답이 없자 아벨은 내쪽을 처다보며 말했다. 그런 아벨을 보자 문득 테스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가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게 가장 악마다운 게 아닐까요?”


아벨에게 테스카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테스카의 말을 그대로 따라한 지금 이 순간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내 말을 들은 아벨은 아까보다도 더 놀란 표정이었다. 내가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한 건가? 음. 이상한 말을 한 건 맞구나.

잠시 놀란 채로 굳어있던 아벨이 정신을 차린 듯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어흠. 죄송합니다. 조금 놀랐습니다. 예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라 그만.”


“아하, 그렇군요. 사실 저도 들은 얘기라서요.”


저런 말을 하는 게 테스카 말고 또 있는 건가. 그 녀석도 분명히 재수 없는 놈이겠지.


“훗. 그렇군요. 어쩌면 오래 전에 만났던 적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들.”


“하하하.”


그럴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자. 저희들도 이만 들어가도록 하죠.”


더 이상 비밀스레 나눌 이야기도 없었기에 나는 아벨의 권유에 따라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좋은 새벽입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요.






ps. 글을 올리지 않는 동안에도 종종 댓글들을 보러 왔습니다.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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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2 +1 17.05.23 1,736 13 6쪽
42 2-1 +2 17.05.22 1,433 14 6쪽
41 2권 프롤로그 +4 17.05.22 1,075 19 6쪽
40 에필로그-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3 17.01.01 1,738 21 7쪽
39 38 +1 16.12.31 1,179 17 8쪽
38 37 +1 16.12.30 1,558 16 7쪽
37 36 16.12.29 1,092 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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