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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jxjxje1 님의 서재입니다.

층간소음으로 연기천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근복앙
작품등록일 :
2023.10.15 20:39
최근연재일 :
2023.11.16 23:16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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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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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4,268

작성
23.10.27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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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성물

DUMMY

혼란으로 붐빈 식탁은 얼마 안 있어 일단락되었다.


뒤늦게 들어온 감독님과 작가님 덕분이었는데, 우리는 감독님의 건배사로 회식을 시작하며 서로간의 친목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두가 참석하는 이 자리에 한 명이 없었다.


‘설마 했는데··· 나 때문에 회식 자리까지 안 올 줄이야.’


단순한 조연도 아닌 주연의 불참. FD말로는 정석기의 스케줄이 연장돼 못 올 것 같다고 하였는데...


통상 첫 리딩 날은 감독님을 비롯한 전 멤버들이 의기투합을 다지는 자리였기에 미리 스케줄을 빼놓는 게 관례였다.


아무리 급히 생긴 스케줄이라지만 그 녀석 정도면 저녁에는 올 수 있게 조정할 수 있을텐데도, 이리 불참하면서까지 나를 마주하기 싫다는 녀석의 뜻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안 오면 자기만 손해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고조되는 술자리와 붉어진 안색을 띈 채 주구자창 술잔을 드는 사람들. 다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랐는지 조금씩 본심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불만의 화살이 향한 곳은 당연, 이 자리에 불참한 정석기였다.


“고놈 적극적으로 나서도 모자를 판에 주연이 돼서 말이야,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참 나.”

“그러게요 선배님, 누구는 주연 안 해 봤나? 어! 이 자리에서 주인공 한 번 안 해보고 올라온 사람도 있냐구요?”


성동한과 이미란의 말에 몇 몇 배우들이 옳소! 옳소! 하며 응대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두 분이 [두.청]의 가장 큰 선배들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정석기의 공백이 신경이 쓰였나 보다.


‘녀석, 선배들한테 완전 제대로 찍혔네.’


아무리 한창 인기있는 배우라지만 이 바닥이 원체 평판과 인맥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보니 조금 안타까움이 들었다. 이러한 불만들이 하나하나 쌓여 소문을 이뤄가고, 추후에는 그 사람의 이미지로 직결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석기의 불운한 앞날에 살짝 명복을 빌고 있을 때, 어디선가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저는 주연은 커녕 조연도 안 해봤어요오··· 지금 이 자리도 너무 감사해서··· 히잉.”


한다솔이었다. 새하얀 피부가 마치 수채화 물감을 녹여낸 것처럼 벌게져 있었다.


감독님과 배우들이 모여 있는 자리다 보니 술이 많기는 했다. 허나 그래도 아직 시작한지 두 시간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런 상태라니···


왠지 모르게 걱정이 돼 자제하라는 뜻에서 그녀의 옆구리를 툭 치자, 그녀가 가렵다는 듯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는 말릴 새도 없이 한 잔을 쭉 들이켰다.


“아흐응, 그래도 아저씨 덕분에 이 자리나마 얻을 수 있게 돼서··· 정말로 감사해요.”

“아저씨?”


난데없는 말에 모두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세남씨가 오디션 들어가기 전에 저한테 레슨해주셨거든요.”

“아니요! 그게···”


당황스러움에 손사래를 쳤다. 모두가 나를 급 바라보기 시작했다.


“막 김다혜에 대해서 콕콕 집어주고, 제가 몰랐던 감정들까지 캐치해주면서 아저씨가 오디션 때 이 부분을 드러내면···. 읍!”

“하하하, 취하셨네요 다솔씨. 매니저 불러드릴까요?”


급히 막는다고 나섰지만 너무 늦었던 걸까? 등 뒤로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그때 멀리서 김소월 작가님이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감탄사를 던졌다.


“호오 그래요? 자기 배역도 아니고 남의 배역을 레슨까지?”


그녀가 더욱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게다가 주변에서도 다솔씨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가는 게 있었는지, 중회의실에서의 상황을 떠올리며 나에 대해 이것저것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신인치고 세남 씨 연기력이 대단하기는 했지.”

“저는 아직도 리딩 때 감독님께 커트 안 당한 게 신기하다니까요.”

“그런데 그건 그럴만 했어. 눈 감았다 뜨니까 이미 씬이 끝나 있는데 어떡해?”


몸 둘 바 모르는 칭찬에 나 또한 얼굴이 벌게져 가는데, 근처에 있던 제작 피디가 안주를 집어먹더니 무심한 얼굴로 내 애기를 꺼냈다.


“세남 씨는 정확히 말하면 신인은 아니지. 아역 때 주연으로 활동했으니까.”

“주연이요?”

“아빠 찾아 삼만리에 나오는 삼식이 있잖아? 걔가 세남 씨야.”

“정말요?!”


이미란 선배와 성동한 선배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배우들이 입을 떡 벌렸다. 놀라지 않은 건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으로 있던 작가님과 감독님뿐이었다.


“확, 확실히 닮기는 했어.”

“허··· 그 애가 지금 이렇게 컸다니 나는 그동안 뭐하고 산 거지?”


생각보다 아빠 찾아 삼만리의 파급력이 컸는지 웅성거림이 더욱 커져갔다.


“그런데 내가 듣기로 연기력이 부족해서 그 이후로 죄다 작품 말아먹고 쫓겨난··· 헙!”


그러다 마지막에 가시처럼 튀어나온 말.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한 사람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가자 다른 테이블에서 넘어오신 카메라 감독님이었는데, 조심한다고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현장에 있던 모든 이가 그 말을 들은 상태였다. 싸한 침묵만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다들 괜스레 죄를 지은 것처럼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망한 게 사실인데요. 그때만 생각하면 여럿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구요.”


나는 갑작스레 불편해진 분위기에 일부러 과장된 웃음을 지었는데, 다들 그런 내 노력을 알아챈 것인지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원래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잖아”

“그래 그 성장통을 이겨내고 지금 이렇게 활어마냥 팔딱팔딱 생생한 연기를 하는데 뭐가 문제야”

“아저씨는 등, 등불이자 천재에요!”


마지막에 뭔가 이상한 수식어가 붙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어붙은 공기가 풀려갔다.


‘후우우··· 괜히 분위기 이상해질 뻔 했네.’


모두가 다시 왁자지껄 떠들며 이번에는 아까 망발을 던진 카메라 감독님을 향해 무자비한 비수를 던지고 있을 때, 성동한 선배가 주방 이모를 부르더니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응?’


그러고는 선배가 잠깐 나와 눈을 마주치고 벌떡 일어나 모두의 잔에 술을 콸콸 붓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 있던 잔들이 금세 채워졌다.


‘뭐하시는 거지?’


갑작스런 행동에 의문이 들어 그를 바라보고만 있는데, 그가 갑자기 감독님께 건배사를 해도 되겠냐 물어보시더니, 술잔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고는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해 뜰 날이 오기를!”


모두가 그 말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이내 쿡 하고 웃으며 너나 할 것 없이 술잔을 들어올렸다.


“해 뜰 날이 오기를!”


모두가 후창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순간 머릿속이 핑 돌았다. 아직 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취한 것처럼 눈앞이 살짝 흐려졌다.


해 뜰 날이 오기를.


‘아빠 찾아 삼만리’에 나오는 대사로 삼식이가 아빠를 찾기 전, 짙은 새벽녁 속에서 홀로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담담히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말 같지만, 실은 본인의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자 다짐하는 말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명대사이기도 하다.


즉,


‘날 위로해 준 거구나.’


괜스레 울컥해지는 마음에 입을 꾹 다물고는 똑같이 잔을 들어올렸다.


“해 뜰 날이 오기를!”


내 대답과 함께 꼬부랑 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해에··· 뜰 날이 오기··· 를···”


한다솔이었다. 그것도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에서 빈 잔만 높이 든 채로. 언제 마셔댔는지 그녀의 테이블에 아까는 보이지 않던 술병들이 나동그래져 있었다.


“하하하하! 짠!”


좀비 같은 모습에 모두가 폭소를 하며 짠하고 잔을 부딪히기를 잠시, 나는 건배사를 해준 선배님께 눈인사를 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그대로 찰랑이는 술잔을 들어 목 뒤로 깊숙히 삼켰다.


크흑!


아까도 느꼈던 거지만··· 오늘따라 참 달다.




#




터벅 터벅


알딸딸한 취기를 따라 밤길을 걸으니 선선한 공기가 폐부를 깊숙이 찔러왔다. 아직 4월이라 그런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밤하늘에 수놓은 별을 바라보며 하나 둘 걸어가자 어느덧 도착한 우리 집, 삼익빌라.


언제나 그렇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내가 사는 곳인 203호까지 올라가지만, 오늘은 2층에서 멈추지 않고 3층까지 쭈욱 올라갔다.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새벽 2시라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 때문인지 몰라도 문득 윗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비틀대면서 겨우 올라가기를 한참, 비상구 문을 엶과 동시에 나는 303호 앞에 철퍼덕 쓰러졌다. 문에 기대고 있자 등에서 기분 좋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별이 반짝거린다. 그 옆의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절로 웃음이 나온다.


“푸읍, 하하···”


정말 믿기지 않는 인생이다.


절망 가득히 바닥 언저리 삶을 나타내듯 나를 조여오는 아역 이후의 몰락과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어머니, 그리고 막막함에 군 전역 후 바로 자퇴한 대학교와 뒤이어 시작한 알바까지.


참으로 굴곡진 인생이었지만 그런 내게, 어느 날 하나의 행운이 찾아왔다.


층간소음.


그것을 만나 오디션에 합격하고, 이제는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 법한 유명한 배우들과 동료 사이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얼떨떨하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꿈이고 사실 나는 4월 1일날 알바 끝나고 침대에 누워, 아직까지 잠에 깨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디찬 서늘함이,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뜨거운 숨결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안도감과 함께 벅찬 고마움이 교차했다. 그래서 등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며 속에 담아 놓은 무언가가 터져나왔다.


“정말 열심히 할게요!”


울분이었다.


“누구신지는 몰라도 저한테 이런 기회 주신 거, 절대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게요!”


약속이었다.


“죽을 힘을 다 할게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리고


꿀꺽


“포기하지 않을게요.”


내 스스로에게 한 맹세였다.


목이 절로 메어왔지만 외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경비 아저씨에게 고성방가로 욕 좀 먹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끄러움이든 뭐든 내팽개치고 외치고 싶었다.


연기를 시켜준 ‘신전’에게 그리고 나를 사제로 임명해준 신(神)인지 모를 누군가에게.


한참을 그렇게 제3자가 본다면 경찰이나 119를 부를 정도로 허공에 대고 인사를 드리고는 이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는데,


불쑥!


나는 눈앞으로 무언가가 떠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신전이 사제의 축원(祝願)에 반응합니다.]

[일회성 성물(聖物)이 수여됩니다.]


홀로그램이었다.


덜커덩




응?


그런데 문구를 읽기도 전에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봤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문 밑, 우유투입구에 무언가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기심과 미지의 두려움에 손을 살짝 떨며 안에 있는 걸 꺼냈다.


스윽


“목걸이···?”


십자가 형태의 은빛 목걸이가 휘광(輝光)을 내뿜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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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변화(2) 23.11.11 39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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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작발표회(2) 23.11.07 38 2 14쪽
23 제작발표회 23.11.06 43 2 14쪽
22 교체(3) 23.11.05 49 3 12쪽
21 교체(2) 23.11.04 53 2 18쪽
20 교체 23.11.04 53 1 15쪽
19 정석기(3) 23.11.02 53 1 15쪽
18 정석기(2) 23.11.01 52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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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는 소녀는 빙그레를 좋아한다 23.10.20 77 3 16쪽
7 노예내기(2) +1 23.10.19 78 3 13쪽
6 노예내기 23.10.18 93 2 14쪽
5 연기의 신전(3) 23.10.17 96 3 13쪽
4 연기의 신전(2) +1 23.10.16 10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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