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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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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9,470
추천수 :
263
글자수 :
152,136

작성
15.03.16 23:43
조회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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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7쪽

0. 만남

DUMMY

“그 아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겁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단언하는 금차의 얼굴이 눈물로 번졌다.






조선 독각귀전





어느날 조정에 불려간 아버지가 관직을 잃고 술을 몇 번 자시다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이름도 모를 머슴과 함께 도망을 쳤다. 남은 건 나이가 다 찬 누이 하나뿐이었다. 이제 겨우 열살남짓한 청호에게 누이를 지킬만한 힘이 있을 턱이 없었다. 햇볕좋게 내리쬐던 날 누이는 곱게땋은 댕기를 살랑거리며 다가와 청호를 껴안고 속삭였다. 누나만 믿으렴. 그리고 거짓말처럼 누이는 다음날 어느 부잣집 늙은이에게 시집을 갔다. 누이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않을거라는 예상을 청호는 그 어린 나이에도 할 수 있었다. 꽃가마에 타고 가던 누이는 더 이상 댕기머리를 하고 있지 않았었으므로.


“그렇다고 한들 더 이상 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건 누이에게 또 다른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아버지의 체취가 난다는 이유로 술상이라면 곧 죽어도 거절을 하던 청호가 이렇게 술주정을 하는 날은 제 누이의 제삿날이어야만 했다. 눈 앞에서 곱게 앉아 청호의 술잔에 잔을 따라주는 기생 한연의 얼굴이 복숭아살처럼 토실토실하다. 반반한 얼굴과 기개로 어느 기방을 가던 환영을 받곤했던 청호가 지독히도 아끼는 아이였다.


“그렇게 한 해도 못넘기고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한연은 곱게 웃어보였다.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한 볼살이 눈가로 가득 차오른다. 청호는 시선을 떨구어버리고 만다. 누이는 지병 하나 없이 자랐다. 오히려 자주 아팠던 건 청호 자신이었다. 어떤 환경이었기에 누이가 그토록 빨리 세상을 뜬건지는 몰라도 거기에 일조를 어떻게든 했을 그 늙은이를 잡아 패대기치고 싶은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청호가 밤새 앓을 때마다 조용히 옆을 지켜주던 누이였다. 방관하는 어머니보다도 더 어머니처럼 청호를 돌봐주던 손길을 청호는 잊을 수가 없었다. 누이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날부터 청호의 그 끈질기던 불치병이 깔끔하게 나았다는 점만 봐도, 청호는 확신했다. 분명 누이가 모든 걸 끌어안고 가버린 게야.


“도련님.”


술을 또 따라달라고 내미는 청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내리며 한연이 조용히 읊었다.


“이제 밤이 깊었습니다.”

“무엇이 깊었다?”

“밤이요.”


청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연이 거문고를 연주해드릴까요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밤이 깊었다. 하루가 저물어간다. 누이를 그리워하는 것도 여기까지만 할 것이다. 마음 속으로 여러번 다짐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과거가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누이의 단 하나 소원이 있었다면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반역을 꾀했다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헛소리에 말려들어 그토록 충성을 맹세했던 주군에게 배신을 당했다. 왕은 무엇을 하는 자인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여봐야 당파의 논쟁에 휘말려 결국은 귀만 팔랑대고 있는 자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자주 말하곤 했던 성인군주의 면모는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야 없었다. 그랬으므로.


바람이 괭괭 불었다. 작은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보다야 구멍뚫린 한지를 통해 침범하는 찬공기가 훨씬 으슬으슬했다. 어느덧 방안에 호롱불까지 켜보인 청호는 몇 번을 읽어 닳아버린 책을 펼쳤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일한 재산이었다.


그랬으므로. 청호는 관직을 꿰차기로 다짐한다. 아버지가 잃은 그 자리를 다시 받아서 밝혀내리라. 누가 나의 아버지를 모욕했는가. 그것이 왕이건 조선 제일가는 장군이건 상관이 없었다. 독살을 할까. 능지처참에 처할까. 이 세상에 혼자 된 이후로 그것만 줄곧 상상해온 데에는 청호의 외로움도 한 몫했었겠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소문이라면 환장을 하는 동네 아낙네들이 빨래터에 몰려들어 누이와 청호를 손가락질 했을 때 누이는 청호의 귀를 두 손으로 곱게 감싸쥐어주면서 펑펑 울었다. 그러니 누명을 벗겨줄것이다.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서, 누이의 눈물을 지금에서나마 닦아줄 것이다.


괜히 관직에 최연소에 오른 게 아니었던 아버지의 머리를 물려받아 청호는 짧은 기간안에 많은 책을 습득했다. 이 모든 걸 시험에 온전히 풀어내는 게 가능할까 싶기는 해도 청호는 이제 만물의 이치에 가까워졌다고 스스로를 과장하여 판단할 수 있을 정도였다.


누이의 제사를 지낸 일주일 만에 청호는 이제껏 쌓아두었던 공부량을 독파하고 나머지 남은 한권에 손을 대었다. 아버지의 유품을 모아두었던 상자는 이제 청호에 의해 매캐한 먼지는 다 씻어내고 드문드문 때 낀 책 사이로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청호의 노력에도 끝이 보이는 때였다. 청호는 마지막 책을 원목탁자 위에 올렸다. 다른 책들보다도 훨씬 묵직하게 제본이 된 책은 제목조차 얼마나 손을 탔던지 흐릿하게 색이 바랬다. 청호가 손날로 책표지를 탁탁 털어내자 흐릿하게나마 흑묵의 글씨가 드러난다. 독각귀전.


하. 청호가 혀를 찬다. 요새 유행하는 홍길동전같은 동화 중 하나인건가. 어쩌면 아버지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하느라 지칠 때마다 이런 글들을 읽으며 머리를 식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호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책을 열어 목록을 살피는 청호의 눈은 서둘러 이 책이 과연 조금이나마 과거 합격에 도움이 될법한 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시작했고 대답은 글쎄다 였다. 왼쪽에는 도깨비 그림이, 오른쪽에는 그 도깨비에 대한 설명이 서술되어 있는 이 책은 아무리봐도 왜놈들이나 볼법한 괴상한 것이었다. 한숨을 푹 쉰 청호가 책을 덮기 전에 한 구석에 써있는 글귀를 읽고 중얼거린다.


“도깨비 금차. 이 도깨비와 친구가 되기 위해선 이 놈에게 소고기무국을 끓여주는 것이 좋다.”


뭐야 이건. 볼수록 목적을 알 수 없는 책이었다. 괜히 시간을 지체했다. 책을 덮어버리자 언제 또 쌓여있었는지 먼지가 연기처럼 매캐하게 뿜어져 나왔다. 콜록콜록거리던 청호가 책을 다시 상자에 집어넣으려던 순간.


“어딨느냐!”


앞으로 그럼 무슨 책을 더 어떻게 공부해야할까 청호가 고민하고 있던 그 순간.


“소고기무국! 내 소고기무국 어디있느냐!”


별안간 천장이 뚫려 거기서 고운 비단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떨어졌다.


이것이 도깨비 금차와 고아 청호가 만난 첫 날이며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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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0 방소봉
    작성일
    15.03.17 19:15
    No. 1

    아주 좋군요! 도깨비가 먹는 소고기무국을 갑자기 먹고 싶어지네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키친치킨
    작성일
    15.03.20 21:24
    No. 2

    감사합니다 방소봉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어서 넣어본 것입니다. 저도 갑자기 먹고 싶어지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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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사과나무 (4) 15.03.18 540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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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사과나무 (2) 15.03.17 399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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