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볼을 부풀리며 불만스럽게 툴툴거리는 이자벨의 말에서 희미한 위화감을 느꼈다. 콕 집어서 어디가 이상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뭔가 걸렸다.
이것도 테스카의 말 때문이려나. 뭐 별것 아니겠지.
하지만 위험하다는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군.
길 녀석은 음... 뭐 위험 할지도 모르지. 나에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정서상으로 위험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세라씨는 백익무해한 여신 같은 사람이니 전혀 위험하지는...
순간 잠들기 전 보았던 세라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라뮤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매우 위험하다. 어디가 위험하냐면 전부 다 위험하다.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어서 위험하다. 어쨌든 위험하다.
어라? 이렇게 보니까 위험인물 투성이잖아 용사들.
이 성에도 제대로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 있었구나. 나는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궁금해지는데.
내 의문이 얼굴에 드러난 것인지 이자벨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드렉은 굉장히 위험인물이니 한시라도 빨리 처형해야 된다고 했다.”
“좋았어. 그 놈들을 두들겨 패주러 가야 되니까 누군지 알려주지 않을래?”
“웅... 뚱뚱이랑 홀쭉이가 그렇게 말했느니라.”
이자벨은 눈을 깜빡이며 한동안 생각하는 듯하더니 결국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애매하게 말했다.
뭐, 그래도 누군지는 알겠다마는. 머릿속에 첫날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염소수염과 식량창고를 털었던 뚱보가 떠올랐다.
대충 예상했던 대로라 충격도 뭐도 없었다. 어찌됐든 그 놈들을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아. 그래도 용사들이 위험하다고 한건 뚱뚱이랑 홀쭉이가 아니라 라인할트였느니라.”
“라인할트경이?”
굉장히 의외의 이름이 나왔다. 그 사람 좋아보이던 젊은 영주님이 그런 말을 했다니 믿기 힘들었다.
“정말로?”
“정말이다. 특히 길티니...? 어쩌구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했느니라.”
“길을...?”
라인할트는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걸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전에 식당에서 만났을 때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이 안 나왔다. 애초에 나는 두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도 못하니까.
길은 그저 잘생기고 재수 없는 놈이었고 라인할트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신사적인 영주님이었다. 베티에 대해서는 좀 할 말이 있지마는.
어쨌든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안되겠다. 전혀 모르겠어.
애초에 지금 내가 생각해 봐도 아무 소용없는 일 아닌가. 그래 생각하기를 포기하자.
“드렉은 용사인 것이냐?”
“응? 난 아닌데?”
말없이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던 이자벨이 뜬금없이 물었다.
“그렇지만 그 나쁜 녀석한테 용사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 그건가. 하긴 그런 말도 했었지. 씨알도 안 먹히긴 했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믿고 있는 순수한 어린이가 눈앞에 있다니 더럽혀져 때가 탄 어른인 나는 눈이 부셔서 실명할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무사히 빠져 나오려고 거짓말 한 거야. 결과적으론 잘 안됐지만 말야.”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거짓말을 고백하자 어째선지 이자벨의 표정이 흐려졌다.
“나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했구나. 미안하다.”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이런 반응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거든...?
괜히 겸연쩍어져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이런 분위기는 버티기가 힘들다. 뭔가 다른 화제는 없나?
“아, 아니야. 게다가 나중엔 진짜 용사도 나타났으니까 다 잘된 거 아니겠냐 하하.”
“용사?”
“아아. 우리를 구해준 그 녀석 말이야. 길이라고 하는데 풀네임은 길티니어바우트라고......”
말을 하고 나서 떠올랐다. 라인할트가 이자벨에게 길에게는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
뒤늦게 얼버무리려고 허둥대는 나를 아랑곳 않고 이자벨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구나! 길님이고 하는 구나!”
“어, 어엉...”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길님... 굉장히 멋진 분이셨느니라.”
상기된 뺨을 감싸며 눈을 빛내는 이자벨을 보고 있자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기 너 말야... 라인할트경이 한 말은 기억해?”
“물론이다.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게냐?”
아니, 네 태도를 보면 전혀 기억 못하는 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
“이자벨 잘 들어. 길은 말이야...”
“알고 있느니라. 라인할트가 위험하다고 말한 용사라는 것 정도는. 하지만 그런 건 관계없느니라. 길님은 나를 구해준 영웅인 것이니라.”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에 반박하던 이자벨은 마지막에 가선 발그레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런 일에 둔한 나라도 이자벨의 저 표정이 무얼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아챘다. 이른바 사랑에 빠진 소녀라는 건가.
뭔가 복잡한 심정이었다. 나를 잘 따르던 여동생이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오며 다른 남자아이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봤던 때의 씁쓸함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새끼일 적부터 애지중지 키워왔던 고양이가 나보다 옆집 사람을 더 잘 따르는 걸 봤을 때의 상실감 같은 걸지도 모른다.
복잡하구나. 사람의 마음이란 건.
“저기 그래서 말인데 드렉...”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에 빠지려던 나에게 이자벨이 몸을 베베 꼬며 말했다.
“나는 길님이랑 만나고 싶은 것이니라!”
기분 탓인지 아물었을 터인 등이 아파왔다. 나는 왜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무모한 짓을 했던 것일까.
“안되느냐...?”
눈을 치뜨며 매달리듯 응석을 부리는 이자벨을 보니 아무래도 좋아졌다. 그래 무사했으니 아무렴 어떠냐.
“선처 하마.”
“와아! 고맙구나 드렉!”
딸에게 꼼짝 못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약간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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