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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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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최근연재일 :
2022.06.0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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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153

작성
16.12.2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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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34

DUMMY

뭐야. 이 사람 유명한 사람이었던 건가? 이 변태 영감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보고 있자니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란돌이라네. 그냥 평범한 늙은이지.”

그냥 평범한 늙은이가 아니란 건 누가 봐도 알겠다. 어디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져서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뭣보다 지금은 더 중요한 일도 있으니까 이 영감님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영감님. 싸움은 잘 해요?”

“흘흘흘. 늙은이가 무슨 힘이 있겠나. 그래도 뭐, 요즘 비실비실한 젊은이들 보다는 낫다고 자부한다네.”

“그럼 저기랑 저기 저기 저기 저기.”

아까 봐 두었던 푸른 리본을 맨 메이드들을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말했다.

“목에 파랑 리본 단 아가씨들 좀 잘 보고 있어줘요.”

“저 처자들이 뭔가 하는 건가?”

“깜짝 놀랄 정도로 화끈한 걸 보여 줄 겁니다.”

“오호. 그것 참 기대되는구먼.”

“그럼 부탁 좀 드려요. 란돌 영감님.”

란돌의 대답을 뒤로하며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홀의 중앙으로 향했다.

지금부터가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관객들은 충분할 정도로 모였고 배우들도 모두 제 위치에 있으리라.

내 일생일대의 쇼의 막이 올랐다.

홀의 중앙까지 걸어가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이야기 중인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라인할트 경.”

이 성의 젊은 영주 알렌 라인할트는 내 부름에 뒤돌아 보며 미소지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드렉씨.”

라인할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그것만으로 기세가 꺾이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창 부끄럼 탈 나이라 어쩔 수가 없는 걸.

붉어지려는 얼굴을 심호흡으로 억누르며 기합을 넣었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나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 잡고 대담하게 웃었다.

“‘그 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일’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흔들어 볼 생각으로 의미심장한 표현을 썼지만 라인할트는 동요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할 얘기가 있으시다면 파티가 끝난 후에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랜만에 만난 분들이라 좀 더 이야기 하고 싶군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하는 라인할트에게 다른 사람들이 동조하며 내게 좋지 않은 눈빛을 보냈다.

평소라면 압박에 져서 ‘아 네,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났을 터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다. 내 의지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정했으니까.

“그렇게는 못하겠군요. 파티가 끝났을 때는 모든 게 다 끝나있을 테니까요.”

“끝난다니 무엇이 말인가요?”

“마왕의 첩자에 의한 국왕 암살 말입니다.”

내 말에 주위가 술렁거린다. 각자 모여서 환담을 나누던 다른 사람들까지 이쪽을 주목했다.

라인할트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나와 마주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역시 용사들이...”

라인할트의 말에 회장 안이 한 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라인할트의 말 한마디에 용사들에게 혐의가 씌워진 것이다.

이대로라면 자연스럽게 용사들=마왕의 첩자가 될 것이었지만 그렇게 놔둘 생각은 없다.

라인할트의 말로 시작된 음모론은 평소 용사들을 좋게 보지 않던 귀족들의 첨언으로 살이 붙어서 순식간에 사실처럼 퍼져나갔다.

내가 말을 건 순간부터 이런 흐름을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나는 소란 속에서도 들릴 정도로 목소리에 힘을 실어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범인은 용사들이 아닙니다.”

무질서하게 일어났던 소란은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렇다면 누구란 말입니까? 물론 범인은 알아 내셨겠지요?”

추궁하듯 물어오는 라인할트의 말에 한 번 더 용기를 내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라인할트경?”

내 말을 들은 라인할트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내 말이 뜻하는 바를 깨달아서겠지.

“그 말은 제가 범인이라는 건가요?”

라인할트의 말에 잦아들었던 장내가 다시 술렁거렸다. 그 중에는 노골적으로 나를 비난하는 소리도 섞여있었다.

애초에 내 편은 한명도 없는 무대다. 이런 건 예상했었다.

“그런데 라인할트경 그 검은 후드달린 로브는 다시 안 입으십니까? 잘 어울렸는데요.”

두서없이 이야기의 흐름을 뚝 끊는 엉뚱한 발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련된 사람이 듣는 다면 다른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과연 라인할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모르는 척 잡아뗄까? 동요할까? 아니면 화를 낼까?

어떤 반응이든 작은 틈이라도 보인다면 거기서부터 라인할트를 무너뜨릴 찬스가 올 것이다.

나는 라인할트의 반응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잠시간의 침묵 후 라인할트는 당황하지도, 화내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가 보인 것은 웃음이었다. 단,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기이한 미소였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죠?”

당황했다. 훨씬 더 끈질긴 언쟁 끝에서야 본모습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었는데...

준비해 둔 말들이 모두 허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중간 과정이 뭉텅이로 날아가 버렸지만 어찌됐든 바라던 흐름이니까.

“당신의 방에서 이야기 했던 날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어떻게?”

“저처럼 사람 대하는 게 어려운 사람들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눈을 보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곳을 보죠. 그 사람의 손이라든지 어깨 목, 혹은 입 같은 곳이요.”

나는 손바닥을 펼쳐 눈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라인할트의 윗 얼굴이 가려져 입과 턱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얼굴에 그 날 바닥에 쓰러져서 올려보던 검붉은 후드의 모습이 겹쳐졌다.

“후후후... 겨우 그런 것으로 알아차린 건가요? 역시 당신은 재밌군요.”

손바닥을 치우자 원래의 라인할트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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