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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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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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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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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글자수 :
152,136

작성
15.04.02 23:00
조회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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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5)

DUMMY


물가로 찾아갔더니 진원도 없고 진회 혼자 앉아 훌쩍이고 있다. 앞도 안보이면서 인기척에 벌떡 일어나, 진한이형이냐고, 아님 진원이형이냐고 묻던 진회가 그 어느쪽 형의 기운도 아님을 느끼고는 허공을 짚다가 문득, 앞이 보이는 것마냥 말했다.


“그 여잔가...?”

“작은 도련님.”

“맞네...”

“...”

“우리 형들 어디갔는지 아시오?”


진한이 어딨는지는 차마 진회에게 말해줄 수 없었어도, 청하는 조용히 갈라진 채로 일렁이는 물 속에, 끝없이 잇다르는 계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혼자 가면 좋을 테지만, 그래도 진회를 두고 갔다가 괜히 다른 마을 사람들이 와서 이 아이에게 해코지라도 할까봐 걱정이었던 청하는 기어이 앞을 못보는 진회의 손을 붙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어어, 소리를 내며 당황하던 진회도 곧 적응을 하고는 청하의 걸음에 발맞추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청하도 타인인 건 매 한가지였지만, 아까 들이닥쳤던 막무가내의 마을 사내들보다야 훨씬 믿음이 가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계단이 바닥에 닿았을 때 즈음에는 찰랑이는 물소리도 멎었다. 어둠 대신 푸른 숲이 시야를 채웠다. 반짝이는 눈으로 숲길을 따라 걷던 청하가 치맛단을 꽉 쥐며 걸음을 멈추기에, 따라 걷던 진회도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춘다. 청하가 진회를 등 뒤에 숨기며 소리친다.


“여기서 시간을 떼우고 있을 땝니까, 지금 당신 형이...!”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진원의 얼굴은 피투성이었다. 진원 본인의 피가 아닌지 턱선을 따라 뚝뚝 흐르는 피야 흥건히 바닥을 적셔도, 얼굴이며 몸이며 상처하나 없었다. 거칠은 저고리 표면에 튀긴 피가 짐승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청하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질 때, 진원이 멍하니 중얼거린다.


“알고 있소. 그래서, 어찌 해야되냐고 그 할아범한테 물어보러 온거잖소이까. 신력을 부리길래 뭐 신통방통한 힘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동물마냥 사냥하니 그즉 쉽게 깨꼬닥 할 줄 내사 알았나.”

“할아범이라면...”

“알고봤더니 자기가 신선이라고, 이러면 어찌되는지 알긴 하냐고 소리치더오.”


충격으로 얼룩진 청하의 얼굴을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바라보던 진원이 말을 잇는다.


“나야 알지, 천벌 받을 거 아니오. 근데 이미 일어난 것을 어쩌나. 이미 최고의 천벌을 나는 지금 받고 있지 않소...? 이것보다 더한 일이 어디있어서...?”


한숨을 쉬는 듯 말을 이은 진원의 시선은 천천히 청하의 뒤에서 제 형의 넋나간 목소리를 똑똑히 듣고 있는 동생에게로 향했다. 진회는 살짝 떠는 것도 같았다. 청하의 떨리는 입술 사이로 빠져나오는 목소리 또한 벌벌 떨리고 있었다.


“옥제의 노여움을 사게 될겁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지금 그게...! 당장 피부터 씻으세요! 누가 본다면!!!”

“옥제같은 게 있으면 우리 형제를 딱하게라도 여겼겠지. 우리가 세상에 무얼 그렇게 잘못했소? 말해보시오, 우리가, 아니 대체 나도 아니고 우리 형이, 사람 한 번 미워할 줄 모르는 그 사람이, 뭘 그렇게 잘못했소?”


웃는 것도 우는 것도 같은 진원의 팔을 잡아끌던 청하는 결국 그 팔을 놓아버리고 만다. 그건 청하가 진원을 포기해서도, 진원을 두려워해서도 아니었다. 그건 단지 구름을 타고 숲에서 내려온 육가선 중 하나인 천공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명소리라도 낼 뻔했던 청하는 천공이 으쌰 소리를 내고 나뭇가지에서 내려오는 모습에 비명소리 대신 진원의 팔을 놓아버린 것이다. 분명 옥제가 보낸 것일 테지, 싶어 무릎부터 꿇는다.


“사, 살려주소서 천공. 부디 이 소년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천공이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청하 너도 알다시피 내게는 별 권한이 없다. 천계에 발을 들인 사람은 댓가를 물어야되는 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하오나 이 자들은 여태껏 하늘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사옵니다...”

“하루아침에 만나놓고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느냐?”


부채를 펄럭여보인 천공에게마저 인상을 찌푸린채 이건 뭐냐고 중얼거리던 진원이 움찔거리며 한 걸음 물러선다. 천공이 부채로 진원의 이마를 타악 때려버렸기 때문이다.


“왜 못알아보느냐? 수염이 없어졌다고 잘생긴 얼굴이 어디간다고?”

“뭔 소리...”

“아까 내게 화살을 겨눌 때 망설임이 하나 없기에 좀 더 영특한 줄 알았더니 내 정체도 못 알아보는구나.”


그 때 청하가 놀라 고개를 든다. 천공이 키득거리며 눈짓한다.


“그래, 장난 좀 쳐봤을 뿐이다.”


늙은 노인인 척 분장을 하고서, 형을 살려달라고 외치는 진원의 모습에 쉽게 응해줄만큼 시간이 넘쳐나는 천공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 진원이라는 자는 매번 자신이 속세에 잠시 내려가 구경을 하고 올 용도로 만들어놓은 문을 왔다갔다거리며 천공의 휴식을 방해하던 청년이 아니었던가. 어디 한낱 인간이 천계를 넘나든다고 안그래도 혼쭐을 내줄 요량이었는데 제 발로 다시 찾아온 진원의 얼굴이 어딘가 맛이 갔다고 생각했을 때 쯤 대뜸 진원에게서 화살을 맞은 것이었다. 그래봐야 사람이 쏘는 화살, 맞아봐야 흠집도 안났지만 조금 놀려준다고 피칠갑을 했거늘, 진원은 눈도 깜짝하질 않았다.


“그래, 니 형이 감옥에 잡혀갔다고? 너나 천계에서 옥살이할 걱정부터 하거라. 이 살인미수 인간놈아.”


깔깔 웃는 천공의 얼굴을 넋놓고 쳐다보던 청하가 말을 더듬으며, 그, 그럼 신선을 해친 건 아니란 말이지요? 하고 묻자 천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는다.


“사방신도 해하지 못하는 신선한테 누가 손가락을 까딱한단 말이냐?”


그 때 진원이 청하를 쳐다보며 묻는다.


“센 사람입니까?”


질문도 아니었다. 청하가 고개를 세게 끄덕여보이자 진원이 천공에게 시선을 옮긴다.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있는 천공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떠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진원은 그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옥살이, 하겠습니다.”

“오. 굉장한 용기로구나?”

“우리 형님 좀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청하도 허리를 숙이고, 그 뒤에 숨어있던 진회조차 고개를 까딱이는 탓에, 천공은 곤란해지고 만다. 신선은 속세에 관여해서는 안되었다. 그랬다가 괜히 벽화에라도 그려지는 날에는 수천년에 걸치도록 영향을 끼치고 마는 법이었으니까. 그리하여 은근슬쩍 나몰라라 도망가려는 천공의 발걸음을 붙든 건, 청하의 한마디였다.


“이 자들이 전설의 삼형제입니다.”

“...뭐라?”


빙글 다시 몸을 돌린 천공이 팔을 팔락거리며 표정을 달리 했다. 청하가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똑바로 들으셨나이다. 이 자들이 바로 천계에서 대대로 떠받들어야한다 전해지는 전설의 삼형제이옵니다!”

“...청하 그것이 혹여나 네 알량한 동정심이 만들어낸 거짓이라면 너라 할지라도 내 용서할 수는 없다, 알겠느냐?”

“예,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턱을 매만지며 고민을 해본 천공이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고 쉽게 힘을 내어줄 수는 없다고, 천공이 조건을 내붙인다.


“그렇다고 한들 함부로 천계를 넘나든 너희를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니 옥살이 얘기는 그대로 진행시키도록 하겠다.”

“그런...!”

“좋소이다.”


청하의 앞을 가로막고 선 진원이 그리 말하며 고개를 담담하게 끄덕인다. 그게 무엇이든, 형만 구해낼 수 있다면 어찌되든 좋은 표정이었다. 저렇게 단칼에 받아들일 줄은 몰랐던 천공이 이거 조건을 더 어려운 걸로 내걸었어야하나 후회하다가 곧 부채를 손바닥으로 탁 치며 휘적 휘적 팔을 내저었다. 청하와 진원, 그리고 진회가 길을 터주니 척척 잘도 걸어가던 천공이 뒤를 돌아다보며 눈썹을 까딱인다.


“뭣하느냐? 따라오질 않고?”




호수에서부터 빠져나온 구름은 수분을 흡수하지도 않은 채 뽀송뽀송한 상태로 모래 위에 두둥실 떠올랐다. 천공이 부채를 흔드는 곳으로 둥 둥 떠가던 구름이 그가 부채를 세게 휘젓자말자 신나게 바람을 타고 날기 시작한다. 꽉 잡거라! 하고 외친 천공의 말이 무색하게, 청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구름 가닥을 잡았고, 진원은 그런 청하가 그래도 흔들릴 지도 모른다는 듯 옷깃을 잡고서 나머지 한 쪽 손으로는 진회를 붙든다. 뒤를 슬쩍 돌아봐 그런 진원과 진회의 얼굴을 확인한 천공이 말없이 다시 앞을 바라본다.


전설의 삼형제라. 그래봐야 당연히 환생한 자들일 테지.


이토록 오래 세대를 거듭했음에도 성격과 장애의 껍데기가 남아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어느 먼 옛날, 사람들이 문명의 발전을 이루며 점점 가슴 한 가득 악의를 품게 시작되었을 때, 동시에 그 영향으로 기반이 약해진 천계를 찾아온 세 형제가 있었다. 첫 째는 혀를 바치겠다 하였고, 둘 째는 귀를 바치겠다 하였으며, 셋 째는 눈을 바치겠다 하였다. 그 순수한 믿음과 희생은 그저 사람일 뿐인 형제의 신체 일부에 신선한 정기가 깃들게 하였다. 옥제는 그것들을 그러모아 천계를 지탱하는 힘을 가지고 있던 후보생들에게 각기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형제들의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옥제는 그 후로 인간세계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설 정도로 애정을 쏟아부었다. 비록 그것이 또 다른 천계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을 지언정. 그러니 그런 형제들의 현신이 천계를 들락날락거린 죄인이라 한들, 조금 도와줬기로서니 옥제가 천공을 나무라진 않을 것이다. 천공은 그렇게 스스로 납득하며 구름의 속도에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혹은 천공에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재주같은 게 있었더라면, 겨우 도착하였는데 이미 숨진 맏형의 시체만 나머지 형제들이 발견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몰랐다. 천공은 시간은 돌릴 수 있었으나 운명은 바꿀 수 없었고, 진원은 울부짖다가 실신을 했으며, 진회는 앞이 보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빤히 내다보고는 주저앉아버렸다. 청하는 이 모든 것이 제가 이제껏 함께 여정한 상인 동료들의 어이없는 한마디의 질타때문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 비틀거리다가 감옥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드세게 내리쬐는 태양볕 아래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고, 본인답지 않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청하의 등허리를, 천공이 검지로 푹 찌른다. 벌떡 일어선 청하에게 천공이 천진난만하게 웃어보인다.


“천공께서는 사람목숨이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다, 청하야. 오히려 짧으니 귀중한 것 아니겠느냐.”


그리말하며 의중을 알 수 없게 웃고 있는 천공의 뒤로, 어그적 어그적 기어나오는 그림자가 보인다. 깨질 듯한 머리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눈이 부신 햇빛 아래 모습을 보인 자는, 진원도, 그렇다고 진회도 아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새파랗게 체온이 식었던 진한은 다시 팔딱이는 심장을 지닌 채, 곧 안색이 파래해진 청하를 발견하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어찌된 거냐고 묻는 진한에게, 청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기어이 소리없는 눈물을 터뜨렸고, 천공은 단숨에 모습을 감춰버리고 말았다.


무역상인들이 모두 떠난 마을에는 그 무리중에서 어여뿐 여인 하나가 삼형제 중 둘째를 꼬셔놓고, 산짐승을 사냥하다 다친 둘째를 모른척 한데다, 도망치던 두 사람을 쫓아오던 셋째마저 어디 이름 모를 산 속 깊이 행방불명이 되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괴이한 소문이 돌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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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2 영점일
    작성일
    15.04.02 23:42
    No. 1

    어 세명다살았네. 그럼 뭐가어케된거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키친치킨
    작성일
    15.04.06 22:56
    No. 2

    다음편에 답을 적어놓았습니다 :) 절명찹쌀떡님 댓글 항상 감사합니다. 늘 솔직하게 실시간 감상들려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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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5) +2 15.04.02 268 10 12쪽
19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4) +3 15.04.01 256 9 10쪽
18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3) +2 15.03.31 375 8 13쪽
17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2) +2 15.03.30 355 5 11쪽
16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4 15.03.27 302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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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 사과나무 (10) +2 15.03.23 331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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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사과나무 (7) +2 15.03.20 273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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