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거(1)
본 이스터 에그는 '아마' 게임 전체를 뒤흔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찾아보고 싶었던 내용이기에 '차원 전쟁'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 있을 수도 있고, 그보다는 핵심이 다르겠다.
"오늘 안 되면 내일도 있는 거고."
("곧 개학이네.")
"그러게."
사실 시간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이 이스터 에그를 확인하는 법은 극도의 전략을 요구하거나 극도의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곳이 맞아?"
("거의 그렇다고 봐.")
"있다면."
("있다면.")
"나그랜샤 레이드"다. 정말 오랜만이다. 매일 돈벌이를 하러 오긴 해도 묘사되는 일은 몇 화만인지 모르겠다. 상시 노가다를 하는 밋밋한 장면을 묘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경쟁력을 고려해서 가려내는 것이다.
난이도는 인플레이션에 밀려 하향을 많이 먹은 상태다.
막말이 아닌 사실로 [화염 대지]만으로도 "나그랜샤 레이드"를 깰 수 있다. "루카"가 코스프레를 준비한다고 바쁜 시절에 실제로 해보기도 했다. 이스터 에그 준비 때문에 마냥 그것만 한 것 같지만, 나도 오락거리가 있어야 사는 사람이다.
그 때보다 스펙이 더 높은데 녹았던 게 안 녹는 것도 이상하다.
[나그랜샤?/(100.00%)]
발판을 무조건 밟아야 하는 코어를 가진 촉수 괴물도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불의 신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팟쾅-
[나그랜샤?/(0.00%)]
방해 요소다.
레이드를 클리어하려는 목적이 아니고 이스터 에그를 찾으려는 목적이다.
둘 다 달성할 수 있으면 하겠지만, 눈앞에 놓인 것이 더욱 중요하다.
당장 가고 싶은 곳은 4x4x4로 된 방에서 꼭짓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곳이 특수한 공간을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근거 없는 개인적인 판단이다.
"남작 에스토르토 레이드"의 "남작" 보스전에서 파티별로 2명만 신스킬을 일시적으로 습득하는 패턴, 그 패턴에서 자신의 전직 교관의 사념 같은 걸 만나서 교류하는 장면이 있다.
그 때 묘사를 안 했지만 배경은 있었다. 그러나 유심히 보지 않고 "정령왕(불)"만 봤고, 3분의 1 확률인데도 다시 못 보고 있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최근에 그걸 겪은 "루카"는 그 배경에 대해 의구심을 느꼈다고 한다.
("미리 깼어.")
"그럼."
화륵, 솨아아아아아악-
[화마의 손짓]으로 일단 벽에 날려본다.
-아악
아무 반응이 없다.
("다른 곳.")
근거는 없으니 이래도 좋다.
"정령왕(물)"의 근거지 따로 없는 건 아니다. 애초에 모든 전직 교관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에 거점을 마련해 놓는다. 전직 퀘스트가 진행되지 않는 이상 움직이는 일은 없다.
대신 그건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나를 "정령왕(불)"과 알선하게 만든 "고즐 왕성"의 그 할아버지 말이다. 그 할아버지는 10레벨에 전직을 진행하고 나면 미전직 시절에 만났던 장소에서 만나볼 수가 없다. 당장 전직을 하고 나서 찾아가면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만나는 곳은 "마그란 레이드"의 시초가 되는 "프래나타"라는 마을에 가 있는다. 필드 몬스터 레벨이 100레벨 대이니 그 정도 스펙이 되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만나볼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웃기게도 120레벨 퀘스트를 완료하면 다시 "고즐 왕성"에 돌아와 있다. 위치는 조금 차이가 있긴 해도 있으면 된 거다.
이 전직 교관의 위치에 관해서는 타 직업이든 퀘스트 진행도를 공유한다. 아무 직업으로 전직을 한다면 그 할아버지를 120레벨 퀘스틑 완료하기 전까지 못 만난다는 이야기다. 그냥 TMI다.
적어도 120레벨 퀘스트를 깰 때에는 갈 수 있게끔 만들어 놓긴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령왕(물)"이 이 "나그랜샤 레이드"가 진행되는 지역과 가깝지는 않다.
비슷하긴 하다. 옆동네에 가까운 "할투"가 똑같은 설원 지대로 90레벨로 몬스터 레벨이 측정된 것에 비해, 이곳 "르훈투"는 140레벨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고 마을을 따로 갖고 있지 않아 저레벨 유저가 필드를 잘못 들어가서 의문사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120레벨 퀘스틑 깨기 전에도 "OCM(물)"이 자신의 전직 교관을 찾아갈 수는 있다. 잘 안 가는 게 정설이긴 하다.
이러한 "OCM"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그 전직 교관들이 120레벨이 지나고 나서 다시는 못 만난다는 점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정령왕(불)"을 떠나보냈다고 하지만, 120레벨 퀘스트를 클리어한 이후의 타임라인 기준으로는 다른 "정령왕들" 또한 나는 현재 만날 수 없다. 다른 직업이어도 "정령왕"은 못 만나는 건 똑같다. 다만, 그들은 "정령왕"이란 존재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고즐"에 있는 전직 교관이 아니라서 흘깃 쳐다볼 수도 없다.
("[오브]를 신스킬에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건 사기지."
생각은 해봤다. [불의 신화]를 [리로딩 오브]에 쓸 수 있었으면 뜬금없이 네임드가 한 번 더 나와도 처리가 가능하다.
"아, 맞네."
("왜?")
"[오브]를 안 썼구나."
("그랬구나.")
허전하다 생각했다. [버닝 불릿]을 쓸 시간에 차라리 [리로딩 오브]를 써서 [화마의 손짓]을 날릴 수 있었다. 그러면 몇 백만 데미지 차이를, 부족하긴 했겠다.
"이젠 상관없지."
올라갈 때 [화염 대지]를 끌 수밖에 없다. 스치기라도 하면 부서지는 방 사이를 가로막는 얼음 벽을 다 부수면 멀쩡한 평지까지 없어진다. 괜히 넓은 발판을 없앨 필요까지는 없다. 발판을 밟고 올라가며 나머지 두 곳도 살피러 간다.
ㄷ자 형태로, 밑의 한 꼭짓점을 기준으로 가장자리를 돌며 다 살핀다. 그 후에 는 계단식으로 위 꼭짓점에 도달해 다시 ㄷ자를 그리며 확인한다. 이게 사전에 약속한 방법이다. 운이 나빠서 2층부터 시작해 최소 25개의 방을 돌아야 할 것을 27개로 늘어난 것이 안타깝긴 하다.
64개 방 중에서 27개, 그렇게 적은 방이 아니다. 약 절반 가량의 방을 도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백작님"과 "아르헴"을 만나면 강제로 "나그랜샤"가 깨어나니 답이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가급적 네임드를 마주하더라도 안 맞도록 하는 게 관건인데, 둘 다 사람을 귀찮게 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어서 무시하는 선택지는 확실히 힘들다.
그냥 안 나와주기를 빌거나,
그 전에 이스터 에그를 찾는 게 우선이다.
("이곳인 것 같지 않아?")
호재가 생긴다. 마침 찾은 것 같기도 하다.
다섯 번째 꼭짓점에서 의문이 드는 배경을 목겨한다. 그렇게 특출나지 않는다. 패치 이후에도 "나그랜샤"를 돌고 돈 사람이 많은데 특이점이 한 눈에 들어온다면 "루카"의 의심이 아니라도 알려졌을 거다.
···라고 보통은 포장을 한다.
이번은 예외다.
너무 이상한 이펙트가 아른거린다.
멀쩡한 벽 같음에도 한 구석에 작은 동굴로 가는 비밀굴이 있다면서 하늘색 동그란 이펙트. 여기를 부수라는 강렬한 인상에 다짜고짜 [버닝 불릿]을 날린다.
팟!
푸석-
통로를 가로막고 있던 얼음 덩어리가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 안으로 살피지 않을 수 없는 터라 "루카"와 바로 진입한다.
("미니맵.")
미니맵도 새로 갱신된다. 기존의 "나그랜샤 레이드"의 넓직한 정사각형 맵 말고 동굴 안의 지도가 지나온 길을 갱신시키고 있다. 아직까지 여기가 외길인지, "근원"처럼 광장으로 모이는 미로인지 알 수는 없다.
"이런 곳이 밝혀지지 않은 게 신기한데, 내가 플레이어 수준을 과대평가 했나?"
("레이드를 클리어한 사람만 보이는 게 아니야?")
"아닌 사람을 데려왔어야 확인이 가능한데···."
그럴 것 같긴 하다. 이걸 모를 리는 없다.
정확한 통계는 없어도 "남작 에스토르토"를 직접 손으로 잡은 사람이 몇 없는 수준이다. '직접'이라 말해서 혹시나 버스나 쩔이 있다고 한다면 전혀 아니다. 아직까지 데미지 계산은 물론이고, 특정 네임드에서 6명을 전부 필요로 하는 파트가 있어서 그 부분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이 갈리는 중이다.
하물며 유동적인 파티원 교환이 불가능하다. 기차에 탄 인원만이 자신의 파티라는 점에서 파티를 교체하려면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그런 기능이 전무하다. 우리가 기차를 조작할 수 있는 건 선로 변동일 뿐이지 속력을 줄여서 다른 기차와 만나게 한다는 발상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있다고 한다. 다른 기차로 넘어가는 데에 이동 스킬들로 거리만 된다면 실현이 된다고 글이 올라왔었다. 한참 공략할 때 당시의 글이라서 재밌어 보였는데, 역시 환상에 불과했다. 실제 한 네임드에 7명이 들어가도 나머지 5명이 버틸 수 없었던지라 영상은 허무하게 실패로 끝났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통로가 너무 길어서다.
그래서 마저 말해서, 쩔을 한다고 정예 6명이 여덞 네임드를 모조리 잡는다는 가정이 있어도 석상, "문지기"를 뚫을 수 있는 화력이나 다른 방에서 해야 하는 패턴 파훼가 되지 않는다. 당장 2페이즈에 열리는 레이저 패턴은 따로 유도할 사람이 없으면 무조건 다른 방의 "문지기"에게 발사해서 네 곳 모두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게 조건이다. 그런 조건이라 3번 트라이가 가능하도록 만든 거겠지만.
각 파티에 몇 명씩 정예를 둔다는 식으로 전략을 짜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건 여덞 네임드를 2파티가 밀어버리고 보스전 돌입 직전에 3명씩 4파티를 구성해서 가는 건데, 파티원 교환이 막히니까 안 된다.
사상 초유로 쩔이 불가능한 레이드가 아니냐는 생각이 만연하다.
"얼마나 긴 거야, 이거"
("응? 안 들려?")
"뭐가?"
잡음도 잡담도 없이 한가롭게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오디오가 있는 건가.
(""정령왕"이 대사를 하고 있는데?")
"난, 안 들리는데?"
이거, "OCM(물)"의 특권인 것 같다. 나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하기야 나한테까지 접선을 하는 것도 이상하다. "정령왕(불)"이라는 다른 놈의 권속인 게 나의 정체성이고, 그게 아니라도 자신의 권속이 아닌 자에게 접선을 하는 게 이상하다.
("이제 옮겨준다는데?")
"그래?"
그래주면 고맙다. 다만, 왠지 "루카"만 옮겨질 것 같아 불안하다. 나는 걸어서 가야 한다는 슬픈 진실과 마주할까봐 각오한다.
쉬익-
("어.")/"어."
같이 소리가 난 등 뒤를 본다.
쿠우우우우우우-
순간 도망쳐야 한다는 위화감에 달리기 버튼에 손이 갔지만, 어림도 없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뒤에서 접근한 얼음벽이 우리를 덮친다. 밀려나는 소리가 저렇다.
이대로 근거지로 하이패스인 것 같은데, 텔레포트도 아니고 물리적으로 옮기는 이 시도는 참 볼품없다. 그렇게 한참 30초 동안 아무 조작을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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