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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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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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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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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6.0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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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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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2-25

DUMMY

이대로 저 무지막지한 팔에 찌부러져 버리는 걸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망가진 기계처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텅 비어버린 머릿속 한 구석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허무하게 묻혀갔다.

괴물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내 몸보다 더 큰 그림자가 내 그림자를 덮었다.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대로 나는 죽는 거겠지. 두려움도, 분노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로.

그림자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며 내지른 주먹이 괴물의 피부에 닿았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

아주 사소한 떨림이었다. 잔잔한 호수에 이슬이 한 방울 떨어진 것처럼 미약한 울림이 가슴 속에 일었다.

삶에 대한 마지막 미련인 것일까. 아니면 허무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그것도 아니라면 저 쪽에서 무너진 벽 뒤에 숨어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떨고 있는 남매를 봐서? 그리고 그 남매에게 다가가고 있는 마물의 모습 때문일까?

아니. 무엇이, 그리고 누구 때문인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얼어버렸던 가슴 속에 금을 내며 피어난 자그마한 감정만이 급격히 내 안을 채워갔다.

그것은 정의감 따위의 영웅 심리에 취한 거창한 것이 아니라 꼴사납게 더럽혀진 절박함이었다.

맥없이 쥐어져 있던 주먹이 뜨거워졌다. 오른쪽 주먹에서부터 피어오른 열기가 잠들어 있던 세포를 태워버리는 것처럼 맹렬히 타올라 가슴까지 차올랐다.

열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머리까지 기세를 더하며 치솟았다.

열기가 오른쪽 상반신을 완전히 덮었을 때엔 이미 내 앞에 있던 마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허공에 뻗은 오른손엔 어둠이 일렁이고 있었다. 전처럼 확실히 형태화 된 갑옷이 아니라 잔에 가득 차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물 같았다.

어둠은 열기가 느껴졌던 곳을 따라 덧씌워져 불완전하게나마 나를 감쌌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시야가 이지러져 어둠이 머리까지 덮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그러진 눈으로 보는 풍경 속엔 이미 낮에 있었던 일상이 존재 하지 않았다. 처참하게 파괴된 것이다. 눈앞에 있는 존재들에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던 마물은 이미 지척까지 닿아 있었다. 내 비루한 체력으로는 한발 내딛기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버리고 말겠지.

하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주먹과 다리에 힘을 실어 단번에 바닥을 박차자 마물과의 거리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가까워졌다.

모든 신경이 아이들에게 쏠린 마물의 몸통에 너무나도 간단히 주먹이 파고들었다. 그러자 마물은 바람에 스러지는 모래성처럼 힘없이 허물어졌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던 괴물들이 지금은 솜사탕보다도 가볍게 느껴졌다. 전에 없던 힘이 지금 내 의지대로 행해지기 때문이겠지.

이 힘을 조금만 더 빨리 쓸 수 있었다면...

지금 생각해봤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우......”


억눌린 비명이 상념에 빠지려던 나를 건져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아이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된 여자아이가 보였다.

제때 대피하지 못해서 이곳에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들켜버리고 말았지만.

두 아이들은 마물이 사라진 지금도 두려운 눈빛으로 떨고 있었다.

...아니,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나. 저 아이들의 눈에는 나도 마물과 다를 바 없이 보일 테니.

기괴하게 일렁이는 오른 팔과 머리는 지금 상황과 맞물려 충분히 나를 괴물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겁먹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사람들에게 호의로 뻗은 손이 호의로 돌아오지만은 않는 다는 것은 이미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통해 충분할 정도로 학습해 왔다.

조금 씁쓸해졌지만 상처 입을 정도는 아니다. 그 정도로 단련은 되어 있으니까.

나는 아이들을 탓하는 대신 멀쩡한 왼쪽 손을 뻗어서 내가 왔던 방향을 가리켰다.

내 손짓에 아이들이 흠칫 몸을 떨었지만 괘념치 않고 입을 열었다.


“가라.”


내 목에서 난 소리란 걸 깨닫고 내가 놀랄 정도로 잠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떨면서도 행여나 내 맘이 바뀔까 서로를 의지한 채 불안한 발걸음으로 뛰어갔다.

저대로 가면 플루아의 중심부 쪽에 도달할 것이다. 이미 한 번 공격을 당해서 불안하긴 하지만 이곳 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남은 불안은 내 손으로 직접 없앨 수밖에.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내 안을 가득 채웠던 절박함이 다른 무언가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거냐.

지금은 그런 것보다 이 감정을 부딪쳐 깨부술 수 있는 상대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행히 이 주변에 남은 건 모두 그럴 수 있는 녀석들뿐이다. 더 이상 참을 필요는 없는 거지.

평소보다도 훨씬 넓어진 감각이 여기저기서 날뛰고 있는 마물들을 잡아냈다.

망설임 없이 가장 가까운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주위의 풍경을 인식하기도 전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멈춰 선 곳에는 또 다른 이형의 괴물들이 살아남은 주민들을 찾아 배회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린 악취미적인 낙서가 그대로 생명을 얻은 것처럼 하나같이 기괴하고 불쾌한 생김새였다.

그런 모습들이 더욱 내 안에 있는 충동을 부채질 하는 듯해서 참을 수가 없다.

그대로 달려들어 마물의 몸통을 붙잡고 잡아 뜯었다. 피라도 흘리듯 암청색의 연기를 뿜으며 마물이 조각났다.

한 마리가 당하자 겨우 내 존재를 눈치 챘는지 다른 마물들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몇몇은 겁 없이 달려들고 몇몇은 다른 마물을 부르는 지 시끄럽게 울부짖었다. 내가 가기 전에 이쪽으로 모두 몰려와 준다면 나야 편해서 좋지.

달려드는 마물들을 찢어발기는 와중 테스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테스카의 말대로 나는 이미 내 적을 알고 있었다. 너무나 단순명료하지 않은가.

내 목숨을 노리는 나의 적은 바로-


“악마다...”


소리로 새어 나온 말에 스스로 납득했다.

집사장일지 알렉스일지 에스메랄다일지, 혹은 전혀 다른 누군가일지. 그런 건 애초부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가 죽여야 할 적은 처음부터 플루아의 악마뿐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있든 그저 죽이면 된다. 모습을 속이고 있어서 찾을 수 없다면 모두 죽이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는 악마도 죽이게 되겠지.

그래 그러면 되는 거구나.

충동이 더욱 강해지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왠지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마물을 물어뜯고 있는 이 순간도 즐거워졌다. 너무나 기분이 좋다. 이 녀석들을 죽이고 나면 또 뭘 죽이러 갈까?

어느덧 주위가 조용해졌다. 뭐야 벌써 다 돌아가 버린 거야?

여관을 날려버린 녀석도 찾아서 없애지 않으면 안되는데... 아, 그러고 보니 벌써 죽였던가?

안되겠다. 생각이 잘 돌아가지 않아. 좀 더 기분 좋은 일을 찾으러 가지 않으면.

그러고 보니 저쪽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잠시만 달려가면 우글우글 몰려 있는 녀석들이 있을 거다. 사람? 인가? 아무려면 어때.

단숨에 땅을 박차려던 순간 다리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무거워졌다. 다리만이 아니라 온몸이 무거워진다.


“어...라?”


일그러졌던 시야가 제자리를 찾아가며 내 몸을 태울 듯 뜨거웠던 열기가 빠르게 식어갔다.

한참 아래쪽에 있던 지면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반비례하듯 의식이 멀어져간다.


-재미없는 짓은 여기까지다.-


테스카의 차가운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더는 의식을 유지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시글
    작성일
    17.06.07 19:35
    No. 1

    취해있는동안 민간인도 다친것인가....아니면 진짜 마물만 뜯은것인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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