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현실은 시시하고 잔혹하다.
할 수 있는 일 보다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은데다가 그 사실을 끊임없이 내게 들이 민다.
알고 싶지 않은 사실도 믿고 싶지 않은 진실도 아무런 여과 없이 강요하듯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에 비해 판타지 세계는 어떤가?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도 마법이라는 편리한 힘으로 뭐든지 이루어 낸다.
만약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지각할 걱정이 줄어들 것이다.
만약 물건을 찾을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사기 위해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이 외에도 정말 꿈같은 일들이 가능한 세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판타지 세계에서 살고 싶다. 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에서-
......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조금 전까지.
“이자는 그대의 동료인가?”
화려하게 장식된 왕좌에 앉은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가 물었다.
“아니옵니다. 폐하.”
생면부지의 미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그대의 동료인가?”
또 다시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가 물었다.
“........아니에요.”
커다란 빵모자를 눌러쓴 아이가 우물쭈물 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도 저런 사람 몰라. 딱 봐도 인기 없어 보이고.”
화려하게 꾸민 놀 것 같은 여자가 ‘그렇지?’라며 옆에 있던 얌전해 보이는 여자에게 동의를 구했다.
외국인인지 금발벽안의 여자는 포근한 미소를 띤 채로 ‘그렇네요.’라며 동의했다.
잠깐 그거 뭐에 동의한 거지? 전자? 후자?
예민한 문제라 필사적인 시선을 보내는 내 목에 창끝이 다가왔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찔러 버리겠다는 듯이 바짝 들이 댄 창은 정성들여 날을 갈아 서늘하게 빛났다.
하지만 이 창보다도 차례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져 가다 드디어 내게로 향한 아저씨의 눈빛이 더 서늘했다.
“용사들은 그대를 모른다고 한다.”
무심한 듯 평탄한 어조로 날카로운 추궁이 이어졌다.
“그대는 누구인가?”
뻗은 창만큼이나 곧은 질문이 내 심장을 노리듯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아무런 가식도 꾸밈도 없는 말 앞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 글쎄요. 저도 저를 잘 모른다고 할까. 애초에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떨까요.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본질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그만큼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기에...”
갑작스레 막힘없이 말을 쏟아내는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사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지금의 나와 같은 말을 하는 다른 사람을 보면 나도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그 사람을 보고 있었겠지.
그만큼 지금의 나는 혼란스러웠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입을 놀리는 것뿐.
얼마 동안이나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을까. 순간 건물 안을 뒤흔드는 무거운 공기와 진동이 장내를 덮쳤다.
지진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압력이 무겁게 주위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 진원지에는 쓸데없이 커다란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땅에 짚은 무서운 아저씨가 있었다.
방금의 그 지진 같은 건 단순히 저 지팡이로 땅을 찍은 것뿐이었나. 히엑 무서워라.
좌중을 압도한 무서운 아저씨는 무언으로 찌르듯 나를 보고 있었다.
그에 맞춰 아저씨의 수족이라도 되는 듯 경비병들이 창을 더욱 바싹 들이 밀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래서 나는 머릿속을 쥐어짜고 말을 쥐어짜서 겨우 대답했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뎁쇼......”
정말로 한심한 대답이었지만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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