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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리에의 서재

마샬 에일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로맨스

루클리에
작품등록일 :
2018.11.27 18:56
최근연재일 :
2019.01.18 17:2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277
추천수 :
1
글자수 :
63,284

작성
18.11.27 21:45
조회
64
추천
1
글자
11쪽

후계자들의 밤 (1)

DUMMY

모든 것은 그녀의 편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움과 총명함을 고루 갖추어 모든 이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성년에 이른 지금은 그것이 절정에 다다랐다. 어떤 이는 가문의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제국이 축복을 받은 것 이라고도 말했다.


'보거라. 우리 가문이 다스리는 자랑스러운 영지이자, 장차 네가 다스릴 땅이다.'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었으나, 그녀의 아버지는 심약하고 내성적인 둘째에게 가문을 물려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어도 그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녀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녀는 존재는 차기 클레어 가문의 주인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에일린 아가씨. 마르코 남작께서 방문하셨어요."


하녀 리텔의 말에 에일린은 인상을 잔뜩 썼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아 부족할 것 없는 백작가의 영애에게, 가장 큰 근심거리는 바로 리텔이 말하는 남작이었다.


"없다고 해주면 안될까?"

"아가씨! "


엄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하던 에일린의 대답에 리텔은 그녀보다 더욱 구겨진 얼굴로 소리쳤다.


"아시겠지만, 백작님께서 후작 가문과의 약속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셔요. 이해하시죠?"


정략결혼.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석달 전 그녀의 열 여덟번째 생일이었다. 클레어 백작은 영지의 부족한 군사력을 보충하는데 정략결혼을 미끼 삼아 아무르 후작가에 손을 내밀었다. 물론 일방적인 지원 요청은 아닌 것이, 재정 지원을 약속으로 군사력을 제공받기로 했으니 돈을 주고 군대를 사들인 셈이다. 그녀의 결혼은 두 귀족 간의 신뢰의 증표였다.


"나도 알아. 드레스 준비해줘 리텔. 화려한걸로."


리텔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 하고는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그녀의 드레스 중 화려하지 않은 것이 있던가? 잠시 고민하던 리텔은 천의 면적이 가장 적은 것을 고르기로 했다.


"오오! 에일린."


응접실에서 앉아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그가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렸는지는 주변에 나 있는 발자국의 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르코 남작은 무가의 2세 답게 다부진 몸이라 어찌 보면 위협적으로 느껴 지기도 했는데, 전체적으로 선한 얼굴이 그것을 가려 주는 듯한 인상 이었다. 리텔은 그의 외모로 점수를 매기자면 100점 중에서 90점을 주겠노라 이야기 한 적도 있었다.


"기다리셨나요?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인 점. 죄송합니다. 남작님."

"아니. 그 어떤 무례라도 용납해야 할 아름다움이군요."


머리를 정돈할 시간이 없어 한껏 풀어헤친 금색 머리는 그녀의 드레스보다도 풍성해 보였다. 리텔이 골라준 면적이 적은 민트 색의 드레스는, 여물고 있는 그녀의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내어 보는 사람이 마른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과찬의 말씀을. 저택 안은 답답하니 잠시 걸을까요?"

"에스코트 해드리죠. 레이디."


그들은 저택의 외곽을 따라 나 있는 정원을 걸었다. 마르코는 그녀와의 만남을 대비해 여러 가지 여성 귀족의 관심사를 섭렵해 왔지만, 의외로 그녀의 관심사는 전쟁이었다. 무가에서 자란 마르코가 숱하게 들어왔던 전략, 전술 이론 등은 조금 지루했지만, 생각보다 그녀가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이야기였다.


"지금같이 평온한 시기에는 필요 없지만, 과거 전쟁이 한창일 때 병법가로 이름 높은 가문이었으니까요. 아, 남작님은 이런 얘기 지루하시죠?"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다행이네요. 이번엔 남작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마르코는 고민하는 듯 하다가, 기사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진 이야기로 시작을 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도 어엿한 제국의 기사로 인정받는 남자였다. 줄곧 자신은 별 것 없다는 듯 이야기를 했는데, 에일린은 그것이 지나친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영지인 아무르에서 현역 기사로 활동하고 있다면, 제국 전역에서도 중위권 이상의 실력자라고 봐도 좋았다.


"그래서 기사가 되면 모두 웜을 발현할 수 있다?"

"아, 아닙니다. 웜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기사라고 하지 않아요. 웜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사인거죠.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마법사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이 말이죠. 그런데 에일린은 의외로 기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군요? 클레어에도 상당한 기사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를테면 클레어 제1기사단의 프레드릭 경이나, 제3기사단의 란테 경 같은."


가문에는 일곱개나 되는 기사단이 있었지만, 에일린은 기사라는 사람들과는 도통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클레어 최고의 기사라는 프레드릭은 높은 사람과는 이야기 할 줄 모른다며 그녀를 피했고, 어렸을 적 부터 그녀를 자주 보살펴 주던 란테는 지나치게 격식에 얽메이는 사람이었다.


"기사한테 인기가 없는 여자라서요."

"저도 기사인데요?"


에일린은 약점이라도 들킨 것처럼 대충 얼버무렸고, 마르코는 신경쓰지 않는 듯 기사에 대해서 열의있게 설명을 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저택 입구를 보던 에일린은 한 아이가 성밖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와 같은 금발의 짧은 머리에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귀여운 얼굴의 꼬마아이는 그녀가 몇 번을 불렀음에도 좀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테오! 어디 가니?"

"누나? 어? 마르코 형이다. 안녕! 난 마을에 갈 거야. 나중에 봐!"


겨우 돌아보는가 싶더니 테오는 손을 두어 번 흔들고는 해맑게 웃으며 달려갔다.


"죄송해요. 열 다섯이나 됐는데도 아직 아이 같죠?"


에일린은 흐뭇하게 동생의 뒷모습을 보다가 남작의 존재를 깨닫고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처남이 될 사람 아닙니까?"


남작이 유쾌하게 말하자 에일린은 얼굴빛을 흐렸다.


"남작님. 저는 아직···"


확실하게 상대를 결정 하지도 않았고 결혼의 필요성에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작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의 호의는 몹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어차피 형님은 정략결혼에 관심 없습니다. 여자에게 지목 당해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결혼을 형님이 납득할 리 없죠. 이 결혼은 당신과 나의 문제. 그리고··· 그 얘기는 지금 하지 않기로 하죠."


마르코의 말 대로 클레어 백작의 제안은 귀족사회에서 몹시 짓궂은 제안이었다. 세간에서는 에일린을 후계자로 정한 상황에서 그녀를 신부로 보낼 생각은 없고, 아무르 후작의 두 아들 중 한 명을 에일린이 간택 하여 데릴사위로 맞이해 동맹을 유지시키되, 에일린에게 작위를 물려주어 권력을 유지할 심산이 아니가 하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두 아들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를 아무르 후작이 어째서 받아들였는지, 클레어 백작이 왜 그러한 제안을 했는지 일말의 언급도 없이 진행된 혼담이었고, 아무르에서는 차남인 데다가, 에일린에게 반해 일방적으로 호감을 보이는 마르코가 버리는 패라고 이야기되고 있었다.


"그래도 좋습니다. 당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부끄러워지는 이야기네요. 저는 남작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좋은 여자가 아닙니다."


혼담이 오간 뒤로 마르코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어필했다. 이웃 영지이기는 해도, 사 나흘은 걸리는 거리를 한 달에 수차례 찾아오는 경우도 다분했다. 가다가 도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을 거라는 얘기가 들릴 정도였는데, '사랑은 요부와 결혼은 열녀와 해야 한다'라는 제국 남자들의 우스갯소리를 의식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즐거웠어요. 또 찾아 주실 거죠?"


무의식적으로 걸으며 이야기하는 도중 그들은 저택 앞까지 나와 있었다. 나쁘지는 않지만 부담스러운 남작과의 시간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다고 봐도 좋았다.


"어서 돌아가라는 말로 들리는 군요. 허락하신다면 영지에서 며칠 묵고 갈 텐데."


남작이 멋쩍은 듯 말했다.


"여자와 아이만 있는 빈 영지에 남작님쯤 되시는 분을 며칠이나 모실 수는 없습니다. 외람되지만, 다음번의 더 큰 즐거움으로 남겨주세요."


그녀는 항상 상냥한 거절로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진심이 아님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외모와 친절한 말은, 누군가 말했던 '아름다운 것은 독이 있다'라는 말을 생각나게 했다.


"다음번에는 이름으로 불러준다면 허락 하죠."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배웅하듯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였다.


"한 달 뒤. 아무르에서 후계자들의 파티가 있습니다. 그대는 관심 없겠지만, 백작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참석해주었으면 합니다."

"아직 후계자는 정해지지 않았고, 클레어의 장남은 테오입니다."


에일린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대꾸했다. 장남이지만 후계자에서 배제된 동생의 이야기는 그녀 나름대로 상처였다.


"그렇게 생각 하는 것은 당신 뿐 입니다."


말문이 막힌 에일린은 그의 선한 얼굴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노려봤다. 사실일지라도 영지의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그 사실이 더 슬프게 했다.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멱살이라도 잡고서 쏘아붙이겠다고 생각한 그녀였지만, 막상 듣게 되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상처 주려고 한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움 받고 있는데 더 미움 받겠네요."

"그 아무르 후작님의 자제씩이나 되는 분 치고는 섬세하시네요."

"저는 차남이고, 후계자도 아니니까요."


남작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버리는 패. 그것은 후작의 영지 안에서 테오의 이야기 만큼이나 당연시되는 또 하나의 금기일 것이다.


"그럼. 아무르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즐거워할 이야기를 잔뜩 가지고서 말이죠."


아쉬운 듯, 하지만 언제나의 일처럼 그는 그녀의 손등에 키스를 하고 마차에 올랐다. 에일린은 내내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싫지는 않은 사람···’


그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쯤 그녀는 그의 이름을 되뇌며 돌아섰다.

다음 번에는 이름을 불러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말

누추한 저의 글 공간에 귀중한 시간을 내 주시는 독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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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77 하무린
    작성일
    19.01.11 18:53
    No. 1

    후계자들의 모임이라...잘 보고 가요^^ 강추하고 선작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루클리에
    작성일
    19.01.11 19:43
    No. 2

    소중한 첫 댓글에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서 쓰겠지만,
    혹여 독자님이 제 댓글에 대한 부담감으로
    마음의 숙제처럼 생각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읽다가 부족함을 느끼면 혹평을 하셔도 좋고, 차갑게 내치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오늘 한 번의 관심을 잊지 않고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_ _)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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