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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jxjxje1 님의 서재입니다.

층간소음으로 연기천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근복앙
작품등록일 :
2023.10.15 20:39
최근연재일 :
2023.11.16 23:16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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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글자수 :
214,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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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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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대본리딩(3)

DUMMY

성동한.


2000년 SBC 공채 탤런트 3기로 데뷔하여, 약 20년 간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 배우.


비열한 배신자부터 인간미 넘치는 아버지, 때로는 닳고 닳은 배고픈 형사까지 소화해 대중에게 이름을 떡하니 박은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최애 빵을 먹다 말고 툭 떨어뜨렸다.


‘배철···수?’


그 정도로 충격이었다.


살다 살다 이런 걸 개인기라고 던진 후배는 없었기에 사뭇 새롭기까지 했다.


‘허허허···!’


그래서인가, 왠지 모르게 눈앞의 후배에게 흥미가 갔다.


‘말하는 톤도 그렇고 쪼(습관)도 없는 것을 보면, 기본기는 탄탄히 잡혀 있는 것 같은디···’


20년이 넘는 연기 경력은 사람의 말하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연기를 할 지 대략적으로 알려주었기에 성동한은 후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디 연극단에서 굴러 온 놈인가? 아니야, 그런 것 치고는 몸짓 하나하나가 세심하단 말이지.


연극으로 몇 년간 활동하다 온 친구들의 경우, 저 친구처럼 기본기가 탄탄하기는 했다.


그러나 연극무대의 특성 상 멀리 있는 관객에게 연기를 보여야 했기에 저절로 몸이 과장되는 게 단점이었는데, 눈앞의 후배가 보이고 있는 세밀함은 연극이라 단정짓기에는 쉬이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에이 모르것다.'


머리를 싸매도 파악하기 힘든 정체에 성동한이 고개를 저으며 포기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체모를 후배놈을 그저 바라보는 것뿐이었기에, 맞은편 대각선 쪽에 앉은 박세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 안을 혀로 한 번 쭉 훑었다. 아까 먹은 빵으로 인해 단맛이 남아있었다.


'한 번 꼬셔봐?'


성동한에게는 오랜 연기 인생만큼 자잘한 취미들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근래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바로 ‘후배양성’이다.


그런데 요즘에 연기한다는 놈들을 보면 하나같이 제대로 된 놈이 없었고, 실제로 좀 하는 놈을 발견하면 방금 지각한 정석머시기처럼 싹수없는 태도가 가득했기에 영 실이 없었다.


물론 이 박세남이란 후배가 실제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더 봐야 알겠지만...


스윽


‘그래도 저 별난 양반들이 대본을 급하게 수정한 이유가 녀석 때문이라고 하니.’


히트작만 줄줄이 내놓기로 소문난 인물인 김소월 작가와 김나태 감독이 인정을 했으니 뭔가 있기는 있을 것이었다.


‘이거 기대되는구먼.’


그래서 그 또한 먹다만 빵을 다시 입에 우걱우걱 집어넣으며 대본 리딩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는데, 얼마 안 가 주연 배우가 도착하고 감독이 리딩을 그는 궁금해하던 박세남의 연기를 볼 수가 있었다.


감독님의 나레이션과 함께 세남의 입에서 첫 대사가 흘러나왔다.


-안녕. 내 이름은 하건우야··· 좋아하는 거나 취미는 딱히 없어.


그 문장이 마침표를 찍자마자 빵이 그의 손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처음과 지금 모두 빵을 떨어뜨린 행동은 같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인지’. 처음에는 성동한이 떨어뜨린 것을 스스로 인지하며 입에 남은 잔여물을 핥아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온 몸에 돋은 닭살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두 눈을 꿈뻑거리는 것뿐이었다.


‘이, 이게 뭣이여?’


그의 의식에 현실감이 부여됐다. 허나 선명해지기도 전에 박세남의 두 번째 대사가 바로 이어졌다.


-나한테 말 걸지마.


성동한은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몸을 파르르 떨었는데, 박세남으로부터 느껴지는 연기의 결이 어찌나 강한지 쳐다보기만 해도 어디론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에, 그가 고개를 연신 좌우로 흔들었다.


‘이 놈, 보통 물건이 아니구먼!’


성동한이 침을 삼키며 주변을 슥 훑었다. 모두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심지어 옆에 있는 미란이, 이 목소리만 높은 후배는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그동안의 연기 경력이 아까울 정도다.


물론 그만큼 말도 안돼는 흡입력이 후배에게서 뿜어져 나온 탓이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참.


‘이 자식 망할 상놈이구나!’


성동한이 일부 특정인간들(우린 그걸 사회적으로 ‘천재’라고 부르기로 했다.)을 만날 때면 칭하는 표현을 사용하며, 박세남과 김소월 작가 그리고 김나태 감독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의 생각에 이 3명은 같은 종류의 상놈들이었다. 수재인 자신과는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빛을 발하며 항상 상상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존재들.


오랜만에 만난 천재의 등장에 성동한은 가슴 깊숙이 설렘이는 걸 느끼며 입안에 남아있지도 않은 단맛을 찾아 자꾸만 입을 다시게 됐고,


시간이 점점 흐르며 박세남이 연기한 대사가 모두 끝이나자,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회의실 속모두의 얼굴을 한 번 슥 훑어본 그가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었다.


'가르치고 싶다... 어떻게 해 봐? 아니야 저것은 요대로만 가도 대성할 것 같은디 굳이.'


가슴 저 밑에서 갈등이 우러나왔다.


그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그릇인지 고민하며 한참을 쳐다봤는데, 문득 환호소리가 사방에서 터져나오자 오히려 마음이 급해지며 생각이란 걸 더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발은 이미 튀어나가기 위한 발구릉을 한 채였다.


“박세남이 이 놈!”


어떻게든 간에 먼저 자기 식구로 만들고 고민하는 건 그 이후에도 늦지 않다는 것. 그가 그 짧은 시간안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놈 안되겠다. 우선 우리 소속사부터 들어와라, 계약부터 맺자!”

"네?"

한 마리의 털보숭이 학이 하늘을 뛰어올라 테이블 위를 가로질렀다.


나이 오십에 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질정도의 점프력을 자랑하는 그.

성동한은 학창시절 멀리뛰기 선수였다.


“배철수는 내 꺼여!”




#




연기를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연기가 잘하는 연기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이론과 경험을 합쳐 수십, 수백가지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배우라면 그것도 연극판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와 같이 감독의 제작의도 아래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바로 감독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게 연기하는 것.


비록 그게 청중들이 봤을 때는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모습이더라도, 실제 촬영장 내에서는 그 어떤 연기보다 박수갈채를 받을 것임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감독이 컷 사인을 내려야 촬영이 끝나고, 촬영이 끝나면 스케줄이 종료되면서 감독 밑에 우후죽순 매달려 있는 온 스태프들이 쉴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감독이 원하는 이미지에 정확히 스트라이크를 넣을 수 있는 초정밀 투수였다. 그리고 김나태라는 홈구장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야 만족하는, 거의 마조히스트와 같은 병적인 페티쉬를 자랑하며 그런 선수들만을 들여오기를 원했기에, 포수 안쪽으로 깊숙이 꽂히는 나의 공에 그는 200퍼센트 만족하며 게임종료 선언을 외쳤다.


즉, 어찌됐든 앞으로의 촬영 현장은 NG없이 승승장구하며 모든 직원들이 해피하게 칼퇴할 확률이 올라갔다는 것. 아무튼간에 그게 지금의 ‘천재’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열성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킨 것 같다.


‘그런··· 거겠지?’


물론 내 추측이다. 단순히 실제로는 연기 리딩을 잘해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일 수 있었다.


흠흠 그래도,


‘겸손하게 생각하자.’


지금 이 환호소리를 듣고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건방져질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운이다, 사람들이 잘 봐준 거다’ 하면서 스스로를 세뇌했다.


‘나는 아직 멀었어. 허허허.’

‘자만하지말자, 그냥 신입이 연기를 조금 하니 치켜세워준거잖아. 허허으허’

‘조금(?) 잘했을뿐이야 진짜 조금.. 흐흐흐허’

‘히히히히’

‘끼룩!’


그렇게 주변인들의 계속되는 칭찬에 내외적으로 겸허히 웃으며 반응할 때, 언제 온 것인지 성동한이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뭔가 테이블이 크게 흔들린 것 같은데 착각이지 싶었다.


“박세남이 이놈, 그저 똘똘한 놈인 줄 알았는데 완전 실력파잖여?”


성동한 선배가 갑자기 나를 와락 끌어안더니 헤드락을 걸기 시작했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파 비명이 절로 나왔다.


“아악! 선, 선배님 아픕니다!”

“계약서에 싸인한다고 할 때까지는 안 놔줄 것이여 이것아! 흐흐흐”


농담이 아니라는 듯 그가 괴상한 웃음을 지으며 팔뚝에 힘을 주었다.


“아악!”

“초면에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뭔가 괘씸하네요. 선배님 잘하셨어요!”

“아저씨!”


여기저기서 나를 보며 웃는 사람들과 어디선가 들리는 아저씨 소리.


나는 마치 도떼기 시장이 된 것 같은 소란 속에서 머리에 힘을 주며 겨우겨우 빠져나왔는데, 문득 회의실 안에 누군가가 안 보인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디 갔지?’


정석기였다.


리딩이 끝나고 녀석과 내기에 관해 매듭지을 생각이었는데, 언제 사라진 것인지 자리에 텅 빈 의자만이 홀로 남겨져 있었다. 심지어 내가 돌린 빵은 한 입도 안댄 채로 겉봉지만이 구겨져 있었다.


‘어디를 간 거야?’


“다들 그만 진정하세요 다시 진행해야죠!”


그렇게 아수라장 같은 상황 속, 작가님이 중재하여 상황이 정리되고 리딩이 다시 진행되었는데, 결국 주연배우가 빠진 공백이 컸는지 한 시간도 못 가고 끝을 마감했다.


스케줄을 담당하는 FD의 말로는 갑작스레 급한 스케줄이 생겨 중간에 조용히 나갔다는데, 그의 곤혹스런 표정을 보아 정말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모두가 기지개를 펴며 고단했던 리딩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을 무렵, 제작피디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공지사항을 알렸다.


“자 자, 벌써 저녁입니다! 모두 예상했다시피 회식이 있으니 방송국 뒤편에 위치한 ‘오륜진사갈비’ 로 가시면 됩니다. 혹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불참하게 되시는 분은 저한테 애기하시고요.”

“그놈의 또 또! 무한리필집... 돈이 없어서 그러는거야 아니면 전생에 밥 못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것이야? 아이고.”

“분위기 망치지 말고 그냥 가.세.요. 선배님”

“참고로 저희 감독님, 현장에만 가면 스트레스 왕창 주시는 거 아시죠? 이럴 때 많이 뽑아드셔야 합니다! 하하하”


제작 피디가 성동한의 말에 식은 땀을 흘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바로 옆에서 그런 말을 듣는게 고역일텐데도 이를 악물고 모른척 하는 것이 역시 돈을 담당하는 데는 어디든 쉽지 않은 것 같다.


“모두 갑시다 워워.”


그래도 공식적인 첫 회식이고 어느새 저녁먹을 시간이 되기는 하였기에,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으면서 하나 둘 떠나갔다. 그래서 나 또한 집중하느라 금세 배고파진 배를 부여잡으며 살짝 설렌 마음과 함께 나가려 했는데,




어느새 성동한이 다가왔는지 나란히 걸으면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몸을 숙여왔다.


스윽


아래쪽의 뭔가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블루엔터]


명함이었다. 심지어 그 아래 직책을 보니 뭔가가 하나 더 쓰여져 있다.


[Actor본부 캐스팅 담당 이사]


찡긋.


"...하하."


굳이 서로 간에 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충분한 대화였다.


팡팡!


"부담갖지 말고!"

"...네."


그렇게 선배에게 남모를 압박과 애정(?)어린 공세를 받으며 쭈구리처럼 걸어가고 있을 무렵, 뒤에서 또다른 누군가가 이번에는 옆구리가 아닌 등을 무언가로 푹 찔러왔다.


“아저씨.”


큐트섹시다... 아니 한다솔이었다.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까 못한 말이 있어서요오...”


그녀가 몸을 배배꼬며 우물쭈물거렸다.

아까도 그랬는데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하지만 하늘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는지 그녀의 말을 성동한 선배가 급하게 가로챘다.


“그게 저희 멤버들도 궁금하다 구러구, 혹시 나중에 시, 시간...”

“박세남이!”

“네 다솔씨 뭐라구요? 못 들었..”

“이놈아 계단 조심혀! 앞봐 앞!”


성동한 선배가 자세가 무너진 나를 급하게 잡아주었다. 내가 한다솔씨 쪽을 쳐다보고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못 봐 넘어질 뻔한 것을 도와준 것이었는데, 마음은 감사했지만 그 이후로 아예 나를 아기 보는 양 본인 옆구리에 끼우고 돼지갈비집까지 걸어가려했기에, 한다솔씨랑 대화할 수 가 없었다.


“이제 우리 엔터 보배가 될 사람인디 이 선배가 챙겨야지 자, 자 이쪽으로 오라고!”


“히잉.”


뒤에서 자그마하게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묘하게 꽂혔지만 하늘같은 대선배가 이렇게 친밀하게 구는 상황에서는, 신입이라면 누구도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나는 살짝 뒤를 돌아보며 미안하다는 의미를 담아 눈짓을 보냈다.


다솔씨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내 눈짓에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아까부터 다솔씨 자꾸 몸을 꼬면서 발을 구르네.


‘화장실?’


하긴 대본 리딩이 쉬는 시간 없이 너무 길긴했다.


나도 이따 화장실이나 들러야지.




*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금방 도착한 MBS 사옥 뒤편의 돼지갈비집.


무한리필집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근 회식 장소 중 가장 큰 규모의 고깃집이다보니 제작진을 비롯해 배우들과 그 매니저들까지 들어가는데는 충분했다. 심지어 안에 들어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예 모르는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은 게, 제작진 측에서 그래도 신경쓴다고 가게를 통채로 빌린 것 같았다.


약 100평은 되어보이던 가게가 [두.청]의 제작진들과 관계자들로 인해 한가득 북적였다. 모두 친한 사람들 혹은 각 팀별로 삼삼오오 테이블을 잡아 착석을 했다.


그런데


‘난 어디앉지?’


조금 고민하며 길잃은 고양이마냥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그런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안쪽 공간에는 주조연배우들과 감독님, 작가님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다만 회의실때처럼 자리에 이름표가 달린 것은 아니었기에 자리 위치는 정해야만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정중앙쪽에 앉는 성동한과 이미란 선배와 달리 짬이 안 된 나는 위치를 신경써야 했기에 중앙에서 벗어난 외곽쪽에 자리를 잡으려했다.


‘응?’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테이블 입구쪽에서 한다솔이 우물쭈물대며 ‘길잃은 고양이2’를 시전하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예전 극단에 입단하여 어깨너머로 연기를 배울 때, 첫 회식자리에서 내가 보인 모습과 똑같아 피식하고 실소가 흘러나왔다.


‘옛날 생각나네.’


모르는 사람이면 나몰라라 하겠지만 그래도 오디션 일도 있고 앞으로도 드라마에서 자주 볼 사이었기에 그녀를 도와주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팔을 휙 잡아 바깥 쪽으로 이끌었다.


“여기에요.”


꼭 짬이 안되거나 조연이라 해서 외곽쪽에 앉으라는 법은 없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게 멤버 구성이다.


‘술고래로 유명한 성동한 선배에 술자리 파토날때까지 무조건 남아있는다는 불멸의 이미란 선배 그리고 그 김소월 작가님까지...’


심지어 작가님은 글을 쓰시면서 무언가 막히면 커피대신 술을 마셔 뚫어버린다고 할 정도로 주당이라는 소문이 나 있어 무조건 중앙쪽은 피해야했다. 안 그러면 아이돌인데 분위기에 휩쓸려 먹고 마시고 하다 나중에 파전집 하나 차리리라.


“에?”

“다솔씨랑 저는 여기니까 멍 때리지 말고 와요.”


그렇게 그녀의 얼빠진 소리를 무시하며 옆자리에 앉히자 그녀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순간 아차하며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화장실은 저기던데 빨리 갔다와요.”

“넹?”

“곧 작가님이랑 감독님까지 오시면 자리 못 떠요.”

“아.. 아닝 그게 아니라.”


그럼 뭐지?


“팔, 팔 좀요오.”

“아차 미안합니다.”

“...화장실 갔다올게요오.”


살짝 핀트가 엇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매너의 끝판왕이다 생각하기에 나홀로 대견함에 취해 있을 무렵,


성동한 선배가 이쪽을 보더니 나에게 먹고 싶은 거 다 주문하라며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한리필집이라 메뉴가 돼지갈비 한 개인데.’


그래도 사회생활이니만큼 싹싹하게 웃으며 그밖에 술이랑 음료 주문을 마치고는 재빨리 테이블을 세팅했다.


“하하, 이런 자리가 오랜만이라 긴장되네요.”

“에이 긴장할 게 뭐가 있다고 그려, 그냥 앉아서 밥 묵고 가면 그게 끝이지. 안 그려?”

“아이 참, 선배님이랑 애들이랑 같나요”


그렇게 선배들과 한동안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세팅을 마치자, 성동한이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또 다른 자그마한 메뉴판을 건네줬다. 메뉴판에는 메인 주문이 아닌 사이드 메뉴가 여러개 들어있었다.


“이 집이 사이드가 기가막혀! 그런께 후배님들 먹고 싶은 거 더 시켜 더 더! 제작피디 양반 괜찮지?”

“아 예... 허허.”


사이드 메뉴는 생각도 못했기에 나는 메뉴판을 받아들고는 고민하다 옆자리를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다솔씨가 방금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에 막 앉는 중이었다.


“다솔씨? 뭐 먹을거에요?”

“아··· 음, 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용.”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아직 이런 회식 상황자체가 어색한 지 눈치도 많이 보고 목소리도 조그마했다. 그래서 나는 테이블 밑으로 그녀의 발을 툭 치고는, 보라는 듯 목을 가다듬었다.


“으응?”

“흠흠, 가장 비싼 게 맛있다고 들었습니다!”


경험상 이럴 때는 무조건 자신있게 이야기해야 했다. 원하는 게 없다면 메뉴판 중 가장 가격이 나가는 것을 끄집어내서라도.


내 우렁찬 함성에 선배들이 휘파람을 불자, 다솔씨가 내 의도를 이해하고는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마주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럼 저, 저는 소갈비살 먹을게요오!”

“엥? 소갈비살? 여기는 돼지갈비집인디”


성동한 선배가 황당함을 숨기지 못하고 이내 껄껄 웃었다.


“네에···?”

“사이드로 냉면먹을지 아니면 찌개 먹을지 고르라는 말이여! ”


화끈


“껄껄껄, 후배님이 드시고 싶다는데 어떻게든 먹여야지! 미란이 나이 들었다고 궁뎅이 무게 잡지 말고 나가서 사와”

“그걸 어떻게 사와요!”


성동한의 짓궂은 장난에 이미란이 앙칼지게 응답했다.


“그럼 내가 사오리?”


그녀가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서슬퍼런 눈빛으로 다솔씨를 바라봤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긴 했지만 연기일 것이다. 아마도, 아.. 아닌가...?


“다솔 후배님.”

“넷!”

“정말로 소갈비가 먹고 싶어?”

“아, 아뇻! 그게 아니라···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히이잉.”

“네, 네 먹고 싶어요 선배님! 흐애엑.”


혼란에 빠져 스스로 무너진 다솔씨와 그런 다솔씨를 해괴한 얼굴로 따라하는 성동한. 어느새 소주 한 병을 홀로 비우고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깐죽대는 모습이 참 주먹을 부르는 꼴이었다.


“죽어! 선배.. 아니 이 양반아!”


“아니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흐애액.”


아주 난장판이다. 낯 부끄러울 정도로.


“선, 선배님들 저는 돼지고기가 좋아요오!”

“오 그려? 그러믄 미란아 가서 삼겹살로 사와라! 여기 갈비밖에 안 판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앙... 히이잉.”

“내 말도 그게 아니라 흐애액”


“진짜 죽어요.”

“흐애액,.. 컥컥”


홀짝


아, 물이 참으로 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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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정석기(3) 23.11.02 53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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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정석기 23.10.31 52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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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성물 23.10.27 59 0 11쪽
» 대본리딩(3) 23.10.26 63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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