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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독각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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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치킨
작품등록일 :
2015.03.16 23:36
최근연재일 :
2015.04.21 23: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9,469
추천수 :
263
글자수 :
152,136

작성
15.03.22 23:08
조회
369
추천
12
글자
11쪽

1. 사과나무 (9)

DUMMY

흑주는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어둠에 익숙해져있던 검은 홍채가 빛을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오래걸려 환상을 보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을 가진 장신의 도깨비가 짓는 웃음과, 푸른 빛을 띈 듯 검은 눈동자를 품은 심각한 얼굴을 눈 앞에 두고 그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누가, 그 옛날 한룡과 금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이것 놓으시오! 이 사악한 사람! 좌천대감같은 사람이나 작은 한룡이나 똑같소이다!”

“구하러 온 사람한테 못하는 말이 없구나.”


장롱 안에 쑤욱 손을 뻗어 버들도령의 목깃을 잡아 꺼내는 청호의 눈은 동시에, 장롱 안에 겁에 질려있는 수많은 도깨비들을 훑었다. 이게 대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놀란 건 금차도 마찬가지였지만, 청호가 놀란 이유와는 조금 달랐다. 금차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청호와 금차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게 부동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흑주에게 꽂힌 채로 마구 흔들렸다.


“흑주 니가 왜 여기에?”

“금차? 정말 금차 너란 말이냐?”


도깨비들에게 손을 뻗어 차례로 한 도깨비 두 도깨비 꺼내어주던 청호가, 숨이 멈춘 듯 서있는 금차를 슬쩍 보고는 다시 다음 도깨비에게 손을 뻗는다. 흑주는 금차에게서 시선을 옮겨 청호의 움직임을 살핀다. 한룡보다 훨씬 작은 체구다. 눈은 한룡을 빼다 박았지만 한룡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흑주가 다시 금차를 바라보며 묻는다.


“네 놈은 아직도 그 버릇을 못 버렸나보구나. 한낱 인간을 믿는 버릇 말이다.”

“흑주 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금차가 말을 멈춘 것은 밖으로 빠져나온 버들도령이 금차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흔들어댔기 때문이었다. 금차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버들도령이 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소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제 또 다른 곳으로 팔려가게 되는 건가요?”

“아니 대체 그런 게 아니래도.”


금방 곤란해진 얼굴로 금차가 부정을 하지만 도통 이 놈의 흑주며 버들도령이며 제 말을 귓등으로도 들을 것 같지않아, 금차는 말을 멈추고 청호를 돕기 시작한다. 도깨비를 모두 빼내자 좌천대감의 안방채가 터져나갈듯 비좁다. 그 사이사이로 용케 발을 옮기며 청호가 버들도령을 집어든다. 그래도 같은 도깨비라고 금차 곁에 붙어있어 해코지를 피하려던 버들도령이 청호의 손가락 사이에서 청호를 노려보고 있다. 그래봐야 청호가 한 마디를 할라치면 파들파들 떨고 눈을 감았다. 그 때문에 입도 열지못한 청호가 한숨을 푹 쉬더니 버들도령을 부른다.


“야.”


그다지 부드러운 어조도 아니었기에 버들도령은 눈을 뜨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뭐. 안 다쳤으니 다행이다.”


청호의 말에는,


“이런 부탁해서 미안하구나.”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눈을 떠 청호의 표정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웃지도 그렇다고 찌푸리지도 않은 무미건조한 표정의 청호는 버들도령이 감동의 맛을 채 느끼기도 전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장부는 찾긴 찾은 거냐?”


버들도령이 차마 못찾았다고 말을 못하고 매달려있는데, 여기저기서 덩치가 크고 작은 도깨비들이 너나 할 것없이 손을 들며 발을 굴렸다. 나! 내가 아는데! 나! 내가 도울 수 있소! 누가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도깨비들의 목소리가 한 데 섞였지만 그것보다야 쿵 쿵 울리는 안방 바닥 때문에 청호가 기겁을 하며 말린다. 진정한 도깨비들에게 청호가 어딨냐고 묻는다. 도깨비들의 각양각색의 모양을 한 손가락들이 가르킨 한 곳은, 수선화가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는 벽이었다. 그림을 들추자 그 곳에 문고리가 있었다. 청호가 문고리에 손가락을 걸어 연다. 벽지의 모양을 하고 있던 손뼘만한 문이 열리자, 그 곳에 장부가 먼지 한 톨 쌓이지 않은 상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왜 두 권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청호의 옆으로, 금차의 손에 이끌려 마지막으로 장롱을 빠져나온 흑주가 중얼거린다.


“밑에 있는 것이 도깨비장부다. 니가 찾는 게 그거라면.”


청호가 눈썹을 들썩이며 흑주를 바라본다. 찰나였지만 분위기가 금방 차가워지기에, 금차가 당황하며 시선의 중간을 가로막더니 손을 내젓는다.


“아냐아냐,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세금장부...”


그렇다면 위에 있는 것이 세금장부겠다고 판단한 청호가 위에 있던 장부만 챙겨서 팔과 허리춤 사이에 끼우며 몸을 돌린다. 흑주가 자꾸만 저를 노려보는 것같아 뒷통수가 따끔따끔할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저 도깨비에게 관심을 주어 시시콜콜한 싸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청호는 최대한 이성을 발휘했다. 어떻게든 빨리 이 곳을 떠나는 게 옳을 것이다. 미련없이 청호가 바닥에 떨어뜨린 도깨비장부를 흑주가 줍는다. 청호가 버들도령을 주워 떠나려는데 금차가 청호의 팔을 붙든다. 돌아다보는 청호의 눈에 금차가 흑주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비친다.


“같이... 가지 않을 테냐.”

“네 놈같으면 또 그 짓을 하고 싶겠냐.”

“아니다, 흑주. 넌 정말 크나큰 오해를 하고...”


답이 나오질 않는 흑주와 금차의 대화를 듣다가 청호가 조급해져 묻는다.


“안 갈겁니까?”


금차가 알겠다고 발걸음을 옮기며 자꾸만 뒤를 돌아다본다. 흑주에게 손을 흔들며 나중에 꼭 다시 보자고 말을 걸어보지만 흑주는 반응이 없고, 대신 다른 도깨비들이 저기! 하고 외치며 청호와 금차의 발길을 붙든다. 금차가 멈추기에 청호도 뒤를 돌아본다. 도깨비들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다시 청호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저어, 저희는 그럼 이제 어찌하면 됩니까...?”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십니까?”


청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 대답에 도깨비들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그야 저희를 풀어주신 분이 도령이라...”


그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던 청호가 곧 아, 탄성을 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한다.


“마찬가집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십니까. 갇혀있는 것 같아 꺼내드린 것 뿐이니 앞으로는 마음대로 하시지요.”


청호는 생각했다. 제 뒤만 따라오지 않으면 된다고. 도깨비들을 우르르 몰고 다녀서 좋은 소문이 날 턱이 없었다. 빨리 이 장부를 관할청에 넘겨 조사를 진행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그런 이유로 발길을 빠르게 옮기는데, 청호의 의도와는 달리 청호가 내뱉은 말의 파장이 컸던지, 청호의 등뒤에서 도깨비들이 축제라도 일어난 듯 아까 청호가 바닥에 도로 내려놓은 도깨비장부를 북북 찢어 허공에 흩날리고 있다. 그 사이로 흑주만이, 흔들리는 감정을 진정시키지못한 채 표정을 굳히고 서 있다.




버들도령은 이제 얌전하게 청호의 손에 들렸다. 마당으로 나아갔을 때 쯤에는 공간이 확보가 되어, 금차가 마음을 놓고 변신을 한다. 청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언제 자리를 비운 좌천대감이 다시 등장할 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나 장롱 안에 갇힌 도깨비로 미루어보건데 예삿일이 아닌 것 같다. 괜히 관여했다가 머리가 아픈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니, 청호는 얼른 여기서 벗어날 요량으로 금차의 팔을 잡아끌었다. 딱히 금룡으로 돌아가달라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청호의 뜻을 읽은 금차가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처럼 눈을 감고 온 몸에 기를 모은다. 기를 모은다. 모으려한다. 모아져야하는데. 금차가 눈을 뜬다. 바람 한 점 일지 않았다.


“뭐하십니까?”

“아니 그게... 힘이 들어가질...”


말을 차마 잇지 못하며 제 손바닥을 쥐었다 펴보이는 금차는 갑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질 않는 자신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청호의 손 위에서 팔딱팔딱 움직이던 버들도령이 쓰러지더니 코를 골며 졸기 시작한다.


“도깨비의 힘이란 생각보다 순수한 게지, 그렇지 않는가.”


어둠이 드리운 마당을 저벅저벅 팔자걸음으로 가로질러 걸어오는 좌천대감을 청호가 발견한 것이 그 때였다.


“그 순수한 힘이 기를 쓰질 못하고 바닥을 기는 걸 보는 건 늘 기껍기 그지없다. 이런 장면을 보기위해 어쩌면 나는 아비어미를 가차없이 묻어버린 걸지도 모르지.”


허허 웃으며 말을 잇는 좌천대감에게 청호가 묻는다.


“한연의 어머니만을 해친 줄 알았더니, 처음부터 사람으로 살아온 게 아니었던 모양이지요?”

“어려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입이 세 개나 있어서는 자원이란 건 눈 깜빡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 입을 하나로 줄여서 조금 더 호화롭게 소비를 하고자했던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이지, 그게 아니면 이 한양의 모든 이가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라도 된단 말이냐?”


뻔뻔하게 잘도 대답하는 좌천대감의 얼굴은 탐욕으로 일그러졌다. 과연, 금차는 납득한다. 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도 김동수의 악의는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힘을 쓸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도깨비란 자고로 오래묵은 물건에 사람의 정이 묻어 생명이 깃드는 것이었다. 금차같은 신수가 아니라면 사람의 것이 아닌 악의에 도깨비가 맥을 못추는 건 당연했다.


“예삿 도깨비가 아닌가보구나, 니가 데리고 있는 그 아이.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는 건 흑주 이후로는 처음이다. 좋다. 인심을 쓰마. 저걸 내게 내놓거라. 그럼 내가 순순히 너와 그 꼬마도깨비는 그냥 보내주도록 할터이니.”


청호가 그 말에 코웃음을 친다. 금차를 끌어당긴 청호가 복화술처럼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않은 채로 중얼거린다. 빨리 안 갈겁니까? 금룡으로 돌아가시라고요. 금차가 식은땀까지 뻘뻘흘리며 소근거렸다. 그게 되면 내가 지금 이러고 서 있겠느냐? 좌천대감이 소름끼치게 웃으며 점점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더욱더 청호가 금차에게 가까이 몸을 기울여 소근거린다. 장난칩니까 지금? 금차도 질세라 소근거린다. 장난이었으면 나야말로 좋겠다. 동수대감이 코앞에 다가온 터라, 속삭임은 소용없게 되었다. 큰 소리로 다투고 있는 청호와 금차를 씨익 웃은 채로 쳐다보던 좌천대감이 품이 큰 소매자락에서 날이 번뜩이는 은장도를 꺼내든다. 금차가 기겁을 하고 청호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대감이 휘두른 날에 청호는 금방 가슴께에서 피를 뚝뚝 흘렸을 것이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청호가 엉덩이를 문지르며 다시 몸을 일으키더니 한껏 짜증이 난 투로 중얼거렸다.


“그런 건 처녀들이나 들고 다니는 건 줄 알았더니.”

“기생 순자에게 빼앗은 것이다. 너도 이 칼에 피를 좀 묻혀보겠느냐?”


낄낄거리는 대감의 얼굴은 이미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작가의말

부족함이 많은 글인데 너무 부끄러우면서도 불끈불끈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52 영점일
    작성일
    15.03.23 00:34
    No. 1

    와 거의 괴물급이네요;;도깨비가 의외로 약점이크군요. 악의가 강한상대를 못이기다니. 그럼설마 귀신도 못이기려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영점일
    작성일
    15.03.23 00:34
    No. 2

    읽을때마다 정말기분이 좋아요. 동양판타지를 꼭보고싶었거든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키친치킨
    작성일
    15.03.23 23:02
    No. 3

    절명찹쌀떡님 덕분에 저야말로 매일매일 기분좋게, 힘을 내어 연재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취향이 맞는 독자님과 함께 달린다는 게 이런 기분이네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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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2) +2 15.03.30 355 5 11쪽
16 2. 버려진 삼형제가 사는 사막 +4 15.03.27 302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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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 사과나무 (12) +4 15.03.25 356 8 12쪽
13 1. 사과나무 (11) +2 15.03.24 392 10 11쪽
12 1. 사과나무 (10) +2 15.03.23 331 9 11쪽
» 1. 사과나무 (9) +3 15.03.22 370 12 11쪽
10 1. 사과나무 (8) +2 15.03.21 375 7 11쪽
9 1. 사과나무 (7) +2 15.03.20 272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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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 사과나무 (6) - 소우의 보금자리 上 15.03.19 243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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