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 with 폭권사(2)
이제 나온 지 2주가 넘어가는 콘텐츠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건, 불편하지만 의외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폭권사"가 아니라도 언제든 스펙이 안 되어도 끼어보려는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태반이고, 그런 사람들이 꼭 패턴을 숙지하고 온다는 보장이 없다.
설령 스펙이 된다고 해서 그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귀찮음이거나 너무 자신만만해서 즉석에서 패턴을 깨우치려는 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려고 든다.
샤사사사사사삭···
그러나 이 사태에 대해서 내 소신 발언을 하자면,
이건 최소한 "폭권사"가 저지른 일은 아니라고 본다.
마침 문까지 뛰어가는 도중에 "루카"와 같이 네임드를 선사해준 것으로 보이는 "폭권사"가 있다.
푹, 덜컹, 쉬유웅, 시잉
있는 스킬을 다 쓴다.
다름 아니라 장비의 스펙 때문에 증식하는 잡몹에 죽게 생겼다. HP 게이지는 보이지 않더라도 얼마나 긴박한지 막 누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넉백을 시키고도 증기에 의한 잔상이 몬스터 옆에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일일이 들어가서 죽음을 자초하고 있다.
("누가 살려줘 봐!")
("에휴, 염병한다.")
("잘 튀어보세요. 죽이면 안 되니까요, 풋.")
필드의 70%가 이미 잡몹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어딜 가도 잡몹의 손아귀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좁은 필드를 학교 운동장을 돌 듯이 뛰어다닌다.
("와, 씨!")
얼마나 아픈지는 모르겠다.
딱히 공감하고 싶지도 않다.
("힐도 없어?!")
내가 "사제"라 하더라도 그러지는 않을 테다.
그냥 방관한다. 그게 적절한 조치다.
우리가 그들을 비매너 행위로 제재를 먹일 수 없는 것 같이, 하물며 안 살려주는 게 제재를 먹을 일인가?
("에라이.")
결국 그들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강제 종료. 행동불능의 아바타도 보이지 않고 아직까지 HP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뿅하고 사라진다.
원래부터 그들은 인원으로 취급 못할 수준으로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없어도 괜찮다.
""사제" 없나요?"
("구석으로 모여요.")
("결국 빡종했네.")
그렇게 1페이즈는 손쉽게 끝이 난다.
처음에는 잡몹들이 증식하는 게 그런 큰 뜻인 줄 몰랐다.
어느 정도 장비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잡몹에 맞아 죽지는 않을 테니 물갈이를 하기 위한 전략이라,
일단 이것도 민폐의 일종으로 나라면 본받기 싫은 게 맞다. 무차별적으로 선량한 사람이나 불량한 사람들 모두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차마 행할 자신이 없다.
자칫하면 이번 회차가 끝나고 논쟁 거리로 삼을 만한 일이기 때문에 조신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내가 벌이진 않았으니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넓다.
2페이즈가 되자마자,
("누구임??!")
("누가 골탕 먹이려고 한 거냐?")
("내가 보기엔 보라색 쪽이거든?")
범인 찾기가 시작된다.
("내가 했는데?")
바로 범인이 튀어나온다. 범인의 지조가 있을 테니까 저 태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금하겠다.
("뒤질 뻔 했다고!")
("좋게 물갈이 됐으니까 된 거 아니냐? 뭐, 보라색이나 빨강 쪽은 거르지 못한 것 같은데.")
확실히 그 말대로 결과론적으로는 "폭권사"의 인구수가 거의 줄어든 상태였다. 박멸이라 해도 올바른 표현이겠다.
("그딴 식으로 포장하려는 생각 말고, 실제로 뒤진 사람도 있다.")
("뭔 배상을 하라는 소리야, 뭐야?")
("생각이 짧은 거나 인정하라고.")
그렇게 1:1로 말싸움이 성사된 것 같은데, 그리 평화로운(?) 것도 오래 가지 못한다.
2페이즈는 곧 시작되어 우리의 시야가 검게 변한다.
동시에 형형색색의 스포트라이트가 여섯 명에게 쬐어진다.
2페이즈에서는 그다지 "폭권사"를 골탕 먹이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못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면서,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구경하는 나머지들은 알아서 피하기 때문에 "폭권사"를 특정할 수가 없다.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폭권사"라면 몰라도, 그렇다고 한들 오래 방치한다고 해서 "폭권사" 본인이 지쳐서 쓰러지는 게 아니면 패턴이 끝나지 않는다.
물론 끝나지 않는다면 죽일 수야 있다. 단지 제한 시간 안에 스포트라이트를 조합해 흰색들을 만들지 않으면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인 6~8명이 전부 사망하기 때문에 무섭긴 하다.
어느 정도 극복은 가능해도, 스포트라이트에 죽기 직전 위치를 기억하지 않으면 행동불능된 아바타도 암흑 속에 가려져 찾아낼 수가 없다. 부활 기능은 가까이 가면 작동하더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이다.
6~8명 중 "폭권사"들만 당첨된다는 확률도 적고, 일부의 정의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하는 게 올바른 건지는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에게 달린 것이다.
실제로 두 번째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 8명 중에 "폭권사"가 당첨된다.
("잘 됐다. 그냥 방치해서 죽여버려.")
("폭사해라. 직업 이름도 비슷하네.")
("정의 구현해야지.")
이에 대해서 당연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도 뒤진다니까?")
("살려주면 되잖아.")
("잘도 믿겠다. 그냥 깨줘, x발. 뭣하러 우리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데?!")
신용이 오고가는 문제 이전에 나름 선심을 써준다면 굳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도 될 노릇이다. 그들의 주장도 맞는 말이라서, 난 애초에 주장을 안 했기 때문에 이 언쟁에서 외부자 입장이긴 하다만,
("x까. 난 죽긴 싫어.")
("염치 없는 것이 배신을 때려버리네?")
("아니, 저딴 걸로 염치 없다고 하는 새x도 미친 거 아니야?")
정의라고 주장하다가 적이 생격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이 뒤로는 어지럽다. 딱히 묘사하고 싶지도 않은 과격한 표현이 이어져서 진행되는 과정을 들어보면 이제는 서로의 감정 싸움이 된 듯하다.
그와중에 죽기 싫다고 하던 사람은 소신대로 "폭권사"와 결합하여 흰색 빛을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 그래서 2페이즈도 무난하게 넘겨서 HP는 멀쩡한데 정신적인 상처가 늘어나는 공략대다.
("이쯤 되니 누가 공략을 방해하는지 모르겠네? 일부러 니들이 트롤 짓하려고 명분을 쌓는 건 아니고?")
("x발 뭐라 그랬냐?")
("오픈 보이스에서 욕 찰지게 하지 말라고!")
이 상황이 참 웃기다.
다름이 아니라 "폭권사"를 화제의 중심에 두고 싸우는데, 정작 "폭권사"들은 이 일에 관여를 하지 않는다.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길인 건 맞다. 어차피 저런 고집불통에 대해 이기려고 파고드는 쪽이 지게 되어 있다. 정당한 토론이라서 누구 한 쪽이 패배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라서 무조건 무승부가 될 판국에서 "폭권사"들이 하는 짓은 매우 상식적이다.
본인들이 누구보다 데미지가 낮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3페이즈에서는 우리들을 피해다닌다. 오픈 보이스 채팅을 피해다니는 것도 있겠으나, 자신들의 그림자에서 나오는 탄막들이 주요 딜러인 우리들에게 닿지 않도록 유도해주고 있다.
양심이 없긴 해도 그들은 "폭권사"를 부 캐릭터로 육성하는 경험자라서 가능한 것이다. 정녕 초심자라면 장비가 허름한 것을 떠나 포션에 대한 개념이 현저히 적을 터인데, 질기게 생존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맞을 각오를 하고 온 것이라 생각된다.
("1분 돼요!")
누군가의 브리핑이다.
1분, 이 1분이란 시간은 3페이즈에서 제일 중요하다. 그림자에서 무슨 색이 나와도 간단히 맞으면서 해도 상관없어도, 1분이라는 말에 전부 그림자 반대 방향을 향한 공격을 중단한다.
("각자 확인하시고~")
지난번에 설명했던 "근원" 3페이즈에서 제일 위험한 패턴인 '회색'과 '남색'에 대한 대책법이다.
그 때는 발생 조건을 전혀 몰랐으나 빅 데이터를 통한 유추로 알아낼 수 있었다.
HP에 따른 발생 조건이라고 할 수도 없었던 것이 그림자를 통해서 위치를 특정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으니 제대로 데미지를 주지도 못했던 때였다. 게다가 HP를 까기도 전에 남색 패턴이 등장했던 전례가 있어서 HP는 아니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타이머를 준비하고 온 플레이어가 있었던 것이다. 각 페이즈마다 타이머를 초기화시켜서 시간에 따른 패턴이 없는지 살펴봤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근원"이 1분에 1명씩 남색 패턴을 쓴다는 걸 알았다. 그 다음에 회색 패턴이 30초인 걸 밝혀냈다. 30초에 2명씩, 오히려 빈도가 높고, 인원수가 1명이 늘어나니 제대로 2명이라는 사실에 가까워지는 게 조금 오래 걸렸다.
무엇보다 회색 패턴은 '반사'로 '개인적인 일'에 가까우니 그다지 유의하지 않는 습성이 있긴 하다. 남색 패턴이 '아군 공격'이므로 공리주의로 인해 남색 패턴을 주의하는 게 보통 심리다.
("뭐여, 없는데?")
("날먹들이 가져갔나 보네.")
("은근히 꿀일 수도?")
주요 딜러진들에게는 남색이 붙어 있지 않았다. 버그가 아니면 저 뒤에서 알아서 생존하고 있는 "폭권사"나 그 외 직업의 날로 먹는 플레이어들이 가져간 것이라고 판단된다.
진짜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사상자가 없다는 것만 해도 호기였다.
괜히 인원이 많아서 북적거리는 게 곤란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그 생각을 한 것은 아예 패턴도 모르면서 온 인원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다 패턴을 숙지하고 있다면 그만큼 편한 것도 없다.
다만, 해파리를 뚫을 때만큼은 좁은 길목에서 교통 체증이 일어날 확률은 확실히 증가한다. 그것만 유의하면 이 인해전술은 쓸모 있는 전술이 된다.
종합적으로 보면 그렇고, 결국 그래도 우리는 이 전술이 유용하고 불리하고를 떠나서 "근원"의 무기를 얻으려는 심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배척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라티온'이 서비스될 때 동안 꾸준히 지켜봐야 하는 과제인 셈이다.
("이번 공략이 유독 시끄러웠던 것 같아.")
""폭권사"에 대한 인식이 한순간 무너졌지."
"폭권사"만의 문제라 하기에도 애매하다. 개인적인 견해에서 어떤 직업이 가장 문제냐고 묻는다면 난 "사제"라고 답할 것이다.
딱히 데미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도, 다른 유틸리티 쪽, HP 회복이나 아군 보호 등에 있어 스펙에 따른 제약을 받는 건 아니라서 필요악이라 생각되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사제" 직업 중에서도 스펙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근원"을 잡는다고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날로 먹는다고 해도 스펙 업을 위한 의지가 있다는 것이니 그나마 괜찮은가?
(""폭권사"는 성능이 좋은지 모르겠어.")
"성능이 좋은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내일 당장 세지는 않겠지?")
"운이 좋아야 말이지."
("직업은 괜찮아 보이기도 하는데···.")
"폭권사" 때문에 좀 더 불거진 거지, 서비스 종료가 되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는 온라인 게임의 지병이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건 이번에도 "루카"가 "관념 망각의 억제"를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난 어차피 방관의 입장을 고수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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