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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리에의 서재

마샬 에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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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리에
작품등록일 :
2018.11.27 18:56
최근연재일 :
2019.01.18 17:2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291
추천수 :
1
글자수 :
63,284

작성
18.12.0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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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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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후계자들의 밤 (4)

DUMMY

"포위라구요? 누구에게?"


리텔이 화들짝 놀라며 마차 밖으로 머리를 내밀려는 것을 저지한 에일린은 애써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림잡아도 백 명은 넘는 도적떼들입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경솔했습니다."


주변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이곳은 다음 마을로 진입하기 전에 반드시 지나야할 숲이었다. 마을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에 습격에 미처 대비하지 않은 것이 불찰이었다. 군대를 피해서 민가나 허술한 상단을 약탈하는 도적들이 이렇게 큰 무리를 지어 정규군을 습격하는 경우 역시 예상 밖이었다.


"기사가 호위하는 귀족의 마차를 습격하다니, 정신 나간 도적들이 다 있군."


도적들이 가까워지자 란테가 말했다. 그러자 도적들 중 한명이 앞으로 나왔다. 왼뺨에 흉터가 길게 나 있는 날렵한 얼굴의 남자였는데, 그가 걷는 길을 따라 도적들이 슬금슬금 길을 내어 주는 것으로 보아 무리의 리더쯤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백 오십명이다. 이 멍청한 자식아. 네가 잘난 기사라도 이 숫자를 어쩌지는 못한다."

"네놈들도 무사하지는 못 할 거다."

"하? 마법사라도 되시나?"


도적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기사를 포함한 정규군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런 습격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마차 안에 있는 것은 누구냐?"

"네가 안다고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분이 아니다."

"허세 부리지 마라 개자식아. 안에 있는 사람이 상등품의 여자라면 살려 줄 수도 있어."


그는 험악한 말을 쏟아내며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도적들과의 거리는 말이 두 번 도약하면 닿을 거리. 정식 기사가 된 지 스무 해가 넘은 란테에게 별 감흥도 없는 도발이었지만, 듣고 넘긴다고 해서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너 따위에게 죽을 거라면 기사가 되지도 않았다. 전투준비!"


란테가 외치자, 부관인 밀란이 복창하며 말고삐에 힘을 주었다. 병사들은 긴장하며 무기를 고쳐쥐었지만 백작의 정예병 답게 누구도 겁먹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멈추세요."


란테가 말을 몰려는 순간 에일린이 제지했다.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자 도적들이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옆 선이 트인 드레스에서 매끈한 살결이 드러나자 그들의 시선도 노골적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에일린은 최대한 느긋한 동작으로 손짓하며 란테를 불렀고, 그 사이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밀란은 그 광경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란테경. 현실적으로 말해주세요. 이길 방법은 있나요?"


에일린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란테는 주변을 둘러봤다. 병사들은 가려 뽑은 정예병들이었지만 도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에일린을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위치도 좋지 않았다.


"패배는 조금도 염두해 두고 있지 않지만, 이대로는 아가씨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란테는 솔직하게 대답했고, 에일린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마차를 버린다면 포위를 뚫을 수는 있겠죠?"

"다소 희생이 있을겁니다. 그리고 저쪽도 기병이 많아서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뿌리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다른 귀족의 영지였지만 도적들을 꼬리처럼 달고 난데없이 마을에 진입할 수는 없었다. 에일린은 챙겨두었던 지도를 살폈다. 다행히도 도적들은 몇 명이 이쪽을 노려보기만 할 뿐 달려들지 않고 있었다. 얼핏 들리는 소리로는 여자를 누구에게 넘기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전에 하천을 지났군요. 크기는 어느정도죠? 지도만으로는 알기 어렵네요."

"수심도 깊어 보이고 폭도 하천 치고는 넓은 편입니다."


란테는 처음에 질문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에일린이 미소를 지으며 지도에서 다리가 표기된 부분을 짚어내자, 그는 짧게 탄성을 질렀다.


"돌파한 다음 산개하도록 지시해주세요. 그 다음 다리 위에서 만나도록 해요. 란테 경이 후미를 맡아 아주 조금만 시간을 끌어 주셨으면 해요."

"저희는 도적들에게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백작께서 가려 뽑은 정예 중의 정예입니다."


밀란이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끼어들자, 에일린은 고개를 저었다.


"소수로 다수와 싸우지 말라. 할아버님의 말씀입니다. 란테경, 후퇴합니다. 밀란경. 나를 지켜주세요."


마차를 끌던 두 마리의 말들은 어느 새인가 마차와 분리되어 있었고 한 마리에는 이미 마부가 올라타 있었다. 에일린이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시해 둔 것이었다. 그녀가 말에 올라타자 리텔이 따라서 탄 후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지금 물러난다면, 훗날 당신들의 용기에 좋은 평가가 있도록 도와주겠습니다. 길을 열어줄 생각은 없나요?"


도적들을 한바퀴 둘러본 에일린이 말했다.


"입고있는 천 쪼가리를 다 찢어 놓은 다음에 생각해보마."


에일린은 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곧바로 손을 들었고, 신호와 함께 밀란이 선두로 달려 나갔다. 그 옆으로 병사들이 화살촉 모양으로 대형을 갖추자 에일린이 그 뒤를 따르고, 란테가 가장 뒤에 섰다. 에일린은 이를 악 물었다. 승마를 즐겼지만, 이렇게 격하게 말을 몰아본 적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기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고삐를 놓칠 것 같았다.

밀란이 말을 탄 도적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고, 양 옆의 병사들이 창을 찔러 넣으며 말을 타지 않은 도적들을 짓밟았다.


"란테! 궁수를 공격하세요!"


에일린은 도적들 사이에서 활을 매고 있는 몇 명을 눈 여겨 보았다. 그녀의 말에 란테는 즉시 안장에 걸려있는 랜스를 집어 던졌다. 랜스는 쉬익 소리를 내며 일직선으로 날아가 활시위를 매기던 궁수의 어깨를 관통했다. 란테는 곧바로 좌측에서 찔러오는 도적의 죽창을 빼앗아 두 번을 더 투척했다. 이 모든 동작은 말이 열 발자국을 채 뛰기 전에 이루어졌다.


"계집애를 잡아라!"


빠른 돌파에 길이 열리며 원형의 포위망은 쉽게 흐트러졌다. 도적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에일린의 병사들은 지시에 따라 사방으로 흩어져 달렸다. 도적들은 흩어지는 병사들을 내버려 두고 에일린을 쫒았다.

수십 마리의 말들이 줄지어 숲속을 달리는 광경이 연출됐고, 에일린은 숨 가쁘게 말을 몰았다. 그녀의 곁에는 전방으로 밀란. 양 옆으로 두 명의 병사 뿐 이었다. 기사 밀란이 든든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추격해 오는 도적은 족히 오십이 넘어 보였다. 후방을 맡았던 란테는 보이지 않았다.


"놓치지 않는다."


예의 도적단 리더가 소리치며 집어 던진 단검이 에일린의 오른쪽에 있던 병사가 타고있는 말 엉덩이에 꽂혔다. 달리는 말 위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도 나름 대단한 기예를 보여준 셈이었다. 말과 함께 고꾸라진 병사가 내지르는 비명을 들으며 에일린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가 처음 승마를 배울 무렵 달리는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지 못해 낙마할 뻔 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아가씨. 앞을 봐요!"


리텔이 등 뒤에서 소리쳤다. 고삐가 느슨해진 말은 커다란 바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옆에서 나자빠진 자신의 동료를 봐서 인지 쫓기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것 인지, 정신없이 달리느라 앞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에일린은 황급히 고삐를 잡아당겼고, 아슬아슬하게 바위가 가까워 질 때 리텔이 비명을 질렀다.

말은 자신의 키보다 조금 작은 바위를 아슬아슬하게 뛰어 넘었다. 에일린은 둥실 하고 몸이 떠오르는 느낌을 감상하다가 착지와 동시에 충격으로 윽 하고 신음을 흘렸다.


"아가씨한테 이런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리텔이 어안이 벙벙해 져서 말했다.


"자꾸 말 하지 마 리텔. 혀 깨문다."


도적들도 놀란 듯 했으나 추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사이 더욱 바짝 따라붙었다. 단검이 몇개 더 날아 왔지만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음에 안심한 에일린은, 리텔에게 느슨해 진 팔을 꽉 잡으라고 말한 뒤 밀란의 뒤를 따라 숲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로 달렸다. 시원한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가자, 등을 타고 리텔의 떨림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밀란이 독려하듯 말했다. 그의 말 대로 얼마 안 가서 시야가 탁 트이며 제법 넓은 하천이 보였다. 에일린 일행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멈춰 섰다. 서너 명이 지나갈 정도로 폭이 넓지 않은 다리를 밀란과 병사가 막아서자 도적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에일린은 득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곧 산개했던 나의 병사들과 기사가 도착할 겁니다. 이 다리를 뚫고 내 드레스를 찢을 수 있을 지 한번 볼까요?"


긴장이 풀리자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끈적하고 기분 나쁜 느낌에 에일린이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하얀 드레스가 반쯤 진홍색으로 얼룩이 져 있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허리에 감긴 팔이 풀리며 리텔이 말에서 떨어졌다.


작가의말

누추한 저의 글 공간에 귀중한 시간을 내 주시는 독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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