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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jxjxje1 님의 서재입니다.

층간소음으로 연기천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근복앙
작품등록일 :
2023.10.15 20:39
최근연재일 :
2023.11.16 23:16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2,177
추천수 :
64
글자수 :
214,268

작성
23.11.0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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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정석기(2)

DUMMY

‘정석기 이 녀석···?’


신인도 아닌 FD의 실수, 필사적으로 본인은 잘 전달했다고 하는 그의 항변, 강석씨가 보여준 메신저 채팅방, 그리고 내가 아는 놈의 콧대 높은 성격까지.


모든 것들이 맞춰지며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호씨가 이내 알겠다는 듯 실소를 뿜었다.


“또 기싸움이야? 에휴, 무슨 정치판도 아니고···”

“넵? 기싸움 말입니까? 갑자기 그게 왜···.”


혀를 차는 이호씨와 반대로 눈만 뻐끔뻐끔 뜨는 강석씨.


이호씨의 말마따나 정석기의 행동은 일종의 시위였는데, 모든 내막을 알게 된 나는 답답함에 옷깃을 풀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좀 일찍 와서 대기하는 게 얼마나 힘들다고? 지금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피를 보는데···!’


맥없이 힘이 빠진 나와 달리 강석씨는 아직도 기운이 팔팔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댔다.


“뭡니까? 저도 알려주십시오! 기싸움이면 혹시 만화에 나오는 에네르기···”

“아씨, 그거 말고요 그냥 사람 간의 기세싸움!”


이호씨가 답답한 듯 목청 높여 소리질렀다.


“원체 이 바닥이 그래요. 유명하고 높이 뜨기만 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갑질 부리는 거지.”

“갑질말입니까?”

“네. 특히 갓 뜬 배우일수록 그러는데, 뭐 정석기가 갓 뜬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 핫하긴 하잖아요. 길거리에 나가면 나오는 게 그 사람 얼굴이기도 하고. 쉽게 애기하면··· 본인은 죽어도 주연이다 이거죠.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라, 안 그러면 오늘처럼 대기만 왕창시키주겠다. 뭐 이런···”

“예? 그걸 이호씨가 어떻게 압니까?”


그녀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봐요 석씨, 당신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나는 갓 미자를 뗐을 때부터 여기서 일했거든요?”

“그래도 그 착한 얼굴의 정석기씨가 왜···”


여전히 믿지 못하는 강석씨를 위해 내가 몇 마디 덧붙였다.


“이유라면 여러가지가 있겠죠. 자기는 바쁜 인간이니 조연과 달리 콜타임을 더 신경써 달라던가, 혹은 촬영 내내 누구보다 자기한테 케어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아니면?”

“누군가에게 한 번 제대로 엿을 먹여야겠다던가.”


말을 끝내자마자 저번의 일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대본 리딩 날, 감독님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시!’를 외치자 얼굴이 빨개지던 정석기의 모습이.


그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성격 상, 자기를 무시한다 여겨 속으로 꽤나 이를 갈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FD와 매니저를 이용해 제대로 한 방 먹이는 것이고.


“하··· 그럴 수가.”


강석 씨가 충격에 빠진 듯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에 정석기를 좋게 봤는지 매우 허망한 얼굴이었는데, 나 또한 허탈한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심경이 복잡해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에 정석기에 대한 감정이 여럿 더해졌다. 바람을 좀 쐬면 나아질까 싶어 촬영지를 한 바퀴 빙 둘러 걷던 도중,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란도란 모여 있는 배우들이었다. 내가 밴에 들어가 있는 동안 준비를 다 마치고 나온 성동한, 이미란 선배도 있었다. 두 분 다 작금의 상황이 정석기의 ‘연출’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얕은 경력이 아니었기에 탐탁치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쯧쯧, 어린 놈의 자슥이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선배님이 나중에 뭐라고 좀 하세요.”

“에잉, 감독 말도 안 듣는디 내 말은 듣겠어! 주연도 아니고 조연 나부랭이라고 생각하겄지”


눈살을 찌푸리는 이미란 선배도 선배지만, 성동한 선배는 완전 기분이 상했는지 발 끝으로 땅을 툭툭 치고만 있었다.


“나중에 작품 끝나고 만나기만 해 봐! 아주 고것을 콱!”

“저희들도 별말 않고 대기하는데, 주연이라고 너무 오냐오냐 한 게 문제에요!”


이렇듯 선배들이 분을 내니 배우측 또한 분위기가 갈수록 엉망이 되어갔다.


‘우선 녀석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



5월 초라 그런지 아직 한기가 어슴푸레 남아있는 봄. 그 속에서 어언 3시간을 기다리자 검정색 스타렉스가 한 대 도착했다. 그 속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얼굴이 활짝 문이 열리며 등장했다. 정석기가 매니저와 함께 내리며 사뭇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저희 매니저가 FD 말을 잘못 들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얼굴로는 가득 난처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녀석은 말만큼은 절대 ‘죄송하다’ 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그의 옆에 매니저만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하하, 빨리 의상부터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능청스레 웃은 정석기가 주변을 스윽 둘러보다 다시금 차량 문을 쾅! 닫았다. 허나 문이 닫힐 때 그의 매니저는 정석기와 함께 있지 않았다. 정석기가 슬그머니 매니저의 등을 툭 밀고는 그대로 문을 닫은 것이다.


“어..."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하게 된 작은 돛단배같은 모습. 매니저의 멍한 표정이 그의 심사를 대변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싸늘히 바라보는 시선이 계속되자 그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고개는 연신 내려만갔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매니저의 인사를 받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상황을 이렇게 만든 원흉에게 괜찮다고 신경을 써주겠는가?


모두가 각자 자기 할 일을 시작하며 신경을 끄고 있던 와중, 그때 딱 마침 그에게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정확히는 폭포수처럼 화를 쏟아냈지만.


“이봐요! 당신 장난해? 내가 언제 콜 타임을 오후라고 했어!”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고 뭐고··· 아이 시발! 다 똑같이 전달했는데 왜 당신만 못 알아듣냐고! 이게 말이 돼?”

“정말 죄송합니다···.”

“이거 정식으로 당신네 회사에서 항의할 줄 알아!”“네... 흐윽.”


아까 김나태 감독님께 무차별적으로 깨졌던 FD였다.

진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광분을 터뜨리는 모습에 정석기의 매니저는 이제 거의 울듯이 사죄를 하고 있었는데,


목메인 목소리와 땅으로 기어들어갈 것 같은 고개가 연출되니 저 상황에 매니저에게 따로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용서해주는 분위기도 아니었기에 상황은 더욱 침체되어갔다.


암울한 분위기 속, 어두운 낯빛의 매니저가 여기저기 인사를 돌리다 배우진에게로 다가왔다.


김환이라는 이름의 그는 강석씨 동기답게 꽤나 어려 보였는데, 이미 눈이 시뻘개져 있어 그의 사죄를 받으면서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정석기의 속셈을 알기에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죄, 죄송합니..."


스윽


"그만 됐어요."


결국 그의 울먹거림을 듣다 말고 매니저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두 손을 잡으며 그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었다.


“당신 탓이 아닌 거 아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아··· 아닙니다. 다 제 실수로···”

“괜찮아요.”

“···흐윽. 흑흑!”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나왔다. 강석씨 동기면 적어도 이십대 중반정도의 사회초년생일텐데, 첫 직장에서 이런 일을 당하게 되니 정말 서러운 듯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그 정도로 가슴에 멍이 들어차 있으리라.


툭 툭 툭


그의 등을 살며시 두드리며 진정시키길 잠시, 성동한과 이미란 선배 또한 이 광경을 보고는 분하다는 듯 원통을 터뜨렸다.


“어휴, 망할놈의 자슥! 얼굴만 맨들맨들 잘나면 뭐할 것이여 성격이 개차반인디!”

“그러게요··· 소문으로는 담당 매니저들이 몇 년 못 버티고 다 나간다던데 다 이유가 있네요. 울지 말아요, 어린 친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선배들의 직간접적인 위로에 매니저가 눈시울을 손등으로 훔쳤다.


“이, 이제 괜찮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


매니저의 얼굴을 슬핏 바라보니 거뭇거뭇 난 수염과 눈 밑 쾡하게 자리한 다크서클들이 보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해온 것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 그의 안색에 나는 등을 쓰다듬다 말고 주먹을 꽈악 쥐었고 이내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짐승만도 못한 자식’


매니저란 존재는 배우들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이다. 그들이 없으면 연예인들은 나사 빠진 기계 마냥 본업에 충실할 수가 없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 또한 있으며 그 관계는 마치 꽃과 벌과 같은 관계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어린 시절부터 신구형을 통해 느껴왔고, 나와 같이 아역 때부터 매니저를 달고 다니던 정석기 또한 이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헌데 매니저에게 이런 식으로 거짓을 씌우고 나 몰라라까지 하다니···


무책임함에 치가 떨렸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해결해 줄 테니 여기서 기다려요.”

“···네?”


매니저의 충혈된 눈을 뒤로 하고 멀리 있는 검은색 스타렉스를 향해 뛰어갔다. 어금니를 너무 꽉 깨물어서인지 살짝 이가 시렸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화를 따라 땅을 힘차게 박차자, 정석기의 밴 앞으로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드르륵!


문을 힘차게 열였다.


“뭐야?”


정석기와 함께 스타일리스트가 보였다. 무척 당황한 표정이다.


“잠깐 밖으로 나가주시겠어요?”

“네? 아··· 네.”


그녀가 정석기의 눈치를 봤지만 마주하고 있는 내 표정이 심각해보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그녀와 교대하듯 안으로 잽싸게 들어가 문을 쾅! 하고 닫았는데, 녀석은 당황하면서도 갑작스런 내 행동에 짜증이 나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현재 여기에는 우리 단 둘이 전부다.


“야! 네가 뭔데 내 스타일리스트한테 나가라 마라야!”


정석기가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그런데 이 자식···


“조연주제에 건방지게, 드디어 정신이 나가 버리기라도 했냐?”


매니저는 자기 혼자서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이놈은 의상 갈아입고 온다는 놈이...


“이 새끼야!” 내 말 안 들리냐?”


의상과 메이크업은 진작에 끝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석기 손에는 핸드폰이 놓여 있고 그 위로는 게임 화면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자식은...


“거지 자식이 이젠 벙어리가 됐나, 야!”


석기야 넌 짐승만도 못한게 아니라 그냥 벌레야.


퍼억!


“···.우욱!”


끔뻑끔뻑


“날··· 쳤어?”

“너야말로 벙어리로 만들기 전에 입 다물어라.”

“······”

“이 노예 새끼야.”


주먹이 불에 데인 듯 뜨겁지만, 그보다는 가슴이 더 뜨거운 순간이었다.




#




빨갛게 부어오르는 볼, 황망히 갈피를 못 잡는 눈동자 그리고···


“시발! 지금 쳤다 이거지?”


분노로 잘게 떨리는 입술.


정석기가 소위 말하는 야마가 돈 얼굴로 주먹을 들어올렸다. 허나 내가 먼저 빨랐다.


놈의 이글거리는 눈 앞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안에 있던 녹음파일이 천천히 재생됐다.


“···뭐야?”


예전에 카페에서의 대화를 담아놓은 파일이었다.


-아서라 너 오디션 보느라 피곤해 할 스탭들도 생각해야지.


그가 나를 비웃는 부분부터,


-···너야말로 떨어지면 내 노예가 되는 거 알지? 촬영장 와서 온갖 수발들 준비나 해라, 개 자식아.


욕설과 함께 내기에 승낙한 부분까지.


정석기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뚝 끊어버렸다. 그리고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다시 한번 폰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음성이 아니라 캡쳐해 놓은 이미지 파일이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본 녀석이 머리를 탕! 맞은 것처럼 비틀거렸다.


정석기의 얼빠진 얼굴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지만,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기에 조소를 담아 얘기했다.


“매니저한테 덮어 씌울거면 제대로 하던지··· 네 매니저가 다른 사람이랑 스케줄 관련해서 이야기할 줄은 몰랐냐?”

“···.시발.”


혹시나 해서 강석씨에게 받아 놓은 채팅방 캡쳐본이었는데, 혹시 몰라 받아놓기를 잘했다.


녀석이 방금 전 나에게 벙어리라 했던 말이 무색하게 이제는 본인이 벙어리가 돼버리자,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는 있는 힘껐 눈 앞으로 잡아당겼다.


“야.”


불쑥 코 앞으로 다가온 녀석이 긴장했는지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내기 지켜야지?”

“······좆까.”


그러나 아직 발버둥을 칠 힘은 남았는지, 녀석이 나를 거칠게 뿌리치고는 내 몸의 중심이 흔들리는 틈을 타 손을 뻗었다.


“자, 잡았다!”


나는 그제야 뻔히 보이는 녀석의 속셈에 피식 하고 실소가 터져나왔다.


내 핸드폰을 들고는 의기양양하게 웃는 모습이 참 가소로웠다.


“얼빵한 새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럴수록 간수를 잘했어야지. 이딴 핸드폰 박살내고 나면 내기고 뭐고···”

“옮겨놨어.”

“뭐?”


정석기가 이해를 못하는 듯 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핸드폰에 있는 파일, 내 이메일이랑 USB 그리고 클라우드에까지 옮겨놨다고.”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녀석이 어떻게 알겠는가? 참고로 이런 기세 싸움은 배짱이 전부다.


“······”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녀석에게 다가가 옷매무새를 잡았다. 내가 아까 잡아 구겨진 부분을 섬세한 손길로 천천히 피며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내가 원하는 거 큰 거 아니야.”

“······”

“너가 오늘 일부러 지각하고 매니저한테 덮어씌운거, 그 비열한 짓거리한 거 밖의 사람들한테 하나하나 설명하라고 안 해.”


정석기 이 녀석은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친 곤조 덩어리다. 아무리 내가 약점을 잡았다한들 본인이 오늘 한 짓거리를 다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사과하라고 하면 죽어도 안 할 것이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고양이를 물 듯 나에게 달려들어 너죽고 나죽자 하겠지.


이런 녀석은 숨쉴 구멍을 주며 살살 조련을 해야한다. 마치 그 구멍이 유일한 통로인 듯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서.


그래서 나는 녀석의 옷매무새를 다시금 구겨뜨리며 정석기를 확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녀석이 다른 생각을 못 하도록 내 이마와 녀석의 이마를 퍽! 하고 세게 부딪혔다.


“으윽.”

“매니저 혼자 두지마.”

“이... 새끼가.”

“네 매니저고 네 사람이잖아. 그리고 밖의 사정을 모르는 스탭들이 보기에 자기 매니저 실수를 담당 연예인이 같이 책임지는게 더 보기 좋지 않겠어?”

“지금 나 협박하는거냐?”


이를 가는 녀석의 얼굴에 대고 활짝 웃었다.


“협박은 무슨, 우린 오랜 친구니까 설.득. 하는 거지.”

“시발, 그거 내기 한 거 녹음한 거 가지고 무슨. 그딴 거 나몰라라 하면 되지, 사람들한테 폭로할거면 폭로해! 그게 영향이 얼마나 간다고! 그리고 오늘 지각한 것도 매니저 채팅방이 있으면 뭐? 매니저 새끼가 나 일부러 엿먹일려고 그랬다고, 원래 이상하고 음융한 새끼라고 회사차원에서 약팔면...”


나는 그 말을 다 듣다말고 녀석의 손에서 내 핸드폰을 휙 가로챘다. 그리고 녹음 어플에 들어가 녀석이 내 손에서 가로채기전에 몰래 켜놨던 녹음버튼을 다시금 눌러 해당 내용을 저장시켰다.


그리고 조용히 다시금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내기 지켜야지?

-····좆까.”


익숙한 목소리의 욕설이 나오며 재생 버튼을 뒤로 쭉 늘리자 방금 마지막에 정석기가 버럭 질렀던 말까지 파노라마처럼 흘러나왔다.


-시발, 그거 내기 한 거 녹음한 거 가지고 무슨. 그딴 거 나몰라라 하면 되지............ 매니저 새끼가 나 일부러 엿먹일려고 그랬다고, 원래 이상하고 음융한 새끼라고 회사차원에서 약팔면...”


상황이 반전됐다. 좁디 좁은 차 안이 너무나 고요해지며 방금 전까지 난리치던 녀석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아무리 바보같은 녀석이라도 방금 한 말까지는 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너.”


첫 내기, 매니저 메신저 방, 그리고 방금 대화내용까지.

자꾸만 쌓여가는 증거 자료에 ‘축! 인성파탄자 정모씨! 숨겨진 더러운 내면, 배우인생 나락가다!’ 라는 기사 헤드라인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는 희멀건한 녀석의 얼굴에 대고 방금 녹음한 파일을 실시간으로 클라우드에 전송하는 걸 보여주며 씩 웃어재꼈다.


“석기야 나도 순정이 있다.”

“이 새끼가 뭐라는...”

“네가 내 순정을 짓밟으면 나도 그때는 깡패가 되는거야.”

“······”

“노예보다 못한 새끼야.”


한 참 동안의 침묵.


그 과정 이후에 드디어 보였다.


벌레자식이 스스로 노예임을 인정하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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