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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9,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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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글자수 :
152,136

작성
15.03.26 23:02
조회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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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사과나무 (13)

DUMMY

“빨리 가, 늦겠다고!”

“아이씨 사람 모습으로 걷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걸 어쩌란 말이야!”

“그게 뭐가 어렵다는 게야, 왼 발 오른 발 왼 팔 오른 팔 이렇게 하란 말이야. 잘보라고.”


최연소로 과거에 합격을 한 게 어느 날 자신들을 구해준 도령이라는 소식에 도깨비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제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도령의 집으로 몰려왔다. 그 중 눈이 하나인 도깨비가 당췌 직립보행에 익숙치 않아하니 뻣뻣한 걸음일지언정 보고 배우라고 혀가 긴 도깨비가 왼 팔 왼 발을 함께 뻗어 걷는다. 그를 이상한 광경보듯 눈을 크게 뜨고 입을 가린 처자들이 지나가자, 들키는 거 아니냐고 겁을 집어먹은 도깨비의 눈에 혀도깨비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도 잘도 혀를 길게 늘어뜨리며 답한다. 우리가 잘생겨서 그런게야. 그 대답에 만족을 하고 둘 다 어깨를 으쓱으쓱 거릴 때 쯤에 청호의 거처에 도달했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기왓장이 무색할 만큼 잔치는 성대했다. 한연이 바삐 부엌에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찐감자며 고구마며 하얀 쌀밥과 김치, 정구지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청호는 부엌에 쭈그려앉아 전을 부치고 있다. 이보시오, 여기 술은 없소?! 하고 외치고 있는 도깨비들의 무식하게 큰 목소리에, 청호는 한숨을 푸욱 쉬며 턱을 괴더니 펄럭, 하고 잘구워진 전을 한 번 뒤집었다. 도대체 누굴 위한 잔치인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도깨비들은 없는 살림에 음식만 축내고 있고, 이렇게 바쁠 때 여즉 무전취식을 해오기만 했던 금차와 흑주는 양심도 없이 다른 도깨비들과 어울리며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가사는 단순히 자유를 만끽하자는 것이었지만 우습게도 청호 자신에게는 자유가 없는 듯하다. 괜히 저 놈들 때문에 한연까지 고생시키니 속상한 것으론 이루 말할 데 없었다.

늦게 도착한 소우가 이게 무슨 난리냐며 도깨비들 사이를 용케 헤집고 들어와 물었다. 청호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짓는 표정과, 그가 지지고 있는 전을 보자마자, 소우는 상황을 파악하고 당장 부엌에서 도망치더니 다시는 부엌에 돌아오질 않았다. 대충 부친 전을 켜켜이 쌓아 접시에 나르는 한연이 마당 한가운데 자리를 펴고 앉아 언제 친했다고 도깨비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고래고래 동네가 떠나가라 창가락을 뽑고 있는 소우를 발견한 건 조금 뒤였다. 별이 유난히 밝게 빛을 뽐내는 밤하늘 아래, 청호는 그렇게, 유일하게 자신을 축하해주러 온 사람도 아닌 손님들을 나름 잘 대접하고 있었다.


공부가 힘들다는 핑계로도 일찍 잠자리에 든 적이 없는 청호였는데도 음식을 마련하는 일이란 힘겹게 그지없었다. 어머니가 부엌일에는 신경도 안 쓰고 종들만 시켰던 것이 사실은 청호 자신에게 애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누운 채로 청호는 천장만을 꿈뻑 꿈뻑 바라봤다. 그러다 꿀보다도 달콤하게 잠에 빠져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는 지난 밤 신나게 얻어맞은 것마냥 몸이 천신만신 무거웠다. 몸살이 온 것이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진정시킨 청호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뭐라도 주워먹어야겠다고 부엌으로 향하다가, 언뜻 밖으로 보이는 번쩍이는 게 햇살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눈이 부시어 저도 모르게 마당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설마 금룡으로 변신한 금차인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술 좀 작작마시지, 이 양반이! 금룡을 사람들 눈에서 감추려는 요량으로 당황하여 걸음을 빨리하는 청호의 눈에 결국 들어찬 것은 햇살도, 그렇다고 금룡도 아닌, 마당 한 가운데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그 위로 높이 쌓인 호화로운 금괴와 보석들이었다. 경악하여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청호의 옆으로, 아우 너도 일어났느냐고 금차가 눈을 비비며 청호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러나 영 반응이 없는 청호의 얼굴을 확인한 금차가 슬쩍 웃는다.


“놀라지마라. 도깨비들은 원래 그냥 신세를 지는 법이 없다.”


그런 거냐고 바로 수긍하기에는 보물의 양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를 다 쓰다 죽기엔 만수를 누려야만 할 것 같았다. 게다가. 금차의 말에는 허점이 하나 더 있었다.. 청호가 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눈으로 금차를 흘긴다.


“그러는 어르신은 한 번도 밥값을 내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


마치 자신이 그 보물을 다 준 것인양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랑스레 금차가 웃다가 금방 시무룩해진다.


“나는 신수잖느냐. 보물을 훔쳐올 수도 내기를 걸어 얻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그 때 챙그랑, 소리가 난다. 놀라 다시 소리가 났던 보물산 쪽을 바라보는 한 사람과 한 도깨비의 눈 앞에 보물산 안에서 챙그랑 챙그랑 소리를 내며 보물들을 다 떨군 조그만 물체가 가까스로 얼굴을 빼꼼 내미는 게 보인다. 울상이 되어있는 얼굴은 햇빛을 보자마자 기어이 빼액 울음소리를 냈다. 익숙한 울음소리였으니,


“어라. 버들도령아냐?”


청호가 그 주인공을 파악하는 데에는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보물산 위에서 엎어졌다 다시 일어섰다 반복하며 국경을 넘나든 것마냥 지쳐 청호의 앞에서 숨을 헥헥 대는 버들도령에게, 청호가 묻는다.


“대체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냐? 많이 찾아다녔다.”


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청호를 금차는 나무라지도 않은 채로, 저도 버들도령을 찾아다녔노라고 걱정하는 척 거짓에 한 술 더 끼얹었다.


“소자, 거울아주머니도깨비가 보살펴주셔서 그동안 그 곳에 있었습니다. 한연아가씨 집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 하여 온 것인데 도깨비들이 다들 무식하게 크고 힘이 세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저기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만 뚝 그쳐라. 어젯밤 먹다남은 감자가 있을 것이다. 먹을 테냐?”

“네!”


청호가 내어준 감자 한 알은 버들도령 크기만 했다. 반도 다 먹지못하고 불러진 배를 팡팡 두드리며 누운 버들도령은 금방 곯아떨어진다. 청호는 어쨌든 저 보물의 처분에 대한 고민을 연장시킨다. 다 내다팔기에는 너무 많아 옮기기 힘들 것이고 그렇다고 보관하고 있기에는 그럴 만한 큰 창고가 청호의 집에는 없었다.




“아니, 도련님 이 많은 것을...”


하지만 한연의 집에는 있었던 까닭이다. 소우에게 부탁하여 손수레를 얻어왔지만 그 손수레로도 수십번은 왕복한 후에야 보물산은 청호의 마당에서 한연의 집 곡식창고로 완전히 옮겨질 수 있었다. 몸살이 난 청호 대신 손수레를 여러번 옮기는 건 금차와 흑주의 몫이었다. 어째 여전히 몸살기가 있는 청호와는 달리 치마를 걷으며 달려와 무거운 수레를 쥐고 있는 흑주에게 왜 이러시냐고 당황해서 묻는 한연의 얼굴은 멀쩡해보였다. 소녀에게 어찌 갚으라고 이러시는 거냐고 반복하여 물은 한연에게 청호가 수레 위에 올라탄 채로 말했다.


“어차피 이 중 반은 처음부터 네 몫인 걸, 나머지 반을 내어준다고 그리 달라질 건 없다, 한연아.”

“예? 제가 무엇을 했다고 반이 제 몫이란 말입니까...?”

“어찌됐든. 한동안 이게 반지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라.”

“...예?”

“...어?”


몸살기운에 생각난대로 내뱉던 청호가 흠칫한다. 세상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청혼을 할 작정은 아니었는데. 당황하여 귀까지 새빨개지고 마는 청호가 서둘러 눈을 굴리더니 땅만 바라본다. 한연은 얼이 빠져 서있다. 청호가 헛기침을 하고 한연은 제 한쪽 뺨을 감싸 열을 시킨다. 둘 다 한 마디를 더 내놓질 못한다.


“놀고 자빠졌네.”


흑주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깨에 금항아리를 이고 지나갈 때까지는, 단 한마디도.




보물을 모두 옮기고나니 정작 쌀가마니를 놓을 곳이 없어 손님을 맞을 사랑방에다 그걸 겹쳐놓았더니 삐져나온 쌀가마니의 두터운 천에 창호문조차 닫히질 않았다. 열린 창호문이 바람에 따라 삐걱 삐걱 소리를 내는 옆 안방에서, 자리를 잡고 앉은 청호와 흑주, 금차에게 한연이 내온 사과는 갯벌에 게 눈 감추듯 금방 사라졌다. 청호가 손가락 하나 사과의 표면에 갖다대지 못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부러 청호에게 사과가 가지못하게 빨리 먹어치운 흑주가 금차를 바라보는데, 저 멍청한 표정으로 미루어보건데 금차는 딱히 그런 의도가 아니라 단지 사과를 많이 먹고싶었던 것이리라. 그 때, 맨들맨들한 바닥을 보이는 그릇을 빤히 쳐다보던 청호가 물었다.


“한연아. 혹시 남는 사과가 있느냐?”

“나중에 집에 가셔서 드시라고 두어개 남겨두었습니다. 지금 자시겠습니까?”

“아니, 가져가게 해다오.”


청호가 먹으려는 건가 경계하는 흑주의 걱정은 다행히도 의미가 없었다. 허나 한연의 집을 떠나 청호가 산쪽으로 향하며, 어디로 가느냐 묻는 금차의 질문에 답하기를.


“시험에 붙었으니 당연히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내야 마땅한 것인데, 제가 아는 조상님이라곤 한 분 밖에 없어 그 분을 뵈러 갑니다.”


란다. 곧 그 말을 알아들은 흑주가 기겁을 하고 나는 안가겠다며 도망을 쳤다.




한룡이 잠든 묘 주변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무덤 위로 무성하게 자란 잔 풀을 낫으로 베어 주변에 흩뿌린 청호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하늘을 보았다가 자신이 지나온 숲길을 되돌아봤다가, 천천히 맨 풀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금차가 그 옆을 조용히 지키고 서있다.


“아버지, 소자 합격하였나이다.”


한연이 준 빠알간 사과를 한룡의 묘 앞에 나란히 놓고 청호가 눈을 감으며 말을 잇는다.


“그간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도통 아버지께 문안인사도 드리질 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어디선가 산새 지저귀는 소리가 난다. 금차가 정신을 뺏겨 웃으며 산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결국 어둑한 수풀 사이를 헤집고 들어간 금차가 조금 후에 손가락 위로 작은 산새를 얹은 채 등장했다. 청호에게 자랑할 요량으로 아우야! 이것 좀 보아라! 하고 부르려다, 번쩍 들었던 손을, 금차는 천천히 그저 내려놓는다.


“보고싶습니다, 아버지.”


절절한 그 목소리와, 언뜻 튀어나올 듯 결국 꾹꾹 눌러삼키는 눈물어린 청호의 감정을 보며, 금차는 등을 돌려 다시 수풀 속으로 들어선다. 손가락 위에 있던 새가 금차의 휘파람 소리에 빠른 날갯짓으로 잔영도 남기지 않고 날아가버린다.




작은 새의 날갯짓이 잠시 쉬어간 곳은 다름 아닌 청호의 집 지붕이었다. 새의 동그란 머리가 기웃거리며 마당을 내려다본다. 지난밤 잔치는 거짓말이었다는 등 텅 빈 마당을 지나 색이 바란 마루를 건너면 청호가 늘 공부를 하던 작은방이 하나 나온다. 그 작은방이 궁전처럼 느껴질만큼 상대적으로 더 조그마한 버들도령이 손아귀에 버들잎을 하나 감싸고 중얼중얼거리고 있다. 청호와 교신을 했던 초록빛 버들잎과는 다른, 낙엽이 되어 떨어진 회갈색 버들잎이다.


작가의말

1장이 끝났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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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52 영점일
    작성일
    15.03.27 08:44
    No. 1

    기생한테 청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키친치킨
    작성일
    15.03.27 10:44
    No. 2

    표현이 청혼이지만 현실로 따지면 돈이 많아진 청호가 기둥서방이 되는 셈일 거에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조선독각귀전은 판타지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영점일
    작성일
    15.03.27 16:39
    No. 3

    ㅇㅎ 기둥서방...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淸花
    작성일
    15.03.27 17:41
    No. 4

    간만에 취향에 적중하는글을 만났네요. 한달음에 다 읽고 왔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부탁드려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키친치킨
    작성일
    15.03.27 22:27
    No. 5

    취향이 맞는 독자님을 뵙는다는 건 저로서도 늘 설레이는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청화님. 좋은 하루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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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2) +2 15.03.30 355 5 11쪽
16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4 15.03.27 302 11 11쪽
» 1. 사과나무 (13) +5 15.03.26 389 10 11쪽
14 1. 사과나무 (12) +4 15.03.25 356 8 12쪽
13 1. 사과나무 (11) +2 15.03.24 392 10 11쪽
12 1. 사과나무 (10) +2 15.03.23 331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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