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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리에의 서재

마샬 에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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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리에
작품등록일 :
2018.11.27 18:56
최근연재일 :
2019.01.18 17:2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286
추천수 :
1
글자수 :
63,284

작성
19.01.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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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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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ountess (6)

DUMMY

에일린은 황급히 저택으로 돌아왔다. 옷이나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길 시간도 없었다. 방을 나서기 전 벽에 기대어 있는 릴리의 선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아주 힘들때 열어 보세요.'


지금이 바로 그 때야! 작게 중얼거린 후 그 물건을 챙겨 말 안장에 꽉 맸다. 한가하게 점술가의 선물이나 뜯어 볼 시간은 없었으니까. 에일린은 테오를 데려온 뒤 서둘러 동쪽 게이트로 향했다. 저택의 하인들은 함께하지 못했다. 저택의 고용인들 까지 책임을 묻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내린 냉정한 결정이었다.


'엘랑에서 빠져나간다 한 들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이야?'


급하게 끌어 모은 병사는 백명이 채 안됐다. 이대로 게이트 밖으로 나가더라도 블라디크 공작의 백 오십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소수로 다수를 상대해서는 안된다.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전략 전술도 어느정도 힘의 크기를 맞춰 놓고 준비를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대로 나가면 붙잡힌다. 에일린은 생각을 바꿨다.


"멈추세요."


갑자기 에일린이 병력을 멈춰 세웠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고, 엘랑의 주민들은 가끔씩 창문 안쪽에서 불안한 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에일린은 부대를 둘로 나누고 란테에게 작전 설명을 한 뒤 테오와 리텔을 맡겼다. 한쪽은 에일린이 지휘하기로 했다. 병사들은 직선으로 늘어서서 블라디크 남작의 군대를 기다렸다. 그의 병력은 순식간에 게이트 안쪽으로 들이닥쳤다.


"마중 나와 있을 줄은 몰랐군. 수고를 덜었어."


블라디크 남작의 병력은 보고 받았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아 보였다. 그는 말에 올라탄 채 붉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마치 다 잡은 먹이를 눈 앞에 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뜻 대로는 안 될거다.' 에일린은 이를 악물고 말머리를 돌리며 후퇴 지시를 내렸다. 남작은 침착하게 병사 몇 명과 함께 게이트 앞을 지켰다.

미리 상의한대로 에일린은 란테와 갈라져 시가지 쪽으로 들어섰다. 남작의 병사들도 대열의 뒤를 따라 양 쪽으로 나뉘어 추격해왔다. 건물의 모퉁이를 따라 계속 시계 방향으로 돌자, 'ㅁ'자 모양으로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도는 형태가 됐다. 두 바퀴쯤 돌았을 때 적 병사들의 꼬리가 보였다. 에일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선두를 따라 앞만 보고 달리던 남작의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후방 기습에 우왕좌왕했다. 에일린의 병력은 당황한 적 병사들을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


"피해는?"

"열 두명이 죽고 일곱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나이 많은 병사가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병력의 차이를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병사의 기분과는 다르게 에일린은 씁쓸한 듯 아랫입술을 적셨다. 마을의 광장으로 이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란테가 합류했다. 에일린은 가장 먼저 테오의 안부를 살폈고 오히려 테오가 에일린을 안심시켰다. 란테가 있었기에 그쪽의 피해는 훨씩 적었다.


"이제 게이트 앞에는 남작과 소수의 병력 뿐입니다."


호밀이 한숨 돌리며 말했다. 일행은 곧바로 동쪽 게이트로 향했다. 금방 에일린을 체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블라디크 남작의 얼굴은 단숨에 일그러졌다.


"무슨 마법을 부린거냐."

"별 것 아니에요. 우리가 이 곳 지리에 조금 더 익숙한 것 뿐이죠. 이제 길을 열어 주실까요?"


란테가 선두에 섰다. 블라디크 남작도 직감으로 상대가 기사라는 것을 눈치 챘는지 한 걸음 물러서며 자세를 낮췄다.


"달아나 봤자 반역자가 이 땅에 설 자리는 없다."

"맹세하건데 저희 가문이 제국에 불충한 짓을 저지른 일은 없습니다."

"범죄자는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하지."


남작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그 때 후방에서 함성이 들렸다. 다급해진 에일린은 서둘러 남작을 뚫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동쪽 게이트 너머로 엄청난 수의 기병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에일린은 일행을 돌아보며 망연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미안해요."








프레드릭은 귀족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귀족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루츠발드 백작으로부터 에일린의 호위기사가 될 것을 지시받았을 때에는 대놓고 반항을 할 정도였다.


'내 딸아이를 부탁하네. 호위기사로는 자네만한 적임자가 없어.'

'명령입니까?'


어렸을 적 부터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기사의 소양인 웜의 발현도 누구보다 빨랐다. 그 재능을 알아봐 준 것은 백작이었고, 프레드릭은 열 세살이 되던 해에 정식 기사로 임명됐다. 백작은 프레드릭에게, 그리고 클레어의 신생 기사단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 와중에 백작부인은 병으로 죽었고, 프레드릭은 그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그는 더더욱 백작에게 충성을 다했다. 천성 탓에 주종관계 이상으로 가까워질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아니 부탁일세.'

'싫습니다.'


콧대 높은 귀족의 자제를 하루 종일 경호하는 일이라니. 상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차라리 전장에 보내지는 편이 나았다. 프레드릭은 백작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럼 어쩔수 없군.'

'네. 저는 그럼 이만.'

'명령일세. 에일린의 경호를 맡아주게.'


기억을 더듬어보면 생전 처음 받아보는 명령이었다. 프레드릭은 하는 수 없이 경호를 맡았다. 에일린은 생각보다 콧대 높은 귀족 영애는 아니었지만, 또래 남자아이들 이상의 왈가닥이었다.


'프레드릭은 다섯 명이랑 겨뤄도 이길 수 있어?'

'있습니다.

'열 명은?'

'제가 이깁니다.'


프레드릭은 열명의 기사와 동시에 겨뤄야 했다. 대결은 그가 호언한대로 어렵지 않게 이겼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대결을 보던 에일린은 그 후에 한동안 기사들과 함께 지냈다. 프레드릭은 에일린에게 조금씩 익숙해졌고, 또 한 달이 지났다.


'우리가 프레드릭을 다 이겨보네?'


이번에는 프레드릭이 열 명의 기사들 앞에 쓰러져 있었다. 반칙이다. 연무장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던 프레드릭은 생각했다. 두 명씩 팀을 이뤄 공격하고 후퇴하고, 또 다른 팀이 공격하고 후퇴하고... 기사로서는 아주 치사한 싸움법이었다. 에일린은 그게 전술이라고 말했다. 프레드릭은 나중에서야 그것이 차륜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부터 프레드릭은 에일린을 다른 시각에서 보기 시작했다. 에일린은 아주 총명했다. 전략, 전술부터 역사 정치 등 하루의 일정 시간은 반드시 책과 함께했다. 그런 에일린을 보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끓어 올랐다. 당시의 프레드릭은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호위기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저 호위기사 때려칠겁니다.'

'왜? 내가 뭐 잘못했어? 프레드릭. 이상한 싸움 하라고 안 시킬게, 결혼 하자고 조르지도 않을게. 가지마 프레드릭...'


쓸쓸한 눈으로 붙잡다가 나중에는 프레드릭을 끌어안고 울던 에일린을 보면서 마음이 쓰렸다.


'그런거 아닙니다. 그냥... 높은 사람이랑 같이 지내는게 부담스러워서요.'


핑계였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에일린을 보며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에일린에게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도 싫었다. 실제로 에일린은 무서울 정도로 아름답게 성장해 가고 있었다. 프레드릭은 그것을 잊기 위해 오로지 검술에만 매달렸다. 3년 뒤에 '최강'이라는 칭호가 붙었지만 별로 기쁘지 않았다. 프레드릭이 클레어 제1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을 무렵 백작이 그를 찾았다.


'뭡니까? 또 이상한 부탁 하려고 부르신거죠?'


백작이 운을 띄웠을 때 프레드릭은 기대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달아나지 않겠다. 그러나 백작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아무르에 가 주게.'

'파견입니까?'

'아니. 이직일세.'


백작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 같지만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말에 프레드릭은 웃지 않았다.


'다만, 계약직일세. 내가 죽거나, 내 영지에서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일이 벌어진 다음에 오면 무슨 소용입니까? 전쟁을 할 거라면 그냥 저를 선두에 세워 주십시오.'

'엘랑은 대규모의 군대를 주둔시키기에 좋지 않은 곳이지. 언제 있을 지 모르는 공격에 대비하기에 알맞지 않아. 대신 구조상 어느 정도의 병력만 있으면 장기간 농성을 할 수는 있네. 각 지의 병력이 모일 시간을 벌 수 있지. 제1기사단은 외부의 적에게 예측할 수 없는 히든카드가 되어줘야하네. 으음. 자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인가?'

'대충 알아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접니까?'

'변수가 커야 위력이 있는 법 아니겠나.'

'싫습니다. 제2기사단을 보내시던지요.'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결국 제1기사단은 백작의 명령에 의해 아무르 후작 아래로 들어갔다. 아무르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제국의 정예중에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아무르 기사단에서 경험을 쌓으며, 최강의 기사라는 미하일과 겨뤄보기도 했다. 아쉽게도 패배했지만... 후작의 차남 마르코와 다른 기사들과도 꽤 친분이 생겼다.

에일린에 대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아무르에 익숙해졌던 시기에,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 처럼 백작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아무르 후작은 크게 놀라워 하지 않았다. 루츠발드 백작도 자신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프레드릭은 미련 없이 아무르를 떠났다.

클레어 영지에 도착한 프레드릭은 엘랑을 포위한 수많은 군대를 목격했다. 그리고 병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엘랑의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백작께서는 우리 때문에 부인의 곁을 지키지 못했지."


석양이 보이는 언덕에서 오 십명의 클레어 제1기사단의 기사들은 천천히 말을 몰았다.


"그리고 우리는 백작님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 백작님의 아이들까지 그렇게 만들 수는 없지."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점점 늘어나며 말이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프레드릭은 검을 뽑았다. 그 뒤를 따르는 기사들도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가자.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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