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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신을 차렸더니 무서운 아저씨에게 추궁을 당하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단지 주말에 여동생에게 쫓겨나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돼버린 거냐고.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라?”
한심한 내 대답을 들은 무서운 아저씨가 한층 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떠보듯 나를 노려봤다.
그렇게 노려보셔도 더 드릴 말씀이 없지 말입니다.
“네, 네. 그렇습지요...”
나는 간신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아직까지도 창이 내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어주고 있어서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폐하. 이 자가 하는 말을 믿어선 안됩니다. 마왕이 보낸 간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왕좌를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선 신하들 가운데서 염소수염을 기른 마른 남자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앞으로 나섰다.
“쟈보아경의 말대로입니다. 여신의 인도 없이 평범한 인간이 우연히 소환될 리가 없습니다.”
반대편에 서있던 짧고 뚱뚱한 남자가 거들며 나섰다.
“저자를 심문하고 처형하셔야 합니다 폐하!”
“목을 베어 마왕에게 보이게 성문 밖에 걸어두어야 합니다!”
““옳소!””
앞장서서 말하는 염소수염과 뚱뚱이의 뒤를 이어 여기저기서 심한 말들이 난무했다. 종합해 보자면 나를 죽여야 한다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빼도 박도 못하고 사형장의 이슬이 될 판이었다.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안에 제삿날을 받게 될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끄럽네.”
나직하게 새어나온 말이 소란스러운 장내에 스며들 듯 퍼졌다.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묻혀버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제멋대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의 귀에도 닿았는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누가 말 한 건진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꾸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썩 좋은 분위기는 아닌 것 같지만.
“짐승처럼 짖지 마라.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말해.”
도발하듯 이어지는 말에 도발의 대상이 된 귀족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분노의 기색을 띠었다.
그건 그렇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구나. 남일처럼 멍하니 생각하고 있자니 어째선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기분 탓인지 적의마저 섞인 것 같았다.
“무엄하다! 마왕의 간자놈 주제에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구나!”
염소수염이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흥분해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이것도 기분 탓이겠지만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흥. 뭘 이제 와서 떠드는가. 이미 네놈들의 이야기 속에선 나는 죽어 있지 않나. 그리고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뭘 근거로 나를 모함하지?”
“네놈 같은 수상한 자에게 증거 같은 게 필요할까보냐!”
““옳소!””
아까와 마찬가지로 앞장서서 역설하는 염소수염과 들러리처럼 뒤에서 호응만 하는 아저씨들이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건 그렇고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잘 생각해보니 내 목소리였다. 누가 내 성대모사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굉장히 잘하긴 하는데 민폐니까 그만해줬으면 좋겠는데.
덕분에 아까부터 저 아저씨들이 계속 나만 노려보고 있잖아. 나 같아도 저런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나서 한마디 해주고 싶어진다고.
그런 내 바람엔 아랑곳 않고 또 다시 내 목소리로 누군가가 말했다.
“수상하기로 따지자면 나에겐 오히려 네놈들이 더 수상하다. 그렇게 떼로 모여서 이유 없이 타인을 모함하는 놈들은 대개 뒤가 구린 놈들이니까.”
“뭐라고오?!”
염소수염이 수염을 파들파들 떨며 분개했다. 점점 내 입장이 위험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버지 어머니.
“예를 들어 네놈. 식량창고에서 무단으로 음식을 훔치진 않았나?”
“어떻게 알았지!?”
뚱뚱이가 경악하며 몸을 떨었다. 방금까지완 다른 이유로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진짜로 훔쳐 먹었던 건가...
“아니다! 우연히 창고 밖에 떨어져 있던 사과를 하나 주워서 먹었을 뿐이다! 훔친 게 아니야!”
우와... 설득력 없어.
온몸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는 뚱뚱이 에게 무언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녀석들이 모여서 나를 모함하는데 어디에 당위성이 있고 누가 납득할 수 있지?”
내 목소리로 말하는 누군가가 쐐기를 박듯이 내뱉자 염소수염을 위시한 떨거지들이 죽일 듯이 나를 노려다 볼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한 게 아니라니까 왜 자꾸 나만 갖고 그래요......
“그만.”
묘하게 변해버린 분위기를 단숨에 불식시키는 근엄한 목소리가 왕좌에서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 술 취한 아저씨들처럼 얼굴을 붉히던 염소수염과 떨거지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에 정렬해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꽤나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좌중을 정리한 무서운 아저씨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어느 샌가 목을 죄듯 바짝 들어서 있던 창도 거두어져 있었다. 그래봐야 가시방석인 건 매한가지였다.
“용사들은 이 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선은 나에게 고정한 채 내 뒤에 서 있던 용사라 불리던 사람들에게 물었다.
“복장이 제가 살던 곳과 같고 생김새 또한 마찬가지인 걸로 보아 아마 저와 같은 곳에서 온 것 같습니다. 아마 마왕과는 관계가 없을 테지요.”
갈색머리의 미남이 대표로 무서운 아저씨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여기 오기 전에 있었던 광장에서 봤던 그 남자였다. 정신이 없어서 지금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자는 위험하지 않다는 건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무서운 아저씨를 상대로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발언하다니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대의 생각이 그렇다면...... 저 자의 처우는 그대들에게 맡기지.”
이내 흥미를 잃은 듯이 내게서 시선을 뗀 무서운 아저씨가 대화는 끝이라는 듯이 손을 한번 내저었다.
“나가보라. 피곤하구나.”
무서운 아저씨의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깊이 조아리고는 뒤편에 있는 커다란 문으로 차례차례 나갔다. 그 와중에 염소수염과 몇몇이 나를 노려보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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