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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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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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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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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글자수 :
152,136

작성
15.04.2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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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4. 뱀과 거북이와 현무 (1)

DUMMY

독각귀전에 억지로 서명을 한 뒤 쑤셔넣어진 버들도령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크기가 작은 것을 반영하여 그림 또한 하나의 점으로 보일 만큼 작았다. 그 밑으로 버들도령이라는 글자와 함께 방금 청호가 적어넣은 따끈따끈한 글자가 반들거린다.


버들도령. 심신이 미약하니 이용해먹기 좋다.




“정말 서나 넌 함께 갈 방도가 없는 것이냐?”

“아쉽지않습니다. 편히 있을 수 있을 때 즐기고 있을테니 혹여나 제 계약서를 가지고 있는 자를 명나라에서 만나시거든 저를 좀 풀어달라고 부탁해주십시오.”


아쉬워하는 금차의 옆에서 흑주가 꼭 그러마하고 서나와 약속한다. 새끼손가락을 따라 올라간 청호의 시선 끝에, 아까 왕관의 힘을 부리던 서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웬 천진난만한 표정의 소녀가 소금강위에 위태로이 서있다. 그녀와 손바닥까지 흔들어보이며 작별을 짧게 마친 뒤 흙길 위를 걷는다. 무뚝뚝할 정도로 말도 없이 걷는 청호였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다시금 서나와의 약속을 되뇌이고 있었다. 흑주가 멋대로 한 약속이었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인 이상, 하물며 금차와 흑주의 친구인 이상, 모른척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가도 짜증이 나 미간을 좁힌 채 청호가 등에 지고 있는 봇짐 위로 손을 올린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었다. 봇짐 안에서 마구 날뛰고 있는 독각귀전의 탓이다. 꺼내어 펼쳤더니 예상대로 버들도령이 마구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방향이라고?”

“그걸 내가 가르쳐줄 것 같으...!!!”


매섭게 내려다보는 그늘진 청호의 눈매에 버들도령이 기겁을 하더니 말을 바꾼다. 하여간 청호의 언령에는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마지못해 말문을 튼 버들도령의 목소리는 아직도 파들파들 떨고 있다.


“해, 해가 지는 쪽으로 쭉 걸어서 지하동굴 마을을 찾아가면 되, 되옵니다...”


버들도령의 뒷말은 듣지도 않고 턱 청호가 책을 덮어버린다. 제발 나가게 해달라고 비는 듯한 짹짹거리는 목소리가 들린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였다.




“제발 나가게 해주시오...!!! 가람왕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새가 지저귀는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갓 태어난 아기새가 먹이를 찾는 울음소리인 것도 아닌 목소리가 유리구슬을 뚫고 동굴을 왕왕 울렸다. 구슬을 손바닥으로 매만지던 남자는 코끝까지 덮는 거적대기를 쓰고 고개를 소매춤으로 파묻었다. 흐느끼는 듯 어깨를 몇 번 떨기까지 한다. 그의 등 뒤로 일렬로 줄을 서 대기를 하고 있던 보초병 중 하나가,


“왕자님, 지원군을 보낼까요.”


하고 물으니 남자가 거적대기를 휙 벗어던진다. 결이 좋은 하늘색 머리카락이 어둑한 동굴 안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데 그 부드러움이 비단과 같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밑으로 드러난 눈동자는 호수와 같으며, 코는 하늘을 찌를듯 높고, 피부는 얼핏 창백해보이나 혈색이 건강하게 돌았다. 가람왕자. 버들도령이 그리도 아름답다고 찬양하던 자였던 만큼 그 겉모습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눈물을 소매춤으로 훔쳐낸 가람이 보초병에게 기다리라고 명하며 덧붙인다.


“도령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는 없다. 때를 보아서 저 청호인지 정호인지 뭔지하는 자식이 사신들을 다 모았을 때 당장 몰아붙여 다시금 다 빼앗으면, 그의 기력과 희망마저 함께 앗아갈 수 있을 것이다. 버들도령의 움직임만 따라가면 되니 오히려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보초병이 납득을 하고 다시 줄을 선다. 가람이 다시 몸을 돌려 유리구슬을 빤히 바라본다. 반드시 적절한 때는 올 것이다. 저 놈이 도깨비와 계약질을 하고 있는 저 독각귀전이라는 것에 사방신을 채워넣었을 때 저걸 빼앗아 찢어버리면 그만이다. 앞으로 둘. 그 때에 그 사방신들을 모두 제 편으로 만들어버리면, 도깨비왕의 자격은 저 놈이 아닌 가람왕자의 차지가 될 것이다. 머릿 속 청사진의 가람왕자는 늠름하게 도깨비왕의 정복을 차려입고 하늘을 쳐다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다시 거적대기를 눌러쓴 신세였지만 가람왕자는 분명 그 날이 머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하며 끌끌 소리를 내어 웃기 시작한다.




버들도령이 가르쳐준 방향은 옳았다. 제 목숨은 아까웠던 모양인지 거짓은 고하지 않았다. 어찌 잘못되면 버들도령을 아주 혼구멍을 내주려던 청호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는 고요히 낙타를 멈춰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풀한포기 나지 않은 흙길 사이사이로 자갈이 하나하나 모여 사각형을 그리고 있다. 버들도령의 말에 따르면 그 사각형이 지하마을로 내려가는 통로였다. 어떻게 여나 싶어 쭈그리고 앉아있는 청호의 등에 대고 흑주가 중얼거린다.


“이리오너라, 하고 불러보면 어떠냐.”


청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뒤돌아보는데, 마법처럼 끼이익 소리가 들렸다. 청호가 깜짝 놀라 다시 문을 바라보자 그 곳에 호롱불을 들고 문을 연 소녀의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어있다. 흑주야말로 본인의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 당황스러웠는지 미묘하게 웃고 있다. 금차는 찬찬히 소녀의 모습을 관찰한다. 목면장갑과 목도리까지 둘둘 두른 모양새가, 아무래도 지하마을의 기온은 청호가 발을 디딘 곳과는 차원이 다르게 서늘한 것 같다. 소녀가 자그마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이 근처를 지나 명나라로 향하는 사신들을 보셨습니까.”

“보았습니다.”


드디어 따라잡을 수 있게 생겼음에 청호는 날뛸 듯이 기뻤지만, 소녀의 순진한 눈 앞에서 오도방정을 피웠다간 사내 체면이 말이 아니기에 꾹꾹 눌러 참았다. 헛기침을 몇 번한 청호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 보았습니까?”


소녀가 아직도 의심이 가득한 표정을 거두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살포시 청호가 걸어온 방향의 반대편을 가리킨다. 이미 어둑어둑하게 해가 져서, 그 너머로 무엇이 있는 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지상 위로 커다랗게 내려온 달빛이 밝다면 오히려 더 밝을 것이다. 차라리 잘되었다. 이정도로 어두우면 금차나 흑주가 변신하여 하늘을 오른다 한들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있을 터였다. 힘들이지 않고 조용히 사신들을 따라잡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여정길에 오르고 누이를 찾아갈 수 있을 거라는 그 잠시동안의 추측은, 청호를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질 못했다.


“어머나.”


낙타들이 주저앉은 탓이다. 소녀가 깜짝 놀라 다가가자 여지껏 멀쩡하게 걸어온 낙타들은 어미에게 투정이라도 부리듯 끼잉 끼잉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많이 지쳤나봅니다.”


소녀가 돌아다보는 시선을 애써 회피하며 청호는 낙타들은 여기 놓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을 알리 없는 금차가 소녀의 곁으로 가 낙타의 등을 쓰다듬는 데에 동참하는 동안, 흑주가 말없이 턱을 긁으며 청호의 어깨를 툭 친다. 시비를 거는 듯한 행동에 청호가 약간이나마 빈정이 상하여 흘겨보자 흑주가 허리를 숙여 귓속말을 속닥인다.


“저 여자애 말이다. 예삿 여자애가 아니야.”

“그럼 뭐란 말입니까? 설마 이번에도 귀신같은 건 아니겠지요.”

“그게...”


흑주가 말을 멈춘다. 사각형을 그리고 있던 자갈문이 끼이익소리를 내며 상자의 뚜껑이 열리듯 활짝 열렸기 때문이었다. 그 너머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건 이젠 소녀의 또래도 아닐 정도로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쪼르르 다시 달려간 소녀가 그들을 한 명 한 명 껴안는다. 추운데 왜 나오셨느냐고 걱정하는 소녀의 목소리에는 귀를 씻고 들어도 어린 티가 나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더 밤이 깊어져 사신들이 잠자리를 잡아버리기 전에 이동해야할텐데, 하고 소리없이 고민을 하고 있는 청호의 등 뒤로 소녀가 말을 잇는다.


“이 도련님과 신수 두 분이 낙타를 학대하고 계시니 제가 이 낙타들을 돌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뭐라?”


소녀의 확실하다는 듯한 말투에 문을 활짝 열어제껴버린 노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청호의 금차, 흑주를 둘러쌌다. 연이어 몰려나온 청년들 또한 그 주변을 다시한번 원을 그리듯 둘러싸 두 개의 원이 생겨났다. 소녀는 여전히 낙타의 등을 쓰다듬고 있느라 정신이 없다. 그 옆에서 얼어붙어버린 듯 등을 쓰다듬던 동작을 멈춰버린 금차가 소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신수 두 분이라니, 어떻게 알아차렸단 말인가? 그걸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혀를 쯧쯧차던 흑주가 팔짱을 낀다. 주변을 둘러본다. 이를 어쩌지. 현무들 무리가 일정 기간을 투고 이동을 한다는 소리야 듣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필이면 현백도 없는 이 시기에. 오해를 단단히 하고 있는 현무들의 벌개진 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 흑주가 청호를 쳐다보지만 청호는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래서야 이동은 커녕, 또 다시 발목이 잡히는 구나. 하늘이 원망스럽다. 하는 생각을.




다행히도 현무들의 오해는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않아 풀렸다. 우두머리역할을 하고 있던 한 노인의 모습을 한 현무가 공식적으로 청호와 흑주, 금차의 족쇄를 풀어주자마자 소녀가 달려와 머리를 숙여 용서를 구한다. 하얀 수염을 땅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린 우두머리 또한 귀한 손님께 험한 꼴 보였다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금차가 손사레를 치며 웃어보이는 와중에 청호는 반응도 없이 주변을 둘러본다. 소녀와 현무무리에게 끌려가다시피 들어온 지하마을은 으슬으슬 몸이 떨려올 정도로 기온이 낮았다. 건조하고 뜨거운 바깥바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날씨다. 단단하게 붙은 적토들이 벽을 이루고 바닥을 이루고, 하물며는 천장을 이루어 견고하게 길과 집을 터주고 있다. 흑주는 청호가 바라보고 있는 길 사이를 저벅저벅 혼자 걸어가 어떻게 알았는지 현무들이 붙들고 있던 자신들의 낙타를 풀어 왔다. 그새 낙타들과 사이가 좋아진 어린 현무들이 통곡을 하는 시늉까지 하며 때를 쓰는데, 흑주에겐 통하지 않았다.


“본디 현무들은 동물을 좋아해서요.”


아이들을 통솔하듯 끌어모은 중년의 여성이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낙타의 머리에 연결된 고삐를 새로 고쳐잡으며 흑주가 압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한룡과 여행을 다닐 때에도 몇 번을 현백 때문에 발길이 붙들렸는지 몰랐다. 길가에 지저귀는 새가 있는 건 차라리 예삿일이라 다행이었지, 간혹 그 새가 아름다운 깃털이라도 가지고 있거나 다리라도 다쳐 움직이질 못하는 날에는 갖은 수를 써서라도 그 새를 고쳐주지 않는 한에는 계획대로 다시 여정에 오르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었다가 괜히 박씨 하나를 잘못 받는 바람에 동네에서 악평이 자자했던 놀부라는 자에게 욕짓거리까지 얻어먹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쯤 생각이 떠오르니 현백의 여유로우면서도 늙은이같은 표정이 잔잔이 눈 앞을 지배하여 흑주를 정신없게 하였다. 대신 금차가 낙타의 고삐를 받아들고 인사를 건넨다.


“그럼 저희는 한시가 바빠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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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4. 뱀과 거북이와 현무 (2) 15.04.21 190 4 10쪽
» 4. 뱀과 거북이와 현무 (1) 15.04.20 245 5 12쪽
28 3. 소금강의 인어 (7) 15.04.16 132 5 12쪽
27 3. 소금강의 인어 (6) 15.04.15 382 6 12쪽
26 3. 소금강의 인어 (5) +2 15.04.14 305 6 11쪽
25 3. 소금강의 인어 (4) +2 15.04.13 156 4 12쪽
24 3. 소금강의 인어 (3) +2 15.04.09 274 10 10쪽
23 3. 소금강의 인어 (2) +2 15.04.08 287 5 12쪽
22 3. 소금강의 인어 (1) 15.04.08 270 6 10쪽
21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6) +4 15.04.06 266 10 13쪽
20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5) +2 15.04.02 269 10 12쪽
19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4) +3 15.04.01 257 9 10쪽
18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3) +2 15.03.31 375 8 13쪽
17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2) +2 15.03.30 356 5 11쪽
16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4 15.03.27 302 11 11쪽
15 1. 사과나무 (13) +5 15.03.26 389 10 11쪽
14 1. 사과나무 (12) +4 15.03.25 356 8 12쪽
13 1. 사과나무 (11) +2 15.03.24 392 10 11쪽
12 1. 사과나무 (10) +2 15.03.23 331 9 11쪽
11 1. 사과나무 (9) +3 15.03.22 370 12 11쪽
10 1. 사과나무 (8) +2 15.03.21 375 7 11쪽
9 1. 사과나무 (7) +2 15.03.20 273 8 11쪽
8 1. 사과나무 (6) - 소우의 보금자리 下 15.03.20 304 6 13쪽
7 1. 사과나무 (6) - 소우의 보금자리 上 15.03.19 243 7 12쪽
6 1. 사과나무 (5) 15.03.18 164 11 11쪽
5 1. 사과나무 (4) 15.03.18 540 11 12쪽
4 1. 사과나무 (3) 15.03.18 395 14 11쪽
3 1. 사과나무 (2) 15.03.17 399 12 14쪽
2 1. 사과나무 (1) +2 15.03.17 370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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