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3)
스폰 위치는 아빠가 지상, "캐슬드라이버"가 동굴 안이다.
("1세트처럼 "캐논" 선수가 달려가고 있습니다.")
("[더킹] [스웨이]는 똑같은 모습입니다. 나머지 스킬들의 행방이 궁금한데요···.")
[더킹], [스웨이]까지는 괜찮다. 연계기로 활용될 수 있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공방 심리전에서 압박을 넣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다른 스킬이다. 아직까진 이동 단계라서 제대로 알 수야 없다. 그나마 인정을 보태어서 허용할 수 있는 선은 [추진]까지다. [가스 러쉬]를 위한 [폭권] 류도 괜찮다.
'이'도 이를 눈여겨 보는 중이다.
제발 데미지로는 꿀리지 않게끔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층이 나눠져서 금방 조우하는 건 무리다. 역시나 "성기사" 쪽은 오기를 바란다. 바라는 것도 있으나, 오는 걸 기정사실로 두고 플레이하는 모양이다.
지상에서 찾기를 포기한 아빠는 드디어 "설원"의 지형을 이용한다. 눈에 띄게 색이 다른 바닥이 지상에 있는데, 이 바닥은 일정 데미지를 주입하면 부서지도록 되어 있어 바로 동굴로 하강하도록 할 수 있는 장치다. 정식으로는 세 개의 내리막길로 갈 수 있는 동굴 안이지만 이런 식으로도 갈 수 있다.
챵그랑-
소음도 대단하다. 아무리 살살 쳐서 부순다고 해도 독립적으로 부서지는 효과음을 크게 설정해 놓아서 몰래 부수기란 거의 불가능이다. 멀리 떨어져있는 게 아닌 이상 상대에게도 들리게 된다.
'정'과 '이'가 이 단조로운 장면을 (굳이)해설한다.
("소리가 난 쪽으로 경계를 취하는 "캐슬" 선수, 기습은 안 될 것 같습니다?")
("기습이 안 될 위치이긴 합니다.")
1세트와는 다르게 대놓고 넓은 공간의 한복판에서 대기 중인 "캐슬드라이버"다. 겉으로는 정정당당해도 "성기사"를 잡은 이상 코너에 숨든 안 숨든 거기서 거기다. 그래도 1세트보다는 덜 비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조우한다. 딱히 극적인 연출은 없다.
("결국, 만났습니다. 예··· "캐논" 선수는 얌전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상황으로는 1세트와 똑같습니다.")
'정'의 '얌전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전혀 쓸모없는 [더킹], [스웨이]의 남발은 절제하고 그저 "캐슬드라이버"를 지켜본다.
자세 자체는 평온하지만 두 캐릭터를 조종하는 현실의 몸은 노려보고 있을 테다. 과연 언제 들어올까 고민 중일 것이다.
현실적이라면 상대가 눈을 깜빡이는 타이밍을 노려볼 만도 하다만, 아바타는 전혀 그렇지 않으니 반응하지 못하기를 비는 게 전부다.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는 이상 아무래도 먼저 들어가는 쪽이 불리하다.
끈덕진 근접 공격 직업들의 싸움은 몇 경기를 치르든 땀이 안 나기가 힘들다.
"신경전이라."
갑자기 궁금해진 게 있다.
"엄마는 아빠랑 격겜을 해봤나요."
"나?"
"지는 싸움을 왜 해?"
"그런가요?"
"나만의 싸움은 많이 했지."
"그게 리듬 게임이잖아요. 반대로 아빠는 했나요."
"했지. 그건 고인물이 있든 없든 알 바는 아니잖아? 순전히 내가 못해서 못하는 종목인데, 안 그러니?"
랭킹을 따지고 보면 누가 먼저 퍼펙트를 달성하느냐는 정복감이 리듬 게임 세계에서는 존재하겠지만, 그건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오직 나만의 싸움이다. 격투 게임, PvP는 그런 게 아니니까. 모든 일들이 상대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 영역이다.
("1분이 다 되어가는데, 과연 누가 신호를 열 것인가요?")
(""캐논" 선수는 1세트의 패배 때문에 위축될 만도 합니다. 이 판도 지면 끝이거든요.")
("단순히 예상이지만요, 어, 혹시 "캐논" 선수가 궁극기를 노리는 게 아닐-아, 공격을 시작합니다!")
'정, '이', '김'의 멘트 도중에 돌발적으로 "그랜드캐논"이 [더킹]을 시작한다. 마냥 기다렸는데 정적을 깨기 위한 페이크인가?
후웅, 팡!
1세트에선 나오지 않았던 [폭권 : 제 3형]이 사용된다. 몇 없는 원거리 견제 스킬이라 했던 게 드디어 튀어나온다. 어쩌면 1세트에서는 들고오지 않아서 못 썼던 게 아닐까 추측한다.
펑
맞아버리는 "캐슬드라이버"다. [막기]라는 수단도 있지만 일단 맞는다. 불길한 징조다
그 뒤의 연계는? 과연 어떨까?
치익-휴웅
드디어 "폭권사"의 전매특허가 나왔다. 피격 대상의 특정 위치로 이동하는 필중의 스킬이다.
나오지 않은 게 이상했다. 아이덴티티이자 데미지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스킬인데도 하나라도 넣지 않은 건 이상했다. 아무렴 단점이 명확해도 넣지 않은 건 이상했다.
("[섬멸기동]을 이제야 보네요. 과연?")
("막나요?")
'김', '이'가 말하는 것도 그렇고, 내가 말하는 것도 그렇고,
필중이라면서 왜 단점이 있는 건지 궁금하니 않은가?
이 단점이란 게 여러 가지 특징들이 겹친다.
1. 모션이 길다.
PvP라는 시스템 아래에서 당연히 이 스킬도 제약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필중이라고 하는 건 무조건 상대를 때릴 수 있는 궤도로 간다는 뜻이지 대응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뛰어서 피하는 건 불가능해도 일반 공격으로도 파훼가 가능하다. "저격수"와 "궁수"는 그런 것도 못하지만 말이다.
이는 견제 스킬의 단점과도 연결된다. [폭권 : 제 3형]이 몇 없는 원거리 견제 스킬이라고 해도 경직 시간은 그렇게 길지가 않다.
더군다나 [섬멸기동]의 선행 조건인 '타격 후'가 1초의 제한 시간을 둬서 유동적으로 쓰기도 힘들다. 쓴다면 무조건 1번 단점이 따라온다.
2. 위치가 고정이다.
[섬멸기동]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때리는 모션과 방법이 각각 다른 게 모드별 특징이다. 연타로 경직을 잇거나 위로 쳐올려서 콤보를 잇거나 멀리 날아가도록 강력하게 치는 [섬멸기동]이 각각 [폭렬], [충천], [경뢰]의 스킬로 구분되어 있다.
모두 세 스킬이다. 즉, 이 스킬들을 전부 스킬셋에 넣으면 세 칸을 잡아먹는 일이 일어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폭렬]만 쓴다고 하면 2번 단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폭렬]은 무조건 정면으로 가게 되어 있다. 정면으로 간다는 건 매우 무모한 짓이다. 이 정면은 적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시야각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면 상대가 보고 반응하는 게 아닌 미리 일반 공격을 시도하고 있으면 자칫하다가는 제 발로 걸려들어가는 상황이 연출된다. 웬만한 직업들의 일반 공격이 0.25초의 발동 시간을 가지는데, [섬멸기동 : 폭렬]은 등장하고 나서부터 0.19초로 이론상 0.1초 전에 일반 공격 프로세스를 작동시키면 반격할 수 있다.
아니면, [마력탄] 같은 즉발 스킬이면 가능하다. 이동 속도가 따로 있다고 해도 영거리에서 적중 못할 리가 없다.
그래서 [충천]은 측면이다. [경뢰]는 후방이라서 안전하지만, 상대를 다운시키면 콤보를 잇지 못한다. 일단 [경뢰]는 없는 스킬이라 치고 설명한다.
웬만해서 둘 다 사용하기 마련이다. [폭렬]이 정면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충천]은 [폭렬]보다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측면에 등장하는 만큼 일부러 단점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반응이 느려 측면에 등장하는 걸 의식 못한다면 [폭렬]보다 적중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측면을 의식한다면 [충천]의 성공률은 낮아진다. 0.27초, 그게 [충천]의 선 딜레이다.
따라서 이지선다를 쓸 수밖에 없다. 측면을 의식한다면 [폭렬]은 맞는 것이고, 정면을 사수하면 [충천]을 맞는다. 일반 공격들이 판정이 후한 편이 아니라 정면에 휘두른다고 측면에 나타나는 상대를 때릴 수 있지도 않다.
그런데, 그런 단점들과는 상관 없이,
축-푸쾅!
[섬멸기동]을 전혀 쓰지 않던 사람에게 맞으면 당연히 반응이 늦기 마련이다. 특히 측면으로 가는 [충천]은 나도 맞을 것 같다.
"캐슬드라이버"의 몸이 공중으로 뜬다.
푹, 퍽, 터터터터텅, 퍽퍽, 탓, 푹-슈우우우웅~쾅!!
[폭쇄], 일반 공격, [섬멸기동 : 폭렬], 일반 공격 2회, [정권], [섬멸기동 : 경뢰]로 콤보를 짓는다.
[섬멸기동]의 선행 조건은 [섬멸기동]으로 충족할 수 없다. 무조건 [섬멸기동] 후에 또 [섬멸기동]을 쓰려면 일반 공격을 하거나 다른 스킬을 섞어야 하므로 적절한 콤보다. 특히나 공중으로 띄워버렸기에 이 이상의 콤보는 무리다.
일단 저 건틀릿에 일반 공격이라도 맞으면 뼈가 부러졌을 건데, 아바타라서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바로 일어나는 "캐슬드라이버"다.
("화끈한 데미지를 주며 1세트보다 훨씬 많은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캐슬드라이버/(73.50%)]
거의 4분의 1을 깠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이제 턴은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폭권] 류와 달리 [섬멸기동] 류들은 쿨타임이 미친듯이 길다. 추적이라는 단점이 있어도 미쳐버린 기능에 준수한 데미지까지 동봉되어 있어 그렇다. 내 [유성우]가 25초인데, [경뢰]와 똑같은 쿨타임이다. [유성우]가 광범위에 협소하게 무작위로 떨구는데 맞으면 작은 경직에 걸린다는 점에서 쿨타임을 25초로 만든 것 같은데, 그래서 [경뢰]와 [유성우]가 같은 급의 스킬이라고 하면 당연히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김'이 "그랜드캐논"의 호기를 알리지만, '김'이 곧바로 "캐슬드라이버"를 해설한다.
("이제 "캐슬드라이버" 선수도 움직입니다. 반격을 가하고 싶을 겁니다.")
타타타타타타
따로 화려한 이동 스킬이 없어 뛰어간다지만, 위협적이다. 시간이 안 지나도 위협적인 이동 속도 버프에 여전히 [막기]라는 스킬이 남아 있어 참 어렵다.
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타
쫓아오는 대로 "그랜드캐논"도 뒤돌아서 뛴다. 미세하게 거리가 좁혀진다. [더킹] 등을 쓰면서 거리를 좀 더 벌릴 수 있는데 일부러 아끼는 모습이다.
타타, 컬걸걸탕
뛰는 중에 [어퍼 슬래쉬]로 꽁무니를 잡으려는 속셈이다. 실제로 가능하다. 돌진하는 스킬들이 대부분 이동 속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거리로는 붙잡힐 수 있었다.
단, [더킹]을 안 썼다는 점을 뺀다면.
후웅
뒤에서 나는 '컬' 소리를 듣자마자 우측으로 아빠는 빠진다.
턱
그리고 기상천외한 전술을 구사한다.
("피-했는데, 점프를?!")
'정'의 반응이랑 나랑 똑같다.
[더킹]으로 피하고 때릴 수 있긴 했다. [막기]란 변수가 있어도 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점프의 의도를 알 수 없다.
지상에서 공격하는 게 훨씬 유연할 텐데, 점프를 하면 위치가 강요된다. [스웨이]도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는 [막기]를 쓴다. 이해는 간다. [어퍼 슬래쉬]의 후 딜레이로 어떤 공격이든 맞을 수 있다는 압박, 설령 점프 일반 공격도 맞으면 경직에 들어가고, 역시 근접 공격이라서 받아칠 수 있다.
그러니 아빠가 생각해낸 혜안은 이것이다.
펑
공격을 가했지만, [막기] 걸리지 않는다.
일반 공격이나 [지면 강타]가 아닌 [폭권 : 제 1형]이라서.
착지하자마자 [스웨이]로 측면을 타고 간다. 순순히 [막기]를 빼준 상대가 고마울 것이다. 이제 속수무책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해서 [정권]을 날리려고 한다.
탁
타
그러나 허공을 가른다. 주먹이 "캐슬드라이버"에게 닿지 않는다. [막기]를 하느라 위치가 고정된 것 같았던 "캐슬드라이버"가 그 위치에 없어졌기 때문이다.
일반 공격보다 [정권]이 더 빠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특히나 측면에서 내질렀기에 일반 공격과 대립될 수 없다.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다.
한 가지, [정권]의 약점인 짧은 리치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은 수많은 이동 스킬로 알려져 있다. 그럼 없는 직업들은? 그런 직업들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정권]이 오는 방향이 아닌 곳으로의 점프. 순간 가속도로는 뛰기보다 빠르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성기사"가 공중에서 쓸 수 있는 스킬은-
쾅!
방패로 내려찍는 [진형붕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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