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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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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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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6
추천수 :
263
글자수 :
152,136

작성
15.03.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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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2)

DUMMY

청호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외쳤다.


"그러게 제가 조금만 참으라고 했지 않습니까!!!"


태양이 내리쬐는 건조한 날씨도 날씨였지만 그제껏 독각귀전 안에서 난리난리를 부리던 신수 둘이야말로 청호의 열을 뻗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기껏 사신들에게서 멀리 떨어질 기회가 찾아왔을 때 독각귀전을 열자 먹물로 그린 듯한 모습의 흑주와 금차가 종이 앞뒤로 마구 싸워대고 있었다. 뭣땜에 싸우느냐는 청호의 짜증섞인 말에 흑주와 금차가 말했다. 우리 너무 목말라. 목이 말라서 싸우다니 애시당초 이해가 안되는 대답이었지만 털끝에 먼지 하나 붙었다고 티격태격하곤 했던 두 사람이었으니 청호는 그러려니 했다. 그조차 이해하는 청호임에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한 가지 있다면, 혼자 다녀오겠다는 청호에게 보호자대신 함께 가주겠다고 우겨대던 두 사람이었다. 보호자가 된 건 오히려 청호 자신인 것 같다고 힘이 빠진 얼굴로 금차와 흑주를 바라본다. 여전히 꽥꽥 소리치는 금차와 약을 잔뜩 올리고 있는 흑주의 모습 그 어디에도 어른스러움은 찾을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신들도 어느덧 지쳐 말에서 내려 자리를 펴고 앉았다. 쉬어갈 때이다.


사막에서는 물이 귀하다고 아껴마시던 중이었으니 공용으로 쓰는 물통을 마음대로 신수들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찾아나섰던 것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길을 잃을 줄은 몰랐다. 망연자실해 있는 청호에게 독각귀전에서 빠져나온 금차가 안절부절하며 말한다.


"걱정마라, 청호. 여차하면 내가 하늘로 올라가 말발자국이라도 찾아내겠다."

"그게 말은 쉽지요. 괜히 눈에 띄기라도 했다 그들에게 사냥이나 안 당하면 다행일겁니다."


제 잘못 아니라는 듯 귀를 파고 있던 흑주가 툭 던지듯 묻는다.


"책이나 읽는 양반들인 줄 알았더니 활도 쓸 줄 아나보지?"

"지금 그게 중요하냐구요."


결국은 물도 찾지못하고 무리도 잃었으니 방법이 없다. 차라리 여기가 한양과 그리 멀지않은 땅이었더라면 마을을 찾아가 길이라도 물었을 터인데 모래바람만 날리는 이 사막은 분명 청호가 알기로 조선의 국경을 넘고도 남을 만한 지역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늘 하나 없이 쨍쨍 내리쬐는 태양빛에 모래산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청호의 머릿 속은 복잡해진다. 한연이 부쩍 보고싶은 순간이다. 그러다 문득 모래의 금색 번쩍임 속에서 얇게 넘실거리는 물결이 은붙이처럼 반짝이는 것이 비친다. 눈을 한 번 비빈 청호가 곧 그 곳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친다.


"저기! 저기 물이 있습니다!!!"


금차와 흑주가 청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과연 그 곳은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지상낙원이어라.




활엽수라는 것을 처음 본 청호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를 따서 먹을거라고 나무에 올라보는 금차와 그걸 보고 멍청하다고 인상을 구기는 흑주를 지나 한 발자국 더 나아가니, 청호의 눈에는 투명하기 그지없는 작은 호수가 바람한 점 없는 사막에서도 기분좋게 수면을 찰랑이고 있다.


"흑주 너에겐 한 입도 안 줄것이다."

"먹을 수 있으면 먹어보시지 그래."


금차가 보란듯이 제 얼굴보다도 큰 열매에 입을 가져가는데 곧 콰악 소리와 함께 하얀 앞니가 열매의 껍질에 박힌 채로 빠지질 않는다. 거보라고 혀를 끌끌 차는 흑주에게 금차가 무어라 궁시렁거리지만 열매에서 이가 빠지질 않는 탓에 들리질 않는다. 청호에게 도움을 청하려해도 이미 이 작은 호수의 풍경에 온 마음을 빼앗겨버린 그는 등 뒤에서 무슨 소란이 벌어지건 알아채지 못했다. 청호는 물 안으로 손을 뻗어본다.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을 덮는데도 물에 손이 들어갔다고는 믿기지도 않을 만큼 손바닥의 손금이며 지문같은 것이 물표면을 뚫고 그대로 비쳤다. 그 때였다.


"그 열매는 녹여먹어야합니다."


나무 위에서 별안간 맹하게 생긴 청년 하나가 떨어졌다. 청호가 놀라 뒤를 돌아다보니 순하게 눈을 접어 웃어보인 청년이 물주머니에다 물을 길어 금차의 앞니에 걸린 열매에다 뿌리고 있다. 딱딱하던 과일 껍질이 점차 붉은 빛을 띄더니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줄줄 물이 되어 흐른 껍질 대신 손바닥에 올려진 몽글몽글하고 반투명한 알맹이를 쥐고서 금차가 얼이 빠진다. 흑주가 묻는다.


"누구냐 넌?"


공격적인 어투에 순간 당황한 건 청년 뿐만이 아니었다. 말 좀 예쁘게 하라고 나무라는 금차와, 또 일났구나 하고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치는 청호의 가운데에서, 그러나 청년은.


"구진한입니다."


웃어보였다.




청년이 나무기둥 위에다 부러진 잔가지들을 얽어 만든 집은 어찌보면 인간의 집이라기보다는 새의 둥지같은 생김새였다. 흔들리는 통에 아무래도 넷이나 올라갔다간 떨어지고 말겠다고, 금차와 흑주는 청년의 초대에도 굳이 손을 내저었다. 확실히 몸이 가벼운 청호와 청년만이 올라도 꽉찰 만큼의 협소한 공간이었다.


"혹시 이 근처에서 저와 같은 행색을 한 사신단을 보지 못했습니까?"


청호의 물음에 청년이 고개를 젓는다. 하기야 지금 당장 나무꼭대기에서 내려다보아도 딱히 사람 그림자는 보이질 않았다.


"그럼 혹시 이 근처에 마을은 어디있습니까? 어차피 목적지는 같으니 그 쪽으로 가면 명나라로 가는 길을 물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명나라로 가십니까?"

"네."

“저쪽 매일 해가 뜨는 방향으로 쭉 걷다보면 땅굴마을이 하나 있는데... 명나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으니 일단 그 곳에 들려 혹시 그 사신단이라는 사람들을 보았는지 물어보면 될 듯 싶습니다.”


진한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모래언덕밖에 없다. 까마득히 멀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그 방법밖에 달리 없다 싶어 청호가 고맙다고 손을 잡는다. 한 번 웃어보인 진한이 과일을 몇 개 챙겨가라고 옆에 있던 길다란 나무막대를 집어들더니 그들의 둥지 아래에 매달린 나무열매들을 툭툭 건드린다. 뚝 뚝 떨어진 열매들은 폭신한 모래바닥에 안착할 뿐 절대 깨어지진 않는다. 조금 있다 둥지에서 기어내려간 청호와 진한이 그걸 물에 이리저리 씻는다. 빨간 껍질이 물러져 뚝뚝 흐르더니 건조한 모래에 금방 흡수되어 들어간다. 흔적도 없이 빨려들어가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청호가, 진한이 과일을 한 입 크게 베어먹는 것을 보고 저도 와앙 입을 벌려 물어본다. 단 과즙이 턱끝을 따라 뚝 뚝 흐르는 것에 개의치않아할 정도로 청호는 그 맛에 놀란다. 날씨가 찌도록 더운 곳이라 그런지 당도가 여느 과일과는 다르다.


“이 과일은 이름이 뭡니까?”

“천야자입니다. 예전에는 이 나무가 모래바람을 막아줄 정도로 많이 우거져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다해봐야 열 그루도 채 남지 못했습니다. 곧 그마저도 이 더위엔 죽어버릴지 모릅니다.”


청호가 한 입 더 베어물며 묻는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저 멀리서 금차와 흑주가 반쯤 호수에 들어가 첨벙거리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걸 보고 조용히 웃은 진한이 말한다.


“예전에 여길 찾아왔던 여인이 나무를 거의 다 베어갔습니다.”

“...예? 여자 혼자서요?”

“아니요. 그 때 분명 무역상인이라고 명나라로 향한다고 했지요. 제 기억에 네다섯 명은 되었던 것 겁니다.”


흑주가 미는 바람에 비틀거리다 물 속에 텀벙 빠지고야 만 금차가 물을 뚝뚝 흘리며 귀신처럼 기어나오고 있다. 흑주가 손가락질하며 깔깔웃는다. 금차가 어디서 났는지 물 위를 떠다니던 왠만한 부채보다도 커다란 나뭇잎을 주워다 물을 떠서 퍼붓는다. 머리 위부터 깔끔하게 물로 몸을 씻어낸 꼴이 된 흑주가 표정을 굳히고 있다. 그 모든 과정들을 즐거이 구경하고 있던 진한이, 질긴 나뭇잎을 서로 엮어 가방을 만들고 있다. 과일과 물을 챙겨넣어줄 요량이다. 그리고 멍하니 있던 청호는 곧.


“그 여인의 이름이 혹 지청하는 아닌지요?”


무언가에 쾅 하고 얻어맞은 듯 그 질문 하나를 뱉고,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시킨 채 섰다. 멈칫, 움직임을 멈춘 진한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걸 어떻게...?”


처음부터 줄곧 기분좋게 웃고 있던 진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은 것을 청호가 눈치채기도 전에,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내리쬐던 하늘이 색을 달리한다. 호수를 감싸고 있던 모래가 파스스스 무너지기 시작한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나뭇잎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린다. 가만 서 있기가 힘이 들어 바람에 흔들리는 돗단배마냥 이리저리 흔들리던 청호의 몸을, 흠뻑 젖은 금차가 부축한다. 흑주도 어느새 물을 뚝뚝 흘리며 다가와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진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한낱 인간이...”


서둘러 금룡으로 변신을 한 금차가 청호를 안고 공중을 나른다. 흑주도 금방 흑주작이 되어 그 뒤를 따른다. 진한의 차가운 시선이 한 시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그들을 쫓는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치솟은 모래입자들이 금룡의 꼬리를 잡아 끌어내리고, 비늘 사이사이로 들어가 간질인다. 마찬가지로 흑주작의 날개 위로 자꾸만 침범하여 아래로 끌어당기고, 깃털 사이사이로 들어가 간질인다. 당황한 금룡이 크르릉 소리를 내는데 흑주작도 별 수가 없다. 이제는 눈 앞까지 가로막아 잿빛 하늘을 흙빛으로마저 물들여버리는 모래바람에 흑주작이 높이 날려던 날개짓을 바꾸어 아래로 향한다. 흑주작의 까만 눈동자가 호수를 빙 둘러싼 활엽수들에 꽂힌다. 이렇게 지반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나뭇잎빼고는 멀쩡히 박혀있는 게 수상하다. 어쩐지 그 단내나는 향기가 예삿 과일이 아니더라니. 목이 마른 게 급선무라 물만 마시고 과일은 입에 대지도 않았던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요동치는 호수를 스치듯 날아 다시 하늘로 튀어오른 흑주작이 날개를 뻗을 수 있을 만큼 뻗는다. 길다란 그림자가 진한과 주변을 덮는다. 곧 그림자가 좁아진다. 금차와 청호를 감싸안은 흑주작 위로 점점들이 일렁이는 모래바람이 덮친다. 한 덩어리가 되어 바닥으로 치닫는다. 쿵, 소리와 함께 날리는 건 자잘하고 소수인 모래입자들 뿐. 그 사이로 진한이 슬프도록 홀로 서있는 게 흐릿하게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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