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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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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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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글자수 :
15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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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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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사과나무 (7)

DUMMY

이불보를 빨아 너는 한연의 하얀 손이 물에 부르텄다. 햇볕 아래 탁탁 물기를 턴 이불을 담벼락에 널고 있으려니 별안간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삐를 잡아 말을 진정시킨 남자가, 물기를 앞섶에 닦으며 달려온 한연에게 두어번 접힌 종이를 내민다.


“서신이요.”

“예? 저한테요?”

“지청호라는 자에게 전해주면 알것이오.”


다시금 고삐를 잡아당겨 이랴! 하고 외치자 말이 울음소리를 내며 남자와 함께 사라진다. 청호의 이름을 들은 뒤라 차마 그 서신을 펼쳐볼 엄두를 못 낸 한연이 서둘러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한 번도 한연에게 부탁같은 것을 한 적이 없던 청호였다. 그런 청호의 이름으로 날아온 서신이니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기방으로 출근을 하는 때도 아니었지만 예쁜 꽃신을 신고 그 와중에 머리도 빗어내린 한연이 청호의 거처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다. 한연이 소심한 성격처럼 작은 목소리로, 도련님 소녀 한연이 왔사옵니다, 말해보지만 청호는 대답이 없다. 문지방까지 가까이 다가와 기웃거려보는데 영 인기척이 없다. 혹 도련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사뭇 걱정이 되어 한연의 얼굴이 굳어지는데, 그런 한연의 뒤로,


“한연낭자 아닌가?”


금차가 성격좋게 웃으며 나타났다.


“청호는 잠시 물을 길으러 갔다. 여기 앉아기다리면 금방 올게야.”


마루 한 구석위에 무명천을 깔아주자 그 위로 한연이 부끄러워하며 앉는다.


“오늘은 바람이 선선하여 날씨가 좋으니 여기서 차라도 나눠 마시자꾸나. 헌데 무슨 용무로?”


벌써 청호의 부엌이 제 안방이나 되는 양 들락거리며 찻잔을 고르던 금차가 빼꼼 뒤를 돌아다보며 물었다. 한연이 부스럭 저고리안에서 서신을 꺼내어보인다. 금차가 아차! 소리를 내며 부리나케 부엌에서 빠져나온다. 서신을 잡아들어 펼친다.


소우의 친우, 지청호 보시오. 의뢰한 건은 조사를 마쳤소. 이를 어디에 쓰려는지는 모르나 정보의 원천이 어디였는지를 발설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대가 찾는 자는 좌판대감 김동수요. 이 서신은 보자마자 찢어버리도록 하시오.

별순검 정필진 올림


편지를 끝까지 읽자마자 겁을 집어먹은 금차는 정필순이 시킨 대로 편지를 마구마구 찢어 마당에 흩뿌려버렸다. 청호가 아직 채 읽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서신을 읽은데다 모자라 서신을 폐기시켜버리기까지 한 금차가 퍽 당황스러워, 한연이 마당으로 튀어나가 찢어진 파편들을 주을 때 쯤 어깨에 물동이를 양쪽으로 짊어진 청호가 나타났다. 한연을 발견하고 청호가 당황하여 물동이를 내려놓다가 반쯤은 흘려버리고 만다. 그걸 봤는지 못봤는지 한연도 마주 당황하여 줍던 서신을 다시 흩뿌린다. 뭐하는거야. 금차는 희안한 광경에 웃음이라도 터질 것 같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청호. 서신이 도착했다.”


금차의 드물게도 차분한 목소리를 듣고 청호가 이성을 차렸는지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린다. 서신을 달라는 듯 손을 내민다. 아차. 금차가 당황하여 마당을 손가락질한다. 청호의 시선이 마당으로 옮고 그 뒤에 다시 어색하게 웃고 있는 금차에게 옮았다가 다시 마당으로 옮기를 서너번 반복하자, 금차가 눈치를 채고 안방 구석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청호에게 혼이 나 풀이 죽은 금차가 방구석에서 바느질을 하고 앉아있다. 커다란 몸체가 얄팍한 실뭉텅이와 싸우고 있는 모양새가 퍽 웃길 법도 하건만, 금차의 표정은 어느 장군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진중하고 험악했다. 그 옆을 청호가 마찬가지로 옷을 기우고 있다. 말도 안되게 형편없는 실력이다. 물론 금차가 그게 형편없는 실력인지 아닌지 판가름할만큼 한복이란 것에 통찰한 도깨비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청호의 반대편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는 한연의 솜씨와 청호의 울퉁불퉁한 실밥은 단연 비교되는 것이었음이다. 그래봐야 금차보다 청호의 솜씨가 배는 나았지만, 금차는 속으로 청호보다야 자신이 낫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건지 청호의 옷을 보았다가 자신의 옷을 보더니 만족스럽게 웃었다. 금차의 웃음소리를 듣고 청호가 눈을 흘겼다가 다시 집중한다.


아니 갑자기 웬 바느질이요?


당황하여 묻던 한연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찢어져버린 서신의 내용을 금차에게 구두로 대신 전해들은 청호가 내놓은 대책은 한연이 듣기에 마땅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한연이니만큼, 청호가 대뜸 편지를 받아들고 바느질을 한다고 얘기를 하니 이 도련님이 혹여 이제 여식들이나 하는 바늘삯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그만큼 도련님의 사정이 여의치않은 것인지 한연은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호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다. 좌판대감이 누구건 그가 한연의 어머니를 죽였다곤 증거라곤 하나도 없었으니 관찰사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없는 증거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죄인이 누군지는 이제 분명하니 남은 건 작업에 착수하는 일 뿐이었다.


조용히 바늘이 옷감을 뚫는 소리만 들린다. 그 와중에 갑자기 바느질에 열중하던 금차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바느질하는 거랑 그거랑 대체 무슨 상관이냐?”


분명 청호가 한연 몰래 금차에게 충분한 설명을 한 십여분 뒤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청호는 어이가 없었다. 거기다 대고 금차가 상처라도 받은 듯한 표정을 짓기에 청호가 얼른 표정을 숨긴다. 아무래도 금차에게는 어렵게 설명해서는 안되는 모양이지. 청호가 설명을 쉽게 풀어낸다.


"낚시해본 적 있으십니까?"

“한룡과 가끔 해봤지.”

“그거랑 같은 겁니다. 지금은 떡밥을 만드는 거고요.”

“옷을 먹는 물고기가 있단 말이냐?”


세상에. 쉽게 설명해도 당췌 통하질 않으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청호가 아픈 머리를 짚어내린다. 그 옆으로 금차 뿐만 아니라 한연조차 무슨 말인지 이해하질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보냈다.




청호의 계획을 듣고서 구경하러 온 소우가 팔짱을 끼고선 건들건들 다리를 떨고 있다. 소우의 움막과 청호가 자리를 잡은 시장터는 서로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일부러 청호가 하고많은 시장 한구석 바닥 중 여기를 고른 데에는 소우와 가깝고 싶다는 이유같은 건 일체 없었다. 청호는 세금을 내지않고 물건을 내다파는 장사치들이 모여있는 골목을 피했을 뿐이었다. 그런 장사치들과 겹쳐있다간 혹여 그 장사치들의 연계 아래 연 새로운 한복장사인가 하여 좌판대감이 세금을 거두려하지않고 스쳐지나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길바닥에 네마정도는 될 천을 펼쳐 그 위로 한복을 펼쳐놓는다. 청호는 그 뒤에 주저앉아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딱봐도 장가도 여즉 들지 않았을 도령 하나가 조정의 허가도 받지않고 장사를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시장바닥 한 두 번 다니나. 분명 좌판대감은 이 떡밥을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터이다. 소우가 낄낄거리며 한연을 데리고 움막 근처에 가 고개를 기웃댄다. 작전이 잘 통하는지 구경하는 것이었다. 금차는 청호의 옆에서 청호의 자세를 따라하고 있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팔짱을 끼는 그 자세를. 그래서 청호가 금차에게 좀 같이 저리로 가시오! 하고 소리치려 할 때에.


"누구 허락을 받아 예서 장사질을 하느냐?"


수염이 하얗게 샌 좌판대감 김동수가 나타났다. 땅딸막한 키와 두둑한 배를 가리려는 듯이 화려하고 두껍기만 한 옷감이 펄럭이고 있었다. 청호가 금방 그가 범인임을 알아보고 몸을 일으킨다.


“나으리 오셨습니까? 안그래도 나으리를 기다리던 차였습니다.”

“나를 기다렸다?”


아직 어리기만 해보이는 청호의 결좋은 피부며 머리카락을 훑어본 동수대감은 의심의 뿌리를 거두지 못한 채로 하얀 눈썹을 찌푸렸다. 눈썹 사이에 난 사마귀가 터질 듯 튀어올랐다. 금차는 너무 놀라 청호가 일어나 굽신거림에도 주저앉은 채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니 어찌 사람이 이토록 도깨비처럼 생겼을 수가 있단 말인가? 못생긴 사람이야 수도 없이 보았지만 악의로 가득찬 도깨비처럼 생긴 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으리께 세금을 일정량 내고나면 시장바닥에서 한 몫걷을 수 있을 만큼 대복이 온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나으리의 주머니에만 머무른 채 사실은 조정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는 돈이라 한들 그것이 제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어린 나이에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앞으로의 미래에 투자하는 셈 치고 나으리께 앞으로 제 수익의 반을 바치겠나이다.”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그럴 듯한 말들에 김동수는 귀가 솔깃했다. 보통은 수익의 삼분의 일 정도를 챙기면 많은 것이었다. 주마다 방문해서 그 돈을 내놓지않으면 가게의 주인을 후들겨 패는 것도 이제는 삭신이 늙어 종들을 시키지 않으면 하기도 힘들어졌다. 그런데 이 눈 앞의 어린 놈이 저자세를 취하며 스스로 돈을 바치겠다고 하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저 멀리서 소우는 한연의 어깨를 붙들고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소우의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한연에게까지 들려, 한연은 저도 모르게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예감하고 소우와 손을 맞붙잡았다. 그 때 청호가 쐐기를 박았다.


“여기 오늘 최상품인 비단마고자 두필을 계약금 대신 드리겠습니다. 어떠신지요?”


이에는 욕심이 돼지보다도 더한 김동수가 이길 방도가 없었다. 따라나온 종에게 시켜 비단마고자를 들게 한 뒤 만족스러운 껄껄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있는 동수대감의 뒷모습을 보고, 소우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너 이자식 사기꾼의 소질이 보이는데?!”

“칭찬이랍시고 하는 말은 아닐테지?”


조심스럽게 다가온 한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 앞에서 금차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두드린다.


“아하, 이제보니 저 좌판대감이 물고기로구나! 떡밥은 저 마고자인 게고!”


늦어도 너무 늦는다. 청호가 어이가 없다는 투로 웃으며, 어르신은 진지를 잡수시면 소화도 한 달이 걸릴거요. 하고 비꼬는데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금차가, 도깨비라고 사람이랑 소화속도가 딱히 다르진 않다고 해명을 하고 있다. 소우가 빵터져서 웃고야 만다. 자초지종을 모르면서도 총명한 눈을 지니고 있는 한연이,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묻는다.


“하온데 도련님, 저 마고자는 분명 어저께 우리 손을 거쳤던 옷감이 아니온데 어디서 나신 겁니까?”


청호가 금차에게 향했던 웃음과는 다른 웃음을 짓는다.


“그건 보면 알 거다, 한연아.”




좌천대감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금괘 근처에 놓인 비단마고자가 펑 소리를 내며 자취를 감춘다.


“에구구구!”


마고자가 있던 자리에 머리를 잘못 찧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버들도령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다가, 곧 정신을 차려 대궐같은 창고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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