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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리에의 서재

마샬 에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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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리에
작품등록일 :
2018.11.27 18:56
최근연재일 :
2019.01.18 17:25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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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63,284

작성
18.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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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후계자들의 밤 (8)

DUMMY

후작의 저택은 클레어 저택과 달리 홀이 아주 넓었다. 평소라면 기사들의 연무장으로 써도 될 것 같은 넓은 크기의 홀에는 수많은 귀족가의 자제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에일린은 아침 일찍부터 리텔의 도움을 받아 예쁘게 차려입은 드레스가 아까울 정도로 가장 구섞 테이블에 앉아 그들 하나 하나를 관찰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백 명이 넘는 귀족들 사이에서 그녀가 기억하는 얼굴은 스무명 남짓했고, 나머지는 본 적도 없거나 봤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에일린이 기억하는 사람 대다수는 남자였고, 그들 모두 청혼을 하러 클레어 영지를 방문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에일린은 그 사실 만으로도 이 자리가 몹시 불편했다.


"이런, 사교를 위한 모임에서 당신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에일린에게 가장 처음 접근한 것은 제국 서쪽 벨로루프 가문의 백작영애였다. 뚱뚱하기로 소문난 가주의 딸 답게 드레스 코르셋이 터질듯한 체형이 인상적이었다.


"세냐 N 벨로루프. 제국 형편이 어려운 와중에도 영지 살림이 아주 넉넉한가보군요. 다행이네요."

"어디의 빈곤한 영지들과는 다르게 재정이 탄탄하니까요. 아! 약혼했다는 소식 들었어요. 이중 약혼까지 하면서 후작가와 연을 맺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알아요? 그 고고한 에일린이 제물이 되다니!"

"물려받은 외모로는 안아줄 사람이 없어서 치마 속을 보여주는데 돈을 지불해야 하는 분의 처지부터 위로하고 싶군요."


세냐의 처진 볼살이 위아래로 흔들렸지만, 에일린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노려보며 와인을 한모금 마셨다. 가식 뿐인 귀족 모임에서 적을 두는 일이 세냐에게는 흔치 않은 일 일지 몰라도 에일린에게는 충분히 익숙한 상황이었다.


"언행을 조심하는게 좋아요. 내 말 한마디면 아버지가 클레어와의 무역을 중단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저희 아버지는 제가 이럴 줄 알면서도 모임에 내보내시는 분이니까. 그런데 댁에 가서 벨로루프 백작님께 어떤 모욕을 당했는지 설명하시려구요?"


벨로루프 영지는 루시안에서 손꼽힐 정도로 풍족한 도시였다. 거래 대상에는 다수의 귀족가문, 그리고 클레어 가문도 포함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에일린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벨로루프 백작이 얼마나 딸 바보인지는 몰라도 그다지 명분도 없는 다툼에 거래를 중단할 만큼 신용을 업신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피차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는 수준의 대화였다.


"루시안에서 가장 화려한 꽃과 가장... 가치있는 꽃이 한 자리에 있군요."


눈싸움을 벌이는 에일린과 세냐 사이로 한 남자가 비집고 들어왔다. 긴 머리를 차분하게 빗어 내린 날렵한 인상의 남자였는데, 미하일이 강인한 전사의 표본이 되는 느낌이라면, 이 남자는 노련한 정치꾼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키도 훤칠하고 에일린의 주관에서는 잘생긴 축에 들었다. 아까 관찰하고 있던 사람들 중 가장 여러 사람과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루지아의 에단 이라고 합니다. 벨로루프 백작영애. 그리고 클레어 백작영애 맞지요?"

"최근에 왕성한 활동을 하며 작위를 얻은 그루지아 백작님의 외동아들이군요."


세냐가 먼저 아는척을 했다. 에단은 활짝 웃어보였고 에일린은 세냐의 표정만으로 그녀가 첫 눈에 그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아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아버님은 벨로루프와도 좋은 관계가 되길 바라시죠. 그 부분에 대해서 지금 따로 자리를 가졌으면 하는데 어떠신지?"


세냐는 입가를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에 걸린 입꼬리를 가리는 듯한 모습에 에일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에단의 속셈은 뻔했지만 세냐를 데리고 가 준다는 것은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나중에 작은 감사표시라도 받으러 오겠습니다.'


그는 에일린의 마음속을 읽기라도 한 듯이 자리를 뜨기전에 작게 속삭였다. 에일린은 즉각 평가를 수정했다. 그는 구렁이같은 남자였다.

에단과 세냐가 간 뒤로도 몇 명이 에일린을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세냐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고 에일린도 세냐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대했다. 보통은 이런 자리에서 춤을 청해오기 마련이었는데, 약혼 이후에는 그런 일 마저도 없어졌으니 나름대로 편한 일이었다. 마르코는 주최자로서 여러가지로 분주한 듯 보였다.

예상했던대로 파티의 대부분은 무료하게 지나갔다. 낮시간은 주로 클레어에 우호적인 귀족 자제들과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고 밤에는 마르코와 함께했다. 그는 낮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 하며 거듭 사과 했다. 정작 에일린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귀중한 시간을 내서 아무르를 찾아주신 차세대 귀족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까지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라며, 또 개인적으로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발표 하려고 합니다."


마르코가 귀족들을 한데 모은 자리에서 이야기했다. 음악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에일린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가장 구섞자리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형제인 미하일과는 다른 선한 눈매에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얼굴이 조명을 받아서 어느 때보다 더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저의 형님인 미하일 J 아무르 남작의 뜻에 따라 에일린 P 클레어 백작영애와의 약혼 파기를 선언합니다."


조용하던 홀이 술렁거렸다. 불빛이 하나 둘 씩 꺼지고 에일린이 앉아있는 테이블 근처는 더욱 환하게 밝아졌다. 마르코가 천천히 걸어와 에일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마르코 J 아무르가 에일린 P 클레어에게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나와 결혼해 주세요."


음악 소리가 끊겼다. 에일린은 스스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당장 거울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 * *






"지금 제가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3층의 테라스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에일린이 말했다.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에일린. 당신을 가지고 싶습니다. 만지고 싶고 안고 싶어요. 그걸 위해서라면 가문도 형제도 기사단도 모두 포기해도 좋습니다. 이 마음을 알 수 있나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마르코. 당신을 좋아해요.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가요? 저는 아프지 않아요. 저를 만나면 설레이고 진정되지 않아서 힘든가요? 저는 당신을 만나면 편안하고 안정이 됩니다. 이걸 사랑이라고 하나요? 저는 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깨고 싶지 않습니다."


바람이 한차례 세차게 불었다. 금빛 머리카락이 흔들거리며 조금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에일린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달빛을 등지고 서 있는 마르코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늘. 당신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에일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신도 내 몸을 원할 뿐이었나요? 하룻밤이라면 만족할 건가요?"

"에일린. 오해하지 말아요.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그 감정이 우정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으로 깨지지 않을 감정이라고 믿어요.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밤. 그것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고, 그 사이 다른 테라스 곳곳에서는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이야기를 하기에 적절한 장소는 아니네요."


에일린은 허탈하게 웃었다. 둘은 결국 에일린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갈아입는건가요? 지금?"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는 에일린을 보며 마르코가 당황한 듯 물었다.


"그럼 이 불편한 드레스를 밤새도록 입고 있으라구요? 저는 그런짓 못해요. 뭐해요? 옷 갈아 입는 걸 보고 있을건가요?"

"미안해요."


마르코는 등을 돌렸다. 천자락이 살결을 타고 내려오는 소리에 마르코는 귀까지 막아버렸다.


"이제 다 됐어요."


에일리는 살결이 반쯤 비치는 얇은 천의 잠옷을 입고 있었다. 마르코가 눈을 어디다 둬야 될 지 몰라서 당황하는 얼굴은 꽤나 재미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마르코는 오빠같이 편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울었어요?"


마르코의 뺨을 타고 눈물 자국이 진하게 새겨져 있었다. 눈가도 아직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선한 얼굴에 눈물이 고여있는 모습은 몹쓸 짓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게 만들었다.


"이쪽으로 와요."


에일린은 마르코를 붙잡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

"쉿. 조용히."


머리를 당겨 가슴에 끌어안자 마르코는 숨이 멎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에일린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심장이 당신처럼 뛰고 있나요?"

"아닙니다."

"당신은 이게 사랑이라고 했죠? 솔직히 말할게요. 저도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더 두려워요."

"오늘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에일린이 마르코의 뺨을 가슴에 문질러 눈물자국을 지웠다. 달빛이 방을 환하게 비췄고, 이번에는 에일린이 달을 등지고 누웠다.

후계자들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있었다.








마샬 에일린 - 후계자들의 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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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ountess (5) 19.01.11 23 0 7쪽
12 Countess (4) 19.01.10 17 0 8쪽
11 Countess (3) 19.01.08 13 0 9쪽
10 Countess (2) 19.01.07 13 0 8쪽
9 Countess (1) 18.12.19 10 0 16쪽
» 후계자들의 밤 (8) 18.12.13 31 0 10쪽
7 후계자들의 밤 (7) 18.12.13 1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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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후계자들의 밤 (5) 18.12.10 13 0 12쪽
4 후계자들의 밤 (4) 18.12.06 17 0 9쪽
3 후계자들의 밤 (3) 18.12.03 17 0 10쪽
2 후계자들의 밤 (2) 18.12.03 20 0 7쪽
1 후계자들의 밤 (1) +2 18.11.27 6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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