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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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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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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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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글자수 :
15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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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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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사과나무 (8)

DUMMY

좌판대감의 저택은 외향만큼이나 그 중 극히 일부분일 창고도 으리으리했다. 어디서 챙겨온 건지 모를 각종 쇠붙이가 음각으로 조각이 나있고, 금붙이와 은붙이가 빛을 발하는 와중에, 오른켠엔 눈부시게 좌르르르 윤기를 내보이는 비단천들이 켜켜이 쌓였다. 버들도령은 한연의 집보다도 훨씬 거대해보이는 이 장소에서 잠시 어지러움증을 홀로 호소하다가 예상외로 주위에 아무 도깨비도 나타나지 않음에 놀라고 만다. 이렇게 오래된 물건이 많은데 그 아무것도 도깨비가 되지 못했다고? 버들도령은 생각보다 좌천대감의 악의라는 것이 도깨비를 짓누를 정도로 큰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금차가 어젯밤 건네준 버들잎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버들도령의 머리보다도 큰 버들잎을, 버들도령은 작은 손가락으로 말았다. 그걸 입에 대롱을 물듯 물고 휘익 바람을 분다. 쥐새끼가 우는 듯한 작은 소리였지만 곧 버들잎에서 반응이 온다.


도착했느냐?


“예. 도착했습니다, 나으리.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청호야, 어찌해야 되느냐고 묻는데 어찌해야 하냐?


버들잎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한참 나더니 이번엔 청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오래도록 제 멋대로 세금을 탈취하는 자가 장부 하나 없을 리 없다. 귀중품과 함께 보관하고 있을 확률이 높은데, 혹여나 거기에 없다면 본채에 가서 살펴보아라.


“알겠습니다.”


버들도령이 버들잎을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평소의 버들도령이라면 분명 귀찮다고 따르지 않았을 부탁이지만 청호의 말이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작은 한룡이 갑자기 푸른 눈을 빛내며 명령을 하면 어차피 따르기 싫어도 따를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는데다, 괜히 작은 한룡의 화를 사는 것도 앞으로의 도깨비생에 좋을 게 하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다고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빌어먹을 금룡과 한룡, 다 소문내어버릴테다, 하고 중얼거리며 분을 푼다. 창고를 빠져나가 본채로 향하는 작은 발 위로 주머니에서 버들잎이 소리를 낸다.


버들도령아. 너 송신을 종료하려면 버들잎을 반으로 접어야하는 걸 모르는 건 아닐테지?


금차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버들도령이 아차차 싶어 버들잎을 꺼내더니 그대로 멈춰서 몇초간 서 있다.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중얼거린 걸 들은 건 아닐까? 금룡은 화나면 한룡도 말릴 수 없을 정도라고 소문이 파다했다. 역시 도깨비인 걸 한연에게 들킨 날 멀리 도망갔어야했던 게야. 그래도 익숙한 집을 떠나긴 싫다고 머무른 자신의 결정에 막심한 후회를 하고 있는 버들도령 위로, 갑자기 큰 그림자가 드리운다. 겁이 많은 버들도령이 모래바람을 작게 일으키며 옆뜰로 도망친다. 작은 버들도령의 눈에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난다.




초조하게 버들도령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당췌 오질 않는 버들잎의 반응에, 청호가 손톱으로 이파리를 잘근잘근 누른다. 금차가 제지한다. 버들도령의 힘으로 어찌 유지시킬 수 있는 연락수단이었지, 그렇다고 무적의 힘을 가진 장난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청호가 손톱으로 버들잎에 상처를 내는 바람에 버들도령에게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 거라고 금차가 투덜거리자 청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버들잎을 펴보려 노력한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으... 아... 악...! 도깨비 살려!


버들도령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금차와 청호의 눈이 마주친다.




좌천대감의 손아귀에 붙들린 버들도령은 그래봐야 인간의 손이지 도깨비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이상하게 소용이 없었다. 빗자루의 모습으로건 아까의 마고자의 모습으로건 바꿔보려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건만, 당췌 좌천대감의 손아귀안에서는 그 어떤 힘도 통하질 않았다. 온 몸의 힘이 빠져 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위험한 상황에 잠까지 올 지경이다. 좌천대감은 낄낄거리며 버들도령을 눈 앞으로 가까이 당겨본다. 자그마한 것이 낑낑대고 있으니 귀엽기 짝이 없다.


“그게 도깨비인 것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나도 이제 한 물 갔구나 한 물 갔어.”

“이거 놓으시오!”

“걱정마라. 죽이진 않을 것이니. 이렇게 작은 도깨비는 귀하게 팔 수 있을 것이야.”


판다고? 버들도령의 온 몸에 소름이 파스스 돋는다. 도깨비를 거래한다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익히 들었지만 그게 좌천대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일일 줄 알았더라면 금룡과 한룡의 미움을 사더라도 절대 참여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좌천대감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버들도령을 쥔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발걸음은 환히 불빛을 밝히고 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창호문을 열자 그 곳은 좌천대감의 대궐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있는 곳이라.


좌천대감이 손아귀를 풀자마자 바닥에 쿵 떨어진 버들도령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뒹군다. 무식하게 버들도령을 쥐었던 솥뚜껑같은 손이 이제는 텅 빈 채로 허공을 휘두르고 있다. 대감의 색이 바란 콧수염이 그가 주문같은 것을 중얼거릴때마다 보기싫게 움직였다. 이윽고 안방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장롱의 문이 열리는데, 버들도령은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밖에서 봐서는 그래봐야 세 뼘의 폭 정도 되어보이던 것이, 문을 열자 그 곳은 우주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장롱안에 꽉 들어찬 도깨비들이 새로운 도깨비의 등장에 웅성였다. 버들도령은 입을 쩍 벌린 채로 온 몸이 빳빳이 굳는 것을 느끼며 뒷걸음질을 쳤다. 좌천대감이 손을 뻗어 버들도령을 다시 채가는 것을 피할 만큼 빠른 속도도 아니었다. 대감이 버들도령을 무자비하게 장롱 안에 쑤셔넣는 것에 버들도령은 꽥꽥 소리만 낼 뿐 다른 수단도 없었다. 곧 장롱 문이 끼이이 소리를 내며 닫혀버린다. 우주같은 공간에 둥둥 떠다니는 도깨비들이 버들도령이 걱정이 되어 다가온다. 개 중에는 여인의 모습을 한 도깨비도, 하반신만, 혹은 상반신만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는 도깨비도, 여즉 물건의 모습을 한 도깨비도 있었다. 버들도령은 그제야 눈물을 펑펑 터뜨렸다.


“살려주시오.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제발 살려주시오. 저는 팔려가기 싫습니다.”

“걱정마라, 아가. 팔려가는 것에는 대감 나름의 순서가 있다. 가장 비싸게 값이 쳐지는 것은 가장 나중으로 미루니, 너는 아마 당분간은 이 곳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그 동안 힘을 비축해두는 것이 좋을테니 어서 이것을 먹거라.”


상냥한 얼굴을 한 아주머니도깨비가 내미는 생고기를 버들도령이 눈물을 그치고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젓는다.


“배는 안고픕니다.”

“정말이냐? 이것 또한 내일이 되면 먹지 못할 고기가 되어 내버려야하는데, 그 이후로 배가 고픈다 한들 우리가 챙겨줄 수 있을 지 확실치 않는데도 말이냐? 여기서 죽어나가는 도깨비가 생기지 않는 이상 너도 쫄쫄 굶어 이 꼴이 될지도 모르는데?”


버들도령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만다. 허공에다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하는 버들도령의 뒤로 불쑥 나타난 청년이 팔짱을 낀 채로 아주머니도깨비를 나무란다.


“지나칩니다.”

“허나 사실인 것을 어쩌란 말이냐, 흑주.”

“어차피 다 죽은 목숨인데 사실이건 거짓이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버들도령의 얼굴은 파랗다못해 푸르죽죽해진다. 아주머니가 흑주 니가 더 너무하다며 깔깔 웃고야 만다.




청호와 금차는 버들도령의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당장에 튀어나왔다. 말도 마차도 없는 그들에게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은 건 두말 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어딘지도 모르는 좌천대감의 집을 무턱대고 찾아가는 것도 어려웠다. 버들도령과 교신이 되었을 때에 위치부터 물어봤어야했었다고 청호는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그것도 이제와서 생각해봐야 이미 지나간 과거였다. 시장을 헤매고 헤매이다 아까 장사판을 펼쳤던 자리까지 다시 돌아왔다. 분명 청호의 누추하기 그지없는 장사판을 방문했던 자는 좌천대감밖에 없었다. 그 앞의 흙길에 그간 그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말굽이 찍혀있다. 옳거니! 청호가 금이라도 캐어낸 듯 기뻐하는 소리에 금차가 무슨 일이냐며 달려온다. 말굽자국이 이어진 곳을 따라 청호가 손가락질하자 금차의 눈빛이 변한다. 순식간에 금차의 얼굴은 길쭉하고 두터운 용의 주둥이가 되고 몸뚱이는 얇고 미세한 비늘들로 수놓인다. 어두운 시장을 밝게 비추이는 금룡을 청호가 어이없이 바라본다. 금차가 으르렁거리듯 이른다.


“무엇하느냐. 어서 올라타질 않고.”




버들도령은 차차 어둠 속에서도 적응을 해나갔다. 여즉 도깨비고기라는 것에는 눈길 한 번 못주고, 생각만 해도 토악질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는 도깨비들과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여기서 빠져나갈 길도 자연히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이기도 했다. 흑주가 말을 잇는다.


“그러니 옥제가 사람에게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못쓴다 한 것이다. 동류를 해하는 순간 그 사람은 사람의 노릇을 못하게 되는 것이지.”


버들도령은 피를 배에서 토해내던 한연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 상처는 분명 우연히 일어날 법한 것이 아니었다. 악의를 가지고, 분명 그녀를 해하려는 요량으로 힘을 주어 칼을 쑤셔넣은 것이 분명했다. 흑주는 그 날에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는 것과, 좌천대감이 그 날로부터 정신을 반쯤 놓았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 악의만 가지고도 충분히 도깨비들의 힘을 제압할만큼. 그리고 그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갈취하던 양반은, 장부를 하나 더 만들었다는 것이다. 독각귀장부. 그런 게 가능이나 하냐고 묻는 버들도령에게 흑주는 어깨를 들썩이며 비웃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우리에게는 이미 선례가 있지 않느냐.”

“선례라뇨?”

“한룡. 그가 들고 다니던 독각귀전이 그런 게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버들도령이 히익 소리를 낸다. 악명이야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그 독각귀전이 그런 용도였던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한룡의 아들과 이제껏 대화를 하고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던 거라고 생각하니 오싹하여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버들도령은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버들잎을 당장이라도 꺼내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전에 다른 방도로 이 곳을 빠져나갈 길이 있는지 흑주에게 물었다. 흑주의 대답은 예상보다도 더 간단명료했다.


“없다, 그런 거.”

“저는 살고싶습니다!”

“팔려간다고 죽는 건 아니다. 개처럼 일하거나 싸우거나 도깨비내기에 던져지거나 하지. 재수가 없어 어느 미식가의 식탁 위에 오를 일만 없다면.”


버들도령의 눈에 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건 말건 콧방귀나 뀌던 흑주가 버들도령이 듣지도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한룡이 돌아온다면 가능하겠지. 그 놈이 악덕하기로는 세계제일인 놈이니까.”


그 때.


“...말도 안돼, 어떻게.”


금차와 청호가 두꺼운 장롱의 문을 열고, 어둠을 환하게 밝혔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으로 이토록 행복할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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