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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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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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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2,136

작성
15.03.1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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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사과나무 (1)

DUMMY

금차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조선의 땅에서 나고 자란 조선 토종 도깨비였다. 조선의 문화가 도깨비 거죽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금차가 그 날 밤 너는 뭐하는 놈이길래 한룡의 책을 지니고 있느냐 물었을 때 청호가 내 부친의 책이오 하고 간단히 대답하자마자 청호를 끌어안고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로 튀어올랐다가 어지러워하는 청호를 놓아준 건 금차의 가치관에 있어선 당연한 처사였다. 혈연관계는 중요한 것이다. 금차는 한룡의 가르침을 다시금 떠올리며 청호의 얼굴을 살폈다. 거 참 묘하게 닮은 듯 안 닮은 듯 신기한 얼굴이로세. 그래도 쭉 찢어진 듯 처진 눈 하나는 기가막히게 똑같구나. 하고 와하하 웃는 금차는 연이어 물었다. 그래서 한룡은 어디있느냐, 오랜만에 장기를 두자고 해야겠다. 하고. 청호가 시무룩해진 어깨로 대답을 대신했을 때 도깨비 금차는 실망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은 훨씬 짧다. 그러니 혹여나 니가 깨어났을 때 내가 없더라도 크게 실망하진 말거라.


한룡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리는 듯 해서 금차는, 그저 한룡이 저를 봉인할 때 썼던 부적귀퉁이가 남아있는 것을 팔뚝 언저리에서 떼어냈다. 그래 뭐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리더니 그 뒤로는 한룡의 이름을 꺼내지 않는 금차에게, 청호도 굳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밝히진 않았다.




소고기무국을 매일같이 성실하게 끓여준 것도 아니었지만 청호는 도깨비 금차와 친해질 수 있었다. 금차는 한룡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청호를 자신의 피붙이정도로 취급했다. 아들아 하고 부르며 졸졸 쫓아다니는 걸 청호가 제발 그 호칭좀 그만하라고 신경질을 부리자 그 뒤로는 아우야 하고 부르며 쫓아다녔다. 청호는 아들 보다야 아우가 낫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괜히 신경이 곤두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별안간 천장을 뚫고 튀어나온 이 이상한 식객이 아버지와 아는 사이라는 건 둘째치고, 금차가 짧게 설명한 것에 따르자면 금차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대체 그럼 뭐란 말인가? 나는 도깨비란다 하고 기세좋게 웃어봐야 금차는 아무리 봐도 사람의 행색이었다.


“그러다 손 데이겠다, 아우야.”

“앗 뜨뜨”


더 기분이 나쁜 건 그런 금차가 남자인 청호가 봐도 꽤 호남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한 뼘쯤은 청호보다도 키가 큰. 국사발에 국을 붓던 손에 찬바람을 불어 식히고 있는 청호는 힐끔 금차를 올려다봤다가 몸을 휙 돌려버렸다. 어제 금차를 만난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으나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무슨 연이 있건간에 아버지가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던 걸 가늠해보건데 그다지 중요한 인물은 아닐 터. 청호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과거합격, 그 네글자 뿐이었다. 두루마기 소매를 접어올리며 팔짱을 낀 금차가 뒤에서 기웃거리며 물었다. 손 안 데였어? 괜찮니?




조금 후에는 부엌에서 쫓겨난 금차가 마당에서 울먹이며 비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우물에 물을 뜨러가던 옆집 아낙네가 발견하고서 온동네 처자들을 우르르 끌고 왔다. 공부할거라고 방해하지말라는 청호의 말에 시무룩해졌던 금차도 담너머 처자들이 장독을 딛고 올라서 발그스름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자 금새 밝아져서 손짓으로 인사했다. 그 때문에 더욱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처자들이 기어이 장독 뒤로 넘어져서 쿵 소리를 내길 여러번.


“들어와!!!! 차라리 들어와!!!!!”


벌컥 창호지문을 열고 소리를 지른 청호의 얼굴이 시뻘겋다못해 검었다.




금차는 입이 근질근질거렸다. 후끈후끈 온돌의 열기가 올라오는 방바닥에다가 발바닥으로 꼬물꼬물 포물선을 그려보기도 하고 자기 때문에 구멍이 뚫린 천장에다가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 천장의 조각들이 다시 자기들끼리 얽히고 설켜 본래대로 돌아가게끔 만들어보기도 하고 방벽 군데군데에 울컥 솟아나온 황토들의 정체가 사실은 꼬마도깨비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 쿡쿡 찔러보기도 해보았지만 당췌 심심함은 가시질 않았다. 책에 코를 박고 도저히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청호를 한 번 쳐다보다가 금방 시선을 돌리고 만다. 아까 그를 한 번 쿡 찔렀다가 대판 혼이 났기 때문이었다. 얌전히 앉은 금차는 조용히 그러나 천천히 눈을 감는다. 건조한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 무명천이 바닥과 내는 마찰소리들이 귀켠을 시끄럽게 감싼다. 금차는 어느덧 한룡과 같은 방에 있었다. 젊은 한룡은 공부를 하고 있고, 여느 때처럼 어느 사람을 골탕먹일까 꽤하던 금차가 여기까지 들어와 붓으로 변해있었던 날. 금차를 집어던 한룡이 들입다 이렇게 소리쳤던 것이 아직도 생생했다. 네 이놈 어디서 이런 되먹지도 못한 장난질이야! 금차는 눈을 번쩍 떴다. 인상을 쓰고 다음 책장을 넘기는 청호의 표정을 보며 금차는 실실 웃어버리고 만다. 그래, 피는 어딜가지 않는다. 한룡과의 첫만남도 그렇게 썩 순탄하지만은 않았지.


“배고픕니까.”


정말로 유전자는 어딜가지 않는다. 금차는 다시금 그 생각을 가중시킨다. 작게 꼬르륵 소리를 낸 금차의 배를 쳐다보며 배고프냐고 물었던 청호는 벌써 부엌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한룡도 저랬었는데. 그래서 금차는 한룡 곁을 떠나질 못했다. 한룡이 끓이는 소고기무국이 맛있어서라는 건 사실 다 핑계였다. 한룡의 결혼식날까지 줄곧 한룡과 다녔던 것은 한룡이 가르쳐준 사람의 정이라는 맛이 한낱 도깨비인 금차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진국이었던 때문이리라.




밥상을 차리면서도 방금 읽은 책을 머릿 속에서 자꾸만 되뇌이며 시험준비에 백방 힘을 쏟고 있던 청호는 그래서, 벌써 부엌안으로 들어와 청호가 자신을 알아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줍음많은 한연의 몸짓을 들을 수가 없었다. 상을 야무지게 들어 몸을 휙 돌렸을 때 거기에 서 있는 그림자에 화들짝 놀라 청호가 그걸 떨어뜨릴 뻔하자, 한연이 서둘러 상을 받아든다. 마주친 눈동자가 서로에게 머물렀다가 금방 떨어져나간다. 시뻘개진 얼굴로 청호가 니가 어찌 여기에 왔느냐 물으니 한연이 더 장밋빛으로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소녀도 함부로 도련님 집을 드나들면 안된다는 것은 알고 있사오나 너무나도 급하여...”


상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그 위에 한지를 깔아 음식이 식는 것을 막으면서도 청호의 눈은 한연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무엇이 그리 급했느냐 묻지 않아도 청호는 한연이 무얼 위해 찾아왔는지 알고 있었다. 한연을 만난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연은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한연의 집 앞마당에 자리를 잡은 사과나무는 뿌리를 내린지 백년이 지났다. 나무가 오래 살면 영혼이 깃든다. 거의 수호신이나 다름없어진 나무를 한연의 모친은 대대로 모시고 살아왔다. 한연을 따라 마당에 들어선 청호가 목을 길게 빼고 담 너머를 들여다본다. 자랄대로 자라난 사과나무는 한연모의 소유인게 당연했으나 그 길다란 가지가 담너머 옆 기왓집까지 이어져있었는데, 희안하게도 늘어진 가지 쪽에 열리는 사과는 싱싱하기 그지없고 한연네 마당에 자리잡은 본뿌리는 시들시들한 잎만 연신 떨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연이 사과나무얘기를 하자고 청호를 불러온 것은 아니었다. 청호가 처마밑으로 향한다. 처마와 이어진 기둥, 그리고 그 기둥옆에 이어지는 마룻바닥이 쩍쩍 금이 가있다.


한연과 술자리를 가지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때마다, 누이의 얘기야 일년에 한 번쯤, 나머지 자신의 가정사는 탈탈 털어서 바닥까지 보여주던 청호의 앞에서, 한연은 곧 죽어도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전문적인 기생이라 그런가 어린 나이에 대견하다고 여겼던 청호에게 한연은 웃으면서 그런게 아니오라 정말 할 얘기가 없어서 그런것이라 넘겼다. 그러고난 다음날 한연이 꺼낸 이야기는 꺼림칙했다. 옆집에 이사온 아낙네가 자꾸만 집에서 무언갈 훔쳐가는 것 같은데 이걸 사또에게 고하기에는 애매하여 어찌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훔쳐가는 것들이 돈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그렇다고 옷가지같은 생필품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번에도냐.”

“이번에도입니다.”


생명을 도둑질한다는 것은 듣도보도 못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옆집의 아낙네는 날이 갈수록 젊어졌고 안 방에 한 번 편 이불을 갈 틈도 없이 누워만 있는 한연의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만 갔다.


“이젠 정말 한계인 것만 같습니다. 소녀 도저히 어찌해야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거의 울먹인 듯하는 한연이 내려다보는 곳에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전에 방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심각하시지는 않았었는데. 청호는 심각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인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연의 어머니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차갑게 식어가고만 있는 체온이 온전히 전해지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청호에게도 마땅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연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었지만 그런 말로 청호가 만족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청호는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보았지만 자신이 읽은 책 어느 구절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라고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껏 동네 방방곳곳을 수소문해 용하다는 한의원은 다 데리고 왔었지만 그 누구도 이 병을 고치지 못했다.


“가서 내가 한약을 다려오겠다.”


그것이 쓸모없는 움직임이라는 것과 시간낭비라는 것을 한연은 알고 있었다.


“아니오, 도련님. 제발 옆에 있어주십시오.”


흘러내리지 않다뿐이지 빨간 눈매 안으로 울렁울렁 차있는 한연이 눈물이 청호를 붙들었다.


“이러다 정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소녀는 어찌해야합니까. 제발 옆에 있어주십시오.”


내 그러마 하고 대답한 청호가 한연을 끌어안으려 팔을 뻗었다가 거두고 만다. 청호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고 말았던 날에 누이가 자신을 어찌나 꽉 끌어안아주었는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의지가 되었는지를 그 냄새와 촉감 하나하나 또렷이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걸 한연에게 똑같이 해주기엔, 한연은 남이었고, 청호는 이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엾은 처자를 왜 울리고 그래!”


어디서 나타난건지 단번에 한연의 머리를 감싸끌어안은 채로 그렇게 외친 금차가 연신 한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내려주고 있는 걸 보았으니. 청호가 이성을 잃지 않고 어찌 금차의 뒷목께를 잡아다 마당으로 끌어오지 않을 수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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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4 15.03.27 302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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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사과나무 (7) +2 15.03.20 273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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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 사과나무 (6) - 소우의 보금자리 上 15.03.19 243 7 12쪽
6 1. 사과나무 (5) 15.03.18 164 11 11쪽
5 1. 사과나무 (4) 15.03.18 540 11 12쪽
4 1. 사과나무 (3) 15.03.18 395 14 11쪽
3 1. 사과나무 (2) 15.03.17 399 12 14쪽
» 1. 사과나무 (1) +2 15.03.17 370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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