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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리에의 서재

마샬 에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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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리에
작품등록일 :
2018.11.27 18:56
최근연재일 :
2019.01.18 17:2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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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
글자수 :
63,284

작성
19.01.0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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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Countess (3)

DUMMY

다음날. 간단한 아침 식사 후에 바로 출발 준비를 하던 에일린은 문득 에단 일행이 생각나서 여관 주인에게 물었지만, 그들은 이미 새벽녘에 여관을 떠나 있었다. 에일린은 그들이 준 선물을 조심스럽게 챙겨 여관을 떠났다.


"그 보자기에 싼 수상한 물건은 뭐에요?"


마차에 오르자 마자 리텔이 '마술 지팡이'의 정체를 궁금해 했다.


"말 그대로 수상한 물건. 부탁하건대 절대 손대지 말아줘."

"마르코님이 준거에요?"


에일린은 자세히 설명해 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르코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 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클레어 백작령의 수도 엘랑의 외곽이 점점 가까워 졌다. 북부의 큰 강으로 이어지는 호수를 메우고, 도시를 둘러싼 물길만 남겨놓아서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루시안 제국 이래 침략을 받은 적은 없으나, 제국이 온전한 모습이 아닌 전쟁의 시대에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 다운 모습이었다.

엘랑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 순간 만큼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이 제일 좋네요."


리텔이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도시의 중심에 외벽만 남아있는 성 안에 들어섰고 한참을 지나서야 에일린은 성벽 안쪽에 위치한 클레어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에일린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고용인 한 명이 서둘러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잠시 후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집사 호밀이었다. 그는 여러 고용인들과 함께 나왔는데, 떠날 때와는 다르게 아주 수척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원래부터 마른 편이었지만 며칠 굶은 사람처럼 얼굴이 핼쑥해 보였고, 항상 단정하게 넘긴 희끗한 머리도 정리되지 않은 채 였다. 눈밑도 퀭한 것이 며칠 앓은 것 처럼 보였다.


"호밀. 안색이 좋지 않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


호밀의 눈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세히 보니 호밀이 유독 심한 모습이었지만 시종들 대부분 그와 비슷해 보였다.


"...제 입으로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직접 확인 하셨으면 합니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에일린은 순간 테오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차마 묻지도 못한 에일린은 땀이 흐르는 양 손에 주먹을 쥐고 호밀의 안내를 받아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앞장 선 호밀에 의해 백작의 방문이 열렸다.


"아버지?"


루츠발드 클레어 백작은 자신의 방 안에서 숨을 거둔 채였다.

얼굴이 창백하고 입술이 파랗게 말라 붙어 있는 것 외에는 잠이 든 것처럼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분명 그는 죽어 있었다.

에일린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몸 전체가 떨려왔다. 눈앞이 아득해졌고 에일린은 털썩 주저 앉았다. 리텔도, 마르코도 밀란도 란테도 그녀를 부축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말해봐요."


갈라진 목소리로 에일린이 말했다.


"아버지가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 루시안에서 가장 잘난 귀족이 어째서 이따위 모습을 하고 외출했던 딸을 맞이 해야 하는지 설명 하세요!"

"에일린....."


마르코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에일린은 거칠게 손을 쳐 냈다.


"테오... 테오는 어디있죠?"

"방에서 나오지 않으십니다."


에일린은 곧장 테오의 방으로 달려갔다. 거칠게 방 문을 열자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테오의 모습이 들어왔다.


"누나... 왜 이제 왔어? 아버지가..."


테오의 눈은 심하게 부어 있었다. 눈물 콧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에일린을 올려다 보는 모습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에일린은 테오의 작은 머리를 감싸안고 겨우겨우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테오. 미안해..."


에일린도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사흘이 지났다. 에일린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호밀이 에일린의 동의를 얻어 치른 아버지의 장례에도 나가지 않았다. 가끔씩 테오의 방에서 함께 울다가 지쳐서 돌아오는 일 외에는 방에서 한 발 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리텔도 오지 못 하도록 했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네요. 후회는 없나요?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 걸 그랬죠?'


에일린은 백작이 때렸던 뺨을 어루만졌다. 생전에 안아준 적 한 번 없는 손으로 때린 곳의 감촉이라도 기억하려는 것처럼 계속 만지작 거렸다. 애써 없는 추억을 되새겨 보려고 해도 딱딱한 얼굴 외에는 별로 기억나는 것도 없었다. 결국은 싸늘한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본 것 같은 쓸쓸한 눈빛 만이 되살아났다. 또 감정이 치밀어 올라 울기를 반복했다.


"몸 상하겠어요."


결국 마르코가 문 밖을 지키던 경비들을 몰아내고 억지로 들어왔다.

에일린의 기름진 머리는 쥐어뜯은 것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퉁퉁 부은 얼굴에 볼만 홀쭉하게 들어가서 흉한 모습이었고, 옷도 여기저기 얼룩이 가득했다.

마르코는 들고있던 스프와 차가 올려진 쟁반을 테이블에 놓고 에일린의 옆에 앉았다. 에일린도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일 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어요."


에일린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눈으로 창 밖을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의 명성에 부족하지 않은 아들이 되려고 했겠죠. 이해해요. 하지만 그만큼 가정에 충실하지는 못했죠.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을 때 아버지는 뭘 하고 있었는지 아세요? 고작 기사단 인재를 착출한다고 싸돌아다니고 있었죠. 웃기죠? 자기도 지켜주지 못하는 한심한 기사단을 키우겠다고 돌아다녔다니. 그리고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보름 후에나 돌아왔죠. 저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그 일로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것도 못봤어요. 이렇게 죽을거였으면서... 바보같지 않나요? 루츠발드 P 클레어 백작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그들은 다 어디있죠?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온 돈과 인맥은 왜 아버지를 지켜주지 못했죠? 아버지는 여태 무엇을 위해서 일 해왔던 걸까요? 저는 무엇을 위해서 그동안 이렇게 노력해 왔던 거죠?"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처럼 메마른 눈에서 또 다시 눈물이 한 방울 흘러 내렸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누구보다 아름다운 딸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꾸몄고, 누구보다 똑똑한 딸이 되기 위해서 많은 책을 섭렵했다. 분명 아버지는 나를 기특하게 여겼겠지... 그것은 단순한 바램이었다. 결과적으로 딸의 무엇 하나도 칭찬해 준 적이 없었다. 자신의 뒤를 따라와 보라는 것처럼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 그게 아버지였다. 외로움이 한 없이 밀려들어왔다.


"에일린.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아요. 제가 에일린의 힘이 되겠습니다."


마르코가 말했다. 그는 어느때 보다 강한 확신이 담긴 눈으로 에일린을 보고 있었다.


"그 이야기 인가요? 이제 아버지는 죽고, 정략 결혼은 의미도 없어졌어요."

"당신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어째서 의미가 없나요? 당신은 아직 혼자가 아닙니다. 지켜드리겠습니다. 버려두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죽지 않을겁니다."


그가 두 손을 잡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당신을 외로움 속에 버려두지 말아요."


그는 항상 진심이었다. 명예와 부를 노리고 청혼해 오는 속이 검은 타입도 아니었고, 외모만을 보고 하룻밤을 청해오는 무뢰한도 아니었다. 그래서 흔들렸다. 사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랬는지도 몰랐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순수한... 그에 비해서 자신은 어떤가?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제쳐두고 그에게 상처를 줄 자신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많이 생각해 봤어요."


에일린은 뺨을 소매로 닦아내며 말했다. 이 순간 추레한 자신의 모습이 그에게 어떻게 보일까.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강한 남성을 느낄 수 있는 크고 단단한 손. 에일린은 그의 손을 살며시 밀어 냈다.


"사람으로서 아니, 한 사람의 여자로서 당신을 좋아합니다."


눈이 반짝거렸다. 그 동안 가장 하고싶었던 말을 전했음에도 편하지 않았다. 듣는 마르코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에일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크게 숨을 한번 쉬었다.


"그래서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짓궂은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던 마르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르코는 대답하지 못했고, 에일린도 답을 듣길 바라지 않았다.


"미안해요."


마르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에일린은 다시 몸을 웅크리고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양 팔을 세게 움켜쥐었다. 홀로 남은 방에서 또 다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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