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프리뷰(7)
어리둥절한 표정이 둘 다에게서 나타난다. 도대체 리허설 때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설마 등장할 때 간격만 리허설로 연습을 한 것인가.
초대했으면서 극심한 비밀주의에 "라임오렌지"와 마권은 농락 당하는 느낌일 테다. 그래도 태세전환을 하여 기쁜 걸음걸이를 선보이며 '칼레이도'를 향해 나아간다.
("신기체를 가져온 거라 세팅이 걸릴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세팅 중에 유심히 보니 '칼레이도'를 지탱하고 있는 위에서 뻗어온 봉은 신축이 자유자재인 모양이다. 탄성력은 없는 듯해서 나보다는 조금 키가 작은 마권은 위에서 '칼레이도'를 내려도 힘을 별로 안 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라임오렌지"가 마권보다 키가 크다는 게 드러나는 시점이다. 앉은 키로는 비교 불가능했던 둘이 나란히 서 있는 중이다.
또한, 비교되는 정도를 보아하니 "라임오렌지"가 나보다 키가 크긴 하다. 내릴 필요 없이 머리를 쏙 들여보낸다.
"부럽지 않니?"
"일반인이 어떻게 가나요."
"그래서 부럽지 않다고?"
"쇼케이스는 보기 위해서 있는 것이죠."
"타협이잖아?"
"타협해야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는 게 있다면 그건 가치가 없을 테다. 스트리머라는 신분이 땀 한 방울 없이 생겨나는 건 아니므로 타협을 하는 게 올바르다.
그래도 스트리머 이전에 친구된 녀석이 저쪽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장면이 송출되고 있는데 아예 흑심이 없지는 않다.
("준비가 다 되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설문을 하려고 합니다. 스태프 분들? 아무나에게 마이크를 건네 주시면 됩니다.")
굳이 직접 선택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일종의 책임 회피, 어쩔 수 없는 박탈감은 자신에게 느끼지 않도록 스태프에게 선택권을 양도한다.
("앞에서부터 자기소개, 실명으론 절대 안 해도 되고, 가급적이면 '라티온'에 관련해서 닉네임이나 직업 등으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카메라가 관객1을 향해 줌인한다.
("음··· "저격수"를 키우고 있는 유저인데요, 전망에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듣고 싶습니다.")
시작은 자신감이 없어보였지만, 그 뒤는 아니다.
(""나그랜샤"까지는 괜찮았다고 "저격수"를 키우다 보니 괜찮았던 게 전장이 넓으니까 파티원과 포지션을 잡는 게 넓어서 기존의 긴 사거리를 활용해서 "저격수"라는 직업명대로 플레이하기 수월했어요. 그런데, "로다란"에서는 다시 "마그란"이나 "테헤지"처럼 독방에 두고 보스를 잡으라는 식이라서 "저격수"라고 해도 인파이팅에 가깝게 플레이해야 한다는 게 너무 서글퍼요. 보스방, 이 개방된 보스전은 추후에 나올 건가요?")
즉석에서 무작위로 선별된 것치고는 상세하다. 일반적인 상황과 다르게 매우 장문이라 "심마니"도 신중하게 경청한 것 같다.
("잠시 역으로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을 않고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를 표한다.
(""나그랜샤"가 거의 개활지이긴 했지만, 어그로가 끌렸을 때는 그것도 인파이팅이라고 느끼진 않으셨나요?")
("그건, 피해야죠. 남들을 노리고 있을 때 쏘는 걸 원해서요.")
("어느 정도 이해했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업데이트는 기회를 놓치셨습니다. 다음 업데이트 때 가능하다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음 관객으로 넘어간다.
("신직업은 없나요?")
("네, 없습니다. ······라고 할까요? 노 코멘트로 하겠습니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저런 반응이면 있다는 소리다.
"있다는데?"
"그러게."
"루카"의 기대가 한층 높아진 느낌이다.
마지막 관객이다.
("1주년 치장 아이템은 있습니까?")
("워, 괜히 Q&A를 했나요? 이러다가 단물이 벌써 빠질 것 같네요. 너무 예상들 잘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모두의 불을 지피는 데는 큰 공헌을 한다. 미지였던 쇼케이스의 목차가 어느 정도 밝혀졌으니 기대하는 일만 남는다.
("성대하게 준비했지만 미처 생각도 못한 부분이 있었다는 걸 잘 알았습니다. 대기 시간이 있으면 Q&A를 소소하게 열 테니 이후에 물어볼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세팅이 완료된 것 같으니 시연 영상을 함께 보겠습니다.")
화면은 분할이 된다. 위아래 두 쪽으로 분할되어 "라임오렌지"와 마권이 보는 화면을 같이 송출시킴은 물론이고, 왠지 빈 공간 양옆으로 현실의 그들이 어떻게 조작하고 있는지 카메라가 비추고 있다.
현실의 모습은 왜 보여주는지 궁금하다. 4D가 있나? 그게 아니면 낭비란 생각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권의 화면이다. 장관이 아름답다, 하고 싶어도 그 전에 현란한 컨트롤러의 움직임이 보인다.
뭐를 하고 있더라니 퀵슬롯을 세팅 중이다.(···) 세팅이란 게 '칼레이도'를 머리에 알맞게 조정하고 "가디언"으로 가동하는 데까지를 세팅이란 한 모양이다. 그래도 아예 다른 직업이 아니니 세팅은 금방 되는 듯하다.
반면에, "라임오렌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스킬 아이콘도 보여주지 않아 본래 직업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다.
어느 쪽이 맞을까. 전투가 일어난다면 마권의 승리, 시연이기 때문에 겉핥기만 한다면 "라임오렌지"의 승리다.
그래도 스킬을 쓰는 게 좋아보이는 이유는 마권이 [진격]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쯤에 계세요?")
("아니, 처음 보는 곳이라 어디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아, 마이크도 세팅한 듯하다. 외부 마이크는 아니다. 인게임에서 마이크로 대화하는 걸 그대로 송출하는 것이다.
인터페이스 상에는 파티로 등록되어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미니맵엔 보이지 않아 전혀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시연자 분들께 말씀드리면, 본 시연은 일반적인 '라티온' 환경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필드에 나가도 몬스터가 없으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마음대로 나가도 되죠?")
("부탁드립니다.")
("NPC가 없으면 필드겠죠? 필드치고는 도로가 너무 좋은데···?")
기존의 지역도 충분히 이국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풍차나 우유통이나 양치기나 벽돌집이나, 이것들이 시작 마을에서부터 볼 수 있는 요소들이라 동양은 아니라는 색이 강하다.
엄밀히 말하면 산업 이전의 시대, 그게 기존의 배경이다.
이젠 근대다.
("철도다.")
("기차는 없나요?")
("정류장을 찾아야겠죠.")
("전 일단 철도부터가 안 보여요, 지금.")
철도를 발견한 마권은 명백히 마을이라고 판단된다. "라임오렌지"는 허허벌판 속이다.
그래도 힌트가 될 만한 고운 흙 도로는 있어서 길을 따라 가는 중이다.
("너무 막막한데요.(웃음)")
("계시나요~?")
한참을 뛰는 "라임오렌지"와 홀로 역에 도착한 마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매표소 NPC를 만난다.
("표값은 2000이다.")
("예.")
NPC는 일상적인 말 따위 없다. 대화를 신청하자마자 표값을 말하며 '산다'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뭐라고요?")
("NPC를 찾았어요.")
("와, 어떻게 구해줘요.")
("기다려주세요~")
기차를 탄다고 해도 가능성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철도를 못 찾은 "라임오렌지"라 기차를 타는 중에 만날 수 있을 리가 없다.
("기차, 기차는 어디서 타지? 표를 샀는데? 잠깐, 내 2000! 기차도 없는데 어떻게 타?!")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평소의 방송 텐션을 표출하고 있다. 원래 사람이 당황하면 절제를 잊어비리긴 한다.
("기차가 항상 대기 중일 이유는 없죠.")
("몇 대나 순환해요?")
("4대가 운영 중입니다. 그리고 모든 기차가 역마다 2분씩 대기하니 여유롭습니다. NPC에게 말만 걸면 곧바로 타지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운행 시간은···.")
("평균적으로 5분 걸립니다.")
평균, 정해진 규격은 있나 보다. 거리에 따라 달라야 하는 게 맞으니까 납득한다.
그렇게나 긴 철도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땅 덩어리는 얼마나 넓은가. "라임오렌지"가 아무리 뛰어다녀도 철도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가,
("어, 기차다!")
철도 대신에 기차를 먼저 발견한다. 땅에 박힌 것보다 위를 움직이는 큰 물체를 보기가 더 쉽다.
("뛰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의혹은 몸으로 푼다. 말하면서 이미 기차를 향해 뛰어간다.
당장 옆을 지나가는 게 아니라 기차가 오는 방향에 있어 최단거리로 철도를 향해 뛰어간다.
마권처럼 이동 스킬이 있다면 그걸 이용해도 된다고 답답하게 여겼다. 그런데, "라임오렌지"가 "연금술사"가 주 직업인 걸 감안하면 스킬을 활용하지 않는 이유가 설명된다. 이동 스킬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무작정 달리긴 했는데, 탈 수는 있나?")
("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타죠?")
("잘 타면 됩니다.")
어쩔 수가 없다. 이미 도착해서 기다린 "라임오렌지"지만 기차가 눈앞에서 지나가려 한다.
게임인데도 속도가 장난 없다. 실제 눈앞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속도감을 보여주고 있어 감히 들이대기란 힘들다.
("저······엄프!")
그래도 게임이라는 점을 최대한 의식해서 절대 따라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한다. 달리는 기차에 무임승차 하기. 물리엔진이 가동되고 있다면 튕겨져 나올 확률이 높다.
("우왘! 뭐야뭐야?!")
비명과 함께 화면이 빙글빙글 돈다. 윗면 한 쪽만 빙글빙글 돌아 사태가 금방 파악된다. 평화로운 마권과 달리 "라임오렌지"는 멀미가 날지도 모르겠다.
금방 균형을 찾은 화면은 검은색 바닥을 보여준다.
서서히 일어나는 "라임오렌지"다.
("아, 안 눌러도, 이게 자동 이벤트네.")
그렇다. "라임오렌지"는 오르기 전에 누른 점프가 컨트롤한 것의 전부다.
나머지는 정해진 수순대로 강제로 진행되는 방식이라 특별히 기행을 요구하진 않는 듯하다.
("근데, 이게 되네? 무임승차 미쳤는데?")
("탔어요?")
("예.")
("어? 역, 필요 없는데? 환불 해주세요.")
2천은 땅에 버려도 단위이긴 하다. "보물섬" 콘텐츠만 생각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양이다.
단지 적은 돈도 사기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아깝다고 느끼니까 아쉽긴 하다.
애초에 자기 돈도 아닌 테스트 용 계정이다.
("이렇게 되면 마을과 필드가 이어져 있는 건가.")
("그러네요?")
"심마니"가 거들어준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서 로딩이 한참 길긴 할 겁니다. 지역 전체가 필드로 나눠진 게 아니라 일체형이라서 용량이 큽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는 뭔가요?")
(""마크원"님이 기차를 타면 알려드릴 겁니다.")
정말 기차가 온다. 제대로 가속과 관성의 법칙을 따라서 실제 기차가 멈추는 것처럼 멀리서부터 감속해 온다.
그 느려터진 감속을 어떻게 참을까. 일반적으로는 완전히 정차 전에 타는 것은 안 되더라도 게임이니까 바로 뛰어가서 점프를 시도한다.
"라임오렌지"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날 거라 마권은 나름 각오하고 도움닫기를 한다.
···
···
("오.")
다행히 아무 일도 없다.
무조건이 아니라는 증명이다.
("잘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훈훈해서 어색하다. 어색해서 작위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작위적이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무심코 내뱉은 마권의 말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고 공감이 된다. '다'로 마쳐지니 "심마니"에게 한 소리가 아니라 방송 버릇으로 혼잣말처럼 한 것 같다.
("기차에 타셨으니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쿵.
플레이 중인 두 사람에게 똑같은 효과음이 들린다. 멀쩡하게 들리던 증기기관차의 칙칙폭폭 소리도 멎는다.
세상이 한순간에 어둠에 물들여진다. 본래는 해가 중천에 있는 낮이었다.
신급이 되는 존재가 해 대신 보름달을 하늘에 걸어놓았다.
("시작합니다.")
퓽~
무언가 쏘아올려지는 소리 "라임오렌지"와 마권은 입체음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보는 우리에게는 입체음향이 없지만 '칼레이도'에는 들어 있다.
빵, 빠빵!
당연하단 불꽃놀이. 축제의 서막을 알리기에 상징적인 요소다.
한 번 시작한 불꽃놀이는 쉴 새 없이 터진다. 효과음을 일일이 넣으면 민망할 정도로 많은 양이 지속해서 터진다.
1주년이라서 이벤트를 위한 신규 지역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추측으로 갈 수밖에 없다. 불꽃놀이는 너무나도 상징적이다. 축제가 아닌 의미로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신규 지역을 이벤트로 날려먹기에는 퀄리티가 높은 게 이상하다. 기차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게 오직 이벤트를 위함일까.
("어, 저 여러분은 못 느낄 텐데요···.")
("그 쪽도 그래요?")
("···'칼레이도'에 진동이 오고 있거든요?")
콰직.
화면이 깨진다. 실제 장비에 이상이 생겨서 깨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정도까지 독해했으면 알았을 법한데, 일단 말한다.
두 화면 모두 액정이 박살난 것처럼 화면이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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