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djxjxje1 님의 서재입니다.

층간소음으로 연기천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근복앙
작품등록일 :
2023.10.15 20:39
최근연재일 :
2023.11.16 23:16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2,204
추천수 :
64
글자수 :
214,268

작성
23.10.17 22:06
조회
96
추천
3
글자
13쪽

연기의 신전(3)

DUMMY

응급실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하얀 벽 그리고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의자. 슥 고개를 올려 창문을 바라보니 아침 해가 밝아오는 게 보였다.


몇 시간 전의 일로 시간이 흐르지 않은 걸 깨달았지만, 나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병원에 남아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6시까지 한 시간 남았네, 시간아 빨리 가라···!’


어머니를 봐야지만 불안감이 해소될 것 같아서였다.


처음에는 보호자인걸 알리고 직원에게 바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허나 내 수중에는 나를 증명하는 신분증이 없었고, 직원은 결국 신원확인이 안 된 나를 들여보낼 수가 없다 해, 나를 아는 직원이 교대근무에 투입될 때까지 앉아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땀으로 축축했던 몸이 어느샌가 바싹 말라있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에 답답한 마음이 들 법도 하지만 지금 내 온 신경은 오로지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째깍째깍


‘빨리.. 빨리.’


어느덧 태양이 완전히 고개를 내밀었을때쯤, 하품을 하며 교대근무를 하러 온 직원의 목소리가 너머에서부터 들려왔다.


“저기요! 저 여기있어요 기억나시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알아본 직원이 나의 다급한 손짓에 면회증을 건네주었다. 나는 서둘러 본관으로 이동해 어머니가 계시는 505호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했지만 계단을 이용했다.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분명히 어머니가 괜찮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마치 십년은 못 본 사람마냥 숨이찼고 또한 뜀박질은 서툴렀다.


‘다 왔다.’


생각도 잠시, 단숨에 5층까지 올라간 나는 1인실 문을 확 열어젖히며 어머니를 확인했다. 동시에 보이는 익숙한 모습에 저 밑바닥에서부터 한숨이 물씬 올라왔다.


안도의 숨이었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주름진 눈가와 함께 입가에 난 점이 보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세수할 때면 보이는 거울 속의 내 얼굴과 너무도 닮았다.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건만 내 얼굴에다 세월을 넣고, 고운 선과 머리카락을 덧붙이면 완성될 외모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니.”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손등에 꽂힌 링겔이 영양제를 투여하고 있었는데, 마치 어머니의 맥박을 따라 조금씩 내려가는 것 같았다.


“...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어머니를 향해 천천히 그동안의 일들을 하나씩 꺼냈다.


“이상한 곳으로 끌려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누가 층간 소음을 내길래 '야밤에 뭐하는 짓이지?' 했는데, 올라가서 문을 두드려 보니까 반응이 없던 거 있죠?”


어머니는 여전히 아무 말 없었지만 아랑곳 않고 계속 말을 했다.

항상 어머니를 뵐 때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게 버릇이 돼서 멈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처음에 완성도가 5프로가 나온 거에요. 하하하 아무리 오래 쉬었다지만 그래도 나름 영화도 찍고 연기레슨도 받았던 놈인데 한심하죠?”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 나왔다. 현실 시간으로는 하루만에 다시 온 거였으니 어머니가 놀랄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할 말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어머니도 이해할 것이다.

왜냐면 당신은 항상 내 목소리를 듣는 걸 좋아했으니까.


“....그래도 어떻게 죽도록 노력하니까 끝이 보이기는 하더라구요.”

"....."

"나 잘했지?"


이야기를 다 마칠 때쯤엔, 칭찬해달라는 의미로 애기처럼 말을 놓았다.

하지만 대답은 역시 같았다.


“···..”

“···..”




먹먹한 마음에 말없이 어머니의 손등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했던 것들이 그저 사건의 나열이었다면,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은 그동안 감춘 가슴 속의 이야기였다.


연기에 대한 나의 열망과 ‘신전’이라는 것을 거치며 이제는 180도 달라진 실력. 그러한 것들이 한데모여 꽃을 피우고, 가슴속 자신감으로 자리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직접 일어나 들으셨다면 좋아했을텐데.’


하지만 이렇게 속마음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그러니까 저 다시 도전해보려구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까지 내뱉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꾹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하얀 침대맡에 살포시 두었다. 시선을 멀찍이 올려 얼굴을 바라보자,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입가가 얼핏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승낙하신 거구나.


“저 갈게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다.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잡아떼며 병실 문을 나서다,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다음에는 알바하는 박세남이 아니라 배..우로 올게요. 엄..마.”


배우


엄마.


둘다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드르륵


문을 닫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좀 더 노력하자.


연기도.


어머니에게도.



#



내 방으로 돌아왔다. 수중에 지갑이 없어 돌아올 때도 걸어와야 했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기에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빌라 앞에서 우연히 내가 살고 있는 집주인을 만났으니까.


삼익빌라의 주인이자 두 얼굴의 사나이 김씨.

이름 석자는 잘 모른다. 허나 그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처럼, 이 양반이 계약금만 받으면 바로 나 몰라라하는, 안면몰수의 사내라는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약 5년 전 이 근방으로 이사하고자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나에게 달라붙어 알랑방구를 뀌던 그의 모습이.


삼익 빌라의 좋은 점만 늘어뜨리며 설령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자기가 금세 고쳐주겠다 말하기에 믿고 계약한 것이었는데...


'첫 달만 연락을 받고 그 이후로 두절 됐지.'


전세금이 넘어간 이후부터 전화가 잘 되질 않았고, 그게 몇 달이 흐르고 나서는 완전히 끊겨버렸다. 심지어 어쩌다 한 번 밖에서 마주치게 되면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줄행랑을 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냥 확 전세사기로 경찰에 신고해버려?'


참으로 고약한 인간이라 할 수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그런 양반이 내 눈에, 그것도 등 뒤를 보인 채로 나타났었다.


무슨 조화인지 몰라도 하늘이 준 기회라 여기며 나는 그의 멱살을 콱 잡았고, 그의 놀란 얼굴에 대고 고함과 함께 그동안 묵혀놨던 설움을 모조리 풀어냈다.


물론 근래의 가장 큰 관심사인 303호에 대해서도 잊지 않았다.


-미, 미안하네! 내 전세금은 금방 돌려줄게 나도 지금 급히 마련하고 있어! 그런데... 303호는 왜 물어보나? 아무도 없는데?

-네?

-그러니까, 그 방에는 아무도 안 산다고.

-정말로요?

-그럼, 한 1년 됐나 세입자 안 들어 온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 방만 유독 안 나간단 말이야··· 나 참, 마라도 꼈나.

-···..

-아무튼 세남씨도 주변에 방 필요한 사람 있으면 우리 빌라나 소개 시켜줘! 서로 돕고 사는 게 인생사 아니겠어? 흐흐.

-또 사기치시려고요?

-에이 내가 무슨 사기를 쳤다... 으악! 숨, 숨막혀!


그렇게 대화가 끝이 났다.


아무튼 나는 이후 김씨 아저씨에게 전세금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고는 그를 보내주었는데, 문제는 303호였다.


'비현실적인 공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안 살 줄은...'


내가 겪은 것을 두 눈으로 다시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집을 들러서 잠시 씻고 채비를 마친 후 다시 303호에 돌아왔고, 그 후 여기저기 훑어보았지만 건물주의 말대로 안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걸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였어.’


창문에 난 거미줄도 그렇지만, 문 아래 우유 투입구를 통해 보이는 내부가 빈집이었다.


허망함이 가슴께를 들썩였다. 알 수 없는 마음에 발을 휘청거리며 방으로 돌아와 펜과 노트를 꺼냈다.


우선 이 연기의 신전에 대해 아는 것들을 적어보고자 위해서였다.


‘정리를 해보자.’


슥슥


일번. 윗집은 근 일년 간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다.


이번. 배우의 신전에서는 모든 상태가 고정되어 배고프지도 피곤하지도 않다.


삼번. 안에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바깥에서는 거의 시간이 지나지 않는다.


사번. 각 장면을 완성도 70퍼 이상의 연기로 끝마치지 않으면, 다음 씬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젠장.


오번. 클리어에 성공하면서 사제로 임명받았다···.


마지막 5번까지 적고 말머리에 온점을 연이어 찍었다.


툭 툭 툭


‘흐음.’


지금까지 적은 것들 중 5번이 가장 의문덩어리였다. 내가 적었지만서도 이해가 당최 가질 않았다.


‘사제로 임명받았다라··· 이게 무슨 의미일까?’


클리어에 성공하고 나서 원래 세상으로 돌아오기 직전, 홀로그램이 띄어준 흐릿한 문구가 있었다.


[중도 포기 없이 올 클리어로 인해 해당 출입자를 신전의 사제로 임명합니다.]라는 말.


당시에는 클리어했다는 쾌감에 제대로 보지못해 기억이 희미했지만 대충 이런 문구였다.


‘사제면 신을 모시는 그거 아닌가?’


그러니까 교회로 치면 목사님이고 절로 치면 스님이라는 말인데··· 하 이거 참.


어쩔 수 없이 골머리를 앓으며 펜 뚜껑을 나도 모르게 질겅질겅 씹고 있는 도중,


‘아! 혹시 그것 때문인가?’


머리 뒤로 스치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내가 딱 70퍼에서 1퍼 부족한, 69퍼에 도달해 있을 때 홀로그램이 띄어주던 문구였다.


[중도 포기하시겠습니까? 대신 포기하면 출입자의 신분 또한 영영 잃게 됩니다.]


그때는 포기라는 말이 거슬리기도 했고, 하건우의 씬 중 딱 하나만을 남기고 있어 오기로 외면했던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출입자의 신분을 잃게 된다는 말이 그런 의미로 느껴졌다.


‘다시는 배우의 신전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럴 듯 했다. 생각이 연이어 뻗어나갔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제에 임명되었다는 말은···’


또 다시 신전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 가장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나중에 입장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시험해보면 알겠지.’


물론 지금 바로 시험할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아까 303호 앞에서 문을 두드려봤을 때, 저번이랑 달리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설령 다시 들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 갇혀있던지라 좀 더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참, 준비해야 할 것도 있었지.’


문득 생각난 일에 달력을 바라보자 날짜가 보였다. 자연스레 신구 형이 말한 오디션 날이 떠오르며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렸다.


“몇 년만에 보는 거지”


대략 5년은 되는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 사고를 당하신 후, 돈을 버느라 연기는 물론 오디션도 일체 보지 않았으니까.


생각할수록 떨리는 마음에 가슴을 부여잡은 나는, 고개를 슥 돌리며 벽에 난 거울을 바라보았다. 새벽부터 뛴 탓에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한 가지 확연히 바뀌어 있는 게 있었다.


꿈틀


추한 몰골 속,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형형색색의 눈빛과 미세한 얼굴 근육들이었다.

그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어서 빨리 연기를 하고 싶다는 듯이.


시험 삼아 하건우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그러자 자연스레 눈가가 쳐지고 입꼬리가 내려갔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우울감이 더해졌다.


“안녕. 내 이름은 하건우야··· 좋아하는 거나 취미는 딱히 없어.”


그리고 발음과 톤마저 18살에 엄마를 잃은, 상처입은 하건우와 다를 바 없어졌다. 70퍼의 완성도밖에 안 되었지만 스스로가 보기에도 이전과는 연기의 틀이 달라져있었다.


‘믿기지가 않아. 물론 미친듯이 노력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기한 건 신기한 거였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될 꺼라 생각하던 게, 이제는 노력하면 된다는 거였으니까.


피식


그동안의 고생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는데, 때마침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퍼지며 방안을 가득 채웠다.


-띠리링!

“누구지?”


신구 형이었다.


“잘 됐네. 안 그래도 전화하려 했는데.”


반가움에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다시 한 번 거울을 돌아봤다. 거울 속에 박세남이 아닌, 하건우가 보인다.


“여보세요.”


그것도 아주 슬픈 미소로. 목소리마저 심해에 들어간 것처럼 한층 가라앉은 채.


-세남이··· 맞지?

“응”

-얌마!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안 아파.”

-안 아프기는 어디야? 형이 지금 갈게!

“아니 지금 올 필요는 없는데.”

-혹시 너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거는 아니지? 얌마?!


‘······’


걱정으로 날뛰는 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70퍼가 이 정도인데 80퍼, 90퍼가 되면 어떻게 되지?


꿀꺽


-야 이 자식아! 형을 봐서라도 살아야지! 이놈아! 죽으면 안 된다 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층간소음으로 연기천재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개구리는 높이 뛰어야 한다(3) 23.11.16 25 2 14쪽
32 개구리는 높이 뛰어야 한다(2) 23.11.15 22 1 19쪽
31 개구리는 높이 뛰어야 한다 23.11.14 31 2 13쪽
30 새로운 흐름(2) 23.11.14 32 2 13쪽
29 새로운 흐름 23.11.12 28 2 15쪽
28 변화(3) 23.11.11 34 2 16쪽
27 변화(2) 23.11.11 39 2 17쪽
26 변화 23.11.09 39 1 13쪽
25 제작발표회(3) 23.11.08 34 2 12쪽
24 제작발표회(2) 23.11.07 38 2 14쪽
23 제작발표회 23.11.06 43 2 14쪽
22 교체(3) 23.11.05 49 3 12쪽
21 교체(2) 23.11.04 53 2 18쪽
20 교체 23.11.04 53 1 15쪽
19 정석기(3) 23.11.02 53 1 15쪽
18 정석기(2) 23.11.01 52 1 17쪽
17 정석기 23.10.31 52 2 17쪽
16 성물(2) 23.10.30 52 1 13쪽
15 성물 23.10.27 59 0 11쪽
14 대본리딩(3) 23.10.26 62 1 19쪽
13 대본리딩(2) 23.10.25 63 2 19쪽
12 대본리딩 23.10.24 73 1 16쪽
11 오디션(2) 23.10.23 74 2 17쪽
10 오디션 23.10.22 76 2 14쪽
9 우는 소녀는 빙그레를 좋아한다(2) 23.10.21 70 1 13쪽
8 우는 소녀는 빙그레를 좋아한다 23.10.20 77 3 16쪽
7 노예내기(2) +1 23.10.19 78 3 13쪽
6 노예내기 23.10.18 94 2 14쪽
» 연기의 신전(3) 23.10.17 97 3 13쪽
4 연기의 신전(2) +1 23.10.16 104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