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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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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9,477
추천수 :
263
글자수 :
152,136

작성
15.04.0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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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0쪽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4)

DUMMY


진회는 청하를 반기지 않았다. 형제들 틈에 다른 사람이 끼는 게 그토록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아이였기에, 진한은 진회를 딱히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손님 앞에서 저 멀리 혼자 떨어진 채 등을 뒤돌리고 있는 진회의 모습에는, 진한도 청하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과 담을 쌓고 자라다보니 성격이 저 모양이 된 거지.”


진원이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곤 청하에게 방금 갓 딴 나무열매를 건넨다. 물에 적시니 껍질이 녹는 특이한 열매였지만, 청하는 단숨에 그 것이 이 세상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과연 영양실조가 걸려 일찍 세상을 떴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어렸던 형제들이, 이 나이까지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여기에 이유가 있었나보다, 하고 청하는 조용히 생각하며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결국 거절했다.


잔치로 벌어들인 돈을 세고 있는 진원에게 다가온 진한이 기웃거리고는 무거운 동전더미에 놀란다.


이러다 정말 집이라도 살 수 있는 거 아니냐? 마을 한 가운데에.


진한의 뜻을 읽고 진원이 코웃음친다.


“형이 세상 물정을 모르나본데 이거가지곤 한 달 배불리 먹으면 끝이야.”


진한이 눈을 크게 뜨더니 뻐끔거린다.


한 달이나?


빵 터진 진원이 으이구, 소리를 내며 진한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려버린다. 한 발자국 물러난 진한이 이번에는 저 멀리 구석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등을 돌리고 쭈그려앉아있는 진회쪽으로 설렁설렁 걸어간다. 진한이 어깨에 손을 올리자 돌아다보지도 않고 손만 뻗어 휘휘 내젓는 진회의 옆에 저도 주저앉아버린 진한이 가만히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 모든 모습들을 기록이라도 하듯 빤히 쳐다보던 청하가, 여태 돈을 다 세지 못한 진원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생각을 정정한다. 어쩌면 저 천계의 과일이 없었더라도, 이 삼형제는 잘 살아남았을 수 있었을 지 모른다. 형이라는 온화한 존재에 의하여.


“그런데 그 쪽은 대체 정체가 뭐요?”


신경질이라도 난 듯한 말투의 진원은 표정만큼은 호기심이 가득한 그 나이 때의 청년이다.


“사람입니다.”


점잖게 대답한 청하가 진원은 어이가 없다.


“사람이 무슨 천계의 동물이고 아니고를 구분한단 말이오?”

“여기까지 오는 내내 풀 몇포기라면 몰라도 동물이라면 코빼기도 보지 못했는데,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고기가 판을 치니 누군들 의심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고기의 공급자가 한 사람뿐이라니요, 뻔하지 않습니까. 고기가 진짜 고기가 아니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니거나. 그런 거지요.”

“...”

“제 말 알아들으시지요?”

“무시하지 마시오. 저는 표정만으로도 알아들으니.”

“그럴 것 같습니다.”


청하는 보기 드물게 웃고 있었다. 아까부터 형제를 보는 내내 어렴풋이 동생 청호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동생, 아무 것도 모르는 동생, 청호. 아련한 그리움에 가슴이 여이다가도 곧 굳게 단단해진 결심만큼이나 굳은 표정으로 청호가 미소를 거둔다. 하여간 이상한 여인네라고 생각한 진원이, 영 찜찜한 얼굴을 거두지 못하다가 곧 청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보여드릴 게 있소.”


두껍고 거친 진원의 손바닥을 빤히 들여다보던 청하가 그 손을 잡지는 않고 벌떡 몸을 일으킨다.


“어디 한 번 보여주시지요.”


청하와 진원이 손을 잡고 물가를 벗어나는 모습을, 무심코 뒤를 돌아다본 진한이 발견하고야 만다. 영 눈치없이 구는 건 형으로서 좋지 못한 모습이겠지, 싶어 서둘러 못본 척 고개를 돌린다. 진회가 어이가 없다는 듯 궁시렁거린다.


“뭐? 진회 너는 장가 늦게 가라고? 뭔 소리야 갑자기.”

“...”

“아무것도 아니라고?”

“...”

“그만 말하라고?”


아야, 하고 방금 진한에게 얻어맞은 머리를 진회가 문지르는 때 쯔음에, 물가 저 멀리에 삐죽빼죽한 풀이 뻗어나온 곳에 청하와 진원이 도착한다. 진원이 곧 소매를 걷어 상체를 굽힌다. 풀뿌리 주위의 모래를 마구 걷히니 그 곳에 깊이 파묻힌 판석하나가 튀어나온다. 음각으로 새겨진 한자의 글씨들을, 진원은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었다. 시장에 가져가 한자를 좀 알법한 사람들에게 이것 좀 해석해주시오, 하기에는 진원은 또, 그렇게 낯이 두껍지가 못했고, 하물며 이것이 다른 세계에서 가져온 것이란 걸 들키기라도 할까하는 걱정에 선뜻 다른 곳에 가져가질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저 스스로가 알만한 장소에다가 여즉 숨겨놓은 것이라고 진원은 설명하더니, 청하에게 판석을 내밀며 물었다.


“어찌 생각하오?”

“무엇을요?”

“분명 그대라면 알 것인데 모르는 척 하지 마시오. 대체 이게 무슨 뜻이오?”


한 번 모르는 척을 했지만, 그래봐야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의 표정에 민감하게 살아온 진원에게는 통하지 않는 거짓말이었다. 청하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판석을 두 손으로 잡아쥐고 눈을 똑똑히 떠서 한 자 한 자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청하의 집중하는 표정을 묵묵히 바라보며, 침을 꼴딱 삼켰다가, 손가락을 폈다 주먹을 쥐었다를 반복하는 진원은 설레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이상한 감정이었다. 이 판석을 발견했을 때 들었던 미묘하디 무서운 느낌이 생생했다. 한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판석 위에 그려진 세 사람의 얼굴은 아무리 보아도 피붙이였다. 혹여나 제 형제들과 관련이 있을 지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 삼형제 얘기가 나옵니다.”


청하가 가벼운 듯 진심으로, 첫줄만 해독하고 말한 그 말에 진원이 왠지 모를 희망이 섞인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망, 무엇을 위한 희망인지도 모르는 채로. 청하의 눈은 나머지 한자를 해독하느라 아래를 향했다가, 곧 판석을 뒤집고 뒷내용도 마저 훑어내려 읽었다. 그리고는 곧 다 이해했다는 듯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다시 청하가 눈을 떴을 때 판석은 살짝 달빛에 빛이 나는 듯 했다가 다시금 본연의 색으로 돌아갔다. 진원이 묻는다.


“무슨... 이야기가 들어있소?”


조용히 진원과 시선을 마주한 청하가 말했다.


“본디 아시듯 천계의 물건입니다. 함부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얘기 아니오?”

“...”

“맞소?”

“말씀드릴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휙 몸을 돌린 청하는 더 지체없이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진원이 판석을 모래 위에 집어던지는 소리가 나고, 청하에게 무어라 소리치더라도, 청하는 두 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어찌 벌써 가시냐는 듯 몸을 일으켜 배웅하려는 진환에게, 청하가 흐릿하게 웃으며 꾸벅 허리를 접었다 부드럽게 편다.


“감사합니다, 진한도련님.”


생애 살면서 도련님이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진한이 얼음처럼 굳어버리는데, 이상한 낌새에 몸을 일으킨 진회에게는 청하가 부드럽게 감싸안아주기까지 한다. 꽤 오래도록 안고 있던 청하가 속삭이듯 한 말은 진회의 귓바퀴에 오래도록 남았다. 미안해요, 작은 도련님. 정말 미안해요. 마을로 향하는 댕기머리가 총총 흔들거리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던 진한 대신, 진회가 중얼거린다.


“뭐가 미안하단 거야.”




그렇게 비밀도 누설할 필요없이 청하는,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지난 밤까지만 해도.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청하는 기가 차서 참지 못하고 상인 동료들과 대판 싸우고야 말았다. 배탈 한 번이 그렇게 대수냐고 쏘아대는 청하의 말에 동료들은 기어이 청하의 뺨을 때릴 기세로 한통속이 되어 청하의 의견이 잘못된 것인 양 행동했다. 동료 중 하나가 잔칫날 먹었던 고기가 옮겨지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든지, 아니면 주구장창 마셔대던 술이 단순히 몸에 안맞았든지, 그 중 무엇이 사실이건 어찌됐든 고기를 판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고 바로 판단을 내려버리는 마을 사람들이 청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잘 대접해야하는 무역상인이 아팠다고, 그 상인이 다시는 이 마을에 찾아오지 않겠다고 궁시렁거리는 걸 들었다고 해서, 그 잘못을 개인 한 사람에게 돌려 무마하겠다는 심보는 한양에서나 볼수있는 것인 줄 알았더니, 작은 마을에 온다고 해서 마땅히 달라지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당장 잡아오겠다고 마을 사람들이 달려간 곳은 당연히 삼형제가 사는 물가였고, 그 곳에서 얼굴이 가리워진 채 끌려온 청년을 청하는, 말리는 상인들을 밀쳐내고 부리나케 쫓아갔다. 더 이상 자신들의 인생에 천벌이란 존재할 수 없을 거라던 진원의 말이 귓켠에 웅웅 울려댔다.

청하가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곳에 이미 발빠른 마을 사내들이 마을 정중앙에 자리잡은 언덕 위로 청년을 끌고 가는 것이 보인다. 마을을 관장하는 집은 흙으로 빚어져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단순히 무법지대같은 이 마을에도 나름의 범죄가 있어서, 그 죄라는 것을 지은 죄인들이 잡혀들어가 발이 묶이고 손이 묶인 채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풍경이 가득 찬다. 감옥으로 들어서는 순간 청하는 직감한다. 감옥이라기보단 무덤같은 곳이구나. 한 번 들어가면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을 때까지 매달려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코를 찌르는 냄새는. 천으로 코를 막은 청하가 사내들을 연이어 쫓는다. 사내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감옥의 가장 안 쪽이었다. 천장에서 끌어내린 줄을 청년의 손에다 묶고는 자 되었다고 껄껄거리며 빠져나오던 사내들이 청하를 발견한다.


“아가씨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저희가 다 처리했으니 걱정마십시오!”


기분이 부쩍 좋아보이는 사내들이 청하를 끌어내려하는데, 그 손을 쳐낸 청하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어있다. 줄에 매달려있던 청년이 사내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청하를 바라본 것이다. 마주친 청하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린다. 매달려있는 건 진원이 아니었다. 진한이었다. 진한이 입술만 힘겹게 뻐끔거렸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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