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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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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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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45
추천수 :
263
글자수 :
152,136

작성
15.04.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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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4. 뱀과 거북이와 현무 (2)

DUMMY


그대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테지만, 청호와 금차, 흑주의 발걸음은 묶여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이 한 밤중에 바깥으로 나가시겠다는 건 아니시죠?”


노인의 말에 따라들어왔던 뚜껑쪽을 보았더니 희미하게나마 새어들어오던 빛은 온데간데 없고 어둠이 드리워졌다. 청호가 못미더워 뚜껑을 열자 그 위로는 눈부시게 빛나는 달만이 세상을 커다랗게 비추일 뿐 그 어느것도 생명의 냄새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한들 더 이상 지체되었다가는 정말로 사신들 무리에서 떨어져 명나라까지 갈 수 있는 길마저 찾지못할 가능성이 있었으니, 청호가 뒤돌아보며 흑주와 금차에게 어서 떠나자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노인이 애초에 그들을 말렸던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던 까닭에.


“밤마다 정신을 잃고 날뛰는 괴수가 있는데, 젊은 청년들도 맥을 못추고 몇 명이 잡혀갔을 정도로 사납고 온정이라곤 없는 존재요. 보통 우리는 동물들이라면 대화부터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주의지만, 그 괴수만큼은...”


노인의 말에 청호가 천천히, 벽계단을 타고 도로 내려온다. 뚜껑은 다시 저절로 닫힌다. 어스름하던 달빛이 차단되었다. 노인은 여전히 처치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지금 나가시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청호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게 신수가 둘이나 있는데도 말입니까?”


흑주와 금차가 깜짝 놀라 청호를 바라본다. 그 시선을 오롯이 느끼면서도 청호는 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노인이 슬쩍 고민하는 듯 하다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괴수의 힘에는 정기라곤 없습니다. 그 사악한 기운에 현무청년들이 여럿 붙어도 이겨내질 못했으니 금룡과 흑주작이라고 한들 다른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지껏 이상하고 괴기하게 힘이 넘치는 자들을 잘 물리쳐왔는데요.”


청호의 말에는 단호함이 있었다. 금차는 은근히 자신과 흑주의 힘을 믿는 청호에게 갑자기 이상한 동료애가 솟는 것을 느꼈고, 흑주는 그것이 살짝 두려웠다. 금차야 청호에게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다가갔을지언정 흑주는 청호가 그다지 반갑지않은 처지였다. 달리 갈 곳도 없고 그리 미운 한룡의 아들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여즉 지켜준 것이었으니 언제 흑주가 떠난다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흔들리는 흑주의 눈에 청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들어찬다. 보아하니 신수들과 그래도 가까운 사이인 것 같은데 그들이 다칠지도 모르는 길을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채 할거냐는 노인의 설득에 결국은 넘어간 것이다.


“아침이 밝으면 바로 떠나겠습니다.”

“잠자리준비는 저희가 해놓겠으니 부담가지지말고 머물다 가시지요.”

“신세를 지게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아닙니다. 처음에 오해했던 점 사죄드립니다.”


땅에 고개라도 박을 기세로 서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청호와 노인을 번갈아보던 금차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벽계단을 가르키며 흑주를 쿡쿡 찌른다. 흑주가 시선을 옮기니 벽계단을 타고 오르는 두 명의 청년들이 눈에 띈다. 밝게 웃는 얼굴로 소녀현무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청년들은 벌써 뚜껑에 다달았다. 활짝 열어보니 아까보다도 더 지상에 가까이 내려온 달이 눈이 부시다.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산등성이너머로 들려오는 듯도 하다. 청호가 반사적으로 뒤돌아보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다. 노인이 무덤덤하게 답한다.


“저것이 그 괴수가 밤마다 내는 울음소리입니다. 소리만 들어서는 마치 어미라도 잃어 슬퍼서 내는 울음소리같지만, 눈만 마주치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저 청년들이 밖으로 나가도록 내버려두실 겁니까?”

“몇 남지않은 군인들입니다. 혹여나 여즉 길을 헤매고 있는 무리들이 있으면 새 터전이 이 곳이라고 전해주기 위해 밖에서 보초를 서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현무의 습성대로 겨울이 찾아와 식량이 떨어질 때즈음에 노인은 무리를 위해 길을 나섰다고 했다. 하지만 이 근방에서 매일밤 게을리하지않고 찾아와 청년들을 낚아채가는 괴수 때문에 멀리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어느 터를 찾던 괴수의 눈에 띄이고 말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땅굴을 파게 된 것이란다. 하지만 긴 이동 중에 행렬에서 탈락된 자들도 있었고, 처음부터 따라오지못했던 심약한 자들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괴수들과 싸우며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행방불명이 된 가장들도 있었다고 했다. 노인은 아직도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며 희뿌연 수염 너머로 흐릿하게 눈물을 지었다. 잠자코 듣던 금차가 그래도 영 군인들이 걱정이 되는지 한 가지 묻는다.


“저러다 목숨이라도 잃으면요.”

“그래서 늘 둘씩 짝을 짓습니다. 모든 방향을 다 감시하여 이상한 낌새가 있을 때 바로 돌아오기 위함이지요. 이렇게 보초를 서기로 결정을 내린 후에는 더 이상의 희생은 없었습니다.”


그래봐야 허술한 것 같다고 금차는 생각했지만 확고한 노인의 말에 더 어쩌지못하고 만다.


금차는 돌이켜보건데 이 때 끝까지 노인의 말에 토를 걸어 보초를 서던 청년들을 도로 끌어내려왔어야했다고 후회를 하게 되지만, 자신이 그럴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로, 청호의 결정을 따라 흑주와 함께, 노인이 마련해준 잠자리로 이동하여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차가운 천정의 기온이 내려앉음에도 끄떡없이 체온을 유지해주는 도톰한 이불을 덮고 있노라니 잠이 사르륵 쏟아졌다. 금차는 괴상한 꿈을 꾸었다. 난데없이 현백이 나타나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그의 손을 잡고 도와달라 간곡히 청하는 것이 아닌가. 현백은 금차를 어린아이보듯 돌봐주면 돌봐주었지 여태껏 단 한번도 금차에게 부탁이란 것을 했던 적이 없었고, 금차의 머릿 속에 현백이란 자는 그런 것을 할 법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 진심어린 눈빛을 금차가, 아침이 밝아와 눈을 떴음에도 쉬이 잊어버릴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벌떡 몸을 일으켰더니 이마에 열이라도 나는 듯 후끈후끈하였다. 생각을 당췌 떨칠 수가 없어 옆자리를 더듬었더니 흑주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고 없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꿈 속에서 나왔던 풀밭은 없고 진흙냄새 풀풀나는 적토의 벽만이 금차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 여즉 조용히 단꿈에 빠져있는 청호가 혹시나 저 때문에 깨어나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빠져나온다. 멀리 가지않고서도 금차는 흑주를 발견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벽을 등지고 선 흑주가 팔짱을 끼고 바닥을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든다. 그 인기척의 주인이 금차임을 깨닫고는 표정을 굳힌다.


“혹시 너도 꾸었느냐.”

“어떤 것을?”

“꿈에 현백이 나왔다.”


흑주의 말에 금차의 얼굴에 혈색이 가신다.


“처음에는 서나를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 때문에 현백을 생각하다 꿈에까지 나온 게 아닐까 했는데...”


흑주가 더 말을 잇기 전에 금차가 더듬거리며 말을 받아친다.


“혀... 현무는 다른 현무들을 부르고, 다른 현무들은 또 다른 현무들을 부를 수 밖에 없다고 현백이 그랬지.”

“그래. 그 괴수라는 것이 자꾸만 현무들을 찾아와 해치는 것을 보면 내 생각에는...”

“...”

“아니다. 내가 괜한 소릴 했구나. 꿈자리가 뒤숭숭했기에 하는 소리다.”


자세를 바로 하고 등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낸 흑주가, 청호가 잠들어있는 곳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그 뒷모습에다 대고 금차가 소리친 것은 조금 후의 일이었다.


“현백이 꿈 속에서 도와달라 하였다!”


흑주가 돌아본다. 마구 흔들리고 있는 까만 눈동자가 대신 말하고 있었다. 똑같은 꿈이라고.




서둘러 벽계단을 타고 올라가 뚜껑을 짚었다. 새벽의 찬기운이 뚜껑과 흙벽의 사이를 뚫고 흑주와 금차의 손을 차갑게 식혔다. 아랑곳않고 끼익 뚜껑을 밀어 열었더니 밝은 듯 어두운 듯 그 중간즈음 될법한 어둑한 빛이 슬금슬금 새어들어왔다. 안개가 낮게 깔린 지상 위에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낑낑거리며 올라와 뚜껑 옆에 발을 디디고 선 흑주가 소매자락을 정리할 때에, 금차는 제 소매에 묻은 흙을 털어낼 생각도 없이 넋을 놓고 만다.


“흑주.”

“왜.”


그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적막에서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을런지도 모른다. 금차의 시선을 따라 옮긴 흑주의 눈에는 이제는 하얗게 빛나고 있는 축축한 흙 위로 흩뿌려진 핏자국과 그 주변에 원래의 형체를 잃고 조각이 난 채 굴러다니는 청년들의 시체가 잔인하리만치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질끈, 흑주는 눈을 감는다. 금차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청년들의 잔해를 주워모아 공허한 눈동자 위로 손바닥을 옮겨 눈꺼풀을 덮어주었다. 명복을 빌듯 합장을 한 뒤 고개를 숙이는 금차의 뒤로, 흑주는 여전히 눈을 뜰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현백의 짓이지.”


금차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뒤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얇게 뜬 눈으로 흑주가 소리없이 금차의 말에 동의를 하듯 입술을 질끈 깨문다. 현백이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만한 성품이 아니었다. 날 때부터 동물과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타고난 성인이었다. 하지만.

흑주가 다시금 용기를 내어 눈을 굴려본다. 금차가 그러모은 시체의 파편은 뱀의 독니가 깨문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것뿐이었다면 흑주가 현백의 짓이라고 단언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현무들에게도 뱀의 독니를 쓰는 것은 어렵지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시체들의 어깨를 뚫은 독니의 구멍 사이로 배어나오고 있는 하얀 독은, 현백만의 것이었다. 본디 현무들의 독은 피처럼 붉은색이어야 마땅했다. 사방신이 되고 얼마 지나지않아, 나머지 반신을 찾고서 결국은 뜻하지 않은 길에 내놓인채 제 능력을 휘둘러야만 했던 현백이 보였던 모습이 흑주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현백이 부린 뱀의 이빨 사이로 흐르던 끈적끈적한 하얀색의 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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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4. 뱀과 거북이와 현무 (1) 15.04.20 246 5 12쪽
28 3. 소금강의 인어 (7) 15.04.16 133 5 12쪽
27 3. 소금강의 인어 (6) 15.04.15 383 6 12쪽
26 3. 소금강의 인어 (5) +2 15.04.14 308 6 11쪽
25 3. 소금강의 인어 (4) +2 15.04.13 159 4 12쪽
24 3. 소금강의 인어 (3) +2 15.04.09 276 10 10쪽
23 3. 소금강의 인어 (2) +2 15.04.08 289 5 12쪽
22 3. 소금강의 인어 (1) 15.04.08 271 6 10쪽
21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6) +4 15.04.06 270 10 13쪽
20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5) +2 15.04.02 272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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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3) +2 15.03.31 376 8 13쪽
17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2) +2 15.03.30 359 5 11쪽
16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4 15.03.27 304 11 11쪽
15 1. 사과나무 (13) +5 15.03.26 392 10 11쪽
14 1. 사과나무 (12) +4 15.03.25 360 8 12쪽
13 1. 사과나무 (11) +2 15.03.24 393 10 11쪽
12 1. 사과나무 (10) +2 15.03.23 333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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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 사과나무 (6) - 소우의 보금자리 下 15.03.20 305 6 13쪽
7 1. 사과나무 (6) - 소우의 보금자리 上 15.03.19 245 7 12쪽
6 1. 사과나무 (5) 15.03.18 165 11 11쪽
5 1. 사과나무 (4) 15.03.18 541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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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사과나무 (2) 15.03.17 402 12 14쪽
2 1. 사과나무 (1) +2 15.03.17 373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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