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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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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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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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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153

작성
16.12.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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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25

DUMMY

어두운 방 안에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환하게 비추던 샹들리에의 불빛이 아닌 좀 더 작고 따스한 빛이었다.

눈꺼풀 너머로 전해지는 아련한 빛에 이끌리듯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은 눈이 번져버린 수채화 같이 흐릿한 장면을 잡아냈다. 막이 낀 것처럼 뿌연 시야를 몇 번 눈을 깜빡거려 걷어냈다.

이윽고 맑아진 시야에 비친 것은 본 적 있는 동그란 얼굴이었다.

“......안녕 공주님.”

어째선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이자벨과 눈이 마주쳤다. 은은한 촛불 빛에 비친 이자벨의 얼굴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러웠다.

태연하게 말을 거는 내 모습에 의표를 찔린 건지 이자벨은 놀란 표정이었다. 내 쪽이야말로 눈 뜨자마자 누가 쳐다보고 있어서 놀라야 될 것 같은데.

자다 깨서 몽롱한 탓인지, 아니면 테스카의 말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는 탓인지 침착한 상태였다.

그런 내 상태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부루퉁한 표정이 된 이자벨이 말했다.

“그렇게 부르지 말거라. 드렉이 그렇게 부르니까 기분이 나쁘구나.”

뭐냐. 이제는 내가 부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건가.

예전에는 쳐다만 봐도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한 단계 나아져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조만간 만지면 기분이 나빠지는 수준까지 나아가도록 하자. 그러면 적어도 만지지 않는 동안은 괜찮다는 거니까.

“어... 그래서 오늘은 어인 일로 오셨는지?”

머릿속에서 말을 골라 하나씩 짜 맞춘 뒤 입으로 토해냈다. 입장이 달라진 만큼 전처럼 대하는 건 좋지 않겠지.

길의 말대로 하는 것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진 않다.

“함께 일선을 넘은 사이지 않느냐.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 왔느니라.”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만한 소리는 그만둬 줬으면 좋겠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경찰이라도 있었으면 그대로 철창 행에 덤으로 전자 발찌도 받을 만큼 파괴력 있는 발언이었다. 아니, 이 세계에 경우엔 기본 참수이려나.

※오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립니다만 넘은 건 물리적인 의미의 벽입니다.

“그, 그것 참 황공무지로소이다...”

기억 속을 헤집어 영화나 드라마 속의 왕족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말을 꺼내보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그리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이자벨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그 이상한 말투는 무엇이냐? 나를 놀리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제가 어찌 감히...”

뭔가 말을 하면 할수록 어설픈 사극 연기처럼 되는 것 같았다. 이건 좀 아니다라고 생각한 순간 이자벨의 손이 내 얼굴을 양쪽에서 짓눌렀다.

뭔가 항의의 말을 내뱉기도 전에 숨결이 닿을 정도로 이자벨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실례하겠습니다.”

순간 정적에 휩싸인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낮은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본 적 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이자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자벨에게 얼굴을 잡힌 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실례했습니다. 즐거운 시간되시길.”

잠시 말을 잃었던 누군가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문을 닫았다. 좋지 않은 예감밖에 들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남의 눈에 비칠 현재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어떻게 봐도 아웃이지 않을까.

부디 저 사람이 이상한 오해를 하지 않았길 간절히 빈다. 내 목숨을 위해서.

그런 긴박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움직이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단순히 이자벨의 손아귀 힘이 강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 온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하얀 피부와 강렬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앙다문 붉은 입술, 마찬가지로 얼굴을 간질이는 타는 듯한 붉은 머리가 시야를 어지럽히는 가운데.

눈물을 잔뜩 머금은 채 불안하게 흔들리는 루비 같은 눈동자가 마음을 꿰뚫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발 나한테 그러지 말아다오.”

이자벨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매단 채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버려지기를 두려워하는 작은 동물처럼 보여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봤던 것 중에서 지금 이 모습이 가장 아이답고 꾸밈없어 보였다.

무엇 때문에 이 소녀는 무서워하고 슬퍼하는 걸까.

머릿속에는 파오의 집에서 즐겁게 재잘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아이처럼 스스럼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여 줄 존재를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이자벨이 아니니까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그저 추측하고 망상해서 그 기분을 알아보려는 얕은 기만만이 가능할 뿐.

“미안......”

한심하게도 사과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진심을 담아서 사과하자.

내 말을 들은 이자벨은 아무 말 없이 내게서 떨어져선 내가 덮고 있던 이불로 얼굴을 닦았다. 이럴 때 자연스럽게 눈물을 닦아 줬으면 좋겠지만 한심스럽게도 나한텐 무리였다. 더 큰 남자가 되고 싶다.

한동안 얼굴을 문지르던 이자벨이 이불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

“흥. 알면 됐느니라.”

이자벨은 약간 붉어진 눈가가 신경 쓰이는지 내 눈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평소보다 약간은 기세가 죽은 말투였다.

“자 그럼 내 이름을 말해 보거라.”

“이자벨.”

“응. 그래 그거면 됐느니라.”

이자벨은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런 걸로 된다면 얼마든지 불러 줄 수 있다.

“크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니라. 그건 그렇고 다친 곳은 어떻느냐?”

이제야 당초의 목적이 떠오른 것인지 이자벨은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를 돌렸다. 나도 일어나 침대에 기대앉으며 이야기할 준비를 했다.

“지금은 괜찮아. 나에가 3일간 붙어서 치료해 줘서 그런지 아프지도 않고.”

“나에?”

처음 들어본 것처럼 이자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사 중 한명이야. 나에르시아라고 해.”

“오오. 용사인가. 한 번 만나보고 싶구나.”

“만난 적 없어?”

“응. 위험하다고 만나지 못하게 했느니라. 치사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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