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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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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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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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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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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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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 소금강의 인어 (4)

DUMMY

현백은 그동안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상태가 나빠진 시기부터는 눈 앞에 암흑만이 펼쳐져 끝없는 지평선을 영원히 걸었고, 간혹 들리는 서나의 울음소리에 대답을 해보았지만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니 서나가 누구를 데려왔건, 입 안으로 무엇이 흘러들어왔건, 그 무엇도 현백의 감각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신 단 하나 정확한 것은 눈을 떴을 때 서나가 와락 달려들어 품에 안겼던 것과 그녀가 아무런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상태라는 것이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현백은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의 옆에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며 서있는 사람 하나와 그의 왼쪽 오른쪽을 채운 신수가 둘 있다는 것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용궁에 현백이 정신을 차렸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신하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귀한 손님을 대접해야하니 몇몇은 사냥을 나갔고 몇몇은 이부자리를 폈다. 한룡이 오래 머무를 것도 아닌데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들 소용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벌써 신하들의 손에 이끌려 으리으리한 용궁의 사랑방 중앙에 멍하니 앉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 안 가득 마구잡이로 넣어지는 음식물들은 소화되지도 못한 채 식도까지 찼다. 풍선처럼 부푼 한룡의 배를 보고 혀를 차는 흑주와 웃음이 터진 금차는 당췌 그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육이라도 당하는 것 같군.”


한룡이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불렀던 배가 푹 꺼질 때 쯤에는 날이 저물었다. 잠자코 앉아있던 흑주도 하룻밤 묵을 기세로 자리를 펴고 눕는 한룡의 모습을 보니 기가 찬다.


“현백이라는 그 자.”


흑주의 부정적인 말투에 금방 눈치라도 챈 듯 웃는 둥 마는 둥하는 표정으로 휙 돌아누워버린 한룡의 등은 대꾸가 없다. 흑주가 조용히 말을 잇는다.


“보아하니 같이 가잔다고 호락호락 떠날 양반이 아니겠던데.”


서나가 가져다준 물공들을 양손으로 천장에 던져올렸다 잡았다를 반복하며 정신을 빼놓고 있던 금차도 그때쯤에는 손목의 움직임을 멈췄다. 고요함속에서 벽에 흐르는 물길만이 소리를 내고 있다. 금차의 시선이 흑주에게 꽂힌다. 금차는 현백에게 매달리다시피하며 그의 회복을 바라던 서나의 표정과, 깨어나자마자 서나의 안녕을 확인하던 현백의 표정이 부녀의 그것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피가 통하는 부녀의 정보다도 피 하나 섞이지 않은 그들의 사이가 애틋하기로는 더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흑주의 의견에 금차도 한 술 더 떠서,


“한룡. 내 생각에도 현백을 설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흑주가 조용히 한룡에게서 시선을 떼어내 금차에게로 옮긴다. 금색머리카락이 부스스 흩어떨어진 듯한 앞머리사이로 금차가 말하기 어려운듯 양손가락을 교차시키고 있다.


“억지로 떼어내는 것도 도깨비가 할 도리가 아닌 듯 하고. 그렇다고 같이 떠나자 말한다고 해서 순순히 따라오기엔 용궁에 미련이 많아보이는 자이니...”


돌아누운 한룡의 등이 그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는 듯 해서, 금차와 흑주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자는 척 눈을 감은 한룡은 저도 머리가 깨질 듯하다. 일이 척척 풀리는 줄 알았다. 지상에서 서나를 만났을 때에, 그녀가 용궁으로 안내까지 해 줄때까지만 해도. 그제까지 용궁에 산다는 현백을 만나기위해 헤매였던 고생길이 헛되이지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데 막상 만난 현백은 독각귀전에 수집되기는 커녕 사실상 한룡과 신수 둘을 용궁에 수납한 꼴이 아닌가. 한룡의 눈꺼풀이 어둠 속에 서서히 들어올려진다. 반쯤 뜬 눈매사이로 맑은 두 눈이 그래도 현백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다.




깊은 물 속에 햇빛이 닿을 리 없다. 낮도 밤도 구분이 없었지만 대신 수중과 수면 위를 넘나드는 고래무리들이 초음파같은 울음소리를 내뱉음으로서 용궁은 아침을 밝힌다. 닭이 하는 역할을 여기서는 고래들이 하는 거로군. 신기해하며 한룡이 기지개를 편다. 대충 옷매무새를 단장하고 그가 당장 향한 곳은 당연히 현백의 방이었다. 복도를 나가면 복잡하게 이어진 것만 같은 물길도, 벽을 짚고 천천히 걸으면 걷는 이의 생각을 읽고 물방울들이 일제히 모여 방향을 알려주니,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았다. 뽀글뽀글 화살모양이 된 물방울이 알려준 대로 발걸음을 옮기니 현백을 닮은 새하얀 산호로 만든 문이 나왔다.


“여보시오. 몸은 좀 어떠시오?”


문 앞에다 입술을 가져다 대고 소곤 소곤 말하듯 하던 한룡이 곧 팍 하고 열린 문 뒤로, 덩치큰 현백이 등장하기에 고개를 빳빳이 치켜든다. 무서우리만치 왕왕 퍼지고 있는 그의 기와는 달리 현백은 부드럽게 웃고만 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직이오. 문안차 먼저 들렀소이다. 내 드릴 말씀도 있고.”

“제게요?”

“사실 부탁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소.”

“무슨 부탁이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허리를 숙여보인 현백이 길을 터준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걸음을 뗄수록 현백의 방으로 가까워진다. 문만 봐서는 알 수 없던 방안이 훤히 밝혀진다. 넓다. 가운데에 펴져있는 반상 위로 화과자와 찻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올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한룡이 당황한 표정을 읽은 현백이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아닙니다. 원래 공주님이 곧 오시기로 하셨기에 미리 준비한 것인데... 함께 즐기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앉으시지요.”


화과자는 물 속에서 먹는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달콤하게 혀를 감쌌다. 하지만 차만큼은 한룡이 냄새만 맡고 고개를 저을만큼 지상의 것과는 다른 풍미였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차라니. 다른 건 다 구해도 마른 풀잎은 구하기 어렵다고 송구스럽다며 현백이 곤란한 표정을 짓기에 한룡이 얼른 손을 휘휘 내젓는다.


“아닙니다. 지상세계에서 구하기 힘든 것을 여기선 구할 수 있으니 다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런 말씀 공주님앞에선 하지 마시지요. 또 사람구경한다시고 멀리 여행을 떠날지 모를 일입니다.”


마주보며 분위기 좋게 웃고 있다, 여행이라는 말에 한룡이 눈썹을 까딱인다.


“그대는 여행을 떠나고 싶진 않습니까. 용궁에 하루종일 갇혀있으니 답답할 법도 한데요.”

“그런 건 제게 사치입니다. 여행이라뇨. 이런 작은 용궁도 제게는 버겁습니다. 공주님 한 분 제대로 지켜드리지못하는 제게 세상은 너무나 드넓습니다. 욕심내고 싶지 않습니다.”

“모험해보고싶지 않으십니까?”

“그런 건 젊을 때나 하는 겁니다. 소신같은 늙은이에겐...”


현백을 설득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딱봐도 30대 초반을 넘지는 않았을 듯한 외모이건만, 그는 마치 자신이 남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후를 용궁에서 보내고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한룡이 기가 막히다는 투로 묻는다.


“실례가 안된다면 연세를 여쭐 수 있겠습니까. 저도 적은 나이는 아닌지라...”


깜짝 놀랐던 현백이 금새 껄껄 웃으며 답하기를,


“올해로 마의 백세를 넘겼습니다. 이제 겨우 중반에 접어든 게지요.”


라 하였다. 한룡은 귀가 맛이 갔나 싶어 귀를 파려다, ‘백’과 비슷하여 헷갈려할만한 숫자의 발음은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 입을 쩌억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역시 현백은 한룡이 찾던 자가 맞는 것이다. 영생에 가까운 생을 누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에 큰 변형은 오지 않은 축복받은, 어쩌면 저주받은 운명을 지닌 거북이와 뱀을 한 몸에 엮은 신수. 한룡이 씨익 웃어보이자 영문을 모를 현백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이런 곳에서 정체를 숨기고 사십니까.”


한룡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경고도 아니었고, 질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협박조차 아니었지만.


“백현무.”


현백이 한룡을 당장 쫓아내버릴 만큼, 그를 당황시켰음에는 분명하였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쾅 닫혀버린 흰색의 상아 문은 틈조차 보이질 않고 맞물렸다. 힘으로 열어보려 한들 될 턱이 없다. 아침이 점점 더 밝아오고 있었지만, 예민한 성격의 조개를 건드린 것 마냥, 그 조개의 입이 다시는 열릴 생각이 없는 것마냥, 당장 현백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한룡이 갑자기 문전박대를 당했건 말건,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는 듯이 유유히 아침식사나 마치고 온 흑주가 어느덧 옆으로 다가와 길다란 막대로 제 입을 쑤시며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소용없을 것 같댔지.”


금차가 거든다.


“대뜸 정체부터 말하니 경계할 법도 하지.”


그럼 너희가 하지 그랬느냐고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자꾸 훈수만 둘거냐고 버럭질을 한 한룡이 침통해져서 휙 몸을 돌리고 물길을 따라 부엌으로 향한다.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금차를 보며 흑주가 길다란 막대로 이번엔 머리를 긁는다. 차라리 다른 현무를 찾는 게 낫지 않을까 제안해보아도 한룡의 뜻은 굽히기 어렵겠지 싶다. 특별히 뱀을 잃은 현무라. 어디서 용케 하자있는 신수를 모으고 다니는 한룡답기는 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가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흑주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걸 빤히 쳐다보던 금차가 저도 표정을 어둡게 해보는데, 그래봐야 그 뜻을 알 수 없으니 금새 풀어지고 만다. 흑주가 그걸 보더니 생각을 고쳐먹는다. 하기사 가고 싶다고 난리를 쳐서 데려왔다는 이 아이도 딱히 별 도움이 안되니 어느 경우건간에 어차피 발목을 잡을 거 그나마 어른스러운 현백 쪽이 나을 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한숨부터 푹푹 꺼질듯 새어나온다.




푹푹 한숨을 내쉰 현백이 문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리듯 주저앉는다. 천장을 바라본다. 공중으로 치솟고있는 물방울들이 그를 위로하는 춤사위로 보일 지경이다. 매몰차게 문을 닫아버리고나서 현백의 마음도 그리 편칠 않았다. 나중에 한룡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현백은 그를 몰아냈음을 후회하진 않았다. 현백의 정체를 아는 이라곤 지금이야 세상을 떠난 용왕과, 용왕의 아버지였던 선대의 용왕밖에는 없었다. 들켜선 안되는 극비인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발설하고 다닐 만큼 쉬이 생각되어지는 사소한 사실도 아니었다. 태어났을 적부터 현백에게 뱀같은 건 없었다. 신수들은 그가 다르게 생겼기에 따돌렸다. 현백도 그에 불만은 없었다. 다만 그는, 평범한 거북이들에게도 끼지 못하며, 신수들 사이에서도 혼자서 유독 튈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불편한 존재라는 걸 철이 들기전부터 인지해버렸다. 그걸 원망하기도 전에 무리로부터 쫓겨났다. 헤엄쳐온 바닷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던 어린 현백을 선대 용왕이 주워 키웠다. 거북이가 아니어도, 신수가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말해줬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아들은 편견이라곤 몰랐으니 모시기가 쉬웠다. 그리고 그의 딸 서나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현백은 자신이 신수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가 되었다. 왜 이런 곳에서 정체를 숨기고 사십니까. 백현무. 한룡의 말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듯, 현백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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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소금강의 인어 (4) +2 15.04.13 1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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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 사과나무 (6) - 소우의 보금자리 上 15.03.19 243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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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사과나무 (4) 15.03.18 540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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