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전문가
방 안에 여동생을 들여보내고 계속 작업했던 것은 다름 아니라 '칼레이도'를 모니터에 연결하는 작업이다. 가끔은 '칼레이도'와 PC를 혼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러지 못하니까 아예 분리시켜서 '칼레이도'만으로 동작하게 만들었다. 모니터가 필요없다는 게 크게 작용했다.
한편으로는 필요없다고 생각했긴 했다. '칼레이도'를 여동생에 쥐어주고 직접 보라는 식으로 유도할 수 있긴 하니까 말이다.
그러면, 실시간으로 내가 피드백을 받을 수 없으니까 귀찮은 작업을 감수하는 것이다. 귀찮기만 할 뿐 크게 문제되는 건 없다.
"자작 스킬이면 언니와 똑같은 거 맞죠?"
정작 감수해야 되는 부분은 이런 점에서다. 내 비밀을 털어놓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필 친족에게 정보를 흘리는 셈이라 "루카"에게 들어가는 부담까지 감안하는 것이다.
"맞아."
"다른 작품으로요?"
"어."
"그래서 언니를 도와주지 못했던 건가요?"
"책망하려면 해."
"책망하려는 건 아니에요. 벌써 두 번째로 의뢰를 받는 거라 의외로 떨리지가 않아서요."
"루카"도 그랬다는 말이다. 홀로 프로젝트를 완료한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인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전면적으로 도움을 구하려는 의도가 아닐지라도 이조차 나는 여동생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는 혼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인원이 있었으면 협의점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나만 안고 가는 일은 한계가 있다.
조금이나마 미학이란 것에 연관이 있을 사람, 여동생을 고용하는 게 적합할 거라고 버스 안에서 창의력을 짜내서 답을 도출해내었던 것이다.
어제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부분에서 카메라의 각도만 측면으로 설정한 후에 여동생에게 '칼레이도'를 건넨다.
"재생만 누르면 돼."
"네? 완성한 거예요?"
"아직은."
완성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나, 추후에 수정이 있을 것까지 감안해서 미완성이라 해둔다. 그래도 틀은 완성했으니 완성이라고 쳐야 하는 게 올바르긴 할 텐데 말이다.
기껏 모니터로 연결해두어 제대로 스킬 이펙트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할 수 있음에도 나는 '칼레이도'를 뒤집어 쓴 여동생을 본다. 스킬 이펙트에 관해서는 이제 더 볼 필요도 없다. 사실 심부름을 나가기 전인 아침에도 한참 봤기 때문에 나로서는 내가 만든 작품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없다는 걸 판단한 셈이다.
그렇기에 내가 봐야 하는 건 스킬이 아니라 스킬을 보고 있는 여동생의 반응이 1순위어야 하며, 따라서 유일하게 보이는 입에 초점을 둔다. 나름 입도 표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반응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입이 미동이 없다. 처음에 스킬이 시작될 때 벌렸던 조그마한 입술은 마무리가 될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한다.
띠 이펙트가 소멸될 시점에 여동생을 말한다.
"끝이에요?"
"···어."
듣기만 해도 '기대한 것치고는 밋밋한 스킬이다'라는 감상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짧고 굵은 스킬이에요. 조금 밋밋하고요?"
말로 제대로 말뚝을 박아버리는 여동생에게 치명상을 입는다. 각오는 되어 있어도 총알을 아프게 맞는 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똑같이 아프기 마련이다.
"밋밋하지?"
"제가 '라티온'을 잘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데요? 이 세계의 마법사들은 팔에 룬 문자를 새기는 방식을 주로 이용하나요?"
"아니."
"그쵸? 제가 언니 플레이를 보면서 그런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예리한 관찰력이네."
"그런 컨셉의 충돌이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해요."
"컨셉의 충돌 말고는 다른 문제는?"
"방금 밋밋하다고 한 것도 문제에요."
"아."
같은 문제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한꺼번에 단점이 두 가지나 나온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게요?"
"해결책은 보이지 않아?"
"···네."
역시 전문가가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내가 의견을 내어본다. 이게 당연한 수순이다.
"룬 문자를 두르는 컨셉 자체를 파괴시키면 어떨 것 같아?"
"그 전에, 제가 질문을 먼저 하면 안 될까요?"
"어··· 그래."
흔쾌히 허락한다. 나보다는 여동생이 갑인 입장으로 여기고 있어서 그만한 지위는 있다.
"컨셉 아트를 어디서 빌린 건 아니죠?"
"어."
"흔히 일본풍 세게관에서 나오는 주술사 같은 느낌이 나거든요?"
"어."
"한자가 아닌 게 아쉬웠는데요, 이 스킬을 마법사한테 주입시키려고요?"
"그러려고 하지."
"띠가 날아가는 것도 부적이 날아가는 모습과 비슷해서 겉으로 보면 신 직업 주술사 같은 그런 구성의 전개에요."
"부정할 수는 없겠네."
약간 하이테크놀로지 같은 모습으로 봐주기를 원했지만, 이것도 논리는 맞아떨어져서 반박을 못한다. 고전적인 주술사로도 연결지을 수 있단 아이디어는 데려오길 잘했다고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 원흉 자체가 내가 컨셉을 확립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니 시시비비를 따지면 난 낙제점이다.
디테일이 나를 가로막는다.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방식을 프로그램에 있는 요소로만 활용해서 조립하려던 게 일부 재료들이 제대로 손질이 안 되어 있어 망한 케이스다. 여동생이 지적한 룬 문자도 전혀 수정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 넣어 컨셉이 제대로 시청자에게 전달이 안 되겠다. 날아가는 띠도 내가 넣고 싶어서 넣은 것에 불과한 근본 없는 요소다.
너저분하게 이리저리 기워 만든 걸레처럼 불완전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어떻게 수정하라고 하는 건 못하겠네요. 언니한테도 그렇고요. 언니와는 사정이 다르겠네요. 언니는 모사하려는 기술이라도 있지, 오빠는 알아서 만들어내려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욱 자문을 구하기 힘들겠지."
얼른 해치워버리려는 숙제는 골칫덩이로 점차 진화한다. 이미 진화할 체급도 없다고 생각했던 게 알아서 키워나가고 있다.
"길다람쥐"가 다소 오냐오냐했단 게 드러나는 시점이다. 아무래도 솔직 담백한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내가 얼른 끝내려는 의지를 보여주니 그에 걸맞게 눈높이도 낮춘 모양이다. 이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그럴 때는 한 가지 비법이 있죠."
"뭘?"
"저랑 같이 특촬물 하나만 보면 안 될까요?"
느닷없이 전도하려는 모습에 일단 질색을 한다.
"왜?"
"주술사, 라고 가볍게 말했지만요, 심화 강의에서는 이런 육탄전 액션은 역시 특촬이 최고에요."
"그래?"
나야 모르니까 순순히 넘어간다. 영업을 해도 뚝심이 있어서 그 쪽 계열로 빠져들진 않을 거지만, 한 번 믿어본다. 괜히 영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말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영업 반 도움 반일 것이다.
'칼레이도'를 벗어 살포시 침대 위에 올리고 내가 앉아 있는 의자로 다가온다.
눈치를 채고 의자에서 일어나 여동생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PC의 이용권을 넘긴다.
"생각나는 시리즈가 있으니까 그거나 보죠."
"1화부터?"
"찾아봐야 할 거예요. 저런 비슷한 기술을 쓰는 폼이 하나 있었거든요?"
김이 샌다. '저런 비슷한 기술'이란 말은 완전히 독창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희대의 발명을 하고자 하는 의지는 전혀 없었지만, 세상 어디에 하나라도 있을 줄 알았던 게 한참 가까이 있었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은 예상 밖이었다.
"시리즈 명은 기억하는데, 곤란해요. 몇 화였는지 기억이 안 나서요. 위키에서도 기술 이미지를 제대로 표기 안 헀을 것이라서-"
띵동-
"왔나 보네요?"
세상 모든 관심사가 특촤물에 몰려 있던 여동생이 초인종에 반응한다. 공복에 피자는 참을 수 없지. 배가 울진 않았으나 어느 정도 식욕에 정복 당했으리라 추측한다.
이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10초 후에 닫히는 소리. 효과음으로 표현하진 못하고 말로 넘어간다.
엄마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거실에서 먹을래, 방에서 먹을래?"
"거실로 해요."
"그럼 준비해야지?"
"네."
나가려는 찰나에 여동생이 나한테 묻는다.
"어느 방인지 아시는 거예요?"
"그야 내 방이니까."
"···그래요?"
납득이 안 가는 표정을 지어도 우선 순위는 엄마라서 여동생을 뒤로 한 채 나간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 거실에 탁상을 옮기는 걸 도와준다.
배치는 TV를 향해 보도록 탁상의 긴 부분이 TV와 평행하게 한다. 피자를 중심으로 양옆에 1.5L 콜라가 한 병씩, 중심에는 엄마를 하고 왼편에 내가 있고 나머지 오른편에 여동생을 보낸다.
컵은 여동생에게는 손님용 컵을 줌으로써 웬만한 곤란할 수 있는 요소들은 다 해결한다.
이럴 때마다 우리 집의 TV는 진가를 발휘한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는 TV라서 회선 요금이 낭비라는 생각도 든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TV에서 선방영을 한다면 그것대로 메리트가 있지만, 일단 나는 그러지 않고 엄마만 그런 식으로 활용하고 있어 산 가격 대비 효율을 못 내고 있다.
"뭘 볼까?"
"글쎼요?"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채널은 없니?"
"없어요."
"보고 싶은 거 있니?"
"음··· 없어요!"
"내가 보고 싶은 거 볼게?"
이럴 때야말로 TV와 인터넷이 연결되어있는 현실이 믿음직스럽다. PC나 폰으로 인터넷을 하지 누가 TV로 보겠냐는 평소의 생각은 대형 스크린만이 이룰 수 있는 업적을 마주한다면 고쳐질 것이다.
함께하는 이 상황에서 폰이나 PC의 모니터는 우리의 눈을 담기에 너무 좁다. 이런 사치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다.
"이거나 보자."
한 썸네일을 클릭하니 광고없이 바로 재생된다.
("여기, 가족의 품을-")
"이 채널을 아시네요?!"
"아직 어린 피인 거란다."
("-떠나서 살아야 하는 한 생명이 있습니다.")
"오늘 올라온 건가요?"
"10분 전."
"오오!"
("한참을 멀리 가다가도, 다시 뒤를 돌아보며 정을 들였던 가족을 지켜봅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다시금 인지한 생명은 후회하지 않도록 앞만 보고 달려나갑니다.")
심오한 다큐멘터리 같아도 실상은 게임 연출을 편집한 영상이다.
("그야, 가족의 전재산을 자기가 들고 있는데 어쩌겠냐요.")
"···."
"···."
"···."
피자를 집어서 먹느라고 침묵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이게 보통의 반응이다.
패스트 푸드를 먹으면서 패스트 푸드를 시청한다. 이 말이 이 상황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도 저 채널을 구독해 놓은 상태다. 괜히 저 영상만 보고서 패스트 푸드라고 비하하는 건 아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영상으로 볼 때는 제법 재밌었다. 확실히 그 영상이 잘 만들기도 했고, 수많은 영상 중에 걸작이라고 느끼는 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런 재미에 둔감해진다. 영상이 올라오기 때문에 보기는 보는데 그렇게 재밌지는 않다. 한 일주일 동안 묵혀 두었다가 봐도 재밌지는 않을 것이다.
손이 가는 이유는 올라왔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영상. 우리가 맛있는 과자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예전만큼의 맛은 느껴지지 않는 유사한 전개다.
10분 짜리 영상을 틀어놓고서는 피자를 다 해치울 때까지 말이 없을 것 같던 찰나, 침묵을 싫어하는 엄마가 이 자리에서 말한다.
"너희들, 네토라레 같은 건 아니지?"
"으에?(네?)"
잘도 그런 파격적인 대사를 치니까 여동생이 당황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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